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연과 어린이
나는 산을 좋아한다. 주말이면 거의 빠지지 않고 산을 오른다. 가끔씩 멀리 있는 산을 찾기도 하지만 대부분 우리 동네와 가까운 산을 즐겨 오른다. 산은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이다. 올라갈 때의 모습이 다르고 내려올 때의 모습이 또 다르다. 철따라 피었다 지는 풀꽃과 나뭇잎들. 살갗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느낌.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향긋한 숲의 냄새. 산은 나의 오감을 일깨우고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켜준다. 우리 동네와 이웃한 기장은 내가 참 좋아하는 동네다. 기장의 일광산과 산성산, 남산은 우리 집 뒤에 있는 장산과 함께 자주 찾는 산이다. 특히 산성산은 풀꽃이 많이 피는 산이다. 봄이면 눈 속에서 피는 복수초를 시작으로 노루귀, 현호색, 산자고, 개별꽃, 은방울꽃, 족두리풀 등이 줄지어 피는 말 그대로 풀꽃 천국이다. 산성산 어디쯤에 언제 무슨 꽃이 피는 지는 내 손바닥처럼 환하다. 산성산은 내 비밀의 화원이다. 어느 날 산성산에 다녀오는데 고속도로공사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부산-울산 간 고속도로를 새로 낸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그 고속도로가 산성산과 일광산 자락을 잘라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숲이 잘려나가 붉은 흙이 드러난 산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기장은 예부터 도자기가 유명한 곳인데 저 공사현장 어디쯤 옛날 가마터나 도자기 유물이 나오지 않을까?”
<플루토 비밀결사대>는 그런 생각에서 태어났다. 도자기. 산성산의 산성. 기장의 멸치축제. 풀꽃. 하나하나 떨어져 있던 개체들이 한 순간 꿰어지면서 어슴푸레 윤곽이 잡혀졌다. 거기다 창작노트에 잠들어 있던 망원경을 보는 아이를 일깨우고, 이구아나까지 그 대열에 합류시켰다.
아동문학은 주된 대상이 어린이들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교훈성이 강조되는 장르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플루토 비밀결사대』에서는 교훈보다 요즘 아이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건강한 놀이문화를 찾아주고 싶었다. 텔레비전, 컴퓨터, 게임기, 휴대폰 등. 요즘 아이들은 사람보다 기계하고 노는 시간이 더 많다. 자연과 사람을 떠난 기계문명.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지나친 소비문화. 부모들의 지나친 보호와 간섭. 과다한 공부에 억눌린 채 도시의 아이들은 아이들 특유의 건강함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런 아이들의 지친 몸과 메마른 마음에 한 줄기 바람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친구와 함께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뛰어노는 즐거움을 맛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도시이면서 아직 자연의 정취가 사라지지 않은 기장은 최고의 무대가 될 수 있었다. 이제 캐릭터를 창조하는 일이 남았다.
2. 캐릭터 창조와 재미, 그리고 교훈
개인적인 성향은 현대인들의 특징이다. 그것은 아이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나는 한 명의 아이가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것보다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고 협동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혼자 하는 놀이보다는 여럿이 하는 놀이가 더 재밌는 법인데, 요즘 어린이들은 그런 재미를 잃어버리고 살지 않는가. 본시 우리네 삶은 더불어 사는 것인데. 함께 고민하며, 함께 노는 아이들. 그래서 다소 많은 숫자인 다섯 명의 아이들이 태어나게 되었다.
금숙이. 부모의 이혼을 건강하게 극복해낸 아이. 지혜롭고 야무진 캐릭터에 예쁘고 세련된 이름보다 조금은 촌스럽지만 건강함을 풍기는 이름을 지었다. 지어놓고 보니 금숙이라는 이름은 내 마음에 딱 들었다. 우진이와 서진이 형제간의 자잘한 갈등. 이제 사춘기에 첫 발을 들여놓은 동영이와 우진이의 미묘한 감정대립. 사건위주의 건조함을 극복하는데 그런 소재들이 윤활유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어느 평론가는 인간이 구성한 사회적인 틀을 깨트리려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라고 했다. 성인과 아이, 남자와 여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플루토 비밀결사대』를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사회적인 약자인 아이들이 주도적인 입장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고 신나게 뛰어노는 데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 책을 사랑하는 아이들의 반응을 아이들이 어른들이 짜놓은 틀에서 얼마나 힘겨워 하는지를 반영한 것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플루토 비밀결사대』나오고 나서 아이들이 너무 재미있게 읽고,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긍정적인 면에서건 부정적인 면에서건 평자들의 관심도 많이 받았다. 모두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교훈이 담긴 작품.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작품이 필요하듯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재미있는 작품도 필요하다고 본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와 아동문학의 밭이 좀 더 풍성해져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3. 『플루토 비밀결사대』를 쓰고 난 뒷이야기
2004년 한 해 동안 『플루토 비밀결사대』를 썼다. 『플루토 비밀결사대』가 2005년 제 11회 황금도깨비상을 받고 나니 재미있는 일들이 줄줄이 벌어졌다. 텔레비전과 영화에서는 삼순이, 금자 같은 촌스러운 이름의 주인공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산-울산 간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정말로 가마터가 발견돼 공사일정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작품 속에서 도자기유물이 발견되는 장소가 바로 고속도로공사현장 이었는데 작가의 상상력이 그대로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작품 속에 조커로 등장하는 애완용 이구아나는 우리 집에서 기르는 이구아나다. 딸아이가 친구한테서 얻어온 이구아나인데 그녀석의 도움을 톡톡히 보았다. 오 년 동안 키우다보니 너무 자라, 집에서 기르기 힘들어 얼마 전 애완용 파충류를 파는 가게로 돌려보냈다. 산에 갈 때마다 그녀석이 잘 먹던 풀들을 보면 지금도 마음이 짠하다.
『플루토 비밀결사대』는 여느 어린이소설이나 동화와는 다르게 추리형식의 옷을 입고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 추리소설의 대가이신 김성종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남들이 다 쓰는 그런 글보다 뭔가 다른 글을 써 봐요. 아동문학에서 추리동화를 쓰는 사람이 없잖아요.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해야지.” 김성종 선생님과의 만남은 나에게 행운이었다. 선생님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추리소설연구모임 회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인사를 드린다. (*) |
첫댓글 rudugs942 --- 재미있겠다~ 09/03 17:49
yd0034 --- 호~~이거이거...우리 아이들이 넘 재밋게 본책인데.....이런 이야기들도 나오네요...^^울 아이들에게도 읽어보라구 해야겠네요..^^ 09/19 11:29
yd0034 --- 책을 만들어가게 된 이야기들이 넘 좋네요...다른 작가분들의 만든게 된 계기들을 듣고 싶네요...^^ 09/19 11:36
lyr4783 --- 저 이거 너무 재미있게 본 책이에요~ 저와 같은 어린이들이 탐정 노릇을 하기란 쉽지가 않은데 여기 나오는 친구들은 다 탐정 노릇을 하잖아요. 09/19 16:30
inticlub --- 애기들이 얼른 얼른 크면 좋겠어요. ^^* 고향이 부산이라 그런지 기장을 자주 가서 그런지 더 정겹게 다가오네요. 책상아래서 숨어서 읽고 싶어요. 책을 만들게 된 스토리 이런건 첨 접해 보는 것 같아요. 책의 탄생이야기 이런거네요. 매우 좋아요.. ^^ 09/20 01:03
suran --- 책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역시 좋은 작품을 쓰시는 분은 잡풀 이름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으시네요. ^^교훈도 좋지만 읽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공감해요. 선생님의 다른 작품도 기대할게요~ 10/05 22:43
dlaltnr75 --- 비룡소 홈피에는 자주오면서 칼럼은 오늘 처음 읽습니다. 부끄럽지만 칼럼이 있는지도 몰랐네요.... 새로운 즐거움을 선물받은 기분이랍니다. 늘 우리아이들에게 자연과 노는 즐거움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주말이면 자연과 함께 신나게 노는 편이지만 제가 어렸을적을 추억하게 하는 이야기, 내가 우리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책으로 읽을수 있는이야기로 만들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되서 기쁘네요... 우리꼬마에게 당장 사줘야 겠는걸요.. 좋은 이야기 재미난 이야기 많이 만들이 주세요~ 10/10 10:09
ju2755 | 2008-10-07 10:08 --- 저 이책 되게 재미있게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