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 아리랑 2
고향가는 설레임이 아주 가느다란 수맥처럼 내 몸줄기를 타고 흘렀는지
밤새 뒷창락 개울가 소리가 잠을 가라앉히지 않았다.
꿈결인 듯 눈을 뜨니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 비님이 오신다.
지난 번 일박 이일의 짧은 고향 방문처럼 이번에도 주어진 시간이 같다.
같은 시간을 쥐고 떠나건만 그때와 같지 않음은
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땐 비가 내리지 않았고 지금은 비가 내린다는 것도 같지 않다.
아마도 우중에 만나는 내 고향은 또 다른 색깔을 보여 줄 모양이야.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급한 예측이었다.
고향 가는 고속도로는 민망한 교통대란.
주절주절 내리는 비는 더딘 통행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고,
여름휴가를 떠나는 아이들의 속을 바싹바싹 태우고 있었다.
우회도로를 선택하고 잠깐 시원한 길을 달리나 싶으면
어김없이 늘어진 자동차 뒤꽁무니와 마주쳐야했다.
다시 또 서투른 감으로 방향을 가늠하여 핸들을 꺽어 돌아가면
이번엔 맨 처음 만났던 고속도로로 들어간다.
이 짓거리를 두어 번 하니 시간만 가고 진행은 제자리이다.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드리고, 조급증에 발을 그냥 두지 못하다가 거울을 힐끗 보니
미간에 오만 인상을 쓰고 있는 여자가 나를 보고 찡그린다. 아주 불쾌하다는 듯.
순간, 내가 가는 길이 고향 길임을 깨달았다.
인상을 쓰면 얼굴에, 마음결에 흉한 주름이 잡힌다는 것을 알면서, 참으로 구제불능 건망증이다.
많이 보고 빨리 보고 그 다음 것까지 미리 봐야하는 도시 생활이 몸에 배인 탓에
늘어난 건 조급증이고 줄어 든 건 참을성뿐인 내 모습을 정확히 보여주는 그녀에게,
살짝 미소 지어보이자 금세 거울 안에 여자가 예뻐 보인다.
나는 비 내리는 고속도로를 바라보았다.
성숙한 여인은 님 보러 가는 날에 비가 내리면 더욱 마음 설레고, 차분해진다지.....
‘그래 고향 가는 길인데, 멋진 소백산님을 만나러 가는데 조바심 내지 말자’ 그랬다.
길은 막힐 때 막히더라도, 반드시 뚫릴 때가 있는 법.
중앙 고속도로를 들어서자 드디어 길이 열린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드문드문 하늘 틈새로 구름 커튼 뒤에 대기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알아 달라는 듯 파란 얼굴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더니
단양이 가까워오자 햇살까지 잡아끌고 후다닥 튀어 나온다.
어! 비가 그쳤네. 라고 말을 뱉는 그 순간에
하늘을 완전히 장악해버린 벽공(碧空)이 거짓말처럼 펼쳐졌다.
누군가가 쓰는 김에 화끈하게 인심 쓸 작정인 양 확! 던져 준 에메랄드빛 하늘은,
넘치는 에너지로 혼신의 힘을 다 해 열창하는 가수처럼 하늘 무대를 모조리 장악해버렸다.
그야말로 쭈욱! 하고 금을 그으면 쭈룩! 하고 푸른 물이 쏟아질 것 같은 멋진 그를 향해
으아아!! 열광의 아우성을 내질러대며 환호했다. 가슴이 들썩거리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단양IC로 핸들을 꺽으라 했지?
터널을 피해 죽령고갯길로 돌아오라고 일러준 말이 기억났다.
굽이굽이 휘돌아 감은 옛 도로..그 역시 얼마 만에 만나보는 옛길인가.
기껏해야 일이년 사이에 풍기를 오가는 이들이 벌써 이 길을 다 잊었단 말인가.
제비뽑기로 당첨된 이들만 통행을 허락받은 것처럼 차량이 적고 한적하다.
적막함이 물처럼 고여 있는 길 양 켠에 소백산 푸른 속살이 짙은 풀 내를 뿜어대고 있었다.
중턱에 차를 세우고 발을 디디니, 산허리를 휘감고 돌아오던 바람이 나를 보자 후다닥 안아준다.
오랜만에 사람을 품어본 듯 그의 포옹이 깊고도 강렬하다.
기꺼이 그에게 몸을 맡기니 가슴 밑바닥 깊이 깔려있던 도시의 먼지가 재채기처럼 터져 나온다.
상쾌했다. 산을 올려다본다. 산을 내려다본다. 서로의 어깨를 감싸고 굽이굽이 물결치는
그들을 무량한 마음 되어 바라보는데
산이 묻는다
내가 누구랑 닮았지?
내가 대답한다
사랑하는 님을 닮았네요.
산이
혀를 차며 하는 말
나는 네게
상처를 주지 않아.
뭔가 대꾸를 하려다 입을 다물고 차에 올라탔다.
바싹 긴장한 가장이 핸들을 구부릴 때마다 아슬아슬한 곡예를 부리듯
서리서리 산자락이 펼쳐지던 옛길.
시간은 더디 흘렀지만 축복처럼 사계절 멋진 풍경을 선물로 받았던 길.
자연은 임자가 있지도 않고 써도 다함이 없다더니
욕심에 흐려진 눈을 단번에 벗겨내는 짙푸른 초록길.
노모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전갈을 받고 가는 길이 아니라면 옛길로 돌아가 볼 일이다.
그는 돌아서 가느라 소비한 당신의 노고보다 수십 배 찬란한 환희를 선물로 줄 것이다.
제대로 아리랑 고개를 넘듯 굽이굽이 돌아서 죽령 고개에 도착했다.
해발696미터 죽령 휴게소엔 구름도 쉬고 있었다.
무거운 번뇌를 다 털어 버린 양, 물기를 죄다 뿌리고
가벼운 몸으로 넘어오던 솜사탕구름을
연화봉이 낚아챘는가.
그의 몸통을 휘감고 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촘촘히 머리 맞대고
솟구쳐 있는 짙푸른 나무들.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 그들을 밟고 올라서서
푸른 창공을 향해 힘차게 돋음질하면
팽그르르 팅겨져 끝없이 올라갈 것만 같다.
그 때, 하늘 저편에서 흰색 체육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단발머리 소녀가 한쪽 팔을 번쩍 들며 나타난다.
덤블링을 준비하기 위해 콩,콩,콩 초록그물을 밟기 시작하자
연화봉을 떠받치고 있는 수천그루의 나무들이 긴장하며
아이의 발이 빠지지 않도록 잎새를 오무려준다.
천천히, 제자리 뛰기를 하던 아이가 조금씩 뛰어 오르기 시작하자
슬그머니 내려다보던 구름 아가씨. 걱정이 되시나, 팔을 조금 벌린다
드디어 창공 속으로 솟구쳐 오르는 아이. 새처럼 날개 짓 한다.
“안녕! 구름 아가씨”
대꾸할 새도 없이 쑤욱 내려갔다가
다시 반동의 힘을 받아 튕겨지는 소녀가 또 다시 허공을 가른다.
“연화봉님이 오늘은 좀 오래 머물러 달라시네요”
온 몸을 내던지며 덤블링하는 소녀의 얼굴에 두려움이 없다.
어떻게 저리도 푸른 신록과
어떻게 저리도 파란 하늘과
어떻게 저리도 하얀 구름이 소녀를 두렵게 만들겠는가!
아름다운 상상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내 고향 산천이 너도 이리 와서 새처럼 날아 보라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절대 다치지 않을 거야, 하면서 내 귀를 간지럽히듯 속삭인다.
매번 올 때마다 나를 감동 시키는 소백산님의 배려가 감사해
오래도록 그들의 놀이를 지켜 보며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도솔봉, 연화봉, 국만봉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내 고향 풍기를 품고 있단다.
이리도 아름다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거늘 어찌하여 그땐 몰랐던지,
무얼 배우려고 떠나서 무얼 배우고 왔느냐고 물으면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사전을 뒤져본들 정답이 나오겠는가. 아직도 철이 덜 들어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겠지.
볼 것도 많고 갈 곳도 많다는데, 다 보고 갈 순 없겠지만 부지런히 보고가야지.
나를 기다리는 분들께 시간을 미루고 내친 김에 희방폭포와 희방사를 만나러간다.
기억을 더듬으며 손가락을 헤아리니 폭포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무려 25년 전이다.
몇 번이나 보았으니 머릿속에 남아 있어 구태여 발길을
멈추고 찾지 않았다.
낡은 앨범을 뒤져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그를 배경으로
폼을 잡고 찍은 사진 한 장 정도는 보관하고 있을 만큼
풍기의 빼 놓을 수 없는 명물이지만, 25년이라....
건 좀 너무했네 싶었다.
스무살 때만 하더라도 여름방학이 되어 고향에 오면
친구들과 매일 가다시피 했던 희방사 계곡.
흐르는 계곡에 발을 담그고 깨끗한 돌멩이 씻어
고기 굽고 우정 굽던 그 곳.
나는 세월의 때를 입고 돌아왔는데
너는 무엇을 입고 있을까?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 물 절로 산수 사이에 나도 절로
그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나만 늙었으리오, 너도 절로 변했겠지 하는데,
폭포 소리가 마중을 나왔다.
손 내밀어 반길 새도 없이 그의 발꿈치가 보이고
산턱에 걸터앉은 서릿발 같은 그의 몸통이 보인다.
생각하면 할수록 야속하기 그지없는 내님아,
단 한순간도 옷깃을 잡고 멈춰 세울 수 없었던 세월님아.
흐르기야 너도 흐르고 나도 흘렀건만 어쩌자고 내 마음만 멈추어 세워놓고 희롱을 하는가.
천년 녹수를 안고 몇 천 구비를 돌고 돌아 이곳에 우뚝 선 희방폭포야,
도대체 고단하지도 않는가 늙지도 않았구나, 참으로 속절없이 썽썽하구나.
머리맡에 희방사를 이고, 옆구리에 우거진 잡목을 끼고 앉아 계곡을 진동시키는
소리를 냅따 질러대며,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웅장함에 나그네들은 한없이 작아진다.
본 적 없는 박연폭포 앞에서 그 옛날 황진이는 멋들어진 시조지어 낭랑하게 읊었을 터,
그 이름 빌려 쓰고 있는 나는 시조는 커녕 넋을 빼고 바라만 보고 있으니
이름을 반납해야 하는 건 아닌지...
우렁찬 폭포 소리를 비집고 핸드폰이 울려댄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걸 보려면 어떻게 해야지?”
생뚱맞은 노시인의 물음에
“남들하고 좀 다르게 보면 되죠~~”잘난 척 하고 답을 뱉으니
........ 말씀이 없으시다.
“눈을 감고 봐아~.”
참나, 진작 그렇게 말씀하시지.
눈을 감아본다.
놀랍게도 소리가 보이고 풍경이 들리는 것도 같다.
어쩌면 좋은 시가 나와 줄지도 모를 일이다.
연화봉이 키웠다는 폭포의 소리를 뚫고 희방사를 향해 올라갔다.
목에 걸린 비녀를 뽑아줘서 살아 난 호랑이가, 두운조사에게 은혜를 갚으려고
경주호장의 무남독녀를 물어다 주었다지. 그 처자를 돌려주자 다시 은혜갚음으로
희방사 절을 지어 두운조사에게 바쳤다는 전설을 품고 앉은 천년 사찰!
새로 지은 듯 단청의 색감이 너무 선명해 마치 신축 건물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이곳이 천이백년 역사를 갖고 있는 희방사가 맞는지 의심스러워 물어보니
너무 낡아 일부를 복원하고 증축했단다.
하기야 이 풍진 세월을 온전히 견딜 수 있는 것이 자연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부서지면 고치고 복원해서라도 후손에게 물려줘야지,
하면서도 까마득한 그 시간을 온전히 버티고 있는 석등에게만 자꾸 눈길이 간다.
오래되어 더욱 애틋한 석등을 쓰다듬고 내려오다가 불현 듯
요즘 선덕여왕 이라는 드라마가 상한가를 올리고 있다는데 전화라도 해서
그녀가 집권했을 때 희방사가 지어졌음을 좀 알려달라고 한다면
그 작가가 뭐라고 할지가 궁금해진다.
많이도 필요 없고, 단 몇 문장이면 될텐데..
선덕여왕에게 신하들이 몰려가 간청한다.
“여왕마마~ 지금 비담이 역적을 도모하여
왕권을 쟁탈하려고 하니 잠시 피신하셔야 하옵니다!!”
“내가 어디로 간단 말이오! 이곳이 나의 궁인 걸 몰라서 하는 말씀들이오!!”
“경상도 소백산 풍기에 있는 희방사로 잠시 피하셨다가 저들의 난을 평정한 뒤에
모시러 갈 것이오니 제발 그리 하옵소서, 마마!!”
“절대 아니 될 말이오! 내가 궁에서 죽는 거나 희방사에서 죽는 거나 다를 게 뭐가 있소!
가려거든 공들이나 희방사에 가서 목숨을 구제받으시오!!”
차라리 드라마 작가를 해 볼까? 그게 소설 보다야 쉽지 않을까?
폭포를 뒤로 하고 내려오면서 혼자 생각에 빠져 있는데,
“떼끼놈!! 쉽게 얻어서 오래 가는 게 어딨어!!”
버럭, 고함을 지르신다.
남원천에 물이 넘쳐난다.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놀라워 차를 멈추었다.
시대에 맞게 정보가 발달되고 PR시대를 맞이하여 내 고향 명품, 인삼 축제를 벌이는 곳.
작년 가을쯤이던가. 거대한 인삼 시장이 펼쳐지고 있었던 그곳은 흡사 적벽대전을 앞 둔
조조의 군대막사 같은 천막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거리는 만원이었고
덩달아 얼쑤! 풍기 바닥이 둥실거렸다.
남원천은 이제 풍기의 거대한 광장이요,
아름다운 무대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여전히 자맥질 할 수 있는
맑은 시냇물까지 살아 있으니
소백산님의 은혜를
우리는 뭘로 갚는다 말인가!
자연에게 숨쉬기를 허용하고,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려는 행정
기관에게 이건 칭찬할 만하다 느낄 때,
여름 햇살이 남원천 흐르는 물속으로 저도 따라 들어가,
멱감고 있는 아이들 벗은 등줄기를 쓰다듬고 있었다.
단발머리 소녀를 달구었던 먼 옛날 8월의 여름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나는 몰랐다.
고향 떠나기 전에도 몰랐고 떠난 지 이십오 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알지 못했다.
창피하지만 우리 고향 풍기에 광복단 기념관이 있다는 것도 몰랐으며,
대한광복단의 효시가 풍기라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어줍잖은 목소리로 풍기 아리랑을 불렀더니 그 어줍잖은 실력이라도 광복단에 대하여
모르는 이가 많으니 불러 달라 해서 그 곳으로 찾아갔다.
어찌 사람을 그리 부끄럽게 하시는가.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책임자 분들이 나와 계셔서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단 한 사람의 방문객임에도 사무국장 김진회님의 광복단 발원 소개는 열정적이였다.
왜 저 분의 핸드폰 컬러링이 애국가인지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어떻게 컬러링이 동해물과 백두산이예요?” 자꾸 웃음이 삐져나오는데
그가 이렇게 대꾸했던 게 기억난다.
“이 자리에 있으면 저절로 그리 됩니다!”
그분의 목소리는 광복단의 정체성과 내 고향에 대한 자부심으로 힘이 넘쳐났다.
“나라 잃은 서러움에 복장이 터져 죽겠구만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몽운동만 하고 있겠니껴!
전국 각지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는 동지들을 생각하믄 피가 거꾸로 솟는데
우리가 이리 가만 있어 되겠니껴!!”
채기중이 울분에 쌓인 목소리를 이빨 사이로 내 뱉으며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등잔불도 그 심정을 안다는 듯 진저리를 치며 흔들렸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고, 일본놈 앞잡이로 간 쓸개 다 빼주고 지
욕심만 채우는 장승원이나 박용하 같은 놈들이 더 괘씸하오! 그놈들을 처단하여
독립운동하는 동지들에게 군자금을 보냅시다.”박상진이 말한다.
“내가 장승원을 죽이겠소이다!” 성질 급한 소백산 풍기의 아들 채기중이 나선다.
“아니오, 그 일이라면 내가 하는게 나을 듯 싶소이다.”
묵묵히 듣고 있던 의병 출신 한훈이 무겁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주변의 의견을 누르고 손짓하여 머리를 모은다.
속닥속닥..
누군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리하면 이러쿵 저러쿵..
거사 일을 잡는 그들의 시린 등짝을 감싸고 있는 낡은 무명옷이
주권 잃은 백성의 한과 서글픔으로 부르르 떨 때마다 저도 따라 들썩거린다.
아~ 어쩌자고, 어쩌자고 을사조약 따위를 체결할 수 있단 말인가!!
못 배우고 가난에 허기진 백성들도 안할 짓을,
어떻게 잘나고 많이 배우고 똑똑하다는 이들이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입구에 깔려 있는 매국노의 얼굴을 밟으며 들어오란다.
바르게 살아야 할 본보기이리라.
나는 몰랐다.
중국 상하이를 갔을 때 제일 먼저 안내 받아 간 곳이 상해임시정부였는데,
그토록 초라한 건물에, 그토록 협소한 면적으로 역사의 현장이 보존되어 있다는 걸 몰랐다.
김구 선생이 집무를 보던 책상과, 화장실과,
동지들의 피난처로 마련된 작은 침대가 왜그리 가슴팍을 후려치던지......
그 좁은 계단의 삐걱임, 낡은 지도위에 줄쳐 있던 독립투사들의 근거지,
한쪽 벽에 사진으로 걸려 있던 애국지사들의 무심하고 서늘한 눈빛들....
그 때 나는 알았다.
우리들은 너무나 중요한 것을 아무렇게나 방치하고, 너무나 쉽게 잊고 산다는 것을......
주변에 정돈되지 못한 빨래들이 함부로 매달려 있던 낯선 이국땅에서
그들은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조국을 되찾는 일에 매달렸겠지.
말이 쉬워 의병이고 독립투사이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나와는 무관하고, 나와는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했던 운동이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을 보니 나처럼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다.
살려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초개처럼 목숨을 버렸다.
왠지 사진 속의 그 젊은 청년들은 해방이 된 지 수십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고, 인적 끊긴 밤이 되면 조용히 몰려나와
여전히 독립을 향한 서로의 결의를 다지고 있을 것 같았다.
어찌 죽었다고 그 원통함이 가시겠는가!
그들은, 진정한 남자들이었다.
나는 몰랐다.
내 고향 풍기에서 대한광복단이 결성되어
전국의 애국지사가 몰려들어 친일파를 처단하고,
독립자금을 마련해 독립단체에 전달했다는 걸...
풍기에서 시작한 대한광복단의 독립을 향한
염원의 불길이 전국 팔도로 퍼져 나가는
위대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것도, 까맣게 몰랐다.
전국의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저 소백산을 종주하여 내 고향 풍기 땅을 밟고
주권을 되찾기 위해 시린 설움을 내뱉으며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백성이 되지 말자고 결의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마터면 영원히 밝혀내지 못하고 수장되었을 진실을 찾아 낸 고향 어르신들이 위대해보였다.
풍기엔 명품 제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명품 정신이 함께 존재하는 곳임을 이제야 알다니.
어찌 유관순과 안중근과 이봉길을 기억하면서 우리 풍기의 애국지사는 모르고 있었는지..
상해에 임시 정부가 있었다는 건 기억하면서 우리 풍기의 대한광복단을 모르고 있었는지..
아들을 데리고 오리라.
어미의 고향 지명만 외우고 있는 아들을 데리고 와 이 곳을 보여 주리라.
전투기를 몰고 창공을 지키기 이전에 저를 낳아 준 어미의 고향에
무엇이 있는지 먼저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기념비에 묵념하고,
그것이 설립 될 수 있기까지의 과정을 들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혹여, 또 다른 전쟁이 발발하여 주권이 흔들리는 위기가 온다면
아마 내 고향 대한광복단으로 구름떼처럼 사람들이 몰려들리라.
그 먼 옛날 애국지사들이 소백산 매서운 바람을 뚫고 걸어 들어와
나라 잃고 목숨 부지하는 것을 죄로 알고 싸웠듯이
그들의 얼과 영혼이 살아있는 이곳으로 모두 몰려오리라.
나라의 말을 잃어버리면 주체성을 잃어버리듯,
올바른 삶을 살아간 그들의 애국심을 외면한다면 결국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을 터,
맨 앞에 서서 서로의 목숨을 먼저 내놓기를 간청할 내 친구들, 내 선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몰려든 도시의 친구들. 비장한 그들의 악수!
때때로, 나는 그랬다.
고리타분한 근대적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그들이 우스웠다.
시대가 어떤 시댄데 아직도 일본이라면 이를 갈 이유가 뭐가 있냐고,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어울렁더울렁 더불어 살 일이지 별나게 난리라고 한심해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넋 놓고 뿌리를 외면한 채 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또 다른 을사조약이 터진다면
80먹은 고령자만 들고 일어날 것인가. 정신을 놓고 있는 청년들에게
부랴부랴 그때서야 교육을 한다고 금방 되어질 일이 아니잖은가.
조국이 있어야 인권이 있다. 조국이 있어야 문화가 있고 역사가 있다.
겉으로 평화를 가장한 채 끊임없이 군사력을 키우는 다른 나라들의 속내가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한다. 하물며 우리나라는 말해 무엇 하리오.
지금도 북쪽 고향을 향해 머리 두고 누워있는 우리 아버지의 비애 섞인 한숨소리가
밤만 되면 요동치지 않겠는가.
그렇구나, 소백산 풍기 바람이 그리 사나운 까닭이 있었구나.
그 바람이 달구어 놓은 것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알았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아름다운 풍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기개가 펄펄 살아있는 풍기!
나는 소백산의 딸이오, 대한광복단의 후손이다.
어줍잖은 노래 실력이지만 대한 사람 모두에게
이런 자부심을 알게 할 때까지
열심히 불러야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영원히 건져올리지 못할 그들의 넋을 끌어
올린이도 풍기인이고, 그들의 차가운 영혼을 따뜻하게
보듬는 광복단 기념관을 설계한 이도 풍기인이라 했다.
자부심으로 그것을 알리고 지키는 이들도 풍기인이다.
나도 무엇이든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면 광복단을 둘러보시라.
그들이 당신에게 즉시 대답해 줄 것이니.
한 시간 동안 둘러 본 광복단 기념관의 모든
전등을 끄고 햇살 찬란한 바깥 세상으로 나오면서,
들어 갈 때 눈여겨보지 않았던
수원 화성을 닮은 광복단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거대한 태극기를 바라보았다.
25년 동안 잊고 살았던
먼 옛날의 행동 하나가 저절로 튀어 나올 거 같았다
차렷!
국기에 대하여 경례!!
‘아들을 데리고 다시 올게요..’
내 말하는 의미를 알았는지
태극기가 바람결에 쫘악 펼쳐진다.
돌아 나오는 내 발걸음이 가벼웠다.
고향의 온갖 아름다운 산천과 아름다운 정서를 시로 표현한 김순한 시인의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달밭골로 들어간다.
혼자뿐인 나를 배려해 스승이 지인을 불러다 고향에서 맞이하는 밤을
외롭게 보내지 않도록 신경 써 주심에 그저 감사했다.
달을 보러 추억을 보러 소백산 700고지에 웅크리고 있는 달밭골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온갖
벌레소리가 촤르르르..울려 퍼지고 있었다. 늦은 밤에 낯선 손님이 등장하자
갑자기 움직임이 바빠진 듯 그들의 합창소리가 드높아진다. 가히 오케스트라급이다.
아름다운 하모니가 정적에 쌓인 어둠의 계곡을 넘나들며 ‘달밭골 행진곡’을 연주하고 있다.
내 어릴 적 이북에서 넘어 온 외로운 울 아비가 달밭골 피난민으로 내려와 자리 잡은 그들과
호형, 호제하며 지냈기에, 달밭골 할아버지 생신이면 달구지에 올라타고 달밭골로 올라갔던
추억이 있다. 울 언니는 소 등에 올라타고 간 기억도 난다는데 아쉽게도 그런 추억은 내게 없다.
처음 보는 호롱불이 신기하고, 그 작은 불꽃이 창호지 바른 문짝가득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
출렁이는 것이 기이하여 호롱불 한번 보고, 그림자 한번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던
눈 큰아이의 모습이 눈물처럼 차오른다.
무릎까지 차올라 있는 백설 같은 눈을 보고, 걷지도 못한 체 우물거리는 나를 안아 들고
함박 미소를 지으며 내 볼을 부볐던 그분의 아드님은 여즉 살아 계실까? 망태기에 나를 넣어
등에 지고서 펄쩍펄쩍 잘도 뛰어 다녔던 그 분의 아들은 지금 어디에 사실까.. 깊은 산중이라 그랬을까?
눈처럼 하얀 토끼가 어찌 그리 잘 잡히는지...버둥거리는 토끼를 어디다 쓰는지도 몰랐던,
사람이 먹으려고 잡았다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그 까마득한 시절의 순수함이
뼈가 시리도록 그립고 그리워졌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찰떡을 한옹큼 베어 달작지근한
조총에 듬뿍 묻혀 내 입에 넣어 주시던 눈웃음 고운 할머니는 지금 어디로 가셨는가.
누런 종이에 싸서 귀하게 딴 송이버섯을 어미에게 전해주고,
갓 끈 고쳐 매고 황망히 집을 나서던 키 크고 수염 긴 그 할아버지의 함자가 무엇이었던가.
내 가족 같았던 그들 가족! 그런 그들의 석 자 이름조차
기억해 내지 못하는 한심한 여자꼴이라니...
아~ 나는 너무나 눈 어둡고 어리석어 정작 보고 살아야 할 것들은 모조리 덮어버리고,
나누고 살아야 할 인연은 모조리 토막내고 살았구나 싶으니,
폐를 뚫고 삐져나오는 통증이 너무나 아팠다.
구름에 쌓인 말간 달님을 바라보고,
그 달님이 나를 알아보실까 하여 또 바라보다가
기어이 통곡하듯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를 지탱하고 있었던 온갖 독기와 오기를
여기까지 짊어지고 온 내 자신이
그대로 버티고 서 있기가 힘들어서인지,
살면서 만들어 낸 모든 허물마저
그저 따스함으로 덮어 주는 사람들의 온기에
그만 가슴 벅차 그랬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주인장이 내미는 인정스런
동동주가 머리를 취하게 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취하게 만들어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소리 내어 꺼이꺼이 한참을 울고 나니
뽀얗게 차오르는 달빛 마음, 고요한 호수 마음!
평화로워졌다. 새로 태어난 아이가 된 듯 그 어떤 상념도 잡념도 일렁이지 않았다.
등을 두드려주는 스승님께 배시시 웃는 속없는 제자. 어쨋든 속이 시원해진다.
산중의 고요한 어둠을 가르고 친구가 연주하는 트럼펫 멜로디가
비로봉과 달님에게 전달되었는지, 인근 오두막에서 잠 못 이루던 나그네가
그들을 대신해 합석을 한다. 자기 잠을 깨운 벌로 다시 한 번 연주를 청하면서..
이렇게 자연은 화합하기 원하고 화해하기를 원하고 사랑하기를 원하는구나.
아름다운 달밭골 밤이 깊어갔다.
‘25년 동안 기를 쓰고 산 도회지 생활에 얻은 건 혈압입니다’ 라고 말하며
너털웃음을 짓는 주인장 얼굴엔 내게 없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아무 때나 언제나 찾아오라는 정다운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이튿날 다시 찾아 간 달밭골
계곡에서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까투리 한 마리가 처연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어 사진을 찍었다.
별 짓 다한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푸드득 날아가는 까투리.
이 곳에 오니 별 걸 다보고 신이 난다.
금양정사를 안내 받기 위해 만난 선배님. 일요일 소중한 시간을 염치없이 뺏어 참 미안했다.
잘 봤다가 다음에 혼자 가세요~ 한다면 절대 불가능할 거 같은
좁은 산길을 익숙하게도 올라가신다.
흡사 대미골, 천상의 화원에 사시는 그 도사님 집 가듯이 심한 굴곡.
차가 없이는 가파르고 외딴 그 곳을 찾아갈 엄두조차 내지 못할 거 같다.
주변에 인가라곤 단 한 채도 없을 거 같은 외딴 곳에 있기는 있었다 금양정사!
내가 너를 보기 위해 이곳에 왔단다. 금양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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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양정사를 보기는 보았지만
이곳에다 나는 쓸 수가 없다.
도저히 몇 줄의 문장만으로 그를 끄집어 낼 수가 없다.
단번에 나는 알아챘다. 그 외로움, 그 물속 같은 적요속에서
이퇴계님과 황준량님이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음을.
무언가를 말하기 위하여 간절히 기다렸음을.
가슴이 너무 먹먹하여 귀 먹은 여자처럼,
심장이 너무 조여 와 말 잃은 여자처럼 나를 후려쳤던 금양정사의 쓸쓸함이여!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사방에서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우수수 거리며 떨어졌다.
아마도, 금양정사라는 제목을 달고 따로 만나야 할 거 같아서 잠시 미루어둔다.
어쩌면 내 처음 느낌이 의심스러워 가을 어느 날 또 한번 그를 만날지도 모르겠다.
여름의 금양정사와 가을의 금양정사는 어떻게 다를까? 내가 더 궁금하다.
은행나무 안고 있는 읍사무소를 찾아 간다.
초등학생이었을 때, 그토록 넓어 보였던 읍사무소 앞마당이 아담하고 소박해 보인다.
외지에 주소를 두어 주민세 한 푼 안내는 나를 읍장님이 미소로 반겨주셨다.
동행하셨던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수십 번 읍장 실을 드나들었지만 오늘처럼 이토록 마음 편하게 앉아 본 적이 없었다고..
그게 다 한 고향 사람이라는 유대감일터이고,
그 이전에 그 분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신뢰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겠지...
풍기에 대한 아름다운 글을 계속 써 주길 바란다는 칭찬과 부담을 한꺼번에 안겨주고
미소 지으시는데, 그의 마음 한 귀퉁이가 살짝 엿보였다.
고향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어째, 우리 고향 풍기는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긴긴 여름해가 꼬리를 늘어뜨리며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자수고개에 들러 새로운 인연으로 내 부모가 되어 주신 시인의 얼굴을 바라본다.
신통하기도 하지.
긴 말, 여러 말 하지 않아도 그는 내가 무엇을 보았으며
무엇을 느꼈으며, 무엇을 버리고 채웠는지를 아시는 눈빛이다.
뜨거운 햇살 아래 어머니가 고추를 따고, 호박을 따고, 방울토마토를 따셨나보다.
주고 싶어 하시는 마음과 받고 싶어 하는 마음에 욕심이 없어, 충돌하지 않는다.
기쁘게 받아 안았다.
올 때와 달리 갈 때는 죽령터널을 지나쳐 가는데 돌아가는 나그네 마음이
어째 쓸쓸해 보였나 누가 창문을 두드려 바라보니 산이 나를 보고 있다.
산이 묻는다.
내가 누구랑 닮았지?
내가 답한다.
어버이를 닮았네요.
산이
빙그레 웃는다.
나도 묻는다.
내 꿈이 이루어질까요?
말씀이 없으시다
어쩌면 오늘 밤 내 꿈속에서 다시 한 번 소백산을 만나게 될 거 같다.
2009.8월
이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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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찌 이리도 감동을 주는지.....모든 이들과 함께 공감하는 큰 꿈을 이루시고 또 기다릴께요.민족의 얼과 혼이 살아 숨쉬는 풍기, 선물로 받은 우리 모두의 소백산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