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시비 부른 러셀의 성교육서 <결혼과 도덕>
상상이 빚어내는 동화속의 주인공들은 대개가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난 끝에 마침내 결혼이라는 화려한 행복의 문으로 골인한다. 콩쥐를 비롯하여 백설 공주, 신데렐라, 인어공주가 (적어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는) 한결 같았다. 우리는 그들이 그 문으로 들어간 후 불행해졌다는 풍문을 접한 적이 없다. 적어도 이들에게만은 “결혼이 사랑의 무덤”은 아니었다.
사랑과 결혼을 화두로 현대철학의 거장 러셀(Bertrand Russell,1872-1970)이 1929년에 출간한 화제의 책이 바로 <결혼과 도덕>(Marriage and Morals)이었다. 이 책은 다른 저서처럼 직접 저술한 것이 아니라 구술한 내용을 다시 적은 것으로서, 그의 두 번째 아내와 함께 경영하던 실험학교 비컨 힐 스쿨(Beacon Hill school)의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한 심산으로 내놓은 대중서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사회학, 심리학, 역사학, 인류학 등이 모두 녹아 들어가 있는 고급한 인문교양서이다. 그는 이 책으로 적지 않은 재정적 이익도 보았으나 그 당시의 보수적 분위기에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은 <결혼과 성도덕>이라야 제격이기 때문이다.
러셀이 1940년 뉴욕시립대학의 교수직을 포기해야 하는 수모를 겪었던 것은 이 책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반향의 정도를 가늠하게 한다. 그 대학을 다니던 학 여학생의 어머니는 러셀의 강의가 자기 딸의 정조를 훼손시킬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학교를 경영하는 뉴욕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이에 패소한 시당국은 더 이상 항소하지 않았다. 이 소송에서 원고 측의 변호사는 이 책을 “호색적이고 저속하며, 선정적이고 색광적이며, 최음적이고 편협하며, 위선적이고 도전적”이라고 몰아 붙였다.
그러나 러셀은 “무릇 혁신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은 소크라테스처럼 언제나 청년을 타락시킨다는 비난을 받기 마련이다”이라고 자신을 변호하기도 하고,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서 “사랑에 대한 열망, 지식에 대한 탐구,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 이 세 가지가 자신의 삶을 지배해 왔다”고 술회하기도 한다. 적어도 <결혼과 도덕>의 저술 동기만은 순수하며, 이 책이 어린아이들의 성교육의 문제로 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계몽적 의도는 분명히 드러난다.
성에 관한 전통적 인습이 갖는 폐악에 대한 그의 논의는 대략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아이들이 가능한 한 성에 관해 무지해야 하며 어떤 정보도 그들에게 노출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분위기에서 성장하면, 아이들은 성에 관해 호기심을 갖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성에 대한 이러한 터부는 아이들의 건강한 호기심을 파괴하고 성에 관한 죄의식과 공포감을 갖게 만들며 심지어는 성인이 된 후의 결혼생활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하게 된다. 둘째 성에 관해 거짓말을 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불신감을 조장하여 아이들과 신뢰감에 기초하는 당당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음으로써 교육상 심각한 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는다. 부모들은 어린아이들의 호기심을 과잉 억제함으로써 그들을 우둔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셌째, 남녀가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연인이 되려면 성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 성에 관한 무지로 말미암아 결혼생활이 부담스럽고 불만족스럽게 되며, 마침내 육체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교제도 어려워진다. 그들은 서로 가장 친밀하고 또 가장 중요한 관심사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어색해함으로써, 결혼생활의 위기를 초래할 불행한 사태를 맞이하기도 한다.
성교육 다음으로 러셀이 강조하는 것은 결혼의 사회·,경제적 근거에 대한 적절한 이해의 필요성이다. 이러한 근거를 도외시한 낭만적인 사랑은 언제 꺼질 줄 모르는 불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낭만적 사랑에 탐닉하다 보면 우리는 충동을 억제하지 않으려는 반발심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 그래서 사랑과 결혼이 항상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결혼과 사랑은 서로 분리되어야 하며, 결혼은 근본적으로 자식의 출산과 양육을 위한 제도에 지나지 않을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자식이 없는 가운데 배우자들이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는 오로지 그들만의 결정할 사항이다. 그러나 자식이 있을 때에는 자식의 권리가 부모들의 권리에 우선해야 한다. 자식이 없는 결혼 생활은 서로를 즐겁게 하기 위해 존속될 뿐이며, 서로에게 부담이 되거나 만족감을 줄 수 없는 결혼 생활이라면 언제든지 이혼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그렇다고 러셀이 결혼과 관련하여 당사자들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일까지를 구체적으로 열거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이혼할 때 드는 비용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러셀의 이러한 파격적 사상은 기본적으로 ‘자유와 사랑’(이것은 둘째 부인 도라의 자서전의 제목이기도 하다)을 저울질해야 하는 딜레마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부부가 서로간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간섭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들이 자식을 양육하기 위해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면 관용과 자제력을 갖고서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까지도 눈감아 줄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그 이상으로 배우자가 부정한 행위로 낳은 아이까지 양육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자유와 사랑은 더 이상 양립하기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러셀의 이러한 요구에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응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러셀의 이러한 사상은 마침내 린제이(Ben Lindsey)판사가 말하는 우애결혼(companionate marriage)의 제도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학문에 전념해야 할 시기에 성문제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결혼을 한 학생들이 결혼을 안 한 학생들에 비해 더 좋은 학업결과를 얻을 수 있고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여기서 러셀의 결론은 이혼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고 또 간통이 불법이 되지 않는 법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자식이 있는 부모가 자식들에게 부모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않는 것은 여론의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러셀의 이러한 견해는 1929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주목할 만하다. 피임법의 개발과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성의 증대는 그의 제안이 가능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그러나 그가 우려했던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데, 그것은 자식 부양의 책임을 팽개치고 낭만적인 사랑을 찾아 가정을 떠나는 상황이다. 자식의 권리를 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하고 또 자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사례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귀족으로서 또 잘 나가던 철학자로서 러셀은 자식의 부양을 하녀에게 맡길 수 있었다지만 오늘날의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자식의 부양을 직접 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래된 관습이 허물어지면서 오늘날의 아버지들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현실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이 지속적으로 이 책에서 보여주려는 것은 사랑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또 그것에 대한 요구도 절대적인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다른 무엇 때문에 사랑을 희생시켜야만 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성적으로 서로 동지의식을 느끼는 사람과의 친애의 감정은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다. 그런 점에서 러셀은 철저한 개인주의자이면서 동시에 개인들 사이의 단단한 단절의 벽을 허물려고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고독하게 지내왔고 그래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어떤 활동이든지 그 근저에는 쓰라린 고독이 깔려있음을 자주 지적하곤 했다. 그런 그가 결혼을 고독을 물리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생애 통산 네 번의 공식적인 결혼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자유와 관용의 정신에 기초한 <결혼과 도덕>을 고려대학교 김 영철 교수가해 한국에 처음 번역, 소개한 것은 1977년의 일이었다. 그 당시 센세이션날하면서도 고품격의 논의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1980년대에는 시중의 서점에서 이 책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제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이 책이 출간된 것은 성개방의 풍조와 함께 그 어느 때보다도 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주목할 만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처음 소개되었을 때보다 비교적 어려운 한자어들이 쉽게 풀이되고 있으며 장과 절마다 독자들의 이해와 흥미를 돋우는 소제목이 부가되었다는 것이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출간과 함께 결혼과 성에 관한 한층 더 진지하고 격조 높은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글쓴이 최 용 철(崔 容 哲): 철학박사, 현재 전북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있으며, 논문으로 <도덕적 책임귀속의 문제> , <성품과 책임>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자유의지와 결정론>, <인간 행위의 탐구>, <인간 본성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 등이 있다. 申世美 기자
이상은 1998년 12월 문화일보에 실렸던 내용입니다.
첫댓글 실천하는 학자 러셀의 대중적인 글 요즘 다시 읽어보니 결혼전과 결혼 후에 느끼는 깨달음은 전혀 다릅니다. 글읽기에서 스키마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스스로 절감하게 됩니다..ㅎ 진보적 시선은 무조건적인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삐딱이 편견<?>을 가진 저로서는 그의 책이 당시 상황에서 얼마나 모험적이면서도 용감한 것인지 그리고 현재에도 아직도 유효한 의미가 있는 글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존경스러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ㅎㅎ실천하는 지식인, 고지식함에 목매지 않는 그의 발랄함을 존경하면서 글 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