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사람들(Les Justes (1949), pièce en 5 actes.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 in ��정의의 사람들·계엄령��(알베르 카뮈, 김화영, 책세상, 2000, P. 352) pp. 11-126.
* 1905년 2월 17일 모스크바에서 혁명가 다섯이 모여서 러시아 대공(세르게이)을 암살할 것을 결의하고 실행한다. 폭탄을 던진 실행자는 실제 인물이며, 작가는 그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 이반 칼리아예프(Ivan Platonovitch Kaliaïev, ou Kaliayev, 1877-1905)(스물여덟) 러시아 혁명가, 세르게이 대공에게 폭탄을 던지고 사형당하다. / 세르게이 대공(Le grand-duc Serge Alexandrovitch, Sergueï Aleksandrovitch Romanov, 1857-1905)
혁명의 과정에서 폭정의 위정자에 대해 테러 즉 암살은 당연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암살될 자와 더불어 죽을 어린애 또는 선량한 자가 있어서 암살을 실행하지 못하면 혁명가일까 아닐까 하는 것을 문제거리로 삼는 경우가 있다.
오래전 이야기 인데, 프랑스 대혁명에서 왕을 처단했어야 하는지 아닌지? 혁명이 있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설문이다. 혁명 200여년이 지나서 설문이다. 프랑스인들은 루이16세를 처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쪽이 과반을 넘었다. 그런데 혁명을 해야지에는 80퍼센트가 넘었다고 한다. 그 설명자는 혁명에 착오 또는 부조리가 있다하더라도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프랑스 인의 견해라 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와 더불어 징세청부인이었던 라브와지에도 기요틴에 사라졌다. 학문이 뒤처지고, 사소한 일(징세)로 위인을 잃는다는 점에서 혁명의 과격성을 부정하는 이에 대해, 찬성론자는 그런 위인은 시기적으로 조금 늦고 빠르고 차이이지 그 위인이 없어졌다고 해서 학문의 발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희곡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칼리아예프와 혁명의 마땅함을 주장하는 스테판 사이에 어느 쪽에 대변을 하느냐에 따라서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까뮈와 사르트르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혁명은 혁명이다. 혁명에 인간주의를 개입시키는 것은, 헐리우드 전쟁 영화에서 미군의 작전과정에는 거의 항상 어린애를 구출하거나 보호하는 장면을 넣는데, 이는 전쟁을 수행하지만 인간적이라는 측면을 보여주려하는 술수이다. 실상은 이렇다. 힘이 있는 쪽이 전쟁을 건다는 것이 잘못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부수적인 것으로 전쟁을 논하거나 혁명을 논하면, 조그만 사례를 들어 혁명의 부당성, 전쟁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제국주의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전쟁을 걸리 위해 어떤 거짓 뉴스를 만들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전쟁을 걸어놓고, 전쟁 중에 인간적이니 인도적이니 하는 것은 가식이며 허위의식이다. 그런데 전쟁 중에 한 인간이 무고한 시민을 죽이는데 대해 거부하는 인간미는 있을 수 있다. 아마도 그 인간은 전쟁 반대로서 감옥에 갔거나 정신병원에 수용되었을 확률이 크다. 전쟁반대가 인도주의이다. 전쟁에서 인간미를 내보이는 것은 정태적 종교가 자기 방어를 위해 자기보존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 그 보존은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미화하는 것이 우화들이고 제국주의 영화이다.
한 가지 덧붙이면, 멜를로퐁티와 사르트르 사이에 공산주의를 대하는 관점에서도 문제거리가 있다. 왜 사르트르는, 스탈린이 정보정치를 통한 공포정치와 독재정치를 실행을 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공산주의의 존속에 대해 동의를 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가 공산주의를 종교적 신념으로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기심으로 자기와 자기 나라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걸고 인민을 죽음으로 모는, 또는 상층철학을 배경으로 인민을 지배하는 방식에 대해 거부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스탈린을 옹호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인민의 피를 빠는 방식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자본의 독점으로 가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리라. 그 상층 자본가는 전쟁을 통해 자본의 지배를 확장하고 절대적 권력을 만들었고 만들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 미국이라는 제국이 양차 대전쟁으로 달러 중심국가였고, 그 자본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세계의 곳곳에 크고 작은 전쟁에 개입했다. 단지 법을 지키는 세계 경찰이라는 주장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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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이 열리면 다섯 사람[Dora, Kaliayev(Yanek), Annenkov, Stepan, Voinov]의 테러리스트가 한데 모여 모의를 한다. 시인으로 행복한 아름다움을 애호하며 삶에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목적 하나로 살인을 감행하는 이반 칼리아예프, 그룹의 지도자이며 인정 많은 인물 보리스 아넨코프, 극단주의자 스테판 페도로프, 열정적이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젊은이 알렉시스 부아노프, 그리고 사랑과 정의의 감정에 넘치지만 연민의 정 또한 역제하지 못하며 칼리아예프를 사랑하는 도라 돌로프가 그들이다.
내일의 러시아를 위해서라면 희생시키지 못할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스테판, 그리고 인간주의를 앞세우는 칼리아예프와 도라는 격렬하게 논쟁하며 대립하지만 결국 리더 아넨코프의 결정에 따라 칼리아예프는 다음 기회를 얻게 되고 결국 성공한다. 그리고 그는 체포되어 사형 당한다. #
# 정의의 사람들·계엄령((Le) Justes, L'Etat de Siege)****************
- 알베르 카뮈, 김화영, 책세상, 2000. P. 352
목차
▧ 책머리에
▧ 정의의 사람들 11
오 사랑이여, 삶이여!
삶이 아니라 차라리 죽음 속의 사랑을. <로미오와 줄리엣>, 4막 5장. (12)
# 1949년 12월 15일 폴 왜트리(Paul Œttly.1890-1959)의 연출로 에베르또 극장(au théâtre Hébertot)에서 상연되었을 때, 드 로네가 무대장치와 의상을 맡았다. 배역들
도라 들보프 Dora : Maria Casarès
대공비 La grande duchesse(대공비) : Michèle Lahaye
이반 칼아예프 Kaliayev : Serge Reggiani
스테판 페도로프 Stepan : Michel Bouquet
보리스 아넨코프 Annenkov : Yves Brainville
알렉세이 부아노프 Voinov : Jean Pommier
스쿠라토프 Skouratov : Paul Oettly
포카 Foka : Moncorbier
간수 Le gardien : Louis Perdoux (13)
제1막 15-38
테러리스트들의 아파트. 아침 (16)
카뮈와 사르트르 사이의 논쟁점은 두 사람이 각자의 인물을 대변한다고들 한다(Albert Camus: Kaliayev et Jean-Paul Sartre: Stepan).
제2막 39-59
다음날 저녁, 같은 장소 (40)
[칼레이예프가 대공의 조카와 질녀 때문에 폭탄투척을 하지 못했다. 스테판은 화를 냈다.]
제3막 61-81
이틀후 같은 장소. 같은 시간 (62)
[칼리아예프(Kaliayev)가 대공에게 포탄을 던지고 감옥에 간다.]
제4막 83-108
부티르키 감옥의 푸가체프 탑 안에 있는 독방. 아침 (84)
[감옥에서 칼리아예프와 만난이들: 다른 죄수(포카), 경찰총감 스쿠라토프(Skouratov) 대공비]
제5막 109-126.
다른 아파트. 그러나 같은 스타일, 일주일 후 밥
[칼리아예프의 사형 집행날 밤: ]
스테판: 그들이 그에게 판결문을 읽어줬어.
도라: 그러는 동안에 그이는 무엇을 하고 있었지?
스테판: 아무것도. 딱 한번 다리를 움직였어. 구두에 묻은 진흙을 털어내려고! (122)
[김종석(金鍾碩, 1918-1949) 중령은 1948년에 여순 14연대 반란사건이 발생했을 때 남조선로동당 계열 군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박정희의 배신과 밀고로 체포되어 1949년 9월 총살당한다. 김중령은 동료들과 쾌활하게 웃으며 대화하고 하우스만 대위에게 담배를 건내 받아 맛있게 피우고는 소풍 가듯이 총살대 앞에 선다. / 형장에서 이슬로 사라지기 전에도 여유를 잃지 않고 해맑게 웃으면서 미군정 소속 장교들과 악수하면서 농담을 주고받았고 총살당하기 직전에도 웃으며 인민공화국의 적기가를 불렀다(위키)]
▧ 계엄령
▧ 부록
<정의의 사람들>에 부친 서평 의뢰문과 소개의 말 - 알베르 카뮈 283-285
나는 심지어 『정의의 사람들』의 주인공 칼리아예프에게는 그가 실제로 지녔던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도록 했다. 나태한 상상력 때문이 아니라 가장 잔혹한 과업을 수행하는 가운데서도 변함없는 마음을 간직했던 그 남자들과 여자들에 대한 존중과 찬미의 심정 때문에 그렇게 했다. 그 때 이후 우리는 진보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이 예외적인 영혼의 소유자들을 짓눌렀던 증오심은 이제 안락한 체제로 변했다. 그럴수록 더욱 이 위대한 인간들의 그림자를, 그들의 올바른 반항을, 그들의 힘겨운 동지애를, 그들이 살인 행위와 일치시키기 위해 바친 그 엄청난 노력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고 그럴수록 더욱 우리의 변함없는 충정은 어디에 있는지를 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83-284; 두 문단 중 둘째 문단.)
<정의의 사람들> 해설 / 일로나 쿰(Ilona Coombs, s.d.)
일로나 쿰(Ilona Coombs, s.d.), Camus, Homme de Theatre, 1968.
<계엄령> 서문/ 피에르 루이 레
▧ 카뮈 연보/ 로제 키요
극1913까뮈1949정의.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