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어느 할머니의 하소연

[오병천]

어느 할머니의 하소연 

내가 사는 동네는 일산 신도시다.

도회이지만 오일장이 선다. 구 일산시장이다.

3일과 8일에 열리는 규모가 상당히 크다.

해가 갈수록 그 규모가 커져간다.

아마도 옛 추억이 그리운 사람들이 모여서 일 게다.

사람 냄새가 맡고 싶기도 해서일 것이다.

나이가 든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우리 부부는 종종 그곳에 들러 시장을 본다.

국수 공장에서 국수 다발을 사기도 하고

노점 좌판을 벌여 놓고 있는 할머니에게 채소를 사기도 한다.

북적대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니며

이런저런 세상구경을 한다.

그곳에서 꼬부랑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 집 근처에 사시는 분이셨다.

오는 차편에 모셔다 드린다고 했더니

연신 고마워하며 차에 오르셨다.

 

할머니는 묻지도 않은 이런 저런 얘기들을 이어가셨다.

평생을 고생하여 일군 재산 모두를

자식 놈한테 주고 났더니 요즈음은 용돈은 고사하고

잘 찾아오지도 않는다며 하소연이셨다.

그리고 자식 흉을 아서 멋쩍었음인지 허허 웃으신다.

할머니 말씀을 들으니 오래전에

마산의 어느 음식점에서 가져왔던

엽서에 인쇄되어 있던 문구가 생각이 난다. 

“늙은이가 되면 설치지 말고

미운 소리 우는 소리 그리고 군소리랑 하지도 말고

조심조심 일러주고 알고도 모르는 척 어수룩하소.

그렇게 사는 것이 평안하다오.

이기려 하지 마소. 져주시구려.

한 걸음 물러서서 양보하는 것,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이라오.

돈 욕심을 버리시구려.

많은 돈 남겨서 자식들 싸우게 하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많이 뿌려서

산더미 같은 덕을 쌓으시구려.

그러나 그것은 겉 이야기.

정말로 돈을 놓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꼭 잡아야 하오.

자식 놈들 돈 가지고 있으면 속셈은 달라도

겉으로는 알랑방귀 뀌며 효도 한다오.

돈 다 주고 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변한다오.

아들딸 믿지도 의지하지도 말고

가진 돈 꼭 늦게까지 쥐고 있으소.

옛 친구 만나거든 술 한 잔 사주고

손자 보면 용돈 한 푼 줄 돈 있어야

늘그막에 내 몸 돌보아주고 모두가 받들어 준다나.

우리끼리 말이지만 사실이라오.

잘난 체 자랑 말고

멍청하게 보이지 말 것이며

늦었지만, 바둑도 배우고 기체조도 하면서

다리에 힘 있고 눈이 잘 보일 때 여행도 자주 가소.

이빨도 성할 때 맛있는 것도 많이 드소.

아무쪼록 오래오래 살아야 하오.” 

문구가 다 옳은 것은 아니어도

한 번쯤 새겨볼 필요가 있는 말이지 싶다.

차에서 내리시면서 할머니는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주시려는

경우가 바른 노인네셨다.

다시 할머니 주머니에 넣어드렸지만,

지하철에서 젊은이로부터 자리 양보를 받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털썩 자리에 앉는 노인네와 비교된다.

건강하고 지혜롭게 살면서 일생을 회고하고

자신의 인생을 정리해보아야 하겠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어떻게 해야 함이

바람직한지를 곰곰 생각해 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20130228 <시니어>중에서 - 밴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