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반려동물들과 함께
신 영 이
어항의 물고기에게 일용할 양식을 뿌려준다. 물고기 밥 주는 일은 어느새 내 차지가 되어 버렸다. “물고기 밥은 줬어?” 매일 내가 챙기는 걸 아이들도 알지만, 알아서 챙겨 줬으면 하는 바람을 물음으로 대신해 본다. 서로 미루다 많이 먹는 날도, 아예 못 먹는 날도 있을 것 같아 마음을 달리 먹는다. 좀 성가시지만, 내가 챙겨줄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안에만 온전히 있는 날이 계속되었다. 별로 관심을 주지 않았던 어항을 한 번씩 면밀히 살펴본다. 물고기는 한 마리뿐이다. 이름이라도 지어 부르면 날 보고 방긋 웃어 줄 것 같아 ‘멍뭉이’라고 지어 주었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한참을 샅샅이 살펴보다가 영 나타나지 않으면 똑똑 어항을 두들겨 보기도 하고 물을 한 번 저어 보기도 한다. 죽었나 하는 불안감이 느껴지면 수초와 인공 조형물을 들어 올려 물고기의 행방을 찾는다. 한 마리가 더 있었는데 죽어버려서 남은 한 마리에 더 애착이 가기도 하고, 멍뭉이 마저 없으면 희망의 불꽃이 사그라들 것 같아 애타게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조그마한 어항으로 옮겨졌지만, 한때는 200~300마리 물고기가 빼곡히 들어찰 정도로 큰 어항이 있었다. 몇 번의 분양을 거듭하고 넘쳐나는 물고기는 내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 식구들의 소홀한 관심 때문인지 어항에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번식도 줄고 개체 수도 점점 줄어갔다. 심지어 큰 어항 접합 부분에 문제가 생겨 큰 물난리를 겪고, 지금의 아담한 어항으로 옮겨졌다.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지만 말이다. 남편은 공기 순환기가 제대로 작동이 안 된 것 같다며 손을 봐 놨으니 남은 한 마리는 괜찮을 거라 한다.
유치원 무렵부터 줄곧 아이들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자고 성화였다. 시골집에 강아지 때 사 와서 기른 진돗개도 있고 그 사이에서 낳은 강아지를 어미 젖 뗄 때까지 키워서 분양 보낸 경험도 몇 번 있으니, 그 정도면 되었다며 반대를 했다. 집에서 꼭 안아가면서 키우고 싶은 맘은 알지만. 내가 감당하기 힘들어 키우기 싫기도 했고, 큰아이와 작은아이 둘 다 피 검사에서 강아지, 고양이 알레르기가 나온 것 또한 키울 수 없는 큰 이유가 되기도 했다. 고심 끝에 정해진 것이 물고기였다.
두어 번 반려동물을 키워 본 적이 있다. 남동생이 손 갈 게 별로 없다며 키우던 소라게를 가져다주었다. 첫 번째 반려동물이었다. 야행성이라 밤마다 사각거리는 소리는 났지만, 물이나 먹이를 매일 주지 않아서 까다롭지 않게 2~3년을 키운 것 같다. 탈피 과정을 거쳐 부쩍 자란 몸을 완벽히 자기 집으로 숨기지 못하면 집을 옮겨줘야 하는 걸 알고서 큰 집을 구해주었다. 살짝 옆에 두면 알아서 그 집으로 가만히 옮겨가 새집에 쏙 들어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 신기하다며 잠에서 깨지 않은 아이들을 호들갑스럽게 부른다. 아이들도 모두 신기해했다. 소라게는 넓은 바닷가에서 집 구하기가 쉬울까? 은신처가 있어 든든하겠지만, 그걸 들고 다니는 게 수고롭지는 않을까? 옮기고 난 텅 빈 껍데기가 문득 내 집처럼 느껴졌다.
발발발 기어가면서 뭐라도 나타나면 쏙 기어들어 가 ‘여기 아무도 없어요. 소라껍데기 밖에요’라 말하는 듯한 천연덕스럽고 잽싼 바다 소라게를 휴가 간 서해안 바닷가에서 본 적이 있다.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면 쏙 들어가 몸을 숨기고 나오지 않아 살금살금 숨죽이고 지켜보다 따라가고 또 따라갔던 기억이 황홀하게 지는 석양과 함께 남아 있다.
그해 가뭄이 심했던 겨울 건조한 아파트 환경 생각을 못 하고 넉넉히 넣어줬어야 하는 물을 미쳐 신경 쓰지 못해 말라 죽어 버렸다. 나의 무심한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이들 뒤치다꺼리로 신경 못 썼다 핑계를 대보지만, 그 죄책감은 손을 베인 상처처럼 아리게 남아 있었다. 생물을 다시 집에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런데 큰아이가 몇 해 지나 초등학교 때 문방구에서 뽑기 상품으로 햄스터를 들고 왔다. 애완동물을 키우자고 조르고는 있었지만, 뜬금없이 햄스터라니, 하얀 쥐 같이 생겨서 징그러웠다. 어릴 적에 본 ‘브이’라는 인기 방영 프로에 하얀 쥐가 그 외계인들의 먹이였는데, 꼬리를 잡아서 입으로 가져가 꿀꺽꿀꺽 삼키는 장면이 생생히 떠올라 손사래를 쳤다. 가져온 걸 버릴 수도 없고, 다른 집에 주라고 하니 자기 방에서 키워보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청소, 먹이 주기, 목욕시키기 등등 햄스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알아서 하기로 약속을 받고 딸아이 방에서만 키우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빼꼼히 문 열어 보면 꼬물거리는 게 징그러워 “애고머니!” 하고 얼른 문을 닫곤 했지만, 아이는 이름을 ‘로로’라 지어 준 햄스터를 꺼내어서 쳐다보고 만져보고 하면서 흠뻑 정을 들였다. 자기만의 보물을 간직한 것처럼 그걸 보느라 거실에 나오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한 해를 살뜰히 잘 돌보았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로로는 거실에 나오게 되었다. 먹이를 주면 냉큼 달려와 해바라기 씨를 까먹고 볼 주머니에 가득 채워 부풀려진 모습을 보면 다람쥐 같기도 해 흠뻑 정이 들었다. 만지는 게 꺼려져 먹이 주는 일 외에 다른 것은 큰아이가 책임지고 잘 돌봐 주었다.
어느 날 혹 하나가 볼록 나온 게 눈에 띄었다. 종양인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졌다. 손쓸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 것 같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하루 움직임도 느려지다가 자기 몸 반 이상으로 커져 버려 숨쉬기조차 버거워했다. 안쓰러워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해바라기 씨를 까 입 가까이에 가져다줘 봤지만 이내 몸을 돌려 톱밥에 파고든다. 로로를 지켜보고 있으니 사람을 간병하는 것처럼 마음이 무겁고 고통스러웠다. 며칠을 옴짝 않더니 다음 날 아침 벌러덩 뒤집힌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묻어주기는 했지만,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슬며시 물고기를 바라본다. 오늘도 물고기 밥 주기 일을 기꺼이 맡는다. 새끼 물고기를 분양받아 온 어항에는 공기 방울 가득 생기 넘치고 희망으로 부풀어 오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작은 생명들에게 위안을 받았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무언가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키워볼 만하지 않은가.
우리 집에서 함께 잘살아보자! 나의 반려들아!
19작은 반려동물들과 함께[신영이].hwp
첫댓글 글을 읽으며 우리집 어항의 물고기를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네요.
우리집도 반려동물 키우기를 반대하는 저로 인해 어항의 물고기만 키우고 있답니다.
글을 읽고 나니 어항에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될 거 같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나아갈 길어 멀었는데, 댓글에 힘이 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