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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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름다운 호반 춘천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블렉이글
우리나라는 참으로 산이 많은 산의 나라이다. 십여 년 전 필자는 국립지리원의 5만 축척지도와 교통지도 등을 참고하여 남한에 소재한 해발 5백미터 이상의 산(봉으로 표시된 것은 제외)을 조사하였던 바 그 수가 무려 1천이백을 넘었다. 산악지대가 더 많은 북한의 산까지 아우르면 엄청난 숫자가 되리라는 생각에 새삼 놀랐으며 살아생전에 보다 많은 산을 오르기 위하여 부지런히 산을 오르내렸다. 얼마전 백두대간과 여덟정맥의 종주산행을 마친 한 산악인으로부터 ‘한국명산 목록’이란 산목록을 선물로 받았다. 각종 산악잡지와 등산안내서, 등산지도 등을 망라한 그 목록에는 놀랍게도 3,400개나 되는 산과 봉의 이름이 가나다 순서대로 높이와 위치, 참고문헌까지 일목요연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같은 이름이 허다한 우리나라 남한의 산이름을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이 산목록에 의하면 같은 이름이 가장 많은 산이 국사봉으로 무려 43개나 되었으며 옥녀봉 34, 시루봉 28, 봉화산 25, 형제봉 24, 깃대봉 24, 매봉산 23, 매봉 21, 오봉산 21, 백운산 20개 등의 순서였다.
산의 숫자를 말하기 위해서는 산에 관한 용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리라. ‘산(山)’이란 지도상에서는 면적의 개념으로 파악되며 인접한 여러 개의 봉우리가 모여서 하나의 산을 이루며, 명칭의 끝이 ‘OO산’ ‘OO봉’ ‘OO령’ 등에 불문하고 하나의 산으로 취급한다. 예를 들면 고성군 향로봉(1296m)의 경우 이름은 봉이지만 실제는 거대한 산악군(山岳群)을 이루어 독립된 산으로 인정한다. ‘봉(峰)’이란 산을 구성하는 개개의 봉우리를 말하며 지도상에는 점(·)의 개념으로 파악되며 이 경우에도 명칭의 끝이 산 또는 봉 등에 관계없이 봉으로 취급한다. ‘삼각점’은 그 주위의 지형지물을 잘 관측할 수 있는 곳에 설치한 측량 기준점으로 설치장소와 높이를 나타내며, 반드시 정상에 설치되는 것이 아니므로 실제 산높이와 다른 경우가 많다. 지도상의 ‘표고점(X)’은 일반적으로 산의 최고지점과 높이를 표시하나, 지도상에 표고점이 누락된 산이 허다하여 산높이로 활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아마추어 산꾼에 불과한 필자가 부족한 지식으로 설명한 산의 개념에 혹 잘못이 있더라도 독자들의 너그러운 용서를 바라며 개미년 새해에 다복하심을 기원드린다.
덕가산(德加山)이라는 이름의 산도 여럿 있으나 오늘 소개하는 덕가산은 강원도 원주시의 흥업면, 귀래면, 문막읍의 경계에 자리하는 해발 700미터의 산이다. 치악산국립공원의 비로봉이 남쪽으로 능선을 달려 향로봉 남대봉을 일으키며 치악재에 내려선다. 이 산줄기는 치악산자연휴양림 위에서 강원도와 충청북도의 도계를 이루며 동남과 서북으로 갈라진다. 동남의 산줄기는 구력재를 넘어 구학산, 주론산, 감악봉, 석기암봉, 용두산 등 제천의 명산을 일으킨다. 북동쪽의 또 다른 산줄기는 백운산(1087m)을 일으키고 조두치, 양아치를 지나 오늘 소개하는 덕가산을 일으킨 후 북서쪽으로 능선을 이어 섬강에서 산줄기를 마감하게 된다. 덕가산은 행운을 상징하는 숫자인 일곱에다 백을 곱한 꽉 채운 칠백 해발을 자랑한다. 덕가산의 산세는 이름그대로 부드러워 느긋한 능선길에 위험지대가 없어 눈이 듬뿍 내리는 겨울철에도 가족이나 동료직원들과의 안전산행이 가능하며, 적당한 소요시간과 편리한 대중교통, 하산지점에는 따뜻한 식사가 가능하다. 더더욱 휴게소 외에도 대형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터가 있어 한해의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산제 장소로도 적당하건만 찾아가는 산악회를 본적이 없어 무척이나 아쉬웠다. 2003년을 시작하는 1월호인지라 다른 잡지에서 한번도 소개되지 않은 새로운 산을 소개하기 위해서 산행길에 오른 아침 펄펄펄 눈발이 날린다. 영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남원주 인터체인지에서 19번 국도로 접어들었으나 눈이 그치지 않아 서투른 사진솜씨의 필자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앞쪽의 매지저수지를 지나 ‘엄나무식당’ ‘개건너식당’ 등의 간판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굽어진 길가 오른편에 ‘외딴집’이란 식당간판이 보인다. 조금 들어간 식당주차장에 조심조심 차를 세우고 산행길에 오른다. 작년 가을 요산회와의 산행에서는 동행이 제법 있었으나 오늘은 산사랑산악회의 손병욱 회장과 두 사람뿐인 산행인지라 어깨를 맞대고 미끄러운 눈길을 올라간다.
채소밭 위쪽으로 이어지는 계곡길은 태풍의 피해로 초입을 조금 지나면 산행이 불가능하였다. 백 미터쯤 되돌아와서 왼쪽으로 오르는 무덤길을 따른다. 효심이 지극한 집안의 무덤이리라. 주위에 잣나무를 심고 말끔히 관리한 무덤 셋을 거퍼 지나면 임도에 올라선다. 하얗게 눈이 쌓인 임도길에 발자욱을 남기며 나란히 걸어간다. 보람된 삶을 영위하여 겨레의 역사에 이렇게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436봉 옆을 지나 임도길은 북쪽으로 내려간다. 임도마루에서 왼쪽으로 난 능선길을 따라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울창한 참나무숲 사이로 느긋한 능선길이 길게 이어진다. 수북한 낙엽 위에 발목이 빠져드는 서설마저 쌓인 폭신폭신한 산길은 참으로 정겨운 산길이다. 다정한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걸어간다면 아름다운 사랑의 물결이 철철철 강이 되어 흘러가리라. 참나무 숲속의 눈밭에 어디서 날아와 싹을 틔웠을까 더러더러 다박솔을 만난다. 눈의 무게에 눌러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저 다박솔. 그러나 인고의 세월을 견뎌 이기면 몇백 년 후 우리들의 후손이 다시 덕가산에 오르면 두어 아름의 거목으로 만나게 되리라. 끊임없이 쏟아지는 눈보라에 동서남북의 방향파악이 불가능하여 나침반을 등대 삼아 조심조심 산길을 이어간다. 490봉에 올라선다. 이곳에서부터 빽빽한 소나무숲이 독야청청의 진수를 보여준다. 약간의 내리막이 있는 이곳에서 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날씨가 개이고 시야가 열렸던 가을산행에서 쉽사리 지났던 산길이 참으로 아리송하여 두어 번이나 되돌아서고 리번을 고쳐 달았다. 산사랑산악회의 손병욱 회장은 참으로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필자도 조국의 청산을 사랑하여 천이 넘는 방방곡곡의 산을 두루 찾아 올랐건만 그와 같이 산행을 하노라면 나보다도 더욱 산을 사랑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우러난다. 그래서 산악회의 이름도 ‘산사랑’이리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눈길을 헤쳐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진 쉼터바위에 올라선다. 여름이면 이곳에서 땀을 식히며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의 쉼터이건만 켜켜이 눈이 쌓여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산길을 이어간다. 문막읍과 흥업면의 군계를 이루며 노루재로 이어지는 능선삼거리에 올라선다. 노루재를 향한 바위 위에 누가 쌓았을까 작은 돌 네댓개를 포갠 참으로 작은 돌탑이 용하게도 세찬 바람을 견디며 건재하다. 가슴이 뭉클하다. 어떤 소원이 있어 앙증스러운 귀여운 탑을 쌓았을까. 방방곡곡의 산을 오르내리노라면 ‘우리겨레처럼 탑을 잘 쌓는, 많은 탑을 쌓는 민족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필자 또한 산 하나를 돌 한 개로 삼아 ‘일천 산의 시탑’을 쌓고 있지 아니한가. 상념의 늪에서 벗어나 다시 산길을 이어간다. 해발 650미터 지점에는 하얗게 눈이 덮인 무덤이 명품 이조백자보다도 더욱 아름다웠으니…. 이윽고 정수리에 올라선다. 하얗게 눈이 쌓인 널따란 헬기장에는 삼각점 위에 깃발 없는 깃대가 덩그러니 외롭다. 다행스럽게도 잠시 눈이 그친다. 비로봉에서 향로봉 남대봉으로 이어지는 치악산의 하늘마루금이 참으로 눈부시게 펼쳐진다. 눈물이 글썽인다. 조국산하의 아름다움에 눈물이 흐른다는 것은 여생이 오래잖음의 징조이리라. 남남동 주능선을 이어 하산길에 접어든다. 오름길과는 다르게 봉봉마다 소나무와 바위들이 가경을 연출한다.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면 뒤이어 묘한 형상바위를 만나게 된다. 사람의 얼굴을 닮은 형상바위의 표정이 참으로 일품이다. 필자는 처음부터 ‘뺑코바위’라고 명명하였는데 옆에 자리한 남근바위와 묘한 조화를 이루어 별의별 추측을 자아낸다. 뒤 이어 ‘가선대부 한성좌윤 오위도총부 부총관 원주 이공 두성 지묘’에 도달한다. 위쪽으로 참봉을 지낸 부모의 묘에는 두 쌍의 석인(石人)을 세우고, 밑으로는 후손들의 무덤들이 질서정연하게 자리하고 있다. 양아치고개에 내려선다. 양아치란 이름이 듣기 싫었을까. 빗돌에는 ‘큰양안치고개’라고 새겨 놓았다. 반만 년 기나긴 민족의 삶에는 숱한 고난과 영광이 두루 점철되어 있으리라.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자연과 평화를 사랑하고 인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보람된 겨레의 삶을 영위하여 먼먼 후손들에게 자랑스런 고장의 이름과 문화유산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글 사진|김은남> |
알려지지 않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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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름다운 호반 춘천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블렉이글
첫댓글 좋은 산행소개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한번 계획을 세워 산행추진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