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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미니시리즈
미안하다, 사랑한다.
1. 제 목 : 미안하다, 사랑한다. (가제)
2. 제 작 : 에이트 픽스
3. 책임 프로듀서 : 김 종식
4. 극 본 : 이 경 희
5. 연 출 : 이 형 민
6. 형 식 : 70분물 미니 시리즈 16부작
7. 방송 기간 : 2004년 11월-12월
8. 기획 의도
* 죽음도 두렵지 않은 지독한 사랑의 기록
- 정말 슬픈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영화나 소설, 만화에나 있을 법한 그런 슬픈 사랑이야기.
현실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그래서 몇 백년에 한 번쯤 삼류잡지의 ‘믿거나 말거나 코너‘에 실릴 법한 기막힌 사연이 필요했다.
남여 주인공이 겪게 되는 운명의 고통이나 서로를 향한 사랑의 지독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엄청난 파워의 사랑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한 남자의 운명적 복수극으로 시작된다.
어린 시절 캐나다에 입양된 후 다시 양부모에게서도 버림받아 거리의 아이로 자란 들개 같은 남자 차무혁.
그는 첫사랑의 생명을 구해내고 훈장처럼 두발의 총탄을 맞게 된다.
뱅쿠버 거리를 떠돌던 그를 보살펴주었던 첫사랑은 자신에게서 떠나가라고 그를 떠민다. 낳아주기만 했지 비정하게 그를 내팽개첬던 고국으로돌아가라 한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자신의 출생에 얽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살았을 놀라는 사실들.
가난 때문에 자신을 버렸으리라 생각했던 무혁의 어머니는 톱스타로서의 명성을 날리고 있는 아들 최윤과 너무도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복수심이 끓어오른다.
누가 모성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했지?
고국과 캐나다에서 모두 버림받고 떠도는 바람처럼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그래 이제 내 생의 목표는 정해졌다. 내 어미의 행복인 윤의 행복을 먼저 접수해야겠다. 무혁은 생면부지의 동생(?) 윤의 매니져로 들어가그를 지옥 끝까지 끌어내릴 작정을 한다.
-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쓴 지독한 사랑의 기록이다.
은채에겐 소중한 남자 윤이 있다.
사랑하지만 가까이서 쳐다볼 수 밖에 없는 내 사랑 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언젠가 윤이 철들면 자기 곁에 늘 은채가 있었음을 알게 되리라 생각하고 기다리기로 한다.
대한민국 남녀 누구나 좋아하는 톱스타인 윤을 친구처럼 씩씩하게 보살피는 게 그녀의 사랑하는 방식이다.
어느 날 재수없는 한 인간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윤의 매니져란다.
거칠 것 없는 무례함에 안하무인의 그 남자.
볼수록 꼴불견이지만 왠지 자꾸 그 남자에게 시선이 간다.
소양강에서 윤의 차가 굴렀다.
중태다. 큰 수술을 해야 살 수 있다고 한다.
윤의 매니져 무혁이 고맙긴 하지만 이상한 제의를 한다.
자신은 앞으로 얼마 못 살기 때문에 윤을 위해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대신 은채는 무혁이 살아있을 동안 무혁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
윤을 살리기 위해 무혁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
은채와 무혁의슬픈 사랑이 시작된다.
...
무혁이 죽어야윤이 살 수 있다는 끔찍한 현실이 은채를 기다린다. ...
트리트먼트
캐나다. 벵쿠버. 무혁.
그날은 7년을 신앙처럼 사랑했던 여자 지영의 결혼식이었다.
잘 할께...내가 잘 할께.... 가지 마. 내가 죽어, 지영아... 널 잃고 내가 어떻게 살아?
무혁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처연한 눈빛을 하고 지영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지영은 싸늘한 키스만을 남기고 무혁의 집을 떠났다.
그래... 마음 편하게 보내주자.... 그동안 고마웠다고... 나한테 조국을 가르쳐주고 모국어도 가르쳐주고 내 암흑 같은 인생에 등불 하날 켜주어 고마웠다고... 나 같은 건깨끗이 잊고 진심으로 행복하라고 멋지게 말해주고 오자...
그러나, 무혁이 그런 귀여운 자비를 베풀기엔 웨딩드레스를 입은 지영의 모습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얼마 후, 지영을 태우고 가려던 롤스로이스 운전기사와 두명의 보디가드가 무혁의 주먹에 도로 바닥에 내팽개쳐 졌고, 무혁이 운전하는 롤스로이스는 결혼식장과 정 반대편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디 가? 어디 가는 거야, 지금!
지영은 그리 당황하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미안하다. 나 도저히 너 못 보내주겠다! 같이 못 살 바엔 같이 죽자!
무혁은 위악을 떨며 소리쳤다.
무혁의 무서운 표정에도 지영은 여전히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날 죽일려구? 바퀴 벌레 하나도 못 죽이는 니가 날 죽일려구?
롤스로이스가 뭔가를 발견하고 급 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섰다.
차 앞엔 급정거 소리에 놀란 자그마한 강아지 하나가 깨갱 하며 도로를 뛰어 지나갔다.
지영은 무혁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너 정말 귀엽다, 차무혁! 나 너한테 그냥 도루 가버릴까?
결혼 취소하구 너한테 도루 가버릴까?
무참한 표정의 무혁이 갑자기 힘껏 엑셀을 밟기 시작했다.
더 이상 말도 하지 않았다.
꾹 다문 입술, 서늘한 눈매에선 살기까지 느껴졌다.
지난 7년간 지영이 한번도 본 적 없었던 무혁의 얼굴이었다.
무혁아.
.....
롤스로이스는 깍아지른 절벽길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정말이구나... 저자식은 나와 함께 정말 지옥으로 갈 생각이구나...
숨이 멎는듯한 극도의 공포감이 지영에게 밀려왔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돌았었어... 너한테 돌아갈께... 살려줘..
죽기 싫어.. 나 죽기 싫어, 무혁아.
.....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무혁은 저 앞으로 보이는 절벽을 향해 더욱 속력을 높였다.
체념한 지영은 갑자기 엄마아... 엄마아... 부르며 이 생에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절규를 했다.
엄마아...엄마아...
낭떠러지 절벽 바로 앞까지 갔던 롤스로이스의 자동차 바퀴가 갑자기 멈춰 섰다...
무혁이 운전하는 롤스로이스는 다시 지영의 결혼식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신부의 실종 때문에 한바탕 어수선한 결혼식장안으로 롤스로이스가 들어서고, 무혁은 차에서 내려 지영의 차문을 열어주었다.
지영의 남편은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지영에게 와 지영의 뺨에 입맞춤을 하고 그녀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그리고, 자비롭게도 무혁을 향해 달려드는 예닐곱의 장정들도 손수 제지하며 막아주었다.
지영과 지영의 남편이 결혼식장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쓸쓸히 돌아서는 무혁의 시선에 문득 한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 남자는 사람들 틈 사이에 서서 지영과 지영의 남편을 향해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딸깍...남자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무혁의 몸도 지영과 지영의 남편을 향해 날았다.
무혁의 몸이 지영의 남편을 막고 무혁의 두 팔이 지영을 안았다.
탕! 탕! 탕!!
총알은 정확히 명중했다.
지영과 지영의 남편이 아닌 무혁의 머릿속 깊은 곳으로.
한국. 서울. 은채와 윤.
세자를 데려 오시오!...세자가 오기 전엔 절대 이 사약을 받을 수 없다, 이 놈들!
은채의 신들린 연기에 감독과 스텝들은 숨조차 멈춘 채 모니터 화면을 보고 있었다.
쟤다! 쟤가 주인공이다! 다른 애들 오디션 볼 거 없어! 쟤 이름이 뭐야?
감독의 흥분한 목소리가 가라앉기도 전에 은채는 이미 오디션장을 뛰어 나가고 있었다.
제가 주인공이라구요? 내일부터 촬영요? 안되는데요...
저 지금 우리 윤이 찾으러 가야 되는데... 됐어요. 주인공 안할래요, 그럼...
주인공이구 자시구 전지금 우리 윤이 찾는 게 급하다니까요!!
.... 저 안 미쳤는데요!!
매니저 실장으로부터 윤이 갑자기 행방 불명 되었다는 문자를 받은 은채는 급하게 비행기표를 끊어 부산으로 내려갔다.
오늘 저녁 가요 탑 텐 생방도 있는데, 윤이 또 사고를 친 것이다.
은채의 짐작대로 우리나라 최고의 톱가수 윤은부산 외곽의 한 횟집에서 할아버지 조리사에게 머리통까지 얻어맞아 가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회 뜨는 게 장난 인줄 알아? 처음부터 설거지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옙! 알겠습니다. 사부님!
가발에 수염까지 붙이고 완벽하게 위장을 한 윤을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얘들아! 여기 가수 최윤 있다!! 저, 오빠 팬이예요! 꺄악!!
은채는 윤이 더 이상 그 횟집에 머무를 수 없도록 횟집을 한바탕 벌집 쑤신 듯 뒤집어놓고서야 꼴통 윤을 데리고 서울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캐나다. 무혁.
삼박사일을 혼수 상태에 빠져 있었던 무혁이 깨어났다.
무혁이 눈을 떴을 때 흐릿한 안개 속에 맨 처음 지영이 보였다.
그래, 내가 꿈을 꾼거야... 한바탕 더럽고 재수없는 꿈을 꾼거야...
지영에게 뜨거운 키스라도 퍼부어 주려던 순간, 인자한 표정을 한 지영의 남편이 보였다.
지영의 남편 곁에 서 있던 백인 의사가 말했다.
대니(무혁의 영어 이름)군의 머리에 두 발의 총알이 박혔어요.
한발은 소뇌 앞쪽 숨골 부근에 박혔고, 한 발은 측두엽 쪽에 박혔어요.
제거하다 오히려 사망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현재로써 수술은 불가능하고...
됐시다. 뭐 살았음 됐지 뭐...
무혁은 그대로 병실을 나가버렸다.
일단 목숨은 건졌지만, 앞으로 장담은 할 수 없는 상탭니다.
순간순간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될 거고, 총알로 인해 혈관이 팽창돼서 터지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 거예요.
그리고, 측두엽 쪽에 총알이 박히게 되면... 사람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
점점 난폭해지고 잔인하게 변해갈 겁니다.
대니가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지영의 남편이 긴장했다. ‘난폭해지고... 잔인하게.... 변해갈겁니다.’
표정 없이 말하는 백인 의사의 입을 지영은 그저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거칠고 서툴기는 했지만.... 그 귀엽고 따뜻했던 무혁이가 난폭하고 잔인한 사람이 됐다가... 결국은 죽게 된다. 그 말씀이신가요?
그리고, 무혁과 은채와 윤의 이야기.
머리에 총알이 박혔다고 하는데...뭐 그다지 힘들지도 않고 아픈 줄도 모르겠다.
워낙에 들개처럼 잡초처럼 살아온 놈이 머리에 총알 두 개 박힌 게 무슨 대수랴?
콧구멍에 피어싱하 듯 대가리에 피어싱 두 개 했다 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와보니 어떤 험상궂은 놈들이 나의 집을 차지하고 있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데, 지영이 찾아왔다.
한국행 비행기 티켓과 제법 거금의 달러와 패물들을 주며 어서 이 나라를 떠나라고 말했다.
자신의 남편이 널 죽일지도 모른다며...
내가 물론 널 납치해 도망칠려곤 했다만, 그래두 니들 목숨을 살려줬잖아?
이건 경우가 아니지. 망할 것들아.
이번엔 지영이 무릎을 꿇고 사정했다.
어서 떠나... 한국으로 가. .. 여기서 개죽음 당하지 말구, 죽더라두 니나라에 가서 죽어.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죽긴 내가 왜 죽어, 갑자기?), 어쨌든 그렇게 난 캐나다를 떠나왔다.
그리고, 심심해서 가족을 찾았다.
엄마와 한국 최고의 톱 가수인 동생(아버지가 다른) 윤.... 그리고, 나와 함께 버림받은 나의 쌍둥이 누나 서경, 서경의 아들 내 조카 갈치.
난 엄마가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인 줄 알았다.
부잣집에 가서 너희들만은 배부르게 먹고 잘 살아라...
어쩔 수 없이 정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제 속으로 난 자식까지 버린 줄 알았다.
내 처지의 다른 입양아들이 지 부모에 대해 온갖 저주를 퍼부을 때, 그래서 난 내 부모를 두둔했고, 이해했고, 그들을 향한 사랑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제길...
내 어미란 여잔 한때 한국에서 유명한 여배우였고, 지 새끼들을 버린 건 오직 자신의 허욕과 야망을 위해서였단다.
단지 그 이유였단다.
으리으리한 내어미의 집 앞에 서자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누르고 눌렀던 분노가 더 이상 누를 길이 없자 소변으로 나오려나 보다...
화장실 좀 빌리자고 초인종을 누르다가 미친 놈 취급만 당했다.
할 수 없다 싶어 그 자리에서 담벼락에다 오줌을 누다가 그 집 가정부의 딸에게 들켜 버렸다.
무슨 기집애가 얼굴은 곱상하게 생긴 게 완전히 미친 개다.
그즈음 나의 쌍둥이 누이 서경도 만났다.
캐나다에서의 나보다 더쓰레기처럼 살고 있었다.
버려졌던 고아원 문 앞에서 차에 치였고, 그래서 27살이나 먹은 게 정신 연령은 7살밖에 안된다고 했다.
게다가 아버지를 모르는 아들 아이도 하나 키우고 있었다.
내 어미란 여잔 1000만원짜리 다이아 반지를 사며 더 비싼 게 없나 눈알을 굴리고 있는데, 내 누이란 여잔 1000원이 없어 시어빠진 샌드위치를 먹었다.
돌지 않으려고... 미치지 않으려고... 그렇게 이를 앙물고 버텼는데, 썅..
분노가 내 숨구멍을 턱턱 막아 당장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죽지 않으려고 내 어미를 다시 찾아갔다.
내 어미가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손톱만큼의 아픔도 눈물도 모르고, 저 효자 톱스타 아들 덕에 행복하게 살다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나는 신분을 철저히 숨긴 채 윤의 매니저로 취직을 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내 인생 최대의 실수, 내 어미의 집 가정부의 딸, 내 동생 윤의 코디, 미친개, “송은채”란 기집애를 만났다.
가요 순위 프로에서 윤이 1위를 했다.
신들린듯한 윤의 폭발적인 무대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저렇게 잘할 거면서 짜식이....
윤을 다섯 살 때부터 봐왔었다. 난 꽤 조숙한 여자 아이였다.
그때부터 시작된 사랑이 아직도 멈추질 못했다.
윤은 나의 희노애락이며 살아가는 이유다.
윤과 함께 하기 위해 내 자신의 안녕과 발전 따윈 모두 포기했다.
단편영화 주인공으로 출연해 달라고 그렇게 섭외가 오는데도 윤과 함께 하가 위해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
그가 잘 생기고 멋있어서, 부와 명예를 가져서, 우리나라 모든 여자들의 우상이어서... 내가 그를 흠모하는 건그런 속물적인 이유가 아니다.
다시 말하건데, 나는 그가 이렇게 대단해지기 전 다섯 살 때부터 그를 사랑해 왔다.
내 사랑은 백옥처럼 순수하다.
윤에게는 스포츠지 일면을 장식하는 스캔들 파트너가 있다.
우리나라 모든 남자들의 우상, 인기 가수이자 내 친구 “강민희”가 그상대다.
여자가 봐도 눈이 뒤집어지게 이쁘고, 섹시하고, 돈도 잘 벌고, 집안도 좋다.
나하곤 시쳇말로 쨉이 안된다.
윤이 더 “강민희”에게 몸달아 한다.
지금 나는 그들의 연애를 보호하기 위해서 보초를 서기도 하고, 데이트 장소에 함께 나가 병풍 노릇을 하며 밥도 먹어주고 게임도 해주고, 내 일과의 반을 그렇게 피눈물을 흘리며 보내고 있다.
그날도 두 스타의 병풍 노릇을 해주고 서러움에 눈물 콧물 질질 짜며 오는데, 웬 재수 열라 없게 생긴 남자와 시비가 붙었다.
그 남잔 윤의 집 대문 앞에서 노상 방뇨를 하고 있었다.
경찰에 고발할거라고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발휘해 방방 뛰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내 구역 표시했다, 왜? 개들은 자기 구역 표시를 이렇게 한대. (나중에 알고 보니 의미 심장한 얘기였다)
뭐야, 그래서? 지가 개라는 소리야, 뭐야? 이 집이 누구 집인 줄 알고, 감히!!
그리구, 여기가 어째서 니 구역이야?
집으로 들어가 한 바가지의 물을 퍼다가 반은 담벼락에 반은 그 남자의 얼굴에 뿌려버렸다.
그 왕재수와 만나고 딱 일주일은 재수 옴 붙은 날의 연속이었다.
그 거만하던 강민희가 눈에 띄게 부쩍 윤의 집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 재수 옴붙은 일주일의 마지막 날, 결국 못 볼 꼴을 보고야 말았다.
윤이 강민희의 입술을 덮쳤다....
못 볼 꼴을 본 충격으로 이틀을 이불을 뒤집어쓰고 앓고 난 아침, 윤이 새로 온 매니저라며 한 남자를 소개했다.
이러언.... 바로 그 오줌싸개 똥개였다.
(그날 이후 우리가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미친개”와 “오줌싸개”이다)
그의 이름은 대니 혹은 무혁이라고 했다.
하루에 몇 번씩을 부딪히게 되는 내 어미는 자신이 버린 두 아이의 존재 따윈 깨끗이 잊은 듯 했다.
대단한 톱스타 윤이 그녀의 유일한 神이며 태양이다.
윤이 덕분에 내 어미는 일분 일초도 쉬지 않고 행복하다.
내 누이와 나, 우리 가련한 남매의 웃음과 행복을 밟아버린 위에서 그녀는 그렇게 웃으며 행복하다. 용서할 수가 없다.
그대로 갚아주겠다. 나는 변해 가고 있다. 잔인하고, 악날하게...
내가 이렇게까지...이런 놈이었나? 나의 이런 변화가 사실은...나조차도 당황스럽다.
윤이 “강민희”라는 인기 여가수와 공개 연인 선언을 했다. 곧 결혼도 할 거란다.
그 여자가 그렇게 대단한 여잔지 내 어미의 입이 귀에 걸렸다.
내 누이 서경은 점점 더 어처구니가 없어지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나를 이성으로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니 동생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남매라는 사태의 진정성과 심각성을 잘 깨닫지 못한다)
내 어미는 점점 더 잘 웃고, 행복해져 갔다.
내 어미의 웃음이 내 신경의 끝을 자극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여자 하나가 내 신경 끝에 걸렸다.
미친 개, 송은채..
주제도 모르고 감히 윤을 짝사랑해 왔나 보다.
윤 주위엔 그렇게 정신 못 차리는 크레이지 걸들이 많다.
그런데... 그 크레이지 걸들과 도매금으로 넘기기엔 송은채는 좀 다른 것 같다.
자신의 라이벌 강민희를 옹호하느라 자신의 한 몸을 아낌없이 던지기까지 한다.
(게임방에서 은채가 고스톱을 치는데, 옆자리에서 한 무리의 윤의 팬 여자들이 강민희에 대한 악성루머를 인터넷에 퍼뜨리고 있었다. 미친개 송은채, 그대로 달려들어 그들의 팔뚝을 물어뜯어 버린 일이 발생했다.)
파출소로 끌려간 송은채를 간신히 빼서 나오며 왜 그런 오바를 했냐고 물었더니 니가 사랑을 아냐? 하며 나를 비웃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술을 몇 잔 더 먹였더니 송은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랑이라는 건 말야... 그 사람의 전부를 사랑하는 거야.... 그 사람의 단점도 그 사람이 택한 여자두 모두모두 사랑해주는 게 진짜 사랑이야. 알어?
그리고 몇 마디 더 부처 할머니 같은 대사를 내뱉고는 대성 통곡을 하며 울었다.
그녀의 닭살 돋는 느끼한 오바에 오바이트가 쏟아졌다.
이상하게 요즘 오바이트가 잦다.
아,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았다.
내 어미도 눈물을 흘릴 줄 알고, 가슴 아픈 것도 느낄 줄 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녀를 울게 하고 가슴 아프게 하는 유일한 키는 윤이라는 것도 알았다.
내 목표는 정해졌다. 윤이다.
내 어미의 神, 내 어미의 태양...
윤이라는 칩 하나만 빼버리면 내 어미의 인생은 완벽하게 끝이 난다.
윤을 어떻게 망가뜨려 버리나?
마침 윤의 행복의 8할을 거머쥐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윤의 연인 강민희였다.
윤에게서 일단 그녀를 뺏기로 결심했다.
내가 윤의 매니저 차무혁이라는 걸 절대 눈치 못 채게...
삐에로 양아버지에게 변장술을 배운 적이 있다.
그리고, 내 몸엔 내 어미가 준 배우의 피도 흐른다.
자신 있다.^^
사실은 나.... 내 사랑의 끝을 예감했었다.
윤이 어디 나 같은 게 올려 볼 수나 있는 사람인가?
다섯 살의 첫 사랑?... 과거는 흘러갔다. ㅜ.ㅜ
이제 그를 못 볼 것 같다. 윤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윤은 나를 향해 참 잘 웃는다. 그리고, 눈물도 꼭 내 앞에서만 흘린다.
자신의 치부도 유치원 소년처럼 내 앞에서는 아무 거리낌없이 내어 놓는다.
윤은 나를 또 다른 자신의 분신 같다고 했다.
너하고 난 평생 함께 갈 친구다!
아무데도 가지 말고 내 옆에만 있어야 돼, 송은채?
.....
그가 또 이렇게 내 맘을 흔들어 놓는다.
나도 자신이 없다. 그의 웃음을 못 보고, 그의 감미로운 노래를 못 듣고, 그가 가끔씩 만들어 주는 초밥과 짜장면을 못 먹는 곳에서 나 홀로 시들어 갈 자신이 없다.
그렇게 시들다 시들다 결국 난 죽고 말 것이다.
죽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20개쯤의 면도칼이 가슴을 난도질하는 고통을 겪더라도...
그렇게 구차하게라도 윤의 곁에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이름없는 단편영화를 찍는 이름없는 감독이 또 나를 찾아왔다.
일주일에 30분이라도 좋으니 윤의 코디 노릇을 하다 남는 시간을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그러자고 했다.
점심때는 윤의 코디 노릇을 하고, (윤이 강민희와의 웨딩 잡지 사진을 찍었다... 아직 결혼 날도 안 잡았는데, 우리 나라 잡지사들 너무 앞서 가니까....)
저녁때는 단편영화 촬영을 하고, 한밤중엔 차무혁을 안주 삼아 쓰린 속에 소주를 부어댔다.
차무혁... 재수 밥맛인 줄 알았는데, 가끔 괜찮은 벽 노릇을 할 때가 있다.
윤이 또 방송 펑크를 내고 실종되었다.
강민희 때문이라고 했다.
머리 나쁜 강민희는 완벽하게 나에게 (정확히 말한다면 내가 만든 인물 벤처 기업가 “박인우”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녀가 나에게 매달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의 행동 노선도 달라졌다.
일주일에 200번 정도 걸던 전화를 한 통으로 줄이고, 약속을 계속 펑크 내고, 대사 톤도 차갑고 냉정하게 단문으로 조절했다.
강민희는 점점 더 애를 태우고 몸을 닳아했다.
내 계획대로 강민희는 내가 그녀에게 했던 모든 행동을윤에게 그대로 카피해 보였다.
윤의 전화도 받지 않고, 약속도 펑크 내고, 대사 톤도 차갑게 단문으로 조절했다.
나의 각본대로 기자들을 모아놓고 윤과의 결별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윤은 상처를 입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의 명성과 연예 활동에도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내 어미의 얼굴에 웃음이 가시고 눈물이 고였다.
축배라도 들고 싶어 둘의 결별을 가장 기뻐할 동지 송은채를 찾았다.
사실은 걔들 내가 깼어! 고맙지?
술이 취하면 그렇게 술 주정도 해 볼 생각이었다. (물론 믿지 않겠지만)
그러나, 송은채는 미쳐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결별 소식에, 그가 겪을 고통과 상심에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예전에 부처 할머니 같던 그 느끼한 오바들은 결코 오바가 아니었다.
강민희에게 찾아가 마음을 바꾸라고 윤에게 다시 돌아가 달라고 사정을 하고 무릎을 꿇고 빌고 있었다.
오바이트는 안 나는데, 머리가 아파왔다.
그날 저녁부터였던 것 같다.
송은채라는 여자가 총알 두 점과 함께 내 머릿속에 박혔다.
윤이 실종된 동안 내 어민 미음 다섯 그릇을 비웠지만, 송은채는 잠도 안자고 물 한 모금도 안 먹었다.
윤을 찾아 떠나는 은채를 따라 나섰다.
윤을 찾기 전에은채가 먼저 죽어버릴 것 같았다.
총알 두 알이 박혔을 때도 그다지 아픈 줄 모르겠던 머리가 은채가 박힌 이후론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통증이 왔다.
은채를 향한 내 잘못된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윤을 찾았단다.
자신의 승용차와 함께 소양강 강물 밑에 있었다고 우리 나라 5대 신문과 스포츠지에서 일제히 톱기사로 보도했다.
이 빙신 같은 놈아! 날도 추운데 거긴 왜 들어갔냐? 여자 하나 때문에 죽냐?
병실에 누운 윤을 잡고 통곡을 했다.
윤은 꽤 오랜 시간을 병실에서 지냈다.
방송국과 신문사의 카메라가 하나 둘 병원 앞을 떠나갔다.
나는 의식을 잃고 누운 윤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손발을 닦아주며 그 동안 나의 서러운 짝사랑을 모조리 고백했다.
일어나기만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민희를 잡아다 니 앞에 무릎도 꿇게 하겠다, 약속도 했다.
윤만큼이나 나도 야위어갔다.
윤이 일어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쓰러져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을 때, 누군가 내 뒤에 있다는 걸 알았다.
차무혁이었다.
그도 내가 쓰러질까봐 걱정되었는지 언제부턴가 계속 내 등 뒤를 지키고 있었다.
착한 사람...
왕 싸가지에다 캡 재수 없고, 열라 못 돼 빠졌고, 이유를 대라면 절대로 댈 수 없지만, 어쨌든 난 그를 그렇게 느꼈다.
내 뒤에 든든하게 선 차무혁을 믿고 난 윤의 간호에 더욱 열중했다.
그런데, 차무혁 덕분에 난 다시 살이 찌기 시작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차무혁은 점차 야위어가고 있었다.
난 이렇게 튼튼하게 서 있는데, 차무혁은 밥을 먹다 얘길 하다 갑자기 픽픽 쓰러졌다.
그리고, 오랜 혼수 상태 끝에 윤이 깨어났다.
몸이 이상하다.
은채가 머리에 박힌 후부터 시작됐던 두통이 점점 더 심해진다.
잠을 자다가 너무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기도 한다.
길을 가다가도 픽픽 쓰러지고, 건망증도 잦아진다.
은채를 향한 내 마음이 점점 깊어가는 탓인가?
윤이를 향한 은채의 지칠 줄 모르는 사랑에 점점 질투가 난다.
저 자식은 뭐가 그렇게 잘나서.... 질투가 서서히 욕심으로 바뀐다.
은채를.... 내가... 가지고 싶다. 저 여자 내게 주십시오, 하느님.
스피드 시대다.
하느님은 바로 내 소원을 들어주셨다.
윤은 사고의 후유증으로 간을 다쳤다 했다.
담도 폐색인가 뭔가 하는 걸로 간이 심하게 손상되고 있고, 이식을 하지 않으면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했다. 하느님이 너무 오바 하셨다.
이런 상황을 원한 건 아니었다. 윤의 목숨까지 앗을 생각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난... 은채의 눈물을 도저히 쳐다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팔다리에 마비가 왔다.
길을 걷다가 숨이 막힐 것처럼 호흡이 가팠다.
자리에 주저 앉았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깨어보니 병원이었다.
머리에 박힌 은채가 아니라 총알이 원인이라고 했다.
총알이 박힌 숨골 부근의 동맥이 자극되어 혈관이 팽창하고 있다고 했다.
자칫 혈관이 터지게 되면 죽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혈관이 언제 터지는데요?
의사는 정확한 시간을 대답해주지 않았다.
안 터질수도 있잖아요. 내가 얼마나 질긴 놈인데...
혈관도 다른 놈들보다 30배는 질길걸, 아마? 왜 사람 겁주구 그래....
병원을 걸어 나오는데, 은채가 간 검사를 받고 있었다.
간 검사를 해보고 이식이 가능하다면 윤에게 제간을 이식해 줄 거란다.
오바의 극치다. 환장하겠다.
은채는 말린다는 게 얼떨결에 나도 간 검사를 받았다.
저렇게 곱고 이쁜 여자라는 걸 진즉 못 알아본 내가 한탄스럽다.
간절하게.... 단 하루라도 좋으니
저 여자 은채 하나만 가지고 싶다.
간절하게....
단 하루라도 좋으니 저 남자 최 윤을 가지고 싶다.
그렇게 버릇처럼 소원을 빌고 다녔던 적이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
혼수 상태에 빠져 있던 윤은 깨어나자 마자 나를 찾았다.
윤은 아주 감동적인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윤이 혼수 상태에 빠져 있을 때 그에게 했던 절절한 고백을 신기하게 윤은 다 듣고 있었나 부다.
윤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뜨겁고 달콤한 키스를 해주었다.
아, 이제 아무 여한이 없다. 이 자리에서 죽어도 좋다.
까짓, 그래! 윤을 위해서 죽자!
이 멋진 남자를 위해 이 한 몸 불사른 듯 뭐가 그리 아깝겠나?
윤에게는 자신의 병에 대해 숨기기로 했다.
죽음을 한번 마주쳤던 기억 때문인지 윤은 정말 열심히 살았다.
노래도 열심히 부르고, 대책 없는 꼴통 짓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대중은 윤을 더욱 더 사랑하기 시작했고, 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초조해져 갔다.
저 노래 하나하나가 윤이 자신의 마지막 생명을 불살라 부르는 노래 같아서 가슴에선 피눈물이 흘렀다.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간 기증자를 찾았지만, 어떤 희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스물 다섯 번째 생일 날, 윤이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간 검사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피가 무섭다고 하는건지...
윤에게 간 이식을 하기에 최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단다.
의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장실에 가서 오바이트를 했다.
요즘 들어 부쩍 오바이트가 잦고, 졸도도 자주하고, 시력도 점점 떨어져 간다.
이러다... 정말 죽을래나....
처음부터 세상에, 삶에 애착이 없던 놈이라 죽음이 그리 두렵진 않다.
다만 걸리는 건... 내 바보 누이 서경, 어린 조카 갈치. (미안하지만, 내 어민 아니다) 그리고...
은채.
한동안 포즈 상태에 있던 악마의 피가 다시 내 혈액 속을 돌기 시작했다.
은채를 찾아갔다.
나 곧 죽는단다, 송은채!
장난치지 말라고 흘겨보는 은채에게 총알 두 개가 박힌 두개골 필름을 증거물로 제출했다.
총알 옆에 혈관이 지금 풍선처럼 자꾸 부풀어 오르고 있는데, 그게 터지면 바루 골루 가는 거래.
오늘이 될 수도 있구, 일주일 후가 될 수도 있구, 재수 좋으면 한 달후가 될 수도 있구...
은채의 큰 눈 가득 눈물이 맺혀 왔다.
간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최윤이 한테 주기에 내 간이 최상의 조건을 갖구 있대네.
무..무슨 소릴 하는 거야, 차무혁?
은채의 꽃잎 같은 입술이 떨려 왔다.
죽기 전에 좋은 일 하나 하구 떠날까 싶어서...
은채의 별빛 같은 두 눈에서 쉴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내 간, 윤이한테 줄테니까.. 니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살려줄테니까...
너 나한테 올래?
은채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한 표정이었다.
일주일이 될지 한 달이 될지 잘 모르겠는데.... 그때까지만 나한테 올래?
그 이후엔 윤이한테 돌아가구, 그때까지만 내 애인하자...
은채는 벌떡 일어나더니 물컵의 물을 그대로 내 얼굴에 부어버렸다.
목숨 갖구 장난치니? 이 나쁜 새끼야!!!
은채는 이뻤다.
윤이 자신의 병을 알아버렸다.
그 초롱초롱하던 윤은 온몸에 피가 다 빠져 나간 사람처럼 낙담했고, 내 품에 안겨 살고 싶다고 아이처럼 울었다.
그날 저녁에 비가 왔고, 무혁을 만났다.
나는 블라우스 단추를 꼭 쥐고 말했다.
난 아는 여관 없는데, 니가 아는 여관으로 가자.
커피를 마시던 무혁이 커피를 확 내뿜으며 껄껄 웃었다.
몸 말구, 마음만 와.... 마음만.... 그 대신 진심으로..
단 한 시간이라도 진심으로... 난 몸매 엉망인 것들 하군 안 자.
머리가 아프다며 무혁이 먼저 일어서 나갔다.
무혁이 손수건 한 장을 잊어버리고 놓고 갔다.
나는 그 손수건이 다 젖어 세 번을 짤 때까지 목놓아 울었다.
모멸감 때문이 아니었다.
무혁이 쓸쓸한 뒷모습이 너무 가여웠다.
단 한 시간이라도 진심으로....
무혁에겐 알리지 않고 무혁의 집을 찾아갔다.
무혁의 누이 서경과 그의 조카 갈치를 만났다.
무혁이 부모에게 버려져 외국에서 살다 온 입양아라는 사실도 갈치에게 들었다.
저들을 남기고 떠나야 하는 무혁의 아픔이 이제 겨우 돌아온 조국에서 얼마 살지도 못하고 다시 못 올 곳으로 떠나야 할 무혁의 서러움이 느껴져 목이 메었다.
단 한 시간만이라도....
진심으로 그를 사랑해주고 싶었다.
캐나다 경치만큼이나 멋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캐나다 보다 100배는 따스한 한국의 가을을 무혁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빠르면 일주일... 늦으면 한 달... 시간이 없다.
무혁의 손을 이끌고 강원도로 갔다. 윤에게는 적당한 거짓말을 했다.
민박집 하나를 잡고 시장을 봐다가 이것 저것 내가 할 줄 아는 한국의 맛있는 음식은 다 해 먹였다. 요리책도 샀다.
내가 먹어도 토할 정도로 맛이 없는데, 무혁은 참 맛있게 잘 먹어주었다.
아파서 입 맛도 없을텐데...
그게 고마워 그의 손을 잡아주고, 그가 극심한 통증에 시달릴 때 안아도 주었다.
그가 갑자기 죽기라도 할까봐 겁이 나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나는 그에게 점점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단 한 시간이라도.... 진심으로....
큰일났다.
언젠가부터 그를 위해 쓰는 24시간 전부가 내겐 진심이 되어 가고 있다.
연민인가?
그러나, 연민도 또다른 사랑이 아니던가?
사실은 오래 전 윤이 의식을 잃고 누워 있을 때, 무혁이 내가 쓰러질까 등뒤를 지키고 있을 때부터 내 마음은 무혁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던 것 같다.
단지 내가 외면하고 있었을 뿐.
송은채! 뭐야? 윤에 대한 감정은 뭐야, 그럼? 너 바람둥이야?
나에게 돌을 던져도 침을 뱉어도 어쩔 수가 없다.
그래, 이제 고백하겠다.
나는 무혁을 윤과 똑같은 크기와 무게와 질량으로 “사랑하고 있다.”
은채에게 거짓말을 했다.
죽기 전에 윤에게 간 기증을 해주고 싶은 생각은 애초부터 털끝만큼도 없었다.
내 나만 죽어줘야 해?
내 어미의 행복을 위해서 밟혀 지낸 시간은 지난 26년으로 충분하다.
내가 간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후내 어미가 나에게 보여줬던 가증스런 사랑에 나는 뼈가 시렸다.
내 어미는 간에 좋은 굼벵이며 쑥즙이며 미나리즙을 쉬지 않고 나에게 날라다 주며
내 건강을 염려했다.
내 어미가 걱정한 건 사실 내 건강이 아니라 윤에게 줄 나의 간이었고, 그녀가 원한 건 나의 빠른 죽음이었다.
나도 당신 아들이라구! 당신이 만들어 세상에다 내놓은 니 핏줄이라구, 사모님!!
죽음이 임박했다고 느끼면 어디론가 아무도 날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어버릴거다.
그리고 내 어미에게 전화를 해야지.
나 당신이 버린 아들입니다.
미안하지만, 간은 못드리겠습니다.
최윤이 죽었을 때 흘릴 눈물 백분의 일만 저를 위해 흘려 주시겠습니까? 어머니?
시나리오는 완벽하다.
무혁과의 여행 닷새째 날, 윤이 민박집으로 찾아왔다.
나와 무혁의 관계를 계속 수상하게 여겨 오다 사람을 시켜 뒤를 밟았다 했다.
윤은 아무 말없이 나를 차에 태우고 서울 부근의 작은 성당으로 갔다.
나에게 준비해 온 원피스를 입게 하고, 자기도 정장으로 깨끗이 갖춰 입었다.
지금 뭐 하는 건데?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결혼식을 올릴거라고 말했다.
신부님의 주례 하에 간단한 결혼식이 치러지고, 연락을 받은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 들었다.
지금 뭐 하는 건데?
내 손가락에 다이아 반지가 끼워지고, 신부님이 두 사람은 이제 부부가 되었다고 선포하는 순간에도 나는 대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 버스안에서 신문을 보았다.
‘톱 가수 최윤, 담당 코디 송은채와 기습 결혼’
버스 안 모든 승객들이 신문을 사 들고 기사를 보고 있었다.
은채가 미처 가져가지 못한 짐 가방이 옆자리에 놓여 있었다.
호흡이 다시 죽을 듯 가파왔다.
그날 저녁에 나와 서경, 갈치의 생일 파티를 했다.
아무도 제대로 된 자신의 생일이 없었기에 그 날을 공동의 생일로 하기로 정했다.
촛불을 끄려고 하는데, 윤이 소주를 들고 찾아왔다.
신혼 여행 안 갔냐고 신부는 어쨋냐고 물었더니 호텔방에 혼자 있다고 말했다.
윤과 소주를 놓고 마주 앉았다. (소주를 다 부어버리고 물을 채웠다)
윤은 별 말이 없다가 마지막 잔을 비우며 의미 심장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나 형이 누군지 알아!... 나두 엄마가 데려다 키웠어... 형 때문에...
형에 대한 죄책감을 나한테라두 갚을려구....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쓰러져 버렸다.
윤은 다시 혼수상태에 빠졌다.
간이 상할 대로 상해 빨리 이식을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한 상태라고 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그래서 그렇게 급하게 결혼을 서둘렀나?
나는 윤의 손을 꼭 잡았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윤아.
기자들이 다시 벌떼처럼 몰려 들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기자들이 다몰려 온 듯 했다.
화장실에 나갔다 기자 한 사람에게 잡혀 인터뷰도 했다.
그렇게 난 아무 상황 판단도 못하고 제 정신이 아니었다.
텔레비전 화면에 은채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 신혼 첫날밤도 못 치루셨는데, 최윤씨가 지금 위험한 상태라면서요?
지금 심정이 어떠신지요?
인터뷰어는 잔인했다.
걱정 마세요... 곧 건강해 질겁니다... 일어 날거예요, 곧.
차마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며 인터뷰를 하고 있는 그녀의 멍한 동공이 너무도 안쓰러워 티브이를 꺼버렸다.
지영이 귀국해 나를 찾아왔다.
수술 하자. 내가 미국이랑 독일이랑 다 알아봤는데, 헨리라고 저명한 의사가 가능성이 88%라고 했어. 해보자. 니가 가자는 데 어디든 따라 갈께, 건강해져서 나랑 살자, 무혁아.
지영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의사를 찾아갔다.
어차피 죽을 목숨... 한 사람이라도 살리게.... 좀 더 앞당길 수는 없겠습니까?
내 어미를 찾아갔다.
다짜고짜 밥 한끼만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철 없고 음식 못하는 내 어미는 은채의 엄마에게 내 밥을 차려주라 부탁했다.
사모님이 해주세요. 사모님 손으로 직접!
난 라면 밖에 못 끓인단 말야.
내 어거지에 내 어미는 툴툴 거리며 라면 하나를 끓여 주었다.
계란 하나가 들어간 설 익은 라면 한 그릇...
내 어미에게 처음 받아보는 밥상이었고, 내 가엾은 生에 마지막 식사였다.
병원 부근의 모텔에 방을 잡고, 은채와 지영에게 그리고, 병원 의사에게 일제히 예약 메시지를 보냈다.
병원 의사에겐 **시까지 내 모텔 방으로 와 내 시신을 수습하고, 윤에게 늦지 않게 간 이식을 해달라고 했고, 지영에겐 수술이 끝난 후 나를 은채가 없는 땅 캐나다로 데려 가 묻어 달라고 했고,
은채에겐 “미안하다.. 사랑한다” 라고.... 그렇게 이 生의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얼마 후 은채의 핸드폰에 무혁의 이름이 찍힌 메시지가 배달되었다.
“미안하다...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1년 후. 무혁이 없는 세상의 은채와 윤.
간 이식 수술을 무사하게 마치고, 윤은 다시 건강해졌다.
그날은 윤의 콘서트 날이었다.
VIP석에 엄마와 아내 은채, 누나 서경과 조카 갈치와 은채의 친정 식구 자리를 마련했다.
은채는 국제 단편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수상했고, 시상을 위해 빠리로 떠나 있었는데, 마침 그날이 돌아오기로 한 날이었다.
콘서트에 늦지 않게 오겠다 사흘 전 전화도 왔었다.
윤의 콘서트, 그 성대한 막이 올랐다.
윤은 노래를 하기 전 자신을 있게 해준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얘기했다.
은채의 자리는 아직 비어 있었다.
윤이 감미로운 노래가 시작되고 있을 무렵,
한 신문사의 팩스로 캐나다발 특파원의 기사가 들어오고 있었다.
“캐나다 외곽 묘지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었음.
내리는 눈에 덮혀 동사한 것으로 보임. 유서도 발견되었음”
뒤이어 유서의 내용도 함께 흘러 나왔다.
“용서하십시오.
살아서도 지독하게 외로웠던 그를 다시 외롭게 혼자 둘 수가 없었습니다....
벌 받겠습니다..... 송은채"
끝.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