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 지진
깨끗이 정돈된 항구 근처에 있는 나지막한 3층 건물의 식당가를 찾았다. 앞쪽에는 고베항의 잔잔한 물결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가 가까운 곳에 10여 층 정도 되는 고베 타워가 선명하게 보인다. 지진 진원지에 지진의 참상을 잊지 않기 위해 세운 상징적인 탑이란다. 근처에는 15층의 오리엔탈 호텔을 비롯하여 20층이 넘는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지진 후에 새로 생긴 도시라고 안내했다. 타워 앞에는 주변을 잘 설명해 놓은 메모리얼파크가 있다.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1995년 1월 17일 고베 지진 당시 폐허가 된 현장을 축소해 보존한 시설들이 있다. 추모비와 사건 당시의 기록들을 전시해 놓은 곳도 있다. ‘한신 아와지 대지진’ 기념으로 재해 방지를 위해 길게 설명한 센터도 보았다. 여기에는 당시 지진 규모를 실지로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과 지진으로 폐허가 된 고베 시내를 새로 만든 축소 공간도 해 놓았다. 지진 발생 당시 상황과 복구 과정 등을 화면으로 20분간 상영하는 홀도 있다. 설명이 전부 일본어라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지금은 여러 나라말로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1월 새벽에 일어난 지진은 공식 명칭이 ‘한신 아와지 대진재’로 불렀다. 이 지진은 1945년 이후 일본 지진 사상 두 번째로 강력한 강진이었다고 설명했다. 사망자가 6,300명이 넘었고 수만 명의 부상과 수십만 가구의 이재민과 재산피해도 세계 지진 사상 최고의 피해액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화폐로 약 154조 원이나 되었다고 한다. 대지진 전날 몇 번의 약한 지진이 있었으나 경험이 없어 예측 못해 큰 피해를 입었다며 후회하고 있었다. 일본도 늦장 대응이 문제가 되기도 했으나 이들은 과거를 생트집 잡는 후진국 같은 국민은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 가를 판단하는 슬기를 발휘하는 국민으로 보였다. 이런 것은 어느 나라 국민이나 본받을 만하다.
수천 명의 국민이 죽고 1,400억 달러의 피해를 입었어도, 천황이나 총리는 그때 몇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떠드는 국회의원이나 데모하는 국민도 없었다고 한다. 지진이 많은 나라지만 오오사카와 고베는 400년간 지진이 없었던 지방이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허술하게 나무로 지은 집이 대부분이었다. 80% 가까이가 목조 주택이어서 큰 피해를 보았다는 설명이다. 더 큰 피해를 보게 된 것은 나무로 된 집에 무거운 기왓장으로 지붕을 덮은 이유라는 설명이 있다.
목재는 특성상 탄력이 좋고 유연하여 벽돌집보다는 안전하다는 것이 정설이었기 때문이다. 고베 지방은 중소기업이 운영하는 소규모의 공장이 많이 있는데 이들 공장의 열악한 시설도 지진의 피해를 많이 입은 원인이 되었다. 수습 후 다시 문을 연 초중고등학교에는 낫 익은 친구들의 얼굴을 많이 볼 수가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리히터 규모 7.3으로 진원지 깊이가 지하 15km로 낮은 데다 갯벌을 메워 만든 고베항 바로 물밑이라 피해가 더 컸다는 이야기다. 진앙지는 아와지섬 고베항이다. 다행인 것은 지진이 새벽에 발생하여 사망자가 적었다는 설명이다.
고베항은 원래 모두가 넓은 벌이었다. 이곳을 매립하여 도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갯벌에서 지진이 터지니 그대로 주저앉아 매몰되면서 많은 희생자가 생긴 것이다. 중심을 지나는 한신 고속도로는 1969년에 완공된 도로로 지진이 났을 때 완전히 엿가락 꼬이듯이 꽈배기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후 복구해서 그 자리에 고가도로를 만들었다. 시내를 구경하다가 다리 밑에 가서 지진으로 피해를 보았다는 현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깨끗하지만, 건설 당시에는 내진 설계가 강화되기 전이라 철도의 피해가 컸다고 한다. 원상으로 복구하는데도 자원봉사자를 포함해서 1백여만 명이 수년간 공사에 참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고베에는 한국 동포가 팔 만여 명이 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때 우리 동포들도 많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백여 명이 사망하고 천여 명이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진 발생 후 여러 나라가 구호와 지원을 했다.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위로 전화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지진으로 고베항이 무너져 한동안 부산항이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고 안내인이 말했다.
현장을 모두 둘러보고 3층 식당에서 식사 하면서 역동치는 고베항을 보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도 경주를 비롯한 여러 곳이 지진으로 피해를 보고 있음을 볼 때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명심하고 앞으로의 대처방법을 심도 있게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걱정도 많이 했다.
일본에서 배울 점도 많은 것 같다. 수없이 많이 그리고 자주 발생하는 천재지변도 대처하기에 따라서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재난 후, 복구도 단순한 문리적 복구를 넘어 주거개선과 지역 경제회복 상실감 치유까지 폭넓게 실행되었다고 설명했다. 주민참여형 재건과 장기적 지역경제 전략도 마련했다고 한다. 연약한 기반시설이 원인임을 알고 설계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중요성도 강조되었다, 고베 지진은 우리나라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26년 9월 22일
윤백중 약력
경기도 연천 출생
성균관대학교 문학사, 연세대학교 경제학석사, 호서대학교 경영학 박사
백두산문학 수필 부문 소설부문 등단 한국생활문학 시 부문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이사
성동 문학회 이사 한국생활문학회 작품상 수상 한국문학생활회 고문 문학상 ‘대상’수상
짚신문학회 부회장 ‘공로상’수상 25회 짚신문학상수상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제 34회‘수필문학상’수상
전직 교사 수필집 등 저서 1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