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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첫 증거가 무엇일까요?"
1950년대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가 강의시간 한 학생에게 물었다는 것으로 알려진 이 유명한 질문의 답은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찾아낸 1만 5천 년 된 '인간의 부러졌다 다시 붙은 대퇴골'입니다. 부러진 대퇴골이 자연적으로 다시 붙기까지 6주가 넘게 걸리는데 누군가 그동안 부상자가 사냥을 못해 굶어 죽지 않도록 옆에서 돌봤음을 알리는 표식이란 것입니다. 역경에 처한 누군가를 돕는 것에서 인류 문명이 시작됐다고 한 이 일화는 경쟁적이고 야만적인 무리의 유해에선 이런 '부러진 대퇴골'이 발견되지 않았다고도 부연하고 있습니다.
문명의 시발로도 여겨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생에 몇 번은 반드시 필요로 하는 '돌봄'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선 주된 의제가 되지 못해왔습니다. 경제 성장률, 부동산 정책, 금융 정책, 입시 정책 같은 '보다 중요한' 문제가 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각한 저출생과 초고령화를 맞닥뜨린 우리 사회는 이제야 돌봄의 영역에서 켜진 시뻘건 경고등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5일 한국은행에선 이런 보고서가 발표됐습니다. 간병인이나 육아 돌보미를 구하는 비용이 30~50대 가구 중위소득의 50%를 훌쩍 넘긴다는 통계, 20년 뒤 돌봄 서비스직 노동 공급이 수요의 30% 수준에 머문다는 전망치가 담긴 보고서입니다. 보고서대로라면 세 집 중 두 집은 부모님을 간병할, 아이를 돌볼 사람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게 된단 뜻입니다. 이 보고서 말고도 다가올 미래 돌봄 수요의 폭증을 경고하는 신호는 차고 넘칩니다.
예정된 '돌봄 대란'에 대해 지금까지 논의된 우리의 해법은 무엇일까요?
사실 어떤 일자리의 수요가 폭증하는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 공급의 가격, 한마디로 그 일자리의 몸값이 올라가는 게 보통 시장 질서가 작동해 온 방식이었는데요, 돌봄 노동만큼은 열외였습니다. 겪어 보지 못한 돌봄 절벽을 앞두고도 우리 사회는 열악한 돌봄 일자리의 처우나 질을 높이는 고민 대신 외국에서 값싼 노동력을 들여오는 것을 그 해법으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여전히 최저임금보다 싼값에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들여올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고, 한국은행 보고서 역시 최저임금 밑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들여올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죠.
이런 논의가 국내 돌봄 노동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또 장기적으로 돌봄 대란을 해결해 줄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이번 <더 스피커>에서는 이 문제를 당사자로서, 또 연구자로서, 활동가로서 각각 오랫동안 고민해 온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과 김진석 서울여대 복지학과 교수(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정말로 숫자가 문제인가?
Q. 국내 돌봄 노동자의 수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외국에서 가사도우미를 도입해야 된다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최영미 위원장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는 50대 후반, 60세 이상 퇴직자 등에서 구직자가 늘어나고 있어요. 그리고 취업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60대 여성들의 20% 이상은 돌봄 노동 일자리로 오고 있습니다. 돌봄 노동이 고령자 노동의 중요한 일자리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과연 인력 부족의 문제냐, 아니면 일할 사람들은 있는데, 들어왔다가 처우가 너무 안 좋으니까 자꾸 빠져나가게 되는 게 문제냐는 거예요.
통계청 자료 등을 분석한 2023년 한국노동연구원의 <돌봄서비스업노동시장 구조와 외국인인력공급> 보고서를 보면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돌봄 노동 종사자는 56.6만 명에서 75만 명으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이들 중 여성의 비율은 줄곧 95% 내외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최영미 위원장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최저임금이나 그 밑으로 데려온다면 우리나라 가사도우미 등 돌봄 노동자들의 임금도 억제되겠죠. 그렇다면 지금 일하려고 나오는 국내 인력들이 과연 그 일자리로 더 유입이 될 수 있겠느냐는 거예요. 60대 이상 노인들이 계속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사회에서 특히 50대, 60대 여성의 주된 일자리로 자리 잡은 돌봄 노동의 조건이 더 열악해진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싼값에 돌봄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비용을 전가하고 있는 셈인데 접근 방법이 틀렸습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기 전인 지금도 2021년 기준 돌봄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127만 5,000원으로 전체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264만 9,000원)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데, 돌봄 노동을 제외한 다른 일자리에 비해 시간당 임금도 6,000원 정도 적습니다. 비정규직 비중도 76.6%로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몹시 높은 수준입니다.
Q. 국내 돌봄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요?
최영미 위원장
가사 돌봄 노동자들은 지금도 10년을 일하나 1년을 일하나 대부분 최저임금이에요. 오래 일해도 전문성을 인정받지도 못하고요. 그래서 자꾸 도중에 일자리에서 이탈하죠. 그런데 이보다도 싸게 들어오는 인력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노인 고용의 중요한 축인 돌봄 노동 일자리가 망가지면 지금 가뜩이나 심각한 노인 빈곤 문제를 이런 초고령 사회에서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겠어요?
김진석 교수
우리나라에서 돌봄 노동을 필수 노동으로 인정하고 사회적 인정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논의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조금씩 물꼬를 틔우고 있었어요. 이런 논의의 핵심은 돌봄 노동 일자리 조건의 향상이 반드시 포함되는 것이고요.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 없이는, 돌봄 노동의 질이 좋아질 수 없고, 돌봄 노동의 질이 좋아지지 않으면 다수 시민의 삶이 나아질 수 없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생겨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데려오겠다는 논의로 찬물을 끼얹은 것이죠.
왜 돌봄 노동 일자리는 '값싸게' 유지해도 될까?
Q. 노동을 값싸고 질 낮은 일자리로 유지해도 된다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 인식이 왜 생겨났고 왜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걸까요? 돌봄 대란을 겪는 이 와중에도요.
김진석 교수
돌봄 노동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형성되던 시기에서부터 여성에 의한 부불노동(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노동)으로 취급해 오던 영역이었죠. 가사 노동을 포함해 재생산 노동이라고 하는 영역이 여성에 의해 100년 가까이 행해진 겁니다. 그러다 여성의 노동력 역시 시장으로 유입하려는 흐름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여성이 노동시장으로 나오니 기존에 여성에 의해서 이뤄지던 가내 재생산 노동에 공백이 생기잖아요. 한동안은 여성이 밖에서도 일하고 집에 가서도 노동하는 방식으로 메꿔졌는데 그것도 한계가 온 거죠.
그러면 이제 누군가가 그 노동을 해야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이 노동은 원래 여성들이 부불노동으로 하던 거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다, 이런 사회적 인식,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은 거예요. 이 노동에 값어치를 많이 쳐주지 않으려고 했던 자본의 의도도 있었겠죠. 그러다 보니 이 노동은 전문성도 필요 없고, 그냥 집 안에서 여성이 하던 대로 아무나 하면 되는 건데 왜 돈을 많이 줘야 되냐는 말이 나오게 된 거죠.
질 좋은 돌봄을 너무나 필요로 하는 지금 시장의 조건과는 정말 맞지 않는 상황인 거잖아요. 이런 인식의 전환을 강제하기 위한 제도적 전환이 없으면 지금 돌봄 대란 문제는 절대 풀리지 않을 거예요.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해서 해결하자는 쪽으로 논의가 전개된다면 돌봄 노동시장이 사회적 인정을 통해서 정상화되는 과정은 그만큼 지연이 될 겁니다.
배진경 대표
혹시 10년차 돌봄 노동자에게 '저숙련'이란 말이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돌봄 노동은 복합적인 노동이란 특징이 있어요. 육체노동인 동시에 돌봄 대상자의 감정과 필요를 세심히 살펴야 하는 서비스 노동이에요. 돌봄 대상자에 대한 대응도 빨라야 하죠. 이런 노동을 1년차와 10년차가 동일하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떤 노동은 10년의 경험을 경력이란 이름으로 임금을 더 인정해 주는 것이고, 어떤 노동에 대해선 그런 경력에 대한 인정을 해주지 않는 경향이 있을 뿐인 거예요. 원래부터 여성이 해왔던 노동이란 차별적 인식 아래서요.
돌봄을 시장에만 맡길 수 없는 이유?
돌봄의 질을 높이기 위해 열악한 우리나라 돌봄 노동자들의 처우와 노동 조건이 개선돼야 하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높아지는 비용을 사용자에게만 오롯이 전가할 수 없는 이유는 돌봄은 인간의 존엄한 삶과 직결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생에 몇 번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든 없든 간에요. '돌봄의 공공성' 이야기가 여기서 나옵니다.
Q. 돌봄 일자리 처우를 개선하는 게 필요하지만, 비용이 올라가면 저소득층, 또 중산층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워질 텐데요. 이걸 어떤 방식으로 풀어 가야 할까요?
김진석 교수
취약계층도 질 좋은 돌봄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국가의 역할을 확대해야 합니다. 이 논의를 우리 사회도 이미 20년 넘게 해 왔고요. 의미 있는 시도를 하지 않은 바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논의됐던 돌봄 노동의 공공성 강화 기조가 정책화돼서 드러났던 것이 바로 사회서비스원의 설립이었습니다.
5년 전 취약계층 아동과 노인 등에게 공공돌봄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 세워졌습니다. 돈이 없어도 질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이곳에 정규직으로 고용된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장애활동지원사들이 공공돌봄을 제공한단 취지였죠. 그러나 최근 서울시에선 돈이 들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로 이 사회서비스원 예산을 대폭 삭감한 데 이어, 지금은 서울시의회에서 아예 폐지 조례까지 발의된 상태입니다.
배진경 대표
누구에게 돌봄을 맡길 것이고 그 돌봄에 얼마만큼의 대가를 지불을 할 거냐라는 것을 결정하는 건 그 국가의 시스템이에요. 근데 그 국가 시스템이 여성 노동에 대한 차별적 편견에 의거해 돌봄 노동에 대한 저평가를 유지하면서, 비용은 민간으로, 잘살든 못살든 개별 가정의 책임으로 떠넘기겠다는 생각에 이런 정책이 나오는 거거든요. '돌봄 시장 가격 낮춰줄게, 대신 가정에서 각자 해결해" 이런 얘기인 거죠. 결국 돌봄의 공공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어요. 모든 서비스의 질은 그 노동자를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결국 이용자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이고요.
Q. 해외에 정책적으로 저희가 참고할 만한 사례들이 있을까요?
김진석 교수
예를 들면 스웨덴 같은 경우는 돌봄 노동이라는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80% 이상이 전부 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입니다. 공무원으로 채용해 이들이 직접 돌봄 노동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어요. 국가의 개입을 통해 이들의 고용이 안정되고 생활이 안정되면 사람들에게도 질 좋은 돌봄을 제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유럽 사회에 있는 겁니다. 미국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처럼 돌봄을 민간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가 없어요.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장기 요양기관 가운데 국공립 운영 비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2020년 기준)입니다.
예상치 못한 사회적 갈등의 씨앗도
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거란 시각도 있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 등의 기존 여러 연구들을 보면 이미 고용허가제로 농어업 분야에 들어 온 여성 근로자의 경우 성폭력에 노출되는 등 열악한 근로 환경과 낮은 임금 수준 때문에 업무지 이탈률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는데요. 임금 수준이나 처우가 다른 직종보다 낮으면 이 정보를 공유하고 합리적 선택을 내리게 될 이주 노동자로선 이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단 겁니다.
Q. 외국인 돌봄 노동자가 들어 왔을 때 예상되는 부작용은 없나요?
김진석 교수
외국인 돌봄 노동자들이 이민자 자격으로 한국 노동시장으로 유입된 이후 그들이 어떤 방식의 결정을 하든 그걸 우리가 막을 수는 없어요. 관리 인력도 마땅치 않고요.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필요에 의해 문을 확 열어 버리고, 나중에 가서 미등록이 된 돌봄 노동자들을 막겠다고 또 '토끼몰이' 식으로 단속에 나서는 순간 우리 사회는 아주 전형적인 반인권, 반이민 사회로 전환될 겁니다. 유럽의 역사를 통해서도 살펴본 바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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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위원장
최저임금은 최저 생계비고 이주 노동자들은 우리나라에서 생활을 하는 거잖아요. 본국에 비해 몇 배 높다는 것만 강조하는데 일하는 동안 본국에서 사는 것 아니잖아요. 하루에 8시간 일해서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하면 206만 원 선이에요. 그 밑으로 준다고 하면 서울에서 생활하는 체류비, 차비, 식비 이런 것들은 어떻게 할까요? 물가가 높은 스위스가 최저임금이 시급 3만 원 정도에요. 거기서 힘든 일자리에 사람 부족하니 한국 사람 받겠다, 대신 최저임금은 한국 수준으로 9,800원 주겠다면 스위스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돈을 더 많이 주는, 처우가 좋은 다른 사업장으로 가고 싶지 않겠어요?
예고된 돌봄 대란을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특히 최저임금 밑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은 일부 국회의원들과 서울시장, 최근에 한국은행 보고서까지 줄곧 한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그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특히 이창용 총재까지 참석해 발표한 이 한국은행 보고서는 외국인에게만 임금을 낮게 줄 수 없다면 최저임금을 돌봄 노동 업종 자체에 차등 적용하는 방식까지 노골적으로 거론한 상태입니다.
이 논의의 끝,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돌봄 일자리에 대한 근본적 고민 없이 더 값싼 인력을 계속 수입하는 방식으로 터지는 둑을 막을 수 있을까요? 돌봄의 책임을 각자에게 지운 채 고강도, 저임금, 낮은 처우라는 돌봄 노동 일자리의 '게토화'를 지속시켰을 때, 고령 구직자의 상당수가 유입될 국내 돌봄 노동자의 삶, 돌봄 서비스의 질은 어떻게 될까요? 앞으로 더 많은, 더 안정적인 양질의 돌봄 서비스를 필요로 하게 될 우리 모두는 어떻게 될까요?
초고령화와 돌봄 절벽의 파고가 마침내 몰려오는 순간, 그동안의 숱한 경고음에도 불구하고 돌봄 노동을 천대해 온 역사의 영수증을, 우리와 미래 세대가 '돌봄의 역습'이란 형태로 고스란히 받아 들게 될 것이란 게 지금 가장 두려운 지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https://premium.sbs.co.kr/article/3zLA90mna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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