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대통령 사망 비상계엄령 선포 (1979)
1979년 오늘 하루전인 26일 밤에 발생한 박정희 대총령의 사망사건이 '박정희 대통령 유고'라는 뉴스 제목으로 일반 국민에게 알려지면서 전국은 일시에 큰 충격에 빠졌다.
이에 앞서 정부는 박 대통령 사망 3시간 뒤인 밤 11시부터 청와대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대통령 궐위에 따른 비상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의 궐위시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하도록 돼 있는 헌법 규정에 따라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아 오늘 새벽 4시를 기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모든 방송과 신문 등 언론보도가 사전에 검열을 받아야했으며 전국 대학들이 일제히 휴교에 들어갔다.
또 사전 허가없는 일체의 옥내외 집회가 금지됐으며 통행금지 시간도 밤 12시에서 밤 10로 앞당겨졌다.
정부는 오늘 오전 9시에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사실을 공식 확인하면서 박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계엄사령부에 의해 구속조사를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사망으로 인한 유고 사태가 발생하면서 이제 정국은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비상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 제5공화국 헌법 공포(1980)
1980년 오늘 제8차 개헌안 즉 제5공화국 헌법이 제정 공포됐다.
전문 10장 131조와 부칙으로 이뤄진 제8차 개헌안은 대통령 간선제와 임기를 7년 단임으로 했다.
이 헌법에 따라 대통령 선거가 간접투표제로 치러지면서 다음해 3월 3일 전두환 대통령이 제12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미 전두환 대통령은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으로 유신 헌법에 따라 치러진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투표로 11대 대통령에 당선돼 대통령직을 수행중이었다.
5공화국 헌법은 국회내 개헌특위와 정부내 헌법 개정 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마련됐다.
그러나 선거인단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대통령을 뽑는데 있어 국민의 직접적인 뜻을 표로 반영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어 이후 야당과 민주화 세력으로부터 줄기찬 개헌 요구에 직면하게 됐다.
▶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 시인(1995)
1995년 오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택 기자회견에서 재임 중 비자금을 조성한 것을 시인했다.
당시 민주당 박계동 의원이 일주일 전인 19일 국회대정부 질문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비자금 4천억 원을 40개 차명계좌에 분산해 시중 은행에 예치했다고 주장했다.
박계동 의원은 그 증거로 백억 원이 차명계좌로 예치되어 있는 모 은행의 계좌번호와 잔액조회표를 제시했다.
이어 이현우 전 경호실장이 검찰에 전격 출두하면서 전직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비자금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현우 씨는 모 은행 서소문 지점의 차명계좌에 예치된 비자금이 4개 계좌에 모두 485억원이고 이 돈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임시 직접 조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계동 의원의 폭로발언이 있은 지 8일 만에 노태우 전 대통령은 비자금 조성 사실을 시인했다.
비자금 조성을 시인한 후 30대 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그 해 11월 16일에 재임시 뇌물수수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 유엔 사령부, 제3호 땅굴 발견 발표(1978)
1978년 오늘 주한 유엔군 사령부는 열흘 전 비무장지대에서 북한군이 파놓은 땅굴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문제의 땅굴은 북한이 지난 74년부터 파기 시작해 한때 중단했다가 78년부터 다시 파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 73미터 깊이에 높이와 폭이 각각 2미터인 제3호 땅굴은 판문점 남쪽 4킬로미터 지점에 있고 임진각으로부터는 서북쪽 4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있다.
땅굴의 길이는 1.6킬로미터로 추정되고 입구는 북한측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군은 군사 정전위에서 북한측에 제3호 땅굴에 대해 강력 항의했다.
그러나 북한측은 3호 땅굴의 존재를 전면 부인했다.
[1924] 조선학생총연합회 창립
[1902] 춘사 나운규 출생
[1966] 중국, 핵미사일 실험 성공
[1981] 원효대교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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