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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에 논술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근래 들어 학부모들 사이에 논술열풍이 일고 있다. 현재의 논술교육은 논설문 쓰기를 가르치는 것이다. 좋은 논설문이 반드시 좋은 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좋은 글에는 좋은 논설문이 포함된다. 어린 시절부터 주장하는 글만 배워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동시를 쓰거나 일기를 쓰면서 자연스레 글짓기를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논술을 잘하기 위해서 논술을 버려야 한다.
문장이란 무엇인가? 학식이 속에 쌓여 그 모양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네. 이는 기름진 음식이 창자에 차면 광택이 피부에 드러나고, 술이 배에 들어가면 얼굴에 홍조가 도는 것과 같은 것이니 어찌 갑자기 얻을 수 있겠는가.
정약용(丁若鏞),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지혜로운 맹상군 이야기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닭 우는 소리를 내는 사람,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내며 훔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맹상군(孟嘗君)은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왕족이었다. 집의 재산을 기울여 천하의 호걸들을 초빙했는데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재주가 있는 사람이면 모두 후하게 대우했다. 이렇게 모은 사람이 수천 명을 헤아렸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닭 울음을 잘 내는 사람과 개 짖는 소리를 흉내내면서 도둑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을 무시했다.
진(秦)나라는 맹상군의 명성을 듣고 그를 정승으로 삼으려 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오지 않을 것이 뻔해서 우선 왕자를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 놓고 맹상군을 초빙했다. 그러나 진나라 벼슬아치들 눈에는 맹상군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맹상군 때문에 자신들의 권력을 잃을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이 왕에게 말했다. "맹상군은 제나라 사람이므로 진나라 정승이 되어도 우리를 위해서 일하지 않을 것이니 결국 우리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정승이 되려고 온 맹상군을 가두고 나중에 죽이려 했다.
맹상군은 발이 넓은 사람이었다. 감옥에 갇혀서도 인맥을 동원해 탈출을 시도했다. 진나라 왕의 애첩(愛妾)에게 청탁을 넣었다. 그녀는 석방의 대가로 맹상군이 가지고 있던 호백구(狐白裘, 흰 여우 가죽으로 만든 옷)를 요구했다. 그런데 그 호백구는 맹상군이 입국하면서 왕에게 바쳤기 때문에 수중에 없었다.
이때 맹상군을 수행했던 개 짖는 소리를 내는 도둑이 진나라 궁중의 창고에서 호백구를 훔쳐왔고, 진왕의 애첩에게 바쳤다. 애첩은 약속대로 진왕을 구슬려 맹상군 일행을 무사히 석방시켜 주었다. 맹상군은 풀려나자마자 온 힘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중에 진왕은 이것을 후회해서 군대를 풀어 뒤쫓게 했다.
맹상군 일행은 밤중에 함곡관(函谷關)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만 나가면 진나라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진나라 법에 함곡관의 문은 첫 닭이 울어야 열도록 되어 있었다. 맹상군 일행은 추격대가 올까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이때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부하가 한 번 "꼬끼오" 하고 울자 주변의 닭들이 모두 소리를 내었다. 함곡관의 보초들은 닭이 울자 문을 여는 시간이 된 줄 알고 관문을 열어 주었다. 맹상군 일행은 탈출에 성공했고, 이후 모두들 맹상군의 현명함에 탄복하게 되었고, 두 사람도 더 이상 무시하지 않았다.
'계명구도(鷄鳴狗盜)'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지만, 화가 닥치자 주인을 구해냈다. 지금까지 이 말은 '세상에 쓸모없는 재주는 없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왕안석의 독후감, 「독맹상군전」
대부분 맹상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맹상군의 사람 보는 눈에 탄복을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고 보통과는 다른 생각을 했던 사람이 있었다. 송(宋)나라의 정치가이자 문장가였던 왕안석(王安石)이라는 사람이었다. 아래의 글은 왕안석이 「맹상군열전」을 읽고 비평한 글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독후감이라 할 수 있다.
世皆稱: "孟嘗君, 能得士, 士以故歸之, 而卒賴其力, 以脫於虎豹之秦.", 嗟乎! 孟嘗君, 特鷄鳴狗吠之雄耳. 豈足以言: '得士?', 不然, 擅齊之强, 得一士焉, 宜可以南面而制秦, 尙取鷄鳴狗吠之力哉? 鷄鳴狗吠之出其門, 此士之所以不至也.
세상 사람은 모두 "맹상군은 선비를 잘 얻었다. (그가 선비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선비들은 그에게 귀의했고, 끝내 그들의 힘에 의지해 호랑이와 표범 같은 진나라에서 벗어났다."라고 칭찬한다.
아! 맹상군은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내는 사람들의 영웅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훌륭한 선비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런 자들만 얻지 않았더라도 제나라의 강한 힘을 멋대로 휘둘렀을 것이고, 한 명의 선비만 얻었더라도 임금 노릇을 하면서 진나라를 제압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갇힐 일도 없었을 것이니) 닭 울고 개 짖는 소리를 내는 자의 힘을 취할 일이 생겼겠는가?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를 내는 사람이 그의 문하에서 나왔기 때문에 훌륭한 선비들이 맹상군에게 가지 않은 것이다.
왕안석(王安石)1), 『고문진보(古文眞寶)』, 권 6, 「독맹상군전(讀孟嘗君傳)」
많은 사람들은 이 일화를 읽으면서 맹상군에게 탄복했지만, 왕안석은 도로 맹상군을 별것 아닌 사람이라 탓하고 있다. '계명구도'를 '잡놈들'로 깎아내리고 '영웅 맹상군'은 '잡놈들의 우두머리'라 평가절하했다. 오합지졸(烏合之卒)을 모으는 시간에 군계일학(群鷄一鶴)을 초빙하는 데 힘을 기울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독맹상군전」을 읽기 전에는 서두의 일화만 읽고 맹상군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글을 읽은 이후에는 "이 말도 그럴 듯하네?" 또는 "읽고 보니 왕안석의 말이 맞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88자로 간결하게 썼으면서도 정연한 논리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왕안석처럼 누구나 할 수 없는 생각을 해내는 능력이 '창의력(創意力)'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기발한 글이 나온다.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논리가 있으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글이 된다. 그렇다고 「독맹상군전」과 같은 글만 '좋은 글'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 글은 '좋은 논설문'이다. 저런 식으로 쓴 시나 수필을 보고 좋은 글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글을 쓰는 의도와 형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논술이 아이의 생각을 가로막는다
대학입시에 '논술'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은 학과 공부 이외에 글짓기 공부도 과외로 한다. '논술(論述)'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또는 진술)하는 것'이다. '논술'이라는 말 속에 이미 공부의 내용이 결정되어 있다. 논설문 쓰기를 배우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조리 있게 설득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은 분명 필요하다. 논리적인 사고는 다른 과목을 공부하거나 생활을 하는 데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且世之學者, 初習場屋科擧之文, 不暇事風月. 及得科第, 然後方學爲詩, 則尤嗜讀東坡詩. 故每歲榜出之後, 人人以爲: "今年又三十東坡出矣." 足下所謂: '世之紛紛者' 是已, 其若數四君者, 效而能至者也.
또한 세상의 배우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과거에 필요한 글을 익히느라 자연을 읊을 겨를이 없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뒤에 시 짓기를 배우게 되는데, 더욱 소동파의 시를 즐겨 읽습니다. 그러므로 해마다 급제자의 방(枋)이 붙게 되면 사람들마다 "올해도 동파가 30명 나왔다."고 하게 되는 것이지요. 당신이 말한 '세상의 잡된 사람들'은 그만두고라도 그 중의 서너 사람만 보더라도 소동파를 본떠서 경지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이규보(李奎報)2),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 26, 「답전이지논문서(答全履之論文書)」
'논술은 생각 쓰기'라는 말을 들었다. 맞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이란 슬픔, 기쁨, 두려움, 원망, 사랑, 욕망 등과 같은 감정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오로지 주어진 주제와 그에 대한 근거에 대해 가져야 하는 생각일 뿐이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동화를 읽으면서도 주제를 찾아내야 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좋은 논설문' 쓰기만 연습한다. 한 가지 패턴만 가르쳐 놓고 거기에 맞추라고 한다. 요즘에는 해마다 '수천 명의 소동파'가 탄생한다. 그 수천 명 안에 들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획일적으로 가르친다. 애당초 창의적인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다.
책을 많이 읽어서 알게 된 다양한 내용들도 결론을 내기 위한 소재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아는 것이 많아지고 판단력을 길러낼지는 몰라도(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는 한다) 이것이야말로 아이들의 다양한 생각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생각할 수 있는 경우를 한정해 놓고 '창의력'을 길러 준다고 한다. 실제로는 좋은 글을 모방하거나 자기 글처럼 꾸미는 방법을 배우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에게 도서 목록을 제시하고 요약하게 한 후 느낌을 적게 만들어 첨삭지도를 하는 방식도 글쓰기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글은 지도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유로운 생각까지 지도하면 안 된다. 아이들 생각에 빨간 줄을 긋고 있으면서 창의력을 키운다고 큰소리치면 곤란하다. 생각을 하게 만들기 위한 생각 쓰기가 오히려 아이들의 생각을 막고 있는 셈이다.
야구 경기에서 투수는 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여러 가지 구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직구는 기본이고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까지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할 수 있어야 살아남는다. 논설문은 여러 가지 장르 중 하나일 뿐이다. 이것 하나만을 잘 쓰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직구만 고집하는 투수를 좋은 선수라 하지 않는 것처럼 글쓰기도 이와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에는 재미있는 책을 읽으며 감상문을 쓰거나, 일기를 쓰고, 동시도 써 보면서 글쓰기의 기초를 다져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직구에 해당한다. 자라면서 다양한 분야의 글을 읽고 실제로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변화구를 익히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변화구를 가르치면 어깨를 상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을 논술에만 맞춰 놓으면 아이들의 생각을 상하게 된다. '논술'을 잘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논설문' 연습만 시켜서는 안 된다. 입시에 편승해 아이들에게 정답 쓰기만을 가르치면서 뭔가 대단한 비법을 알려 주는 것처럼 선전을 하는 논술학원 역시 보낼 필요가 없다.
이쯤에서 다시 왕안석 이야기로 돌아간다. 왕안석의 독후감은 논설문 연습을 통해서 지어진 것이 아니다. 시도 짓고 산문도 써 보면서 동시에 다방면의 좋은 책들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내 자녀는 왕안석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입시에 목을 매달고 내일 당장 어떻게 되는 것처럼 조급하게 굴다가는 결실을 보기도 전에 꺾여 버릴 것이다.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은 따로 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余曰: "噫噫! 子坐. 吾語子. 夫文章何物? 學識之積於中, 而文章之發於外也. 猶膏梁之飽於腸, 而光澤發於膚革也. 猶酒醪之灌於肚, 而紅潮發於顔面也, 惡可以襲而取之乎? 養心以和中之德, 繕性以孝友之行, 敬以持之, 誠以貫之, 庸而不變. 勉勉望道, 以四書居吾之身, 以六經廣吾之識, 以諸史達古今之變, 禮樂刑政之具, 典章法度之故, 森羅胸次之中. 而與物相遇, 與事相値, 與是非相觸, 與利害相形, 卽吾之所蓄積壹鬱於中者, 洋溢動盪, 思欲一出於世, 爲天下萬世之觀, 而其勢有弗能以遏之, 則我不得不一吐其所欲出, 而人之見之者相謂曰: "文章." 斯之謂文章."
내가 말했다. "아아, 자네는 앉게나. 내 이야기하겠네. 문장이란 무엇인가? 학식이 속에 쌓여 그 모양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네. 이는 기름진 음식이 창자에 차면 광택이 피부에 드러나고, 술이 배에 들어가면 얼굴에 홍조가 도는 것과 같은 것이니 어찌 갑자기 얻을 수 있겠는가.
치우치지 않는 덕으로 마음을 기르고, 효도와 우애의 행실로 성품을 닦아서 공경으로 지니고 성실로 일관하며, 항상 변하지 않아야 하네. 이처럼 힘써 도(道)를 바라면서 사서(四書, 논어·맹자·대학·중용)로 나를 다스리고, 육경(六經, 시·서·예·악·주역·춘추)으로 지식을 넓히며, 여러 역사서를 읽어 옛날과 지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과거의 문화와 정치제도, 법도 등의 자취를 가슴속에 쌓아 놓아야 하네.
이후 어떤 일을 만나 시비와 부딪치거나 이해관계를 드러내야 할 경우가 생기면 마음속에 한결같이 가득 쌓였던 것이 파도처럼 넘치게 되지. 이처럼 쌓여 있던 생각을 세상에 한번 내놓아 세상의 장관(壯觀)으로 남겨 보고 싶은 그 욕구를 막을 수 없게 되면 하고 싶은 말을 반드시 내놓게 되지.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문장'이라고 한다네. 이런 것을 문장이라 하는 것이지."
정약용(丁若鏞),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권 17, 「위이인영증언(爲李仁榮贈言)」
위의 글은 문장가를 꿈꾸는 이인영(李仁榮)이라는 젊은이에게 정약용이 해 준 말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동안 독서를 하면서 지식과 지혜를 쌓아 두어야 한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으면서 자신의 주관을 세워 나간다. 이후 특정한 주제를 만나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의욕이 넘쳐흐를 때 글을 쓴다. 이렇게 해서 쓰여진 글이 좋은 글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게 된다. 이것이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이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는 결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정약용의 말처럼 '글이라는 것은 오랜 시간 쌓인 지식과 지혜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므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 답안지는 개성이 없다고 한다. 입시에서 논술 답안지를 채점했던 어떤 사람의 말이다. 학원에서 똑같은 패턴만 가르쳐서 답안지가 천편일률적이라 한다. 채점관의 눈에 들기 위해 되도록 어려운 말을 인용하면서 지식을 드러내기에 힘쓴다고 한다. 이것도 학생이 교과 공부를 하듯 상황에 맞게 암기를 한 것이므로 깊이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수험생은 교과 과목을 공부하느라 글 짓는 시간을 가질 수 없었고, 소재 확보를 위한 책 읽기 시간도 부족하며, 아직 학교에는 '논술'이 정규 과목으로 채택되지도 않았다. 수능시험을 보고 난 후 대학 전형 날짜에 맞춰서 시험 준비를 한다. 이 기간이 2개월 정도이다. 이토록 짧은 기간에 기출문제를 보면서 경향을 파악하고 학원 강사들의 첨삭지도에 의존해서 논술에 대비하는 것이 현실이다. 개성을 중시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획일화를 시켜 놓았다.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자신의 생각을 다양한 방법과 세련된 표현으로 드러내는 것이 글이다. 글의 종류가 무엇이든 읽는 사람의 감정과 이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글이다. 대학과 논술학원에서 제시하는 답안지만 좋은 글이 아니다. 1년에 수천 명의 소동파(소동파는 뛰어난 작가이다. 소동파를 폄하하는 의도로 쓰지 않았다.)를 만들어 내면서 동시에 수천 명의 왕안석을 죽이는 일에 동참하는 어리석은 일은 이제 그만두자. 내 자녀는 아직 초등학생일 뿐이다. 이런 비상식적인 논술 열풍은 반드시 잦아들게 되어 있다.
각주
1왕안석(王安石, 1017~1086): 자 개보(介甫). 호 반산(半山). 송(宋)나라 임천(臨川) 사람. 강직한 성품으로 여러 원로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혁정치를 골자로 한 신법(新法)을 시행하고자 했다. 이 때문에 정치계가 신법당(新法黨)과 구법당(舊法黨)으로 갈려 당쟁(黨爭)이 일어났다. 재상 자리에 있던 도중 병으로 죽었으므로 더 이상 신법이 시행되지 못했다. 문장과 시에 뛰어났으며,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