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냐? 공이냐?
지난달 KAIST 기술경영대학원으로부터 <기업가정신> 관련 특강을 부탁받았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IT 업계의 후배 CEO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기업의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을 하나만 꼽는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해? 모래탑 부수기 놀이 기억하지? 모래탑의 중심에 막대기를 꽂아 놓고 가장자리를 살살 긁어내던 놀이. 마지막까지 남는 그 막대기처럼 모든 것을 하나씩 버리고나서도 끝까지 남는 성공요인이 뭘까?” 그들이 무슨 대답을 할지 궁금했다. 자금인가, 기술인가, 아니면 마케팅인가, 사람인가?
골똘히 생각하던 한 후배가 말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운’이라는 단어입니다.” 성공원인을 자신의 아이디어와 노력보다도 ‘운’으로 돌리는 후배의 모습이 가상했다.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도전하여 성공하였으니 운이 좋았다고 겸손하게 돌려 말하는 것이다. 미국의 한 TV방송에서 있었던 일이다. 성공한 CEO 12명에게 현재하는 일이 대학 졸업시에 품었던 계획 중에서 Plan A에 해당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한명도 없었다. 그러면 Plan B인 경우는? 3명이 손들었다. Plan C인 경우는? 4명이 손들었다. 나머지는 모두 Plan D였다. 세상일이 자기 원래 뜻대로 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한다.
성공원인을 99%의 노력과 1%의 운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도 그 1%의 운이 없었다면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기업가들이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것은 그 속에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운’을 선물한다. 준비된 자의 99%의 노력에 1%의 운이 촉매가 되어 드디어 성공으로 폭발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결정적인 1%의 운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99%의 준비이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가 부단한 노력 끝에 성공을 일구어낸 사람들이다. 陰陽의 이치처럼 ‘운’을 180도 뒤집어 보면 ‘공’이 된다. 그들이 1%의 ‘운’이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실은 ‘공(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공(工)’이 대표적으로 쓰이는 단어는 아마도 공부(工夫)일 것이다. 공부란 본디 불교의 수행을 상징하는 말로 ‘어떤 학문이나 기술 따위를 배우거나 익혀 그에 대한 지식을 쌓는 행위’를 일컫는다. 혹자는 인도의 수행을 의미하는 단어와 비슷한 한자음이 공부가 되었고, 공부라는 뜻에서 ‘쿵푸’도 유래되었다고 주장한다. 어문학자가 아니니, 자신하지는 못하겠지만 논리적으로는 그럴 듯하다.
Book Smart, Street Smart, Deep Smart!
영리하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을 우리는 “똑똑”하다고 말하고, 서구인들은 스마트하다고 말한다. 휴대폰도 똑똑하게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스마트 폰”이라고 부른다. 스마트라는 용어가 여러 키워드 앞에 붙여 사용되고 있다. 스마트 그리드, 스마트 TV, 스마트 라이프, 스마트 경영 등등. 어떤 단어 앞에 붙여도 말이 그럴 듯 해진다.
똑똑한 사람이 되려면 학교를 오래 다니고,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런 사람을 북 스마트(Book Smart)라 부른다. 형편이 어려워 가방끈이 짧더라도, 삶 속에서 두루 주변사람들에게서 배워 현명함을 얻은 사람을 스트리트 스마트(Street Smart)라고 부른다. 그러나 진정한 고수는 북스마트, 스트리트 스마트 그 이상의 훈련이 필요하다. 남다른 내공을 가진 절정 고수를 서구에서는 딥 스마트(Deep Smart)라 부른다고 한다. “딥 스마트”는 새로운 인재상을 찾기 위한 2005년 하바드대의 연구 프로젝트의 이름이기도 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헛 똑똑이를 많이 보아왔다. 좋은 집안 배경과 남다른 학벌을 가져 똑똑하지만 이상하게 사람이 따르지 않는다. 개인주의와 지나친 합리주의적 태도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는 말마다 이치에 맞고 논리정연 함에도 사람들은 그들을 껄끄럽게 생각한다. 그들은 성취를 이룬 다음에도 자신이 똑똑해서 다했다고 한다. 같이 고생한 동료들은 안중에 없다. 그러니 “나를 따르라!” 외쳐도 사람들은 “너 혼자 뛰어라!” 라고 말할 뿐이다.
반면에 학력도 떨어지고 어려운 집안에서 성장하였음에도 깊은 사려심과 인내심을 가지고, 주변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실전형 리더의 모습도 보았다. 탁월한 감성관리와 위기를 예지하고 돌파하는 추진력이 남다른 “스트리트 스마트”들은 우리 주위에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스트리트 스마트”는 때때로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옹고집을 부리다가 일순 큰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흔한 것 같다.
“딥 스마트”는 뛰어난 경쟁력을 갖춘 이른 바 초절정 내공 고수를 이르는 말이다. “북스마트”처럼 이론에도 능하며, 실전 경험을 통해 축적된 통찰력, 변화를 예지하는 복합사고와 시간을 관통하는 역사의식을 가진 “하이퍼 스페셜리스트”이다. 사람의 속내를 이해하며, 가치를 공유하는 조직을 만들고, 조직의 성장을 가늠하는 판단기준과 성공신념을 결집 시키고, 구성원의 성장을 도모하되 기본에 충실한 전문성을 갖도록 만드는 경영자와 리더를 이제부터는 “딥 스마트”라 부르자. 그러나 딥 스마트는 책이나 실전 경험만으로 터득할 수도 없는 한계가 있다. 스승이 주는 구결을 통해 배우는 무협영화의 주인공처럼 뛰어난 멘토가 필요하다. 멘토가 전해준 구결을 열 번이고 백번이고 연마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수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딥 스마트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기본이다. 관계역량, 조직역량, 판단역량, 전문역량, 소통역량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기본 이론과 스킬, 노하우들이 ‘운’을 끌어들이는 ‘공’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본 이론을 바탕으로 프로페셔널 전문성을 기르며 이론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경험을 위해 현장으로 과감히 뛰어들어라. 그 속에서 관계를 엮고 조직을 겪으면서 비즈니스의 판단력과 신념을 길러라. 이러한 과정은 꾸준히 이루어져야 자신 안에 사금처럼 지혜가 쌓인다. ‘공’에서 ‘내공(內功)’으로 축적되는 것이다. 내공이 쌓인 자가 바로 딥 스마트이다.
앞으로 소셜네트워크는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강화될 것이다. 정보가 곧 권력인 이 시대에 축적된 정보와 이를 통한 자기만의 내공을 가진 딥 스마트가 사회 각 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딥 스마트가 되려면 자신이 미래를 경영하는 CEO라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학습하고 노력해야 한다. 배움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철학을 가져야 경쟁력 있는 리더가 될 수 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막연히 운을 기다리며 서 있는가? 운을 불러들이는 공의 시작점에 서 있는가? 운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딥 스마트의 출발선상에 서서 분명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가?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고, 배움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우주의 지혜와 소통한다. 중요한 일은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항상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카약을 처음 타는 초보자는 힘의 균형을 놓쳐 직진을 하지 못하고 왼쪽 오른쪽 지그재그로 배를 몰다 지쳐버린다. 능숙한 카약커는 시야를 멀리 두고 작은 배의 흔들림에 개의치 않으며 멀리 직진한다. 과녁을 향한 화살이 시종일관 올곧게 날아가듯이 높은 경지를 향해 나아가려는 이에게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 올곧은 신념, 그리고 참을성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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