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금지은 시인이 시집 <겨울로 가는 손금>을 발간했습니다.
◉출판사 서평
경남 김해에서 활동하는 금지은 시인이 두 번째 시집 『겨울로 가는 손금』(사이펀)을 ‘사이펀현대시인선’ 31번으로 펴냈다. 금지은은 이번 시집에서 서정적 주체성을 슬픈 듯 정갈하고도 따뜻한 화자의 입을 통해 전달한다. 현대시의 특징인 어조의 생경스러움을 기반으로 한 수사적 남발이 시를 어렵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금지은 시인의 시들은 그러한 모호성을 배제한 시 쓰기로 독자들에게 선명한 화자의 생각을 전달한다. 무엇보다 시인의 내면적 정서들을 차분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 내면의 정서는 불안, 상실, 결핍 등 상처의 화자를 통해 세계의 우울을 표출하지만, 이내 새로운 긍정으로 점화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만큼 시인의 내면이 따뜻하고 매우 긍정적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는 곧 『겨울로 가는 손금』을 읽는 독자들에게 자신만의 언어로 서정성을 담보한 정서적 치유를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
◉시인의 말
조개 숨구멍에서 詩를 건져 올리고
새 둥지에서 詩앗을 품어 왔다
물새는 강이 길러낸
아비의 부리와
젖은 울음이다
부리는 사라지고
낙동강에 흘려 보낸
여름으로,
얼어서 금이 간
강의 손금을 더듬는다
어미의 깊어진 주름이
처음 태어난 겨울까지
2026. 여름 금지은
-------------------------------------------
◉전문가 비평
“왜 사랑은 때리는 거야?”
생의 슬픈 ‘살점을 얻은 언어’로만 가능한 울음의 표지
어떤 말로도 차마 주석을 달 수 없는 문장에 먼저 눈이 간다. 그의 시가 그가 가진 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정직하게 들어 올리기 때문이다. 그 누군들 두렵지 않겠는가. 때로는 숨기거나 꾹꾹 밟아 그림자 밑에 두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는 정면으로 맞선다. 그 맞섬의 표지화가 된 진술이 바로 이 문장이다. “왜 사랑은 때리는 거야?”(「목련 꽃으로 너는」 중에서) 이를테면 아등바등 살아내는 순간마다 아팠지만, 때론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뒤집어보면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언술이다. 이 한 문장을 위해 그는 얼마나 울었을까. 오롯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뒤돌아보면 어떻게든 나를 견디기 위해 최선을 다해 울었던 그 순간은 단순히 잃어버리거나 잊고 싶은 기억이 아니라 다시 살아내는 경험으로 휘돌아 시의 육체가 된다. 그의 미학은 여기서 온다. “속도가 허락되지 않는 나무와/기다림에 붉은 물이 튄 외투의 시간은 같을까?”(「발효된 손톱」 중에서) 이런 질문과 함께 나아가 “입술의 온기가 사라진다는 건 슬픈 일/어떤 이름도 남기지 못한다”(「홍콩 어느 거리에서 딤섬을 기다리며」 중에서)는 침묵의 시간을 받아낼 때까지. 그의 시는 그를 포기하거나 냉소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 안에 부드러워진 시간들이 있”(「홍콩 어느 거리에서 딤섬을 기다리며」 중에서)기 때문이다. 시가 지난한 생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기억을 경험으로 환원해내는 힘이 가져야 하고 이 힘은 ‘살점을 얻은 언어’로만 가능하다. 그렇다. 뒤돌아보면 약속이 아픔이고 상처일 것 같은, 그의 시는 우리가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던 절망의 순간들까지 역설로 바꾸어놓는다. “나는 한때의 입김을 되새김하며/부패 대신 냉각을 택한다//그것이 나의 장례 방식”(「냉장고」 중에서)이라고, 다시 울음을 얼린다.
-김륭(시인)
-----------------------
금지은의 시는 극히 현대적인 외형을 갖추고 있으면서 내면에는 오래된 화두인 슬픔을 다루고 있다. 슬픔은 대낮에 마신 술처럼 나른하지만, 그의 시는 슬픔에 식초 한 방울을 떨어뜨린 듯 시다. (불 꺼진 방에 누구라도 안고 와 살고 싶은 밤)에 시인은 우리에게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는 허기를 부여잡고 아찔한 시를 썼다.
가난 앞에서 당당한 그가 울었다.
가난 하나만으로도 그는 시인이 될 자격이 있다.
지상의 모든 사람을 눈물짓게 하는 시를 그는 해낼 것 같다.
-박형권(시인)
-------------------------------------------
◉시인의 약력
시인 금지은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경희사이버대학교 문창과를 졸업했다. 2023년 시집 『물새가 우는 법』(ARKO문학나눔도서 선정)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서울문화재단창작지원금을 수혜받았다. 현재 사이펀문학회 회원
-------------------------------------
◉시집 속으로
나비효과
바람이 불어서 우리는 걷기로 했어요 구름 위에 책가방을 올려놓고 내일을 퍼 날랐어요 꽃은 핀다 안 핀다 필 것이다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걸기도 했어요 첫 직장에서 가져온 광고 파일은 홈플러스 사거리에서 나풀거렸어요 붉은 볼처럼 이마처럼
검은 구름이 굳은살처럼 박인 편의점에 앉아 가면 김밥을 먹고 남은 새벽은 거스름돈으로 교환했어요 오늘 딱 하루만 먼지처럼, 오늘 딱 하루만 꽃처럼, 열심히 쌓아 올린 스펙이 무너진 밤이에요 하얀 분칠을 한 골목에서 피에로를 건져 올린 새벽, 그냥 앞만 보고 걸었던 10월의 어느 날이었어요 뛰지 말자 밀지 말자 숨 좀 쉬자
나비나비나비나비야 안녕
잠시 지구 반대편에서 나와 똑같이 말할 것 같은 소녀를 떠올려 봤습니다
--------------------------------------------------
목련 꽃으로 너는
자궁 속에서 움튼 꿈이 훼손되었다
사탕을 줄까
회초리를 줄까
영화 속 아이는 장기가 파열되었다
복부가 차오르자 아이 눈망울은
바닥의 얼룩을 닮아갔다
식은 땀이 아이 등을 타고 흐를 때
너는 힘없이 물었다
왜 사랑은 때리는 거야 ?
숟가락이 식탁에 부딪히자
엄마는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몸 곳곳의 채찍이 얼룩말을 새겼다
내 몸에서 뛰쳐나온 얼룩말은 푸른 초원을 달릴 것만 같았다
헐떡이며,
헐떡이며,
먼 데 있는 바닷가도 달려보고 싶었지만
붉은 고무통 물속에서
짧은 숨만 쉬었다
골목은 고요했다
간간히 고양이 울음 소리만 들릴 뿐
모든 것들은 침묵을 먼저 배웠다
어떤 목련은 조용히 떨어지고
어떤 목련은 붉은 몽우리로 남고
우리는 아무도
아이의 울음을 듣지 못했다
-------------------------------------------------------------------
은빛 여우
화려한, 시화전에 나를 보기 위해 왔다고 한다
세상에 처음 마주하는 사막처럼
처음 듣는 다정한 말이다
사막의 숫자는 자주 사라진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에
균열의 바람이 분다
낙타의 척추에 불거진 혹으로 남았는데
울음이 닿지 않는 사구에서는
물을 훔쳐 항아리에 모으다 물속으로 추락한 모래알들이
눈을 크게 뜨고 당황하고 있다
회오리치는 바람을 타고 와 여우 꼬리를 매만지는 모래처럼
바람 부는 방향으로 돌아누우면 먹잇감은 흔하고
사막 바람의 울음소리가 여우 털에 흡수된다
그 사구에서는
자주, 두꺼운 껍질을 만난다
목마른 입술은 밤을 새워 오아시스를 찾는 일도,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는 일도, 자주 무너지고 자주 흩어진다
두 귀는 어둠의 속삭임에 넓어졌다는 것을 안다
가죽에 새겨진 숫자를 핥고 있는 긴 혀를 본다
은밀히 웃고 있던 여우가
선인장 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사막에 찔려 은빛 여우가 운다
-----------------------------------------------------
Ctrl+Alt+시
복도 끝,
형광등이 환한 회색 사무실에서
종종 보험에 가입한 시를 출력한다
칼선처럼 잘린 말들,
말 대신 상품을 잘라 붙이고
간병인의 혜택을 숫자 속에 열거하며
마우스로 회람한다
팀장은 메모장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넌 좀 사차원이야"
나는 빙그레 웃으며
청약서 한 귀퉁이로 자리를 옮긴다
책상 서랍 깊은 곳에는
묻어둔 단어들이 있다
오후 네 시 반의 햇빛 같은 것들을
업무 시간에 꺼내면
자주 오류가 난다
출근길에 시 한 줄을 접어
명함 뒤에 붙이면 누가 알아줄까?
갈매기가 비행금지구역을 침범한다
종일 밥 한번 짓지 못하고
천재 시인을 흉내 내 보지만 천재 시인은
저 멀리 떠나간다
삐뚤어진 하루하루가
여름의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서류철 사이에 끼워둔 시어가
점점 화면 속으로 들어 가는
왕따는 기본
shift 키가 울컥거리는 오후
저장되지 않는 오늘이
CCTV에서 옷을 벗는다
-------------------------------------------------------
얼음덩어리로 내려앉는 달의 세계를 본다
1
빛이 서서히 식는다 금이 간 유리잔 사이로 먹물이 스며들고, 커피 대신 약 냄새가 방 안을 채운다 갈비뼈 사이를 걷는 피로가 바닥까지 내려앉는다
은행 숫자는 달의 손톱을 깎고, 통장의 잔액은 얼음장처럼 투명하다 서류가 접히고, 핏줄이 검게 번진다 유리문은 얼굴을 비추지 않고, 어둠이 먼저 방 안으로 입점하는 일식으로 겹친다
2
철제 대문이 무너진 사무실은 늙은 어깨를 짓누르고, 굴러다니는 바람이 어제와 오늘을 이어 준다 지붕 위로 달덩어리가 내려앉는다 발끝에서 차가운 물이 흘러들고, 천장이 젖어들며 노트북과 책상이 날아다닌다
밤의 계산서에는 숫자가 없다 남은 것은 세상 냉기에 저당 잡힌 계약서다 폐 깊숙이 묵은 덩어리가 잔고로 남아 온몸을 빨아당긴다 웃던 시절의 공기와 아직 식지 못한 빛 하나가 스쳐 간다
3
은행도, 단풍 든 이자도, 달 속에서 잠긴다
노랗게 물던 얼굴이 얼음덩어리를 물고 하루하루를 건너간다
천천히 녹이던 것도
결국 불이었던 나였다
-------------------------------------------------------------
이끼의 방식
모은암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거칠다
발밑에는 자잘한 돌밭이었고
조금만 헛디뎌도 중심이 흔들렸다
비포장길이 끝나갈 무렵
고른 길은 이상하게 불안했다
울퉁불퉁한 마음을 감추기엔 너무 얇은 지층이므로
계곡 아래로 바위들이 무리 지어 누워 있고
물은 몸을 낮춘다
소리는 쪼개지고 합쳐지며 울림이 된다
이끼처럼 번지는 푸른 말로
구름은 조용히 지나간다
나는 너를 지키는 입,
계곡의 바위처럼 남는다
물은 흐르고 어께를 눌러오는 무게로
우리는 흘러야 했을까 멈춰 있어야 했을까
나는 습지에 핀 이끼 같은 순정함으로 너를 품는다
한 층 한 층 쌓는 돌탑 위에
가장 무겁고 가장 가벼운 말을 올린다
---------------------------------------------------------
◉시집 목차
금지은 시집
겨울로 가는 손금
시인의 말
목차
1부- 몇 층의 울음을 지나야
나비효과
무더기로 쌓인 귀뚜라미 울음을 지나
오렌지의 깃털을 가진 두더지야
목련 꽃으로 너는
발효된 손톱
텅 빈 방의 기울어진 의자, 그리고
첨부파일
슈만의 문장으로 오는
공갈빵
은빛 여우
Ctrl+Alt+시
이 어둠이 깊을수록 불안은 길어지고
냉장고
얼음덩어리로 내려앉는 달의 세계를 본다
노을 쪽으로 사라진 새들의 숲에서는
달밤이 삼킨 방의 기록
2부- 여기에서 너를 기다릴께
흰 숨 아래
하우스
홍콩 어느 거리에서 딤섬을 기다리며
여름의 이동
몽돌
관계자 외 출입금지
이끼의 방식
서부 해당화 쪽으로 걸었다
음림*
EASY LOVE
비의 카덴차
나침반
하지
마르그리뜨
외투
3부- 치즈가 녹는 저녁에는 둥근 테이블에서
노을
벽의 기록
저녁의 노래
새벽을 건너는 늙은 손
치즈가 녹는 저녁
혼자 걷는 신부
지팡이에 기대어
다대포 도서관에서
주인 없는 방 나는 얼굴을 모르고
벚꽃, 그리고
지방도 1022
명례 4길
꿈은 꿈일 뿐
오빠
붉은 무덤
4부- 노을을 두건으로 걸친 여인들처럼
통영 4
거인의 나라
청령포
북천역에서
토문재의 노을
우포와 안개와 늪에 대하여
평사리 들판에는 글읽는 소리가 떼창으로 들린다
그리고 휘어진 지팡이
발상의 전환
돈 먹는 하마
해체의 기술
균열, 아카이브즈
울지마 톤즈
발리
만여 년의 습지
<해설>
불안한 천재의 곤두선 오브제와 시성 – 윤의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