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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갑절이 넘는 이윤을 얻고 있으면서도 계속 손해를 보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점, 그리고 교묘한 속임수로 저울질을 조작하여 고구마를 팔라고 ‘나’에게 강요하는 점‘ 등을 살펴볼 때, 가게 주인은 어떤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요? 여러분 나름대로의 ’다양한 기준 (도덕적 기준, 현실적 기준 등)‘을 바탕으로 인물의 행동을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평가해 보세요.
>>요즘 원모 쌤 국어시간에 나오는 지문들이 내 가슴속 묵은 상념을 두드리고 그 한켠을 자극한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도 내가 살았던 아슴푸레한 삶의 흔적들중 하나이다.
음... 나의 삶은 좀 남들과는 다른 보기 드물어 공감을 형성하기 되게 꺼려진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 질문에 대한 답이 상당히 주관적일 것이다.
나는 정들었던 애향초등학교에서 나혼자 목포제일중학교에 입학했다.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누군가 나를 일부러 힘들게 할려고 그런 줄 알았지만 당연히 그럴리는 없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새로운 중학교가서 친구들을 사귀면 되잖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큰 걱정거리는 아니였다. 입학식날, 역시 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1학년 1반 창가쪽 두번째 자리에 앉은 나는 당연히 옆에 짝궁도 없었지만 뒷자리에 앉은 친구 진영이와 현준이와 급속도로 친해졌고 역시 남자애들만 모여있는 중학교라 "게임"으로 모두가 단결되었다. 하지만, 그렇다. 내 예상은 빗나갔다. 아니 당연한 수컷들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귄 친구 중 한 명은 악마였다. 마치 헤르만 헤세의 작품 "데미안"의 주인공을 괴롭히던 '프란츠 크로머'와 비슷하고 생각한다.
그와 같은 무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창의적인 욕질을 해대며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성드립과 패드립을 섞어서 사용하며 흔히 잘나가고 싸움이 잘하는 친구들에게는 땅과 뽀뽀하듯 고개를 조아리다가 약한 친구들 앞에 서면 세상에서 가장 가장 척 흔히 가오를 잡고 때린다.
또한 그들은 온갖 부도덕한 것들을 죄책감 없이 자행한다.
예를 들자면 남들이 먹는 식판에다가 침을 뱉는다든지
내가 아는 중1은 그야말로 지옥이라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힘든 시간들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엄마가 갑상선 암에 걸려 많이 아파 하실땐 엄마와 마지막인줄 알았다. 음.. 그 때는 집에 와서 많이 울기도했다.
또한 물론 내가 맞고 다닌건 아니지만 그들과 함께 어울려 있고 그걸 보고도 말리지도 못하고 머라하지도 못한 내 자신이 너무나 미웠다. 더 이상한 건 그런 친구들이 하나둘씩 늘어간다는 점이었다. 아니 원래 그런 친구들만 제일중학교로 모였거나 아니면 이 전부터 이어져 온걸까.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가 없었던 것 같다. 사실초등학교 시절 친구랑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던 나는 그냥 친구들과 노는게 너무나 행복했고 나에겐 친구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했다. 그래서 인지 외로움이란 단어는 내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고 싶었다.
그때 당시를 회상할 때면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생겼는지 신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는지 많이 원망했곤 했다.
답: 나에게도 너도 한번 해봐 펴봐 때려봐 라고 말한 내 중학교 친구들이 아닐까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왜 너는 안해?" 이 나에겐 "너도 이렇게 되고 싶어?"라고 들리던 기억을 떠올린다면 이런 점에서 글 속 '나'에게 거짓 저울질을 하는 법을 알려주고 머뭇거리는 찰라에 왜 시킨대로 하지 않느냐고 협박?하는 점에서 나에게는 그들이 가게 주인과 같다.
지금의 내가 똑같은 상황에 있다면 '나'는 그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다. (그들이 바뀌기 전까지 말이다. 아 물론 바꿔도 전과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그때의 '나'처럼 글쓴이도 약한 존재였기 때문은 아닐까. 그들이 보기에 만만한
2. 내가 말하고 있는 ‘노예’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여러분은 이와 같은 ‘노예의 처지’가 된 적이 있는가?! 아니면 이러한 처지를 경험하고 있는 여러분 주위의 인물을 예로 들 수 있는가?! 자유롭게 이야기해보세요.
>>시간은 흐르고 흘러 많은 시간이 지난줄 알았지만 아직 중2다. 나도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시 중2병에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결국 '나'는 그들과 인연을 끊어버렸다. 하지만 나만 끊었다 . 결국 그들은 '나'를 중학교 졸업까지 계속됐다. 그들에게는 장난이지만 내게는 장난이 아니였다. 그냥 나는 그들의 일주일에 한번 마주칠까 말까한 장난감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다. 남들에게 무시받고 살아가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제일중학교에는 이런 유형의 친구들이 각 반에 적어도 3명은 있었기에 이렇게 계속 살아가고만 있을 순 없었다. '나'도 변화 해야만 했다.
결국 '나'는 그들의 노예로서 맹목적으로 따라갔다. 그랬으면 아마 지금 나는 여기 무안고등학교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수화통역사이신 어머니를 따라서 농아인분들에게 배풀었던 어머니의 베품과 따듯한 심성을 잊어버릴 수 없었다. 결국 난 결정해야 했다.
원래의 '나'와 사회적 시스템을 요구하는 '나'로 두개의 자아 즉 두개의 세상을 만들었다.
3. 이 수필의 작자인 ‘권정생 작가’가 아래 시의 시적 화자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인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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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다고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신경림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이 만나는 소리
방법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서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해서 그리움이 없겠는가
어머님 보고싶소 수없이 되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아 있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네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등 뒤로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만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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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래 <보기>는 작품에 등장하는 ‘나’의 ‘독백’중 한 대목이다. 만약 여러분이 ‘나’의 입장이 되었다면 ‘돈의 힘 (가게 주인의 부당한 명령)’에 굴복하고 복종했을 것인가? 아니면, ‘양심’을 지켰을 것인가? 논리·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모둠원들과 함께 이야기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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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돈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돈은 돈만 벌지 않고 악을 낳고 퍼뜨리는 악마다. 나는 그래서 그 돈에 복종했고 내 조그만 양심을 속이게 되었다. -교과서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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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그 가게 때려친다. 물론 세상 사람들 중에 '돈의 힘'에 굴복하는 사람들이 찾아 보면 많이 있다.
하지만 '나'조차 마저도 그들에게 무릎을 꿇어버린다면 도대체 법이 왜 존재하고 올바른 행동들을 왜 배우며 왜 우리는
착한 사람들에게 마음이 가는가 바로 우리 모두에게는 부끄럽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또한 내가 당했던 억울한 일들을 다른 사람이 당하고 있으면 막 구해주고 싶고 해결방법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지금의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들이 있잖아.
5. 아래 <보기>를 참고해 볼 때, ‘비도덕적·비양심적인 행위’는 왜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는 것일까?! 이것이 인간의 본성일까?! 아니면 도덕적으로 선한 삶은 순간순간의 ‘자기 비판과 검열, 성찰’의 과정이 없다면 전혀 실현 불가능한 삶일까?! 여러분의 생각을 이야기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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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처음 얼마 동안은 두렵고 떨리며 괴로웠지만 차츰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나도 악마들의 세상에 길들여진 것이다. (중략) 아무리 훌륭한 일도 정신을 잃고 맹목적으로 끌려가면 모두 악마로 둔갑해 버린다.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교과서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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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익숙해진다. 나또한 처음에 욕을 하고 남들을 내리 깔때면 상당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미안했다.
하지만 그 또한 익숙해 지던가. 점차 죄책감의 무게들이 덜어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중에 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6. 아래 <보기>를 참고해보고 깊이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선(善)한 것일까요? [반대로, 경제적 부(富)는 사람을 악(惡)하게만 만드는 것일까요?] 특정한 환경적 요건이 개인의 삶을 도덕적으로든 부도덕적으로든 일정한 방향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개인의 ’주체적인 자유 의지와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도덕적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말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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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세상이란 또 이렇기도 했다. 돈은 돈을 낳고 그 돈이 쌓이면 악을 낳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다.
-교과서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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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보았는데 이제 대충 어느 정도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마음이 선하거나 아니면 악하거나
내 경험상 악하다는 사람들의 거의 끝을 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그들은 사회에 정말 극히 소수이다. 그들은 돈의 힘에 굴복하고 복종할 뿐만 아니라 양심을 팔아 넘긴다. 하지만 이 과정은 순환하기 마련이다. 악한 사람들이 벌려 놓은 죄값으로 인해 약한 사람들이 피해를 받게 되고 또한 피해를 줄어들지 않고 순환하여 결국 가중되기 마련이다. 이 극심하고 더러운 고통은 결국 약한 사람은 악하게 만든다.
결국 악한 사람들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약함(가난)에서 탈출한다.
하지만 이런 세상 속에서 굳굳하게 버티는 분들이 계신다. 이게 바로 자신의 자유 의지와 선택이다. 이런 사람들은 정말 도덕적으로 삶을 통제 가능 하신 분이다.
결국 특정한 환경적 요건이 도덕적으로든 부도덕적으로든 일정한 방향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일제 치하에 지배당하고 있었던 일제강점기 시절에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차이점이라 말할 수 있다.
7. 옆집 구멍가게 아주머니에게 고구마 값을 깜빡 잊고 뒤늦게 지불한 시골 아주머니의 사연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나의 심리는 어떠했을까요? 주인공 ‘나’의 입장이 되어 상상해 보세요.
나는 낯선 귀신이 들려 내가 그토록 친밀했던 우리들의 공동체즉 초등학교 친구들과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 공동체를 향하여 마치 잃어버린 낙원을 향한 것 같은 격렬한 향수가 자주 엄습하고 있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이 중학교에서 영영 못찾을 줄 알았다. 이와 같은 친구들을....
하지만 나는 이 향수를 그에게서 느꼈다.
나는 이 친구가 아니였으면 각박하고 삭박한 제일중학교 버티기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내 친구 박신광 정말 고맙고 보고싶다.
아마 주인공은 나와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고 마주치게 될 정말 보석같은 사람
모두가 그렇듯이 정말 잘됐으면 하는 응원과 동경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
8. 내가 다시 ‘양심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왜 나는 어머니께 고구마 두관을 팔고 밤새도록 슬피 운 것일까요? ‘내’가 가장 두려워 한 것은 무엇이고, 왜 갑자기 고구마 가게를 떠나게 된 것일까요
누군가 그 이유를 말해보라하면 나는 명확한 답을 내놓기 어렵다. 그냥 나는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았고 내가 원하고자 하는 삶의 방향 또한 아니였다. 계기는 없다. 그냥 내가 양심을 팔아먹기엔 그 담대함이 부족해야 였다.
나 또한 그것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나와 같은 친구들의 반응를 느꼈이상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제일중학교 를 떠나 혼자 무안고등학교에 왔다. 그리고 내 선택은 옳았다. 내가 가장 두려워 한 것은 나 또한 그들처럼 되는 것이었고
결국 나는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지키고 말겠다.
9. 주인공 ‘나’가 훗날 또 한번 무슨 일엔가 크게 속아 넘어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개인으로 하여금 ‘비양심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 순전히 ‘개인의 책임’인가요? 아니면 ‘사회적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인가요? 여러분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해 봅시다.
사회적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에 피해자라면 또 다시 비양심적인 삶에 빠져들었을 땐 그것은 순전히 개인의 책임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 빠져나오는 과정 조차 쉽지 않았고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들은 보면서 정말 나는 저렇게 하진 말아야지 저렇게 살진 말아야지
또 다짐하고 다짐하고 결심했던 과거의 나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됀다.
지금 내가 그렇듯이
10, 아래 모바일 코드에 제시된 글쓴이 ‘권정생 작가의 삶’을 살펴보고, 그의 삶에 대해 평가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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