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개신교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William Carrey)
교회의 선교 역사에서는 1815년부터 1914년까지를 "위대한 선교의 세기"(The Great Century)라고 부른다. 1815년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99년동안 서구 사회는 비교적 안정된 사회적 환경 안에서 선교의 기치를 올렸다. 이러한 환경 아래서 개신교의 선교가 시작되었다.
개신교 최초의 해외선교사는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였다. 그는 1761년 8월 17일 영국의 노스햄프턴의 파울러스퓨리(Paulerspury)에서 영국 성공회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1783년 10월 5일 존 라일랜드(John Ryland)라는 침례교 목사에게서 침례를 받고 침례교도가 되었다.
캐리는 1793년에 개신교 역사상 최초라 할 수 있는 해외선교회를 런던에 설립하고 가장 먼저 인도 선교사로 자원하여 떠남으로 "개신교 현대 선교의 아버지"로 불린다. 윌리엄 캐리의 선교회는 1795년에 "런던선교회"가 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12년동안 즉 1815년까지 수많은 해외선교 단체들이 설립되었다.
캐리는 그의 생애 73년 중 헌신하여 인도로 떠나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까지 장장 41년을 인도의 영혼들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그는 그 기간동안 단 한번도 고향을 찾지 않고 오직 인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였다. 이런 헌신으로 1814년경에 이르러 인도에는 약 20개의 교회와 선교회가 조직되었다.
캐리는 최초의 인도 신문을 발간하고, 인도어로 성경을 출판하였으며, 인도의 주요한 6개의 방언을 연구하여 문법과 사전을 편찬하였고, 수많은 산스크리트어로 된 고전을 영어로 번역하였다. 그는 또한 1810년에 기독교적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세람포레 대학(Serampore College)을 설립하였다.
캐리는 1834년 6월 9일 인도의 세람포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윌리엄 캐리의 어린 시절 환경은 불우했다. 캐리는 너무나 가난하여 구두직공으로 성장기를 보내었다. 그러나 캐리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불타는 신앙의 끈을 놓지 않았다. 캐리는 구두를 수선하고 만드는 동안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독학으로 공부하였다.
현대선교의 창시자 윌리엄 캐리가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어느날, 성경을 인도어로 번역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8년 가까이 성경을 번역했는데, 1812년 어느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근처를 뛰놀던 강아지가 그만 촛불을 건드려 출판사가 화염에 휩싸여, 애써 작성한 번역 원고가 불에 타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 엄청난 파국 앞에서 캐리는 강아지에게 발길질 한번 하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원고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시고 완전하게 다시 번역하라고 없애신 뜻으로 압니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오늘도 윌리엄 캐리와 같은 위대한 선교사들이 세계 방방곡곡 오지에 이르기까지 찾아가 헌신의 땀을 흘리고 있다. 혹은 성경번역으로, 혹은 사회봉사로, 혹은 교육자로, 혹은 목회자로...
그들은 최초의 개신교 해외선교사 윌리엄 캐리와 같이 온갖 간난신고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선교지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을 채우며 오늘도 기도와 땀을 드려 헌신하고 있다.
2003. 8. 19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주님의교회 목사 박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