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원단과 추원재
순흥안씨 추원단은 시조공을 비롯하여 12분의 선조님의 묘소가 실전 됨으로써 그묘대신
단을 묘서 놓은 곳으로 경붕 영풍군 순흥면 읍내리 산 21번지 비봉산 기슭 명당터에 위
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1988년 11월에 중건된 것이며 해다다 음력으로 10월 1일에는 전
국의 후손들이 이곳에 모여 경건한 마음으로 세사를 받들고 있다.
그리고 이 추원단의 세사를 받드는데 필요한 제수등을 준비하고 또 자손들이 모여 회의
도 하고 숙식을 하는 곳이 추원재인 것이다
◈ 향려단 유허비
순흥 읍내 석교리 203번지에 향려단 유허비가 서있다.
향려단은 시조공과 태사공의 묘소가 실전되었기 때문에 이 두분 선조를 봉사하기 위해
1654년 시조공의 17대손인 의성현감으로 있던 응창공이 주가 되어 단을 설치하고 또한
이곳에 향려비를 세우고 그 때 부터 음력 10월 1일에 전국의 종원이 모여 세사를 받들
어 왔다.
이 향려단은 308년동안 시조공과 태사공의 세사를 모시다가 1962년에 석교리 181번지로
이전 합단 하였고 향려비도 석교리에 있다가 전술한대로 1988년의 비봉산의 신단소로 중
건하게 된 것이다
◈ 산파단 유허지
산파단은 순흥읍 석교리 516번지 산록에 있다. 산파단은 1858년에 2파 후손 창경공이
2파조 밀직부사공, 이부시랑공, 밀직상호군 그리고 문으공의 4위를 모셨던 단소인데
1962년 향려단과 함께 석교리 추원재로 이설 합단했다.
◈ 대산단 유허비
대산단은 순흥읍 읍내리 84번지에 있다. 대산단은 1825년 제3파 파조인 전리정랑공을
비롯하여 낭중공, 판정공, 문경공, 좨주공의 5윌르 모시고 세사를 받들던 곳인데 1963
년 추원재로 이설합단했다. 지금 이곳에는 대산단 유허비가 있다.
◈ 오산단 유허비
오산단은 순흥읍내 석교리 302의 1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이 오산단에는 시조공의 6세
이신 판관공파 파조이신 우사의대부 로부도감이신 휘 신 선조의 세사단으로 1922년 후
손 종덕공외 제손의 주관으로 설단 봉제해 오다 1962년 추원재로 이단 합설했고 현재는
비봉산 신단소에 모셔있다.
- 안터와 세연지
안터라고 전해 내려오는 곳은 지금의 비봉산 신단소인 순흥안씨 추원단의 바로 건넛편
이며 이 곳은 학다리마을로써 현재는 농가 몇 동이남아 있다.
이 안터는 문성공 선조께서 태어나시고 자란곳이며 문헌에 나오는 술좌진향의 고지를
말하는 것과 우리 안문 일족들이 이곳에 집거했다는 뜻으로 나온 말이다.
그리고 이 안터에서 바로 가까운 세연지가 있다. 이 조그만한 연못은 문성공께서 소시
적에 공부하시면서 벼루를 싰으시던 곳이다. 그런데 이 세연지는 1959년의 태풍과 산
사태로 매몰되어 현재는 석천만 남아있고 그 옆에 세연지비가 서 있다.
- 사 현 정
사현정은 순흥면 읍내리 사현정동에 있는 우물이다.
이 곳은 문경공과 그의 아들 문정고이, 문경공, 좨주공의 4부자가 잡수시던 우물로서
이 우물물을 드시고 4부자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현인이 되었다는 데서 연유한 것
이다.
- 영 모 암
영모암은 경북 영풍군 부석면 감곡리 서쪽에 지장산이 있는데 이 곳에 순흥안씨 제1파
의 시조이신 추밀공의 묘소가 있다.
이미 설명한대로 시조공의 묘소도 실전되었고 그 밑의 삼형제중 둘째, 셌째분의 묘소도
모두 실전되었는데 철째분의 묘소만이 현존하고 있으니 우리 순흥안씨의 선조묘소로는
가장 오래된 묘소이다.
그리고 이 묘소를 관리하는 재실이 있는데 이 재실이 바로 영모암이다.
- 은덕재와 봉모재
은덕재는 경북 영풍군 덕산면 병산리 산 21-6번지에 있다. 이곳에는 시조공의 5세이신
문경공의 묘소가 있고 이 묘소를 관리하는 재실이 은덕재이다.
그리고 봉모재는 경북 봉화군 봉화면 문단리에 있다.
이곳에는 시조공의 6세이신 문정고으이 부인 문씨의 묘와 시조공의 7세이신 문간공의
묘소가 있고 이묘소들을 관리하고있는 재실이 봉모재이다.
이 묘소는 관향지 순흥에서는 추밀공묘소 다음으로 현존하는 오래된 묘소들이다.
- 소 수 서 원
소수서원은 경북 영풍군 순흥읍내에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 생긴 서원이다.
원래 서원은 선비들이 모여서 학문을 강론하고 석학또는 충절로 돌아가신 분들을 제향
하는 곳을 말하는데 그 기원은 1543년 풍기 군수였다 주세봉 선생이 주자의 백동록서원
을 본받아 고려 명현, 문성공 선조가 살던 고향인 순흥의 백운동에 백운동서운을 세워
문성공 선조를 먼저 모시다가 후에 문정공과 문경고 선조를 추배 봉사하고유생들에게
독서와 강학을 하도록 편의를 제공하였던 것이 우리나라 서원의 효시이다.
- 용연서원과 순흥향교 그리고 봉서루
순흥의 용연서원에는 태사공, 문순공, 문숙공, 문혜공, 경질공, 판서공 선조를 모셔
1865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철폐되어 아직 복원을 못하고 있으며 그 현판만
은 안정면 대룡산에 있는 서파공 부조묘에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순흥읍내에 있는 순흥향교는 1398년 성균관 개설과 곧 이어 유향인 순흥에 우
선적으로 세워졌다. 여기에서 순흥향교를 소개하는것은 이 향교에 문성공 선조께서 배
향되어 있기 떄문이다.
향교는 지방의 중등 교육기관으로 즉 향토의 향사를 교육하는 곳이었다.
봉서루는 지금 순흥 면사무소의 구내에 있는데 여기에는 순흥의 전성시대인 순흥도호
부가 있었을 떄 순흥도호부라는 큰 현판이 걸려 있으며 문정공 선조께서 지으신 순흥
봉서루 중영기가 있다.이 누각은 전에는 순흥읍내 석교리밑에 있던 것을 그 후 면사
무소 구내로 이전했다고 한다.
- 패도와 피끈이
패도라는 소위 섬과 피끈이라는 동내는 순흥에서 영주로 가는 길가에 있다.
이조때의 세조는 자기의 아우 금성대군이 사육신의 단종복위 사건에 연류되었다 하여
순흥땅에 패도로 유배를 시켰다.
금성대군이 순흥으로 유배됨으로써 우리 순흥안문은 엄청나게 화를 입게 되었기 때문
에 이 패도는 우리 안문으로서는 잊을 수 없는 곳이다.
패도는 순흥에서 피끈이라는 동내 조금 못가서 논 한가운데 둘러 4.5미터, 높이 1.5
미터 정도 되는 큰 무덤만하나 봉우리가 있고 여기에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이
것이 패도 즉, 조개섬이라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