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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남대로 밀양 옛길 원문보기 글쓴이: 만광
벚꽃과 함께하는 ♣ 제7회 밀양시장배 전국파크골프대회
(자료 : 밀양신문) * 선거 결과 안병훈 후보 당선 !
(사진 : 미리미패- 3월 10일 할머니들의 합창)
밀양 예총 지회장 선거가 지난 27일 밀양 도서관 3층에서 6시에 열렸습니다. 이번 선거에는 총 3명의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우리 솔뫼산악회 박영호 고문님이 4년간 밀양 예총을 이끌 수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밀양 예총은 국악, 문인, 미술, 연극, 음악, 사진작가, 무용, 연예예술 등 8개 단체인데 임기는 4년입니다. 밀양 예술 발전을 한층 기대해 봅니다. 취임식은 3월 13일(수) 오후 5시 한솔 뷔페입니다. (자료 : 밀양솔뫼산악회)
♣ " 밀양의 3대 신비를 찾아라 ! " 2013 토요문화학교 운영사업 이야기가 있는 마을! 상상하는 아이들 ! 2013년 3월~12월 까지 , 매주 토요일 오후 2~5시 , 초등 4학년~6학년 30명 장르: 전통문화 (인문,연극,음악,무용) 운영: 사회문화예술교육센터 춤 공간-나눔 (010-3883-2939)
(사진 : 영남대로 밀양 옛길-목우회 작품전)
♣ 영남대로 옛길 (밀양) 답사 안내 4 차례에 걸쳐 하되 황산도중 황산잔도(1) 작천잔도에서 무흘고개 구간(2) 무흘고개에서 귀창나루 구간(3) 귀창나루에서 유천나루 구간(4)으로 나누어 격주간 일요일에 답사하기로 협의하였다. 황산잔도 구간 답사는 3월 17일 오전 9시 밀양시 삼문동 화랑예식장 앞에서 모여 출발하기로 하였다. 당일 물금역에서부터 황산잔도까지 답사하고 이어 오봉산에 있는 최치원 선생의 유적지인 臨景臺를 둘러 보기로 했다. 비교적 짧은 거리이지만 양산시에서 먼저 영남대로중 황산잔도 부분을 잘 정비하여 놓았기에 이를 살펴 보아 참조하기로 한 것이다. 당일 짧은 거리인 만큼 별다른 준비물은 없고 음료수만 준비하면 될 것이다. - 영남대로복원 범시민추진위원회-
영남대로 밀양 옛길의 재발견(1)- 밀양신문 지난 7일 박순문 변호사, 장병수 박사와 밀양 옛길 탐방길에 올랐다. 옛길, 생각만 해도 먼 곳으로부터 잔잔한 그리움이 밀려든다. 오전 7시 시내서 출발해 작원잔도에서 걷기로 한다. 벼슬길이요 생계길이자 때론 국방의 요새지이기도 했던 밀양 영남대로를 오롯이 걸어 볼 계획이다. 박순문 변호사께서 준비한 옛 지도들이 길잡이가 되어 직접 설명을 듣게 된다. 작원나루에서 강물 위를 걷듯 자전거길 데크를 나아가는데 천태산 아침 푸른 공기가 일행을 둘러싼다. 험준한 산세만큼 경관이 수려한 이곳. 여러 갈래의 강물을 모아 어머니 치마폭같이 깊고도 넓은 삼랑의 낙동강. 삼랑진이 다시금 다가온다.
밀양과 양산의 경계선 바로 안쪽에 작원잔도가 아슬아슬하게 앉아 있다. 크고 작은 돌들이 서로 이고 괴고 받쳐져 절묘하게 짜인 잔도는 풀과 꽃, 이끼들이 천연스레 조화를 이루어 고귀한 예술작품을 보고 있는 듯하다. 모진 세월 건너 오늘에서야 너를 만나보는구나. 숨이라도 쉬는 걸까.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온기가 전해질 것도 같다.
작원잔도
절벽바위를 깎은 자리에 돌을 다듬어 축대를 세우고 평평한 돌들을 깔고 달아낸 선반 같은 길이다. 도저히 길이 지나갈 것 같지 않은 곳에 길을 낸 걸 봐서는 작원잔도는 대로 역할보다 왜적을 방어하는 국방상의 역할이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배를 이용한다면 잔도 위를 걸어볼 수 있다고 한다. 옆으로 난 벼랑바위에도 반질반질하게 닳아 희미해진 길이 나 있고 난간을 세웠음직한 네 개의 홈도 눈에 띈다. 영남대로 여행자들은 작원잔도 구간을 지나기 위해 바로 위를 지나는 철도를 이용했다. 그러면서 철길 난간에서 작원잔도를 내려다보며 이런 길이 있음을 모르고 지났을 테지. 아뿔싸, 표지판이 강물을 향해 세워져 있고, 잔도가 난간으로 가려져 있어 그런가. 많은 사람이 무관심하게 그냥 지나쳐 버린다. 영남대로 3대 잔도로 문경의 관갑천잔도나 양산의 황산잔도가 그렇듯이 작원잔도에 대한 관심이 절실해 보인다.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문화재급 우리의 유산이 훼손염려가 없도록 조치도 물론 필요하다.
숲속에 희미하게 남은 길이라도 있나 살피며 철로와 낙동강을 끼고 걸어나온다. 옛길은 대부분 철도에 묻혀버린 상태다. 철도 축대벽의 넓은 공간을 이용해 옛길에 얽힌 이야기와 작원관의 내력을 그림으로 소개한다면 많은 홍보와 유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장병수 박사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최초의 작원관 자리에는 철도가 지나고 숲이 우거져 있다. 숙박할 수 있는 역원을 담당했던 작원관은 영남대로 상의 2대 관문 중 하나로 한양길에 꼭 지나야 했던 요충지다. 1995년 지금 자리에 새롭게 복원되었다.
행곡천과 우곡천을 지나면서 설명을 듣고 처자교 앞에 섰다. 처자교에 전해오는 스님과 처자의 사랑이야기. 스님이 한 처자를 연모하게 되는데 이들은 사랑을 걸고 처자는 우곡천에 스님은 행곡천에 다리 놓기 시합을 한다. 스님이 교만에 빠져있는 사이 처자가 다리를 완성하자, 스님은 부끄러운 나머지 어디론가 떠나버렸고 처자도 그 뒤를 따랐다는 애틋한 이야기다.
처자교
쌍홍예인 처자교는 영남대로 상의 유일한 돌다리로 스님과 마을주민이 힘을 모아 세운 다리인 만큼 뜻이 깊을 뿐 아니라 당시의 건축과 토목양식을 잘 알 수 있는 역사적 문화재적 가치가 큰 귀한 유물이다. 삼랑진청년회가 요청해 발굴되었으나 지금은 옛 우곡천 하류에 흙으로 덮어 보존돼 있다. 머지않아 스님과 처자의 사랑이 쌍무지개로 피어 세상으로 걸어나오리라.
도로로 올라와 작원나루와 처자교 그리고 무흘역을 잇는 직선거리를 가늠해본다. 박 변호사께서는 서두르지 않지만 집중해서 부지런히 정말 부지런히 걸으신다. 그러면서 지역 풍광을 두루 살피신다. 한양 960리길, 선인들의 옛길 걷기가 그러지 않았을까. 변호사님이 딱 한군데서 잠시 한눈을 파셨으니. 삼랑진역 급수탑의 건축미와 내력을 설명하신 후 앞에 핀 고구마꽃들을 보시고는 정말 귀한 꽃이라며 처음으로 사진을 찍으시는데 그 열중하시는 모습도 참 좋아 보였다. 기차를 타고 봐오던 미전천 길은 풍광이 좋아 콧노래가 절로 나는 길이다. 길을 걸으며 변호사께서 풀어놓으시는 초동의 강동구와 삼랑진의 오우정 민씨 5형제 이야기에 옛길은 그만 짧아만 간다. 옛날 정보 통신 전달 역할을 하던 대천마을 무흘역에 닿았다. 驛舍가 있었던 흔적으로 주춧돌들과 기와파편 그릇 등이 발굴되었고 지금은 천막 천으로 덮어놓은 상태다.
발굴현장 뒷산 자락에는 말에게 물을 먹이던 역새미가 있다. 수량이 풍부했다고 전하는데 석축과 웅덩이 모양의 물이 고였던 흔적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무흘고개를 넘기 전 대천마을 찰방공적비를 찾아 '행찰방강봉휴선정비'에 관한 설명을 듣는다. 무흘역 쪽에서 회관 앞으로 옮겼는데, 하나 남은 비마저 방치된 상태다. 무흘역에서 무흘고개에 이르는 길은 묵정밭에 망초꽃이 하얗게 흩어져 있기도 하고 헤쳐나가야 하는 길이다. "길 한번 뚫어 봅시다. 농사지으니 길이 안 있겠습니까?" 박 변호사께서는 많은 고증을 통해 최대한 정확하게 들려주시려 한다. 근엄하시기만 해서 어려우면 어떡하지, 아침에 나오며 혼자서 긴장되던 일이라니. 풀이 무성해 뭔가 밟히거나 물것만 같아 조마조마했는데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선조는 무리하게 길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야트막한 무흘고개를 넘어서자 이번에는 숲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나 싶게 녹음이 짙다. 화성동으로 내려가는 좌측에 폐쇄된 무흘산터널 두 개가 숨은 듯 보인다. 일본인이 만든 이런 터널이 밀양에 몇 군데 있는데 이는 우리의 귀한 자산으로 관심을 둘 때라고 본다. 터널 위로 봉오재만댕이는 옛날 봉홧불을 이용해 위급상황을 알린 곳으로 보이는데 지금도 긴 석축이 남아 있다고 한다. 삼상교 교량 아래서 잠시 쉬기로 한다. 오늘은 가곡동까지 걷게 되겠지만, 하루 탐방으로는 여기까지가 적당할 거라고 하신다. 삼랑진을 흐르는 드넓은 낙동강은 말할 것도 없고 풍부한 자연과 문화유산에 자못 놀랍다. 미전나루터. 주모의 푸근한 웃음소리에, 평상에 올라 괴나리봇짐 갓끈을 풀고 시름을 잊어보려는 나그네의 발자취를 한번 그려본다. 선인의 숨결이 전해지는 길, 아름다운 옛길 위에서.
황해령(수필가) (자료 : 영남대로 밀양 옛길)
♣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밝은 밀양 건설을 위한 나눔 장학회 회원 각자가 월 1만원씩 출연하는 장학기금으로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을 찾아내 부모님 마음으로 도와 우리 지역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입회: 기존 회원을 통한 입회원서 제출이나 다음카페 나눔장학회(밀양 http:/cafe.daum.net/nanum2000) 방문. 문의:010-3584-1323 ,010-7788-8136 계좌 : 농협 356-0275-9028-73 (윤문학) 2000.7.11~,현재 매년 중학생 14명(1인당 300,000원) 고등학생 13명 (1인당 1,000,000원)지급. * 투명하고 공평한 운영으로 칭송이 많아 시민사회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산토끼 노래비 산토끼 노래는 1928년 일제 강점기에 "이일래"선생님께서 창녕 이방공립보통학교(현 이방초등학교)에 재직시 학교 뒷산(고장산)에 올라 산토끼가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우리민족도 하루 빨리 해방이 되어 저 산토끼 처름 자유롭게 살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에서 작곡하신 애국동요 임. (눈이 온 후 다시 찿은 산토끼 노래비)
-일제 강점기와 해방과 6.25전쟁등 혼란으로 한동안 작곡자도 모른체 전해오다가 1975년에 "이일래 조선동요 작곡집"그 영인본을 발견하면서 부터 산토끼 노래의 주인이 밝혀저 빛을 보게되었다.
-이일래선생님의 작곡집 서문에서 "나의 젊음의 정열은 오직 어린이를 위해 무엇을 봉사할 것이냐" 하는 생각뿐이였다. 산토끼 노래가 귀엽게 예쁘게 이 강산에 널리 펴저나가면 그것으로 만족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이 노래의 의미와 작곡정신을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촬영장소 :창녕군 이방면 이방초등학교에서 / 촬영일시 : 2013년 1월 10일) (자료 : 송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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