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름 으슥한 어둠이 내리면 풀 먹이던 소를 몰았다 논에서 피를 뽑고 돌아오신 어머니는 우물가에서 하얀 쌀뜨물을 걸러내고 정지문 앞 시렁 소쿠리에 담겨진 찐 보릿쌀 위에 한 주먹 쌀을 얹었다 아궁이 속에 밀어 넣은 홧덩어리 가마솥뚜껑 사이로 부글부글 한숨이 넘쳤다 노름판을 기웃거린 아부지를 찾아 간 막내가 혼자 돌아오며 끄는 신발 소리가 들렸다
스그륵, 솥뚜껑 미는 소리에 가난보다 더한 어머니 설움은 묻혔고 앞 마당에 밥 냄새가 퍼졌다 쌀밥 한 그릇을 담아 뽀갱이를 덮고 이불 속에 넣었다 이문구의 분꽃이 피는 저녁 꼬부랑 할매는 오간데 없고 이불 속에 넣어 둔 밥이 식도록 아부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첫댓글 까만 분꽃씨에 들어있는 하얀분가루를 얼굴에 바르던 추억이 떠오르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