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NEWS | |
2월의 문화인물
김 환 기 (金 煥 基)
|
문화관광부는 2월의 문화인물로 서양화가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 : 1913~1974)화백을 선정하였다. 전남 신안에서 태어난 김화백은 일찍이 일본대학 예술학부에 입학하여 1930년 후반에는 일본화단의전위적 단체인 자유미술가협회전 창립에 참여함으로써 본격적인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했다. 50년대에 들어서는 한국적 정서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 시기에 그는 백자항아리, 산, 탈, 여인 등 전통적인 소재를 검은 윤곽선으로 처리하여 평면적 화면으로 펼쳐 보였다.
1963년 상파울로비엔날레 한국대표로 참석했으며, 그 해 미국 뉴욕에 정착한 이후 1974년 작고하기까지 뉴욕화단에서 활동하였는데, 미국으로 건너간 후 나온 70년대 <점> 시리즈는 두터운 질감위주에서 벗어나 점, 선, 면에서 더욱 발전된 점만의 세계로 환원되어 독특한 예술세계를 확립시켰다. 그의 대표작은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 <구름과 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이 있다.
문화부는 김화백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작품전시회(2월 1일~28일. 전남 신안 김환기 생가 일원), 기념식 및 축하공연(2월 6일. 신안 안좌초등학교), 탄신기념전(2월 27일~3월 31일. 서울 부암동 환기미술관) 등의 기념행사를 마련했다.
<구름과 달> 96 x 65cm Oil on Canvas 1902
<달 둘> 45 x 37cm Oil on Canvas 1960 | |
<무제> 91 x 65cm Oil on Canvas 1960 |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 61 x 41cm Oil on Canvas 1956
2009년 K옥션 경매
김환기 미공개 作 <무제 1-VI-70 #174> 17억원에 낙찰
경매낙찰률 76%
|
미술품 전문 경매회사 K옥션(대표 김순응)이 지난 6월 24일(수) 오후 5시 신사동 아트타워 사옥에서 2009년 두 번째 메이저 경매를 개최했다. 이번 경매에서는 총 198점의 작품이 출품되어 150점이 낙찰, 76%의 낙찰률과 57억 원의 총 낙찰성사금액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지난 3월 경매 낙찰률 71%에 비해 5% 상승하였으며 낙찰총액은 약 2배가량 증가하였다.
한편 15억원에 나온 김환기의 미공개작 <무제 1-VI-70 #174> 는 17억 원에 낙찰되어 이번 경매의 최고가를 기록하였으며, 조선시대 장생도(長生圖)의 진수를 보여주는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가 추정가의 2배에 이르는 5억8,000만원에 낙찰됐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박수근의 <농악>은 유찰되었으며, 그 밖에 박수근의 <화조도>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추정가의 8배인 4,000만원에 낙찰되었고 작자미상의 <이종림 초상>은 1억 원에 낙찰되었다.
실제로 이번 경매 프리뷰에는 3월 경매 때보다 많은 컬렉터들이 전시를 관람했는데 이에 K옥션 측은 "가격 문의와 사전 서면ㆍ전화 응찰도 늘어났으며 국내 경제의 회복과 함께 미술 시장 역시 되살아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경매는 실물경제의 회복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미술시장의 회생을 기대하게 한 경매라고 볼 수 있겠다.
- 편집팀 -
제114회 서울옥션
근현대 이우환, 박수근, 김환기 등 대표작가 작품 꾸준한 인기
낙찰률 75%, 총 낙찰액 50억 806만원
|
서울옥션은 6월 29일(월) 오후 5시, 평창동 서울옥션스페이스에서 제10 회 커팅엣지 경매와 제114 회 미술품 경매를 진행했다. 서울옥션의 올해 두 번 째 메이저 경매인 제114 회 미술품 경매는 출품된 총 186점 중 139점이 낙찰되어 낙찰률 75%, 총 낙찰액 5억 806만원을 기록했다. 최고 낙찰가는 이우환의 ‘선으로부터’로 7억 천만 원을 기록했다. 제10 회 커팅엣지 경매에서는 출품된 44점 중 39점이 낙찰되었으며, 낙찰률 89%, 총 낙찰액 2억 9710만원을 기록하였다. 커팅엣지의 최고 낙찰가는 도성욱의 ‘Condition Light’ 로 2600만 원을 기록했다. 근현대 미술품 섹션에서는 박수근의 ‘노상의 사람들’이 3억 6천만원에 낙찰되었으며, 김환기의 '19-VI-69 74 III'가 3억 4000만원에 낙찰되었다. 이우환의 ‘조응’은 계속되는 경합 속에 추정가의 2배에 가까운 6000만원에 낙찰되었으며, ‘바람과 함께’는 2억 6000만원을, ‘선으로부터’는 이번 경매의 최고가인 7억 1000만 원을 기록하였다.
피카소 작 <앉아있는 나부>
도성욱 작 <Condition Light> | | 고미술 섹션에서는 근대 6대가들의 작품을 모은 섹션은 9점 중 9점 모두 낙찰되었다.. 춘하추동의 계절 산수를 담은 청전 이상범의 ‘사계산수도’가 1억 1500만 원에, 작자미상의 ‘산수도(山水圖)’가 추정가의 3배가 넘는 1700만원에 낙찰되었으며, 역시 작자미상의 ‘민화호작도’도 추정가의 2배가 넘는 2550만 원에 낙찰되었다. 한편, 도자기류 중 ‘청화백자운룡문호’는 1억 6500만 원, ‘백자호’는 1억 8500만 원에 낙찰되었다. 해외 미술품 섹션에는 파블로 피카소의 ‘앉아있는 나부’가 1억 6000만 원에 낙찰되었으며 필리핀 화가인 페드로 펠릭스 그라시아의 ‘회전목마’가 인기를 끌어, 추정가의 2배 가까운 1050만 원에 낙찰되었다. - 편집팀 -
이우환 작 <선으로부터
김환기 작 <19-VI-69#74111> |
[미술]김환기(金煥基)
Kim Hwanki
1913~1974
전남 신안
1936 동경 일본대학 에술학원 미술부 졸업
1948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1948 서울대학교 미술대 회화과 교수
1952 홍익대 미술대 서양화과 교수 (~55)
1961 대한 미술협회 회장
1961 홍익대 미술대 학장
1963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1964 J.D.록펠러 Ⅲ 재단에서 수여하는 지원금
1992 환기미술관 개관
1963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명예상
1970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 대상
1999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1935 <이과회>전 (일본)
1936 <백만회>전 (일본)
1937 제1회 개인전 (아마기 화랑, 동경)
1938 [대표작품] <론도>
1948 <신사실파> 조직, 전시 (화신화랑)
1952 [대표작품] <무제>
1956 [대표작품] <항아리와 여인>
1956 제6회 개인전 (M. 베네지트화랑, 파리)
1959 파리 귀국 후 제11회 개인전 (중앙공보관)
1962 [대표작품] <날으는 두마리 새>
1963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대표
1964 제15회 개인전 (아시아 하우스 화랑, 뉴욕)
1965 제8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특별실 초대 (14점 출품)
1970 [대표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1973 제21회 개인전 (포인덱스터 화랑, 뉴욕)
1974 제22회 개인전 (슈레브포트 반웰미술관, 루이지애나)
1975 김환기 대회고전 1936~74 (국립현대미술관)
1975 상파울로 비엔날레 특별초대 회고전
1975 환기 1961~74 초대 회고전 (포인덱스터 화랑, 뉴욕)
1977 김환기 회고전 (동경화랑, 일본)
1977 김환기 회고전 1954~74 (현대화랑)
1977 환기 1965~70 (포인덱스터 화랑, 뉴욕)
1981 김환기 1967~71 (딘덴파스 화랑, 뉴욕)
1984 김환기 10주기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
1984 김환기 스케치북전 (포인덱스터 화랑, 뉴욕)
1987 김환기 뉴욕 10년전 (국립조형예술센터, 파리)
1989 김환기 15주기 기념 (현대화랑)
1989 김환기 1963년 과슈전
1989 김환기 데생·과슈 : 부산·파리·뉴욕 (1951~1966)
1992 유화 1967~1968 (현대화랑)
1996 근원과 수화전 (환기미술관)
1996 종이작업전 (환기미술관)
1996 한국추상회화의 정신전 (호암미술관)
1997 김환기 김향안 50년전 (환기미술관)
1997 김환기 십자구도전 (환기미술관)
1997 수화 김환기 미공개작품전 (갤러리유로)
2000 故김환기 탄생87주년전 - 드로잉2000 십자구도.1968 (환기미술관)
1913년 전남 신안에서 출생한 김환기는 일찍이 동경에 유학하여(일본대학 예술학부)
1930년대 후반 일본화단의 전위적 단체인 자유미술가협회전 창립에 참여함으로써 본격적인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했다.
해방 후 1947년에는 유영국, 이규상과 더불어 《신사실파》를 결성하여 모더니즘의 계보를 형성하는 한편
서울대학, 홍익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 보였다.
1956년에는 프랑스로 진출하여 약 3년간 체류했으며 1959년 귀국 후
홍익대 미대 학장, 미술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는 등 미술계 중심에서 활동했다.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으며 그 해 미국 뉴욕에 정착한 이후
1974년 작고하기까지 뉴욕 화단에서 활동하였다.
김환기의 예술세계는 초기인 동경시대와 중기인 서울, 파리시대, 그리고 후기인 뉴욕시대로 나누어진다.
초기인 동경시대는 입체파, 구성파의 영향을 거쳐 추상미술에 도달하였으며
해방 후는 추상적 바탕에 자연적 이미지를 굴절시킨 독특한 화풍을 펼쳐 보였다.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에 귀의하려는 동양인의 의식을 근간으로 하면서 우리 고유한 정서를 양식화한 점에서
그의 예술은 많은 공감을 얻은 것이 되었다.
1963년 뉴욕에 정착하면서 구체적인 자연대상은 지워지고 선, 점, 면들로 구성되는 순수한 추상에로 변모한다.
방법상에서도 지금까지의 두터운 마티엘(질감) 위주에서 벗어나
안으로 스미는 듯한 엷고 투명한 안료로 뒤덮히는 은은한 여운의 화면을 보여주었다.
김환기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들은 만년에 해당되는 70년대에 집중적으로 창작되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