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1 : 1 - 18절
“생명 얻는 회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할례라는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는 예식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24년 동안 기다였지만 낳을 수 없었던 자녀를 할례를 받고 나서 낳을 수 있었다는 점도 그렇고, 가나안 정복을 위해 요단강을 건너자마자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먼저 했던 것도 할례였을 정도로 할례는 아주 중요한 예식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그 예식을 통해 이스라엘이 번성하여 나라를 이루고, 가나안 땅을 정할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할례는 단순한 예식을 넘어서 은혜의 통로였고 능력의 통로였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식이 강하다 보니까 할례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반감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윗도 골리앗에 대해서 말할 때에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골리앗에 대해 비난을 하면서 다른 것은 하나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아비하다거나 교활하다거나 불법을 행했다는 말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한 가지 할례 받지 않는 것을 말 했을 정도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할례 받은 것에 대해서 엄청난 자긍심, 긍지, 특권 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 민족성이 있다 보니 할례 받지 못한 이방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베드로에 대한 소식은 할례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2절 말씀에 보면 엄청나게 많은 업적인 남긴 베드로가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 왔을 때 베드로를 힐난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런 상황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극도로 예민한 상황이었습니다. 베드로도 자신의 입으로 말했던 것처럼 유대법을 어긴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리 예루살렘 교회의 중책을 맡고 있었던 베드로라 할지라도 처벌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매우 긴장된 상황이었고 긴박한 상황이었는데 서로 대화를 하다보니까 그 오해가 풀리게 되어서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서로 공감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 자신에게 있었던 환상부터 시작을 해서 모든 상황들을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해 주니까 베드로를 힐난했던 사람들도 수긍을 하고 인정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설명을 하고 있는 베드로도 사실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다 이해하고 납득하고 수긍하고 있는 상황이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17절 말씀에 보면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무슨 의미냐면 베드로 자신도 솔직히 완전히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받았던 똑같은 선물을 이방인들에게도 주신 것이다. 그렇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막을 수 있느냐?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이런 역사가 나타났기 때문에 믿어야 하지 않겠느냐?” 베드로는 이런 주장을 했던 것이고 그 말은 들은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베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백했던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는 말을 우리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이해되지 않아도, 납득할 수 없어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고 순종함으로 사는 것이 참된 믿음인 것이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 세상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하나님을 믿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신앙이고, 믿음 없는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 말씀을 통해서도 봤지만 고넬료는 이유도 모른 채 베드로를 초청하기 위해서 50km나 되는 거리에 있는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베드로를 초청하기 위해서 11절에 보면 세 사람이나 보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초청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성령님께서 환상 중에 보여 주신 것 때문에 왕복 100km를 오고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자신이 묻고 있던 곳으로 불러들이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인데 성령님께서 환상 중에 보여 주신 것 때문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방인들을 불러들여 유숙하게 했던 것입니다.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에 남부군의 총사령관이었던 리 장군이 있었는데 한 번은 스톤월 잭슨 장군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습니다. 그리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리 장군은 잭슨 장군에게 한번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인사말로 편지를 마쳤습니다. 그 다음 날 눈보라를 헤치고 8마일(12.8km) 떨어진 리 장군이 있는 본부까지 잭슨 장군이 달려 왔더랍니다. 리 장군이 아침 식사를 막 끝날 때 즈음이었는데 아침 일찍 찾아온 잭스 장군을 보면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슨 급한 일이기에 심한 눈보라를 뚫고서 이곳까지 왔느냐고 물었더니 잭슨 장군은 “장군님께서 저를 보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리 장군님의 가장 사소한 바람이 저에게는 최고의 명령입니다.” 이랬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이런 태도와 각오로 들어야 하는 것이지 농담 삼아서, 교양 삼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 절대 베드로와 같은 순종의 열매가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순종이 제사보다, 예배보다 낫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마주 할 때는 잭슨 장군과 같은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되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되기를 원하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명령하시는데 우리는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불순종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편견 가지고, 상식 가지고, 이성 가지고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면 절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처럼 이해가 되지 않아도 믿고 순종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지 이런 믿음의 자세가 부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진리를 깨닫게 된 사람들이 18절 말씀에 보면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이렇게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회개를 통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은 것처럼 이방인들도 회개를 통해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는 말씀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생명은 천국의 생명인데 그것을 말하면서 회개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복음의 가장 핵심이고 가장 기초입니다. 천국이 가까울수록 최선을 다해 해야 할 것은 회개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외치셨던 복음이 뭡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우리가 회개했을 때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보장 받을 수 있지 회개하지 않으면 절대 그 생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평생 백성들의 피를 빨아 먹고 살았던 삭개오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 회개했기 때문에 그 집에 구원이 이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고, 강도짓을 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도 그 자리에서 회개했기 때문에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은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지 회개하지 않았다면 그 어느 누구도 생명을 얻는 역사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 이 사람들이 베드로를 힐난 하다가 18절 같은 말을 하게 되었냐면 17절에서 말한 베드로의 답변 때문에 그런 말을 했던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지금 베드로를 힐난 하는 사람들도 그리스도를 믿는 과정이 있었을 텐데 그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받았습니다. 구원의 확신과 성령 세례를 선물로 받았던 것인데 이방인들도 동일한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사실을 보고서는 이들도 우리처럼 회개를 했기 때문에 동일한 선물을 받을 수 있었겠구나. 이런 이 확실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회개한 사람들만 받을 수 있는 것인데 그 선물을 이방인들이 받았다는 것은 할례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그 동안 이들이 가지고 있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천국의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회개밖에 없습니다. 회개했을 때 마지막 때에 부어 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의 영도 충만하게 받을 수 있다고 요엘서에 보면 분명하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냥 회개하는 시늉만 하면 안 되고 마음을 찢는 회개를 해야 마지막 날에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 주셔서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이런 은혜를 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 은혜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회개할 것이 있는 사람이 가장 한심한 사람이고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회개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그 일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다른 순종도 중요하지만 특별히 회개를 통해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하나님의 선물을 주셔서 천국의 생명을 주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의 모습이 천국의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고 그런 회개가 있었을 때 우리 안에 성령을 부어 주시는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일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데 혹시 하나님의 선물을 받지 못했다면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생명을 얻는 회개를 안 했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회개하라고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천국의 생명을 선물로 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창피를 주고 초라한 인생으로 만들려고 회개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회개를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다른 어떤 것보다 먼저 회개하는 성도님들이 되셔서 회개를 통해 천국의 생명을 얻는 복을 받으시고, 회개를 통해 성령님의 부어주심의 복을 받아서 성령님의 권능으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쁨을 나누는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