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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넷째 날(8월 7일)
(21)
역(逆)으로 걸은 순천만
간밤에 왕복했던 차로를 새벽같이 다시 걸었다.
내 뜻과 달리 차편으로 달린 구간(호산들~순천자연생태공원)을 역으로 걷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으며 이 구간은 서남동길에서 유일하게 왕복한 길이 되었다.
전망대가든 직전 비탈 아래에 있는 절(연국사)로 내려갔다.
사찰의 아침 공불시간(06:00)이므로 공양받을(공복을 채울)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고.
그러나 보살님 없이 혼자 있기 때문에 아침공불을 드리지 못한단다.
팩 두유와 소시지를 들고 나온 주지의 말이었다.
요즈음에는 부처님도 인스턴트식품 또는 패스트푸드에 익숙하지 않으면 나처럼 굶기를
밥먹듯 하게 되는 것 아닐까.
게다가 가공식품이라 하지만 부처님께서 고기까지 드시게 되었나.
특별한 날에만 포식하면 건강에 해롭고, 그러면 중생 제도에 지장 없을까.
남의 종교지만 어쩌다 부처님이 이같이 홀대받게 되었는지.
차로를 떠나 내려간 해안의 마을은 우명(학산리)
마을들이 있으므로 아무때, 아무데서나 라면 또는 누룽지를 끓일 수 있다는 여유로움의
영향인지 간밤과 전혀 달리, 조금 전의 절에서 와도 달리 시장기가 싹 사라졌다.
마을에서 물을 얻어 라면 끓일만한 쉼터들을 뒤로 하고 도착한 화포마을은 새벽에 떠나
온 장산에서 3.1km지점, 해발 236m 봉화산 남쪽 자락의 조용한 어촌이라는 인상이다.
와온해변에서 여수 앞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와 일명 '순천만의 전망대'라 불린다는 마을
이며 순천만의 일출 명소 1위란다.
화포(학산리)는 순천시 남도삼백리길 중에서 순천만갈대길 16km의 종점이며 꽃산너머
동화사길(20km)의 시점이란다.
어차피 되걷게 될 길이므로 볼거리를 남겨두고 금천마을(무풍리)입구를 경유하는 차로
(일출길)로 우회해 다시 해안 죽전방조제에 들어섰다.
짧게나마 길이 끊긴 산자락 바위지대 해안이기 때문이다.
방조제길은 다시 차로를 만나 창산을 통과한 후 고장방조제로 이어져서 거차에 이른다.
뻘배체험장 마을이다.
뻘배란 물을 전제로 한 배(선박)와 달리 '갯벌 위의 배'라는 개념이다.
소형배와 썰매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뻘배는 선박과 썰매의 이동과 운송 기능을 갯벌 위
에서 수행하는 소규모 이동, 운송기구다.
전라남도는 전통 뻘배의 기능을 재해석하여 레저스포츠 장비로 개발했단다.
갯벌제국인 호남권의 갯벌관광 활성화를 위해서.
갯벌체험을 통한 학습효과를 강조해왔지만 단조로움의 극복이 과제였는데 일거에 해결
함은 물론 관련 산업과 어촌 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단다.
거차방조제의 끝은 배도 다리(橋)도 없는 포구 아닌 포구다.
이미 인적이 끊겼는지 잡초 숲길이다.
팔매질거리로 마주있는 용두까지 가려면 덕산수문까지 돌아가야 하는데 우거진 숲길을
걷는 일이 난제인데다 어제 편승했던 벌교와의 경계(호산들)로 가는 해안길도 없다.
내가 역(逆)으로 갈 수 있는 순천만은 여기까지다.
어제 편승할 때도 여기를 목표로 부탁했는데 갑장의 호의가 지나쳤던 것이다.
거차마을 잔치에 청일점
손천만자연생태공원에서 여기까지, 전일 석양부터 이 시간까지 장장 18km는 알바였고
8월 7일 정오에 비로소 서남동길을 재개한 셈이다.
그러나 출발시점부터 호되게 봉변당할 뻔 했다.
영광 두우리 해변에서 그랬던 것 처럼 양식장에 무단 침입했다고 노발대발하며 달려온
초로남이지만 늙은이를 어찌하겠는가.
그의 표정이 나보다 더 맥빠져 보인 것은 아마 화를 내뿜지 못하고 참기 때문이었을 터.
출입금지 표지판도 없고 고의도 아니었으며 나 또한 둑길을 헤매느라 고생하였음에도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거차방조제 일대에서 헤매는 사이에 광활한 갯벌이 물에 잠겨가는 중이었다.
문어가 고개를 치켜든 형상이라지만 내 눈에는 성난 코브라의 머리 같은 기괴한 바위도
곧 머리만 물에 떠있게 될 것이다.
뻘배체험장도 물에 잠겼고 앞바다는 어느새 고기잡이배들로 채워져가고 있다.
저 배들에게는 남남서의 벌교 장도와 여러 섬이 이웃이고 고흥반도와 여자만까지 원정
할 수도 있겠다.
해뜨면 일하고 해지면 쉬는 곳이 농촌이라면 어촌의 일과는 물때에 좌우된다.
드디어 공복감이 진지하게 다가왔다.
문이 활짝 열려있는 거차마을 복지관으로 갔다.
라면 끓일 물을 얻고 운이 좋으면 김치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간 것
일 뿐인데 갑오가 아니고 광땡을 잡은 격이라 할까.
한참 무르익어가는 인삼닭죽 잔치에 절로 초대된 것이다.
한데 내가 초췌한 늙은이로 보였던가.
나이 든 여인들로 만원인 너른 홀에서 거푸 퍼주는 닭죽 먹느라, 노파들이 연달아 딸아
주는 냉막걸리 마시느라 한참 동안은 내가 나 아니었다.
전날 정오에 벌교버스터미널 식당에서 먹은 점심 이후 24시간 만의 식사다.
당연히 걸신들린 듯이 먹고 마셨기 때문에 자꾸 퍼주고 딸아주었을 것이다.
"이 더운 복날에 영감님이 웬일이다요"
1막이 끝나고 한 노파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는지 말문을 열었다.
아뿔싸, 말복이란다.
그러니까, 마을 아낙네들의 임진년 마지막 복잔치에 늙은나그네가 청일점이 된 것이다.
거차마을 부녀들은 내가 아니고 다른 어떤 행인이라도 대접했을 것이다.
그러나 절기에 무심할 수 밖에 없는 늙은나그네도 그네의 후대에는 감동을 먹었는가.
복지회관을 나오며 다짐두었다.
다음 복날(2013년도)에는 생막걸리 1박스를 꼭 보내리라.
(아무리 옹색해도 한달 남짓 앞으로 다가온 말복에 맞춰 그 다짐을 꼭 실행할 것이다)
방향만 180도 회전되었을 뿐 같은 길인데도 한결 수월했다.
반복의 효과와 닭죽효과가 시시각각 포악해가는 말복더위에도 발휘되었을 것이다.
아침에 비해서 시야가 한결 넓어진 화포(花浦)해변.
'꽃이 피는 포구'라는 이름풀이 대로 봄이면 포구 주변이 여러 꽃들로 장식된단다.
소망탑 압에서 지나가게 될 와온해변과 여자만이 가늠되었다.
광활한 갯벌은 잠시 망망한 대해로 변했지만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리아스식 해안선의
화포가 순천만의 제일 명소 대접받기에 부족함이 없겠다.
<바다는 푸르다 / 한결같은 마음으로 산다 / 바다는 넓다 / 다 용서하는 마음으로 산다.
바다는 잔잔하다 / 그러나 때로는 격랑 일어 바위를 때린다 / 그리고 다시 평온해진다 /
평화롭게 꿈물결이 넘친다.
한없이 푸르고 넓은 바다 / 일념으로 삶의 꽃이 피는 바다 / 바다는 참으로 아름답다 /
오늘도 물결이 인다 / 그리고 다시 조용하다 /우리 삶의 무늬가 바다같지 않을까?>
누가 쓴 "바다를 보고"(제목)가 화포해변 쉼터(정자)의 바위탁자에 새겨있다.
현란한 시어(詩語)도, 세련된 문장도 아닌데도 왜 마음을 끌어갔을까.
아마, 수사(修辭)가 없고 본대로 느낀대로 간결한 표현에 공감이 가서 그랬을 것이다.
바다를 그려놓은 무수한 글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들어서.
양탄자를 깔아놓은들 걸으려 하겠는가
화포해변을 떠나 우명-장산-인안교-안풍습지-순천만탐조대(철새서식지)-순천만자연
생태공원까지의 반복길, 순천만갈대길 8km가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사진을 찍지 않고 쉴만한 그늘이 거의 없는 길이라 속도감 있게 걸어서 그랬을 것이다.
허둥대던 석양과 달리 생태공원의 요모조모와 갈대숲 제대로 보이는 듯 했다.
호남권 서해안의 갯벌은 이미 눈에 충분히 익혔으나 광대한 갈대군락지를 가진 갯벌이
라는 아주 특별한 순천만이.
순천시내를 관통하는 동천과 상사호에서 출발하는 이사천이 합류하여 바다로 뛰어들며
쌓아놓은 퇴적물이 환생했다는 5.4평방km의 갈대숲을 가진 순천만이다.
용산전망대(해룡면 농주리)는 무진다리를 건넌후 갈대숲탐방로를 지나 오른다.
해발92m, 아주 낮은 야산에 선 순천만 전망대지만 잠시 등산맛을 느끼게 하는 길이다.
한데, 탐방로가 방부목 데크 외에는 대안이 과연 없는가.
방부목 구조물들이 아니라면 아마도 이름대로 하늘을 따르는 만(順天灣)일 것인데.
순천만의 가장 미려한 모습이라는 S자수로와 황홀한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전망대.
간조때와 일몰때만 곡선수로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지만 그 때가 아니라도 일품 전망대
라는 점에 동의하도록 충분히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했다.
귀항하는 탐사선(유람선) 에코피아가 그리는 S곡선 뱃길로 미루어 짐작되는데도 바쁜
갈길 미루고 그 때를 기다리고 있다면 길나그네에게는 가당치 않은 사치다.
순천시가 조성한 '남도삼백리'의 제1코스(순천만갈대길)라 하지만 이틀동안에 이 길을
걷는 개인 또는 단체를 만나지 못했다.
용산전망대에 올라온 탐방객은 예외 없이 자연생태공원에서 왔다가 그 길 따라 되돌아
갔고 와온해변으로 가거나 그 쪽에서 오는 사람은 나 외에 단 한 사람도 없었으니까.
서남동길에서 지자체가 조성한 길을 종종 걸었는데 인기있는 관광코스와 중첩된 일부
구간 외에는 그 길을 걷는 이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각 지방에서 종종 길을 묻는다.
"기본요금 밖에 나오지 않으니까 택시타고 가세요"가 천편일률의 답이며 현실이다.
기본요금 거리라면 2km미만인데도 걷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사람들이니까.
30분쯤 걸으면 되는 곳에 가기 위해 1시간을 기다려 버스를 타는 것이 오늘의 세태다.
기다리는 동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인데도 걸으려 하지 않으니까.
얕은 재 하나 넘으면 되는, 소위 담배1대참의 이웃마을도 차로 몇km를 돌아서 간다.
양탄자를 깔아놓은들 걸으려 하겠는가.
자고로 길이란 오늘날의 도로와 달리 필요한 다수가 왕래하면 절로 생성되어 왔다.
그런데도, 지자체들은 수요가 없는(걸으려 하지 않는) 길들을 만드느라 요란 법석이며
제주도의 올레길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고 있는 듯 하여 연민을 금할 수 없다.
매우 유감된 표현이지만 올레길이야 말로 제주도의 마녀가 되고 반역의 길이 될 것인데.
올레길이 스포트라이트(spotlight)를 받고 있는 동안에 제주도는 올레길에 갇혀서 빛도
향기도 서서히 잃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년 1월에 한라산 등산을 하는데 지난 1월에 오른 것이 32번째였다.
제주도에 32년 이상 정기적으로 갔음을 의미한다.
차량으로 제주도를 뒤졌고 자전거로 해안을 일주했으며 고산자의 대동지지에 충실하게
해안과 중산간을 망라해 제주섬을 도는 옛 제주로를 걷기도 했다.
제주도의 변천사를 일별(一瞥)했다고 감히 말하며 제주도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제주로'
(메뉴 옛길)에서 이미 언급했는데 노정에 불과한 올레길에 이것들을 담을 수 있는가.
그럼에도 올레길 당국자들의 의도가 어떠하던 날로 더 늘어나는 올레길 마니아들이 이
길을 제주도의 압축파일로 인식하는데 문제가 있다.
차라라 나의 예단(豫斷)이 빗나가기 바라지만 단지 노정(路程)일 뿐인 길이 지속적으로
목적이 된다면 정확하게 맞출 수 밖에 없다.
제주도를 보기(알기) 위해 올레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올레길만 걸으면 제주도를 통달
(master)하는 것 처럼 올레길에 올인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북한산 둘레길을 본떠도 안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수도의 1천만과 수백만 수도권 인구에 의해 몸살을 앓는 북한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등산인구의 분산효과를 노리고 둘레길을 조성했다.
체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이들에게 북한산 오를 기회를 주는 것도 이유중 하나다.
그러므로 지자체들이 만드는 길들과는 차원이 다른 길이다.
얼굴만 화장하고 뒷머리는 감지 않아도 되는가
길 걷는 나그네에게 길에 대한 생각이 가장 많은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도 비판일관이기 때문인지 피로를 느끼게 되어 털고 일어섰다.
남은 순천해안은 갈대길을 따르면 되는데 농주, 구동 해안이 왜 어수선하고 지저분할까.
양식장 주변도 그러하고 1년에 7번 색깔이 바뀐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칠면초 붉은
해안이건만.
이유를 '남도TV'의 오래전 보도에서 찾았다.
순천만이 각광받게 되기 전에 농주, 구동마을은 순천만의 뒷쪽이면서도 순천만을 촬영
하려는 출사자들로 몸살을 앓았단다.
연중 무휴로 외부 차량들이 온마을을 점령한 것은 순천만 최고의 조망지 용산이 자리한
마을이기 때문이었다는 것.
앞쪽인 대대포구 ~ 용산전망대 길이 조성됨으로서 마을들이 여유를 찾는 듯 했으나 원
거리의 단점을 극복할 길이 없기 때문에 공이 구동마을로 다시 넘어왔단다.
용산에 접근하는 새 길을 만드느라 구동마을 해안은 온갖 생활쓰레기와 건설폐기물의
하치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얼굴만 화장하고 뒷머리는 감지 않아도 되는 것이냐"는 볼멘 소리가 나올 수 밖에.
또한, 용산의 중심부에 있으면서 한쪽으로 치우친 용산전망대보다도 넓게 시야를 확보
하고 있는데도 '보조전망대'라고 이름지은 것을 의아해 했는데 감이 왔다.
순천만에서는 용산전망대보다 우월한 어떤 전망대도 용납될 수 없음이라.
구동 지나 노월마을 해변에도 잘 꾸며놓은 전망대가 있다.
개 눈에는 0만 보인다는데 내 눈에는 집터만 보이는가.
세미(semi)-2층에 하룻밤 묵을 집 지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에 여유로움이 생겼나.
2층에서 시계방향으로 막 물빠진 순천만 갯벌을 한가롭게 응시하게 되었으니.
전망의 의미를 항상 탁트인 산에서 내려다 보는 것으로 제한해 왔기 때문인지 수평으로
보는 검회색 갯벌이 마치 옛 흑백사진을 보는 것처럼 정겹다고 느껴졌다.
말복날이라 아낙네가 모두 쉬는가.
광활한 갯벌이 허전하니 집하장(?)이 쓸쓸할 수 밖에.
그러고 보니 오늘은 종일 갯벌에서 여인들을 보지 못했다.
거차마을에서도 모두 말복잔치에만 열중하지 않았던가.
방파제 지나 우뚝 선 해변의 건물(해룡면 상내리)을 목표로 아쉽지만 전망대를 떠났다.
워터 슬라이드를 갖춘 야외수영장이 있으며 식당을 겸한 5층 펜션은 에코비치 캐슬.
말복이면 여름이 최고조에 오른 날인데 왜 사람을 볼 수 없을까.
전혀 무관한 나그네도 안타깝고 애처로운데 주인이야 오죽하겠는가.
"줄푸세 타고 747로"는 어디 가고 잃어버린 10년 되찾는다더니 가는 곳마다 이 꼴이다.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주의를 세워서 7% 성장에 4만불 소득으로 세계 7위의
경제대국 만든다는 희대의 사기에 당한 꼴이다.
영남대로 상주시 사별면을 걷다가 만난 63세(2008년 당시)의 우국지사가 생각났다.
나라꼴이 엉망돼 가는데 태평하게 옛길이나 걷고 있느냐던 그.
노무현에게 하도 데고 나서 조금 나을까 싶어 이명박을 찍었는데 아예 나라를 망쳐먹고
있다며 비분강개하던 그가 뭐 볼줄 아는 분이었던가.
혜안이 있다면 MB를 찍었겠나.
와온해변의 기적
방파제를 지나 갯벌해안을 타고 와온해변 초입의 모텔 '코리아 나폴리' 앞에 도착했다.
다행스럽게도 물이 빠진 썰물때라 순천만에서는 처음이며 마지막으로 가능했다.
마감하기는 아직 이른 시각이지만(18:00) 다음 정자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정자가
많은 와온(해룡면 상내리)해변에서 묵을 요량으로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뒷산이 소가 누워있는(臥) 형상이며 산 아래 따뜻한(溫) 물이 흐른다 해서 와온.
"아름다운어촌 100선 체험관광마을로 선정되었으며 살기 좋고 인심 좋은 마을" 이라고
홍보는 하나(마을 연혁과 유래비) 1인 메뉴 없는 식당 사정은 딴 데와 다를 것 없다.
와온슈퍼에서 막걸리 1병으로 갈증을 풀 때 맘씨 고운 젊은 여주인이 열무김치를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왔다.
실은 내 행색이 기이히 보였는지 궁금해 하는 그녀에게 대충 말해 주었지만.
내게 호의적인 젊은 여인들은 대개 친정 아버지가 내 연배라고 말한다.
순천의 한소리님도 내 동갑인데도 건강이 좋지 않은 친정아버지 생각에 지리산 성삼재
에서 구례까지 차를 몰았고 포르투의 샘 부인이 작고한 친정아버지와 동갑인 동양영감
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푼 것 역시 자기 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랬다고 말했다.
슈퍼의 여인 또한 그런 정서 아닐까.
(한소리님은 순천의 여인이다.
2006년 설 다음날, 1박2일로 지리산종주(중산리~성삼재)를 마친 성삼재에서 만난.
남편의 지리산종주(성삼재~중산리)들머리 성삼재까지 올라온 그녀의 차에 편승했는데
나를 위해 구례읍까지 멀리 돌아서 갔으며 이후에도 순천에서 2번이나 나를 도왔다)
보성누룽지와 순천김치의 두 인정이 합작해 인정을 먹을 때 가장 행복한 늙은 나그네를
KO시킬 것이 확실한 밤을 기대하며 집터를 찾아나섰다.
창문은 물론 모기장까지 설치한 잘 지은 마을정자는 겉과 달리 엉망인 실내에 실망하고
일몰때에 맞춰 소공원(노을공원?)으로 갔다.
순천만에서 일출의 명소가 화포라면 와온은 일몰 감상지의 으뜸이라잖은가.
잘 관리된 정자에서 잠시 쉬며 서쪽 하늘을 주시하고 있을 때 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솔섬 뒤로 일직선 상에서 뉘엿거리던 불그레한 해가 하늘로 회색기둥을 쏘아올리는 듯
한 현상이 2분여를 이어갔다.
시간은 19시 34분~36분으로 카메라에서 검색되었다.
진정되는 듯 하던 이 현상이 10여분 후에는 뻘겋게 불타는 서쪽 바다에서 하늘을 향해
대공포를 쏘고 있는 것 같다 할까.
거대한 불덩이를 떨어뜨려 온 바다를 불사르고 있는 하늘에 대한 바다의 보복?
설마, 와온해변이 내 생전 처음 보는 이런 현상을 전제로 해서 일몰 명소로 등극한 것은
아닐 테고 이같은 현상을 뭐라 하며 왜 일어나는지?
유식한 분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었지만 하나같이 처음 보는 현상이란다.
잊고 지내다가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떠오른 것이 기상청이다.
사진을 첨부, 궁금증을 풀어달라 부탁했건만 접수번호만 연달아 올뿐 진짜는 깜깜이다.
기상청에 골칫거리를 안겨주었나.
상식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신의 영역으로 돌린다.
그리고 기적으로 정의한다.
그러니까 와온해변의 기적이라고 정리할 수 밖에 없나.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장면들이 끝났다.
일진광풍이 지나간 후 같은 기분이었다.
정자에 집을 짓고 있을 때 나폴리의 주인이 찾아왔다.
이 정자가 공원시설인지 나폴리의 소유인지 알 리 없는 나는 무턱대고 양해를 구하는데
그의 방문 목적은 시비가 아니고 딴 데 있었다.
내게 자기네 샤워장과 화장실 사용권을 주겠다는 것.
이렇게 고마울 수가.
식사의 애로를 들은 그의 부인은 더욱 호의를 베풀려 했다.
순천만 식당들의 차림표는 모두 판박이다.
해물에는 워낙 무심하지만 금시초문인 짱뚱어 일색이며 그나마도 1인용은 없다.
'국민표해물정식'을 표방한 나폴리도 다를 리 없는데 이 늙은길손을 위하여 특별메뉴를
만들겠다는 주인녀의 호의를 어떻게 물리치겠는가.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