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론
집을 짓고 나면 정원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구상하게 된다. 조원하는 순서는 아무래도 현재의 정원에 대한
분석을 한 연후에 앞으로 조원할 정원의 모습을 그리는 일이 될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의 주택은 배산임수의
자리에 앉아 있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 집 뒤에는 깊거나 얕은 산이 배경을 이루고 집 앞으로는 너른 벌판이나
하천이 흐르는 지형에 집을 앉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경관을 갖춘 곳은 지형적으로 경사가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경사진 곳은 입체감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되고, 이를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화계나 화단, 연못을 꾸미게 되었다. 경사가 심한 곳에서는 석축을 쌓거나
2~3단의 자연석쌓기를 하게 되는데, 이는 야생화조원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흔히들 돌쌓기한 틈새에 영산홍이나
회양목, 둥근주목, 사철나무 등을 심는데, 야생화조원을 할 때에는 금낭화, 돌단풍, 기린초, 옥잠화, 산수국 등의
산야초목을 심어 가급적 자연상태의 모습에 근사한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위와 같은 입지조건에 맞는 한옥을 짓고 나면 이에 어울리는 조경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야생화조원을 한다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현대식 건물에다 근자에 표현되기 시작한 야생화조원 방식의 조경을 하면 잘 어울
리는데 비해 한옥 건물에 야생화조원을 하는 일은 일견 궁합이 맞는 듯도 보이나 그런 사례도 적고, 이에 관련된
연구나 모델도 흔하지 않기 때문에 한옥에 사는 이들은 스스로 개념을 정립하여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현대식 주택의 야생화조원에 관한 내용을 주제로 삼았던 지난 1권에 이어, 본 2권에서는 전통주택이나
상업공간에 나타나는 한옥 건물에 어울리는 야생화조원에 관한 내용을 주제로 삼아 연구를 하였다.
2.전통적인 조원개념
조원이란 것이 이를 통하여 즐거운 경관을 만들어 놓고 안식을 취하며, 기능적 편의와 실용적인 이득과 정신적
사색과 신체적 건강을 얻기 위한 것이므로 일관된 개념을 설정해 놓고 그에 맞는 요소들을 구비하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통건축물에 있어 조원의 대상 또는 요소는 지형, 건물, 화목, 개울과 지당(池塘), 괴석, 조산(造山),
담장, 조형물 등이다.
헤르만 헤세는 ‘즐거운 정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작고 선한 정원이 놀랍게도 우리에게 색다른
생각과 여운을 선사한다. 정원을 꾸미면서 느끼는 창조의 기쁨과 창조자로서의 우월감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한 뙈기 땅을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바꾸어 놓는다. 작은 꽃밭, 몇 평 안 되는 헐벗은 땅을 갖가지 색채의
물결이 넘쳐 나는 천국의 작은 정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원의 요소들은 조영적 구상에 의하여 하나의 공간 속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종합적이면서 기능적
으로 배치되게 된다. 조원을 구상하여 설계하고 시공 관리하는 데에는 건축이나 토목과는 다른 종합적인 예술성과
기술성이 필요한 것인데, 야생화조원에 이르러선 더욱 그러하다. 헤세의 말처럼 창조의 기쁨과 창조자로서의
우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문화의 모태는 자연이다. 조원에 있어서는 자연 여건에 따라 한 나라의 조원양식이 달라진다. 한국의 자연관을
보면, 한국인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연이다. 한국의 자연은 산과 들과 강과 바다가 변화 있게 전개되고
봄의 신록과 화사한 꽃의 개화, 여름의 무성한 녹음, 가을의 단풍과 탐스러운 결실, 겨울의 적막함, 나무의
고독과 설경, 따뜻하고 무덥고 시원하고 추운 온도의 변화, 맑은 하늘 등은 정말로 아름답다. 그래서 한국의
조원문화는 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인공의 구조물을 조화되게 하였다. 한국인에 있어서 인공의 미는 자연의
미에 비하여 속되고 부수적인 것이다.
한국인의 삶의 철학은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여 사는 것이다. 농경산업시대에는 24절기를 잘 알아서 자연의
순리에 따라 부지런히 일하면 자연은 성실한 결실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하여 한국인은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려 하지 않았으며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문화를 형성하였다.
한국인에 있어서 가장 영원한 것은 자연이고 가장 미더운 것은 자연이며 가장 안식을 주는 것도 자연이었다.
불교의 절이 산 속에 있고 기독교의 기도처가 산 속에 마련되기도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런고로 한국의
자연은 한국인의 신앙이 되었다. 산신단이나 성황당, 부락제단이나 계림 같은 신림(神林)도 이를 방증한다.
즉,한국 조원문화의 특성은 자연순리에 순응한 자연과의 조화성을 근본으로 하여 인간 척도에 기준한 인간
과의 조화성을 중시하는데 있는 것이다.
3.한국의 전통적 조원 요소(야생화조원의 대상)
야생화조원의 대표적인 공간 중의 하나인 희원에 가면 전통조경사상에 현대적 의미를 부여한
장면을 돌아볼 수 있다. 희원은 단순히 기존 정원을 ‘베끼는’ 차원을 넘어 전통의 모티브를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 한국정원의 출발점이다. 각 장치를 배치하고 정원을
둘러싼 풍경과 조화시킨 것은 작가의 현대적 해석에서 나온 것이다.
희원에는 전통성과 현대성이 공존한다. 설계를 할 때 이곳의 옛 지도를 가져다 두고 훼손된
경관을 되살려나가는 데 주안점을 뒀다. 원래 언덕이었던 곳은 다시 언덕으로 만들어 주는
식이다. 한국정원의 키워드인 차경(借景·경치를 빌려 옴)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희원의 중심인 주정(主亭)에 서서 앞쪽을 향하면 담이 보이지 않는다. 담을 일부러 낮게
배치해 앞에 펼쳐진 호수와 산의 풍경이 정원과 이어져 보이도록 했다. 정원과 자연의 경계를
흐려둔 것이다. 이곳에서 정원은 자연으로 확장되고, 자연이 정원으로 들어온다.
이렇듯 전통정원에서는 자연과 지세 및 조원건축물을 고려하여 자연스럽게 조화되도록 화목을
심는다.
■ 지세
한국의 집터잡기에는 한국인의 자연숭배사상과 음양오행사상, 천지인의 삼재사상, 유교사상, 도교사상,
불교사상, 풍수지리사상 등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음양오행사상과
풍수지리사상이다.
음양오행사상에 있어 오행이란 다섯 가지 원기 또는 만물의 다섯 가지 정기를 말하는
것으로 화, 토, 금, 수, 목이 그것이다. 오행설은 토를 중심으로 화, 토, 금, 수, 목이 서로 상생과
상극을 하는 유기적이고도 구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화가 금을 녹이면 금은 수를 낳는다.
수가 화를 멸하고 이에 보답한다. 화는 토를 낳고 토는 수를 해하니 능히 막을 수 없다. 오행이
상위하는 소위(所爲)는 천지의 성(性)이다. 중(衆)은 과(寡)를 이기는 고로 수는 화를 이기게 된다.
정(精)은 견(堅)을 이기는 고로 화는 금을 이긴다. 이것이 오행의 상극관계이다.
오행은 특정한 방향과 색 등을 의미하게 되며 이를 의미하는 바가 조원을 하는데 적용되어
방향을 정하는데 쓰이게 된다.
오행설을 음양설과 결합하여 자연의 현상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되었다. 송의 주염계는
이를 유학적으로 정리하여 “태극도설”로 만들었다. 즉 태극이 음과 양이 되고 음과 양이 변하고
합쳐져서 수, 화, 목, 금, 토가 되며 여기서 만물이 생성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음양오행사상은
인간은 대지에 매여 있는 운명적 존재가 아니고 인위적으로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게 되었다. 살아갈 터전을 선택함에 있어서 산의 형태와 방향에 오행의 가치를
부여하고 이것들의 상생상극의 관계를 이용하여 오행적 요소의 작용을 판단하고자 하였다.
풍수지리설은 크게 두 개의 원리를 바탕으로 성립되었다. 하나는 천지정기설이고, 하나는
인체감응설이다. 천지정기설은 천지에는 살아서 움직이는 정기로 충만해 있어 이 정기는 산맥을
타고 지하로 흐르고 있고 또 바람과 물에 실려 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지간의 정기는 모든
땅에 고르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어떤 곳에는 짙고 강하게 어떤 곳에서는 유약하게 또 어떤
곳에서는 나쁜 악기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인체감응설은 이러한 천지간의 정기에 인간은
감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풍수이론은 상지(相地) 이론이라 할 수 있다. 터를 잡는데 고려하는 조건은 산과 물과 방향의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좀 더 상세하게 분류하면 간룡, 장풍, 득수, 점혈, 좌향의 다섯 개로 집약된다.
풍수설에서는 산을 용이라 하여 산의 형태를 살피는데 산에는 생룡, 사룡, 귀룡, 천룡이 있으며
오행에 따라 산의 형태를 구분하기도 한다. 이중에 지기가 가장 왕성한 산을 택하는 것이 풍수설의
요체이다.
천지간의 정기는 바람을 타고 운행하는 정기를 모으는 방법이 장풍법이다. 바람이 실어온 정기를
막지 않고 또 흩어지지 않게 하는 장풍에 필요한 장치가 현장 주위에 있는 산이다. 즉 사신산으로
현무, 주작, 청룡, 백호와 조산, 안산 등이다.
장풍과 함께 득수가 중요하다. 물은 바람보다 짙은 물질임으로 물이 실어오는 정기는 바람에 실려오는
정기보다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득수를 장풍보다 중요시하였다. 성국(成局)상 흘러들어오는 물을
득이라고 하고 흘러나가는 물을 파라 하는데 흐르는 물의 방향, 장단, 완급, 활협(闊狹), 곡절, 요포
(繞抱) 등이 득수법의 내용이 된다.
점혈법은 어느 지점이 정기가 가장 왕성하게 모인 곳인가를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상지에 있어서
화룡점청 같은 요긴한 장소를 선정하는 것이다.
좌향은 대개 12방위로 나눈다. 죄향이란 혈의 위치에서 바라본 방위를 말하는 것으로 혈의 뒤를 등진
방향을 좌로 하여 혈의 정면을 향으로 나타낸다. 이 때 결정되는 좌향은 꼭 하나뿐이다. 좌향을 갖기
까지 검토되는 향은 절대향과 상대향으로 구분된다. 전통입지에서 방향을 좌향으로 구분된다.
이는 오행, 팔괘, 십간, 십이지를 결합한 것이다.
절대향은 태양의 운행에 의해 결정되는 향, 시간성을 내포한다. 태양의 남중방위는 일정하여 이에서
동서남북의 방위가 결정된다. 태양의 운행에 의한 일조 일사효과, 지역에 따른 계절풍과 기후여건에
의하여 결정되는 물리적 특성과 이에 관련된 사상적 의미가 부여된다.
청룡은 목, 즉 동방이며, 백호는 금, 즉 서방이고, 주작은 화, 즉 남방이며, 현무는 수, 즉 북방에 배속
시킨다. 상대향은 땅에서 출발하여 사회상을 반영하고 지표의 경사, 지맥의 방향 등에 의하여 결정된다.
지형상 시계가 열리는 곳으로 이곳 저곳의 관계가 감각적으로 확인되고 폐쇄와 개방감 등과 관련된다.
산을 바라보는 향천적인 것이나 물을 바라보고 산을 등진 배산임수하는 방향설정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음양오행사상과 풍수지리사상은 통일신라시대부터 도선국사에 의하여 정립되어졌으며
고려, 조선을 이어오면서 사회전반에 확산되어 생활화되었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자들은 북송의 성리학자인 주돈이(1017~1073)의 태극도설에 영향을 받아 음양오행의
풍수지리사상에 더욱 심취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의 조영물은 자연과의 조화를 근본으로 하여 조성되기에
이른다. 모든 조원의 터잡기에도 이러한 자연을 생명체로 보고 지세를 허물지 않고 조영하였다. 자연의
지세가 허한 곳이 있으면 자연을 인공으로 비보하였던 것이다.
터를 잘 잡아놓으면 건축물을 앉히기가 용이해진다. 여기에 야생화조원을 하면 가장 잘 어우러진
경관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조원(造園)건축물
야생화조원은 건축물의 쓰임새에 따라 행랑채, 사랑채, 안채 등에 딸린 부속정원으로 관리되기도 하고,
위치에 따라 건물의 앞정원, 뒷정원, 옆정원으로 구분이 된다.
조원 공간 속에는 문, 대(臺), 루(樓), 각(閣), 정(亭), 사(榭), 당(堂), 재(齋), 헌(軒), 관(館),
전(殿), 사(詞), 엄(广), 낭(廊)과 같은 유형의 건축물이 건립되는데, 이들이 차지하는 공간에
조원을 하면 건축물이 가지는 각각의 성격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게 된다.
문(門)이란 공간의 영역을 표시하는 구조물로서 내외의 상징성을 갖는 건축물이다. 문은 목조로 짜여진 것이
대부분이지만 전축으로 된 것과 석축으로 된 것도 있고, 싸리문도 있다. 왕궁의 궁문이나 성곽의 성문은
문루의 형태를 하고 있다. 담과 담 사이의 통로를 연결하는 작은 협문들은 조원공간을 깊고 은밀하게
만들어준다. 문의 형태는 검은 벽돌로 쌓은 원형의 만월문도 있고 한 개의 돌을 ∩형으로 다듬은 창덕궁
후원 같은 불로문도 있어 다양하다. 또 우리나라 전통건축에 달린 문에는 창호지를 발라 출입문과 창문을
겸한 문의 형식을 하고 있다. 문살을 꽃모양과 동식물, 인물 등을 묘사한 투각장식 문살과 정자형, 격자영
등 기하학적 문양을 한 문살이 있다. 이들 문살은 난간과 함께 전통건축의 아름다운 장식효과를 높여주고 있다.
대(臺)라는 것은 흙을 견고하게 높이 쌓아서 그 위에 사람이 올라가 주변
경관을 구경하는 것인데 그 대가 사람들의 하중을 지탱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것은 돌로 쌓고 그
위에 평판을 깔고 지붕을 얹은 것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누각의 앞면에 일보 정도 튀어나오게 하여 개방시켜
놓은 것도 있는데 이러한 것을 모두 대라 한다. 첨성대, 관천대는 천문을 관찰하는 대이다. 부여 백마강가의
자온대, 조룡대, 천정대, 희녀대 등이 있고 북한산성의 동장대, 서장대나 남한산성의 수어장대 등 적을
감시하는 대나 통신시설인 봉수대가 있다. 경치를 구경하는 자연산봉의 대도 많아 대표적인 경포대는 경관을
구경하는 누각형식의 대이다.
루(樓)는 중첩하여 지은 집을 말하고 각(閣)은 루와 같은 높은 건물이다. 정(亭)은 경치 좋은 곳에
휴식하기 위하여 건립한 집이다. 『동문선』에 실려 있는 이규보가 쓴 사륜정기를 보면 정자의
기능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여름에 손님과 함께 동산에 자리를 깔고 누워 자기도 하고, 혹은 앉아서
술잔을 돌리기도 하고, 바둑도 두고, 거문고도 타며 뜻에 맞는 대로 하다가 날이 저물면 파하니
이것이 한가한 자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햇볕을 피하여 그늘을 찾아 옮기느라 여러번 그 자리를
바꾸게 되므로 그때마다 거문고, 책, 베개, 대자리, 술병, 바둑판이 사람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지므로
잘못하면 떨어뜨리는 수가 있다.” 필요한 도구를 실은 채 쉽게 옮겨 다닐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사륜정기의 요지이다. 참으로 기발한 착상이다.
정자는 자연을 즐기는 가장 친근한 건물이다. 그러기에 자연 속에 동화하고자 하는 한국 사람에게는 조원
공간 안에서 가장 조원적인 건물이 정자이다. 우리나라는 봄의 신록과 여름의 녹음과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경이 아름답고 변하는 산과 들과 강의 절경에 정자를 많이 지었다. 정자의 배치를 보면 연못가에 배치한
것이 있고, 산마루나 언덕 위에 배치한 것과 집 뒤뜰의 한적한 공간에 배치한 것이 있다.
정자의 평면을 보면 정사각형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장방형, 육각형, 팔각형, ㄱ자형, 정(丁)자형, 다각형,
부채꼴 등이 있으나 이런 정자는 많지 않고 왕궁이거나 관아의 공간 속에 있다. 정사각형의 정자로 아름다운
것은 창덕궁의 애련(愛蓮)정, 태극정, 승재(勝在)정, 농수(農繡)정, 괘궁(掛宮) 등이 있다.
당(堂)은 정침(正寢)의 건물을 말한다. 당이라 하는 집은 대개 중앙칸에 대청이 있고, 양쪽에 방이 있는
구조의 집이다. 이런 형태는 창덕궁 후원에 있는 영화(暎花)당(1692년 재건)이나 가정(嘉靖)당(20세기
초 건립)과 도산서원의 전교(典敎)당(1574년 건립)이나 옥산서원의 독락(獨樂)당(1516년 건립) 등이
그런 집이다.
재(齋)라는 건물은 선비들이 수신하는 간결한 집으로 대체로 방과 마루가 있으며 외진 곳에 한적하게
건립되어 있다. “재를 당과 벼교하여 보면 기를 갈무리하고 들여서 정신을 수습하게 하는 곳이다.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숙연하고 경건함을 갖도록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숨어서
수신하고 은밀하게 처신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 양식이 활짝 펼쳐지거나 눈에 잘 뜨이는 것은 좋지 못하다.”
헌(軒)은 높고 활짝 트인 장소에 드러나게 건립한 집이다. “헌의 양식은 옛날의 수레와 유사하여
높은 곳에 올라 의기양양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헌은 마땅히 높고 활짝 트인 장소에
건립하여 빼어난 경치에 보탬이 되게 한다면 서로 어울릴 것이다.” 이를 보면 헌이란 건물은 재란
건물과 반대적인 기능의 의미도 있다.
관(館)이란 건물은 임시 거추하는 건물이었다. 객관이 그것이다. 요즘 말하는 여관과 같은 것이다.
전(殿)이란 집은 왕이나 왕비 또는 선왕과 대비가 거처하는 궁 건물과 왕과 왕비의 신위와 영정을
모신 집을 말한다.
사(詞)는 사대부의 가묘와 공적으로 찬양해야할 충신열사의 신위를 모신 사당과 각 서원에는
학덕이 높은 학자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 있다. 가묘를 두는 것은 성리학이 들어와서 주자가례에
의해서다. 최초의 가묘는 고려 말 정몽주에 의해 집안에 세워졌다.
엄이란 집은 바위를 의지하여 반 지붕의 형태로 지어진 눈썹 집이다. “옛날 사람들은 바위에
의존하여 지은 집을 엄이라 한다. 대개 바위의 형세를 이용하여 집의 형태가 이루어지나 완전한
집의 모양을 이루지 못한 가옥을 엄이라 한다.”
낭(廊)이란 정단 좌우와 중문에서 시작하여 외곽을 둘러서 있는 긴 건물이다. 때로는 집과 집
사이를 연결하여 굴곡을 이루거나 갈짓자를 이루기도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집안의 정원을 야생화로 조원하는 것이 제격이다.
■ 마당
우리나라의 마당이란 의미는 주로 추수 등 경제적인 활동이나 잔치를 벌이는 장소로써 이용되어 왔고,
여름밤에 멍석을 깔고 옥수수를 쪄먹으며 별을 보다 졸기도 하는 교류의 장 등으로 활용되어 왔다.
마당에는 건물의 기능을 보완하면서 다양한 기능이 있기 때문에 마당의 명칭은 일정한 기능이나
장소의 이름을 따른다. 건물 안쪽 마당에는 바깥마당, 행랑마당, 사랑마당, 중문간 마당, 안마당,
앞마당, 옆마당, 뒷마당 등으로 구획되어 있어 각기 다른 형태와 모양의 정원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사랑마당이나 별당마당, 안마당을 제외하고는 정원이라기보다는 활동공간의
일부분으로서의 기능만 한다.
서민주택의 마당에는 앞마당이 주가 되고 규모가 다소 더 큰 경우에도 뒷마당을 두고 주로 타작
마당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중류주택의 마당은 독립된 건물이 늘어남으로써 앞마당, 뒷마당,
옆마당 등 몇 개의 마당으로 나누어진다. 그 기능은 서민주택과 별 차이가 없으나 앞마당이나
옆마당에 채소밭을 만들거나 과실수를 심고 사랑마당에는 화초를 심어 조경의 개념이 나타난다.
상류주택의 마당은 행랑채, 사랑채, 안채, 별당, 사당 등으로 건물이 나누어져서 담장과 건물과 건물
사이에 행랑마당, 안마당, 사랑마당이 구획되어지면서 사랑마당, 별당마당, 안마당에 조경다운
경관이 나타난다. 사랑마당에는 주인의 취향이나 품격에 따라 배롱나무, 목단 등의 나무를 심고
괴석을 심은 석분을 몇 개 배치하고 연못을 파거나 연못을 팔 수 없는 자리에는 석련지石蓮池를
설치하여 연을 키우기도 한다. 별당의 앞마당은 꽃이 화사한 과수 등을 심는다.
마당은 그곳을 보고 즐기기 위한 공간으로 꾸며질 때 여러 요소들이 첨가된다, 문, 담장, 굴뚝과
석물로는 괴석, 석조石槽가 있겠고 또 공간이 넓다면 연못을 판다. 또 후원에는 화계花階를 설치한다.
우리나라 건물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배산임수背山臨水(산을 등지고 물을 가까이 함)를 하고 있는데
이 경우 후원은 언덕이 된다. 이 언덕에 궁궐의 경우 장대석을 쌓고 민가의 경우 자연석을 쌓아서
계단형식의 화단을 만들었는데 이 화단을 화계라 한다. 화계에는 화초와 키 낮은 과수를 심었다.
이렇듯 마당은 조경을 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한국의 전통적 형태의 모양을 이루며 발전해 왔다.
마당에 조경을 할 때 환영받는 식물의 등급은 세조 때의 강희안이 지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 잘
나타나 있다. 강희안의 화목 9등품에 의하면 1등급에는 높은 운치, 2등급에는 부귀, 3. 4등급에는 운치,
5. 6등급에는 화려함, 7. 8. 9등급에는 장점을 나타내는 수종을 들고 있다. 이렇게 수목을 선정할 때
수목의 품격과 그 상징성을 중요시했던 것이다. 이러한 조경식물의 특징으로 첫째, 주로 낙엽 활엽수,
둘째, 대부분이 화목이나 과목, 셋째, 중간 크기의 나무나 관목, 초화류가 많이 사용되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화류花類와 목류木類에 관해서 집대성시킨 문헌은 숙종 때의 홍만선의
『산림경제』와 조선말의 서유거의 『임원십육지』가 있다. 여기에 따르면 수목을 심을 때 음양의
조화를 중요시하여 중정中庭에는 큰 나무를 심지 말고 꽃을 가꾸어 음을 취하라 하고 집 주위에는
울창한 소나무와 대나무가 있으면 좋다고 하였다. 또 풍수지리를 준용準用하여 동쪽에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를 심고 남쪽에 매화와 큰 대추나무를, 서쪽에 치자나무와 느릅나무를, 북쪽에 벚나무와
살구나무를 심는 것이 좋다하여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에 대신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 당시에도 식물의 생태적 특성에 맞는 식재를 하였다는 것인데 진달래는 음수이므로 응달이나
나무 밑의 그늘진 곳에 심으라 하였고, 국화는 서향하며 양성이므로 동쪽 울타리에 심으라 했다.
기능적인 면도 중시하여 대나무는 북서쪽에 심어 원내의 백화를 보호함이 좋다 하고 북동쪽이나
남서쪽의 큰 나무는 흉하고 북서쪽의 큰 나무는 길하다고 한 것은 우리나라의 풍향과 태양의 고도를
고려한 것이다.
이렇듯 마당에서 서민들은 봉숭아를 쓰다듬으며 시름을 달랬고, 선비들은 소요하며 시국을 생각하였다.
■ 전통조원
한국의 조원 속에 배치된 화목은 기본적으로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여 전지하거나 인공적 기교를 가미한
나무를 심지 않았다. 이는 일본과 비교해 아열대성 수목이 많아 상록수가 많은 일본의 식생과는 다른 것으로
기후적인 영향도 컸다.
전통적으로 문앞에는 회화나무, 대추나무를 심고 정원에는 화초류를 심되 거수를 피했다. 우물 옆에는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았고, 집안에 무궁화나 상록수를 심지 않았다. 동쪽으론 복숭아, 버들, 서쪽은
뽕나무, 대추나무, 치자나무, 북쪽은 느릅나무, 벚나무, 살구나무, 북동쪽에는 대나무를 심는 등 상징성과
생태의 차이에 따라 심는 장소와 방향을 달리했다. 성균관, 향교, 홍문관, 주합루 등 정형화한 제례·의례
공간에는 같은 수종의 나무를 쌍으로 심어 엄숙·장중함을 더했다.
이렇듯 수종을 보면 나무 자체가 상징성을 가진 것도 있다. 은행나무는 공자와 연관된 것이라든지,
괴목은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를 말하는데 왕궁과 관련이 있는 나무라든지 하는 것이 있다. 그래서
은행나무는 문묘와 향교, 서원, 유학자의 공부하던 곳에 많이 심어져 있고, 괴목은 왕궁 궁문 안에 많이
심어져 있다. 괴위(槐位)는 삼공(三公)의 자리를 상징하는 것이며, 괴신(槐宸)은 왕궁을 상징하는 것이
모두 그러한 연유에서이다.
강희안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화목의 품격을 논하고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송, 죽, 매, 란,
국, 연을 좋아하였다. 민가에서는 감, 대추, 모과, 배, 살구, 밤, 포도 등 과일나무를 좋아하였다.
과일나무는 조상의 제상에 올라가는 제과와도 관련이 있다. 화목은 그 지방의 기후와 토질에 맞는
것이면 다 좋은 것이다. 수형에 있어서는 직간으로 자라는 수형보다는 사간으로 자라는 수형을
좋아하였다. 배식에 있어서는 자연스러운 배식을 하였는데 길가에 심은 경우 바위는 담장이나 어떤
구조물과 조화를 이루어 심은 것이 있고, 화계나 단을 조성하여 심은 것이 있다.
원림을 조성함에 있어서는 사람이 심었는데 인공의 배식 같지가 아니한 배식을 좋아하였다.
연못 속의 섬에는 소나무나 대나무, 백일홍 같은 것을 심기도 하였고, 종묘나 묘역의 연못 속
섬에는 향나무를 심은 것도 있다. 제사와 관련된 곳에는 향나무를 심었다. 민가의 마당에는
배식하지 않았다. 화목에 있어서 수림을 조성하는 것을 좋아 하였으며 화초나 일년초의 화단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수목들은 느티나무, 버드나무, 배나무, 잣나무, 모란, 매화,
오얏꽃, 복숭아꽃, 소나무, 대나무, 산수유, 철쭉, 차나무, 인상, 은행나무, 뽕나무, 박달나무
등이 보인다. 특히 조선시대 조경과 관련된 문헌들에서 화목의 기르는 방법과 품평과 괴석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양화소록은 강희안(1417~1464)이 쓴 책으로 화목의 기르는 방법과 품평과 괴석에 대하여
기록하였고, 지봉유설은 이수광(1693~1629)이 쓴 책으로 미화, 모란, 장미, 영산홍, 동백,
창포, 오죽 등 19종의 화훼에 대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그 밖에 방흥생(1374~1446)의 이 쓴 촬요신서는 화목과 목본의 재식 시기와 접목
관리요령 등이 기술되어 있다. 한정록은 허균(1569~1618)이 쓴 책으로 치농편에 택지
정하는 것과 식수, 양어에 대한 방법을 기록하고 있다. 산림경제는 홍만선)(1643~1715)이 쓴
농가의 백과사전 같은 책인데 여기에는 꽃을 기르는 방법 등이 기술되어 있다.
색경은 박세당(1692~1703)이 쓴 농서인데 과수와 원예에 대한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택리지는 이중환(1690~1752)이 쓴 인문지리서로 사람이 살만 한 곳으로 사민총론, 팔도총론,
복거총론으로 나누어 썼는데 특히 복거총론의 사람이 살 수 있는 여건을 지리, 생리, 인심,
산수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 밖에 신경준의 순인화훼잡설, 이재위의 물보, 유희의 물명보, 서유규의 임원경제지 등이
화목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수, 천(泉), 지당(池塘)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물은 흐르고 고이고 넘치는 것이 순리이므로
개울을 만들거나 폭포를 만들고 연못을 만들었다. 조원 속에는 정보다는 천을 구하였고 천이
솟아야 생명이 있는 지세로 보았다. 샘이란 고대부터 사람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물의 공급처이기에 중요하게 여겼고 신령스럽게 보호하였다.
한국의 모든 조원 공간 속에는 샘이 있다. 개울에 물을 막아 소, 담을 형성한 것도 있고
인공적인 연지를 만든 것도 있다. 지당은 직선과 곡선을 이용한 것이 기본인데 경주 안압지
같은 것은 직선과 곡선의 절묘한 배합을 시현하고 있다. 월성의 해자에서는 지형에 따라 다각형의
못이 연속적으로 성 둘레에 조성되기도 하고, 백제의 부여 정림사지 앞의 연지는 방형으로서
이러한 방형은 조선시대 와서 연못 형태의 기본을 이루었다. 서양처럼 하늘을 향하여 쏘아
올리는 분수는 만들지 않았다. 이는 물의 순리를 역이용한 것으로 자연의 순리에 어긋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고려 이전까지 괴석은 돌부리를 지맥에 묻어 평(平)치, 군(群)치, 첩(疊)치, 특(特)치 등의
기법으로 배치하였다. 평치는 한 면만 좋은 돌을 흩어놓은 기법이며, 군치는 여러 개의 돌을
모아 놓은 기법으로 작고 큰 것의 조화가 요구된다. 첩치는 여러 개의 돌을 포개놓은 것을
말한다. 특치는 어떤 면에서 보아도 아름다운 돌을 하나만 놓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자연석 놓는 기법은 세우는 것보다는 눕혀서 안정감을 주는데 특색이 있다. 조선시대에
오면 석분 위에 괴석을 심어서 배치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이 괴석은 경(景)석 같은 기능으로
삼신산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많다.
축경(縮景)식의 상징주의 조원에는 조산이나 가산(假山)이 많이 조성된다. 신라의 동궁
원지인 안압지는 축경식 원(園)으로 무산 12봉의 가산이 조성되어 있다. 별서나 민가의
연못에도 무산 12봉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한국의 원에 있어서 자연의 원림 속에 담하나 둘러치면 원내(苑內)가 되었다. 담은 대단히
중요한 구역적 개념을 주는 구조물이다. 담에는 돌담, 흙담, 바자울, 꽃담, 전담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담의 축조에 있어 경사지는 직각으로 꺾어서 단을 지워 조성하였고, 민가나
사찰, 서원에는 다듬은 돌로 담을 조성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원(苑)의 기물로는 수조(水槽), 석상(石床), 물레방아, 단(壇), 대(臺) 등이 배치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연지 속에는 배를 띄우기도 하고 조각물이 배치되기도 하였다.
보도(步道)는 지형에 따라 설치하였다. 계단을 만들거나 산세를 허물고 길을 내는 일은 좋아하지
않았다. 직선보다는 굴곡진 길이 많고, 넓었다가 좁았다 하는 변화를 주어 지형에 맞게 조성되었다.
4.정원의 구성
정원을 분석하려면 먼저, 정원이 생긴 모양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정원의 모양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으로서
주택의 앉음새와 관련해서는 더 많은 종류의 형태가 나타난다.
정원은 자연스럽게 주택에서 대문으로 나아가는 방향의 앞, 옆, 뒤에 형성이 된다. 우선 앞정원은 대문을
들고 날 때마다 자주 마주치게 되는 공간이다. 솟을대문에 걸어놓은 빗장을 열고 육중한 나무대문을 들어서면
안마당이 보이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서 사랑채, 중문, 안채, 사당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대문을 들어서서 현관으로 가는 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접하는 길목이다. 이 길은 아버지. 어머니가 걷고
내자나 아이들도 지나다닌다. 아침에 이 길을 지나면서 느낀 상쾌한 기분은 대문을 나서서 하루 일과를
치루는 내내 즐거운 마음이 일게 할 것이다. 저녁에 대문을 들어서서 이 길을 따라 처소로 들 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안온한 심사가 들게 되고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게 하면 좋을 것이다.
이 길을 따라 걸아가면서 보이는 정경들이 각각 예술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 좋을 일이다. 앞은 트여서
시원하되 마당 저 편에 있는 한식 건물의 윗부분은 목련 등 교목의 이파리 사이로 드는 연두색 햇빛을 받아
처마가 그윽해 보이고, 집 뒷편의 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형성하는 옆정원은 보는 이로 하여금 뒷편의
비밀스런 정원을 상상케 하면 좋을 일이다.
전통적으로 앞정원에는 담 옆에 몇 그루 정원수를 심어두거나 둥근 모양의 화단에 작약이나 모란 등을 심어
두는 것 외에는 흙마당을 두었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집을 둘러보나 마찬가지여서 정갈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집안에 온기가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게도 한다. 한국의 집들은 난방을 위해 문을 적게 했고 그러다보니
집이 어두워서 마당의 난반사 효과로 조금이나마 집을 밝히려고 맨마당을 두었다고 한다.
요즘에야 단열재나 난방기술이 좋아 창도 커지게 되었고, 집주인마다 개성이 강한 조원을 하다보니 전통적
사고에 따른 정원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워졌으나 그래도 전통적인 가옥에서는 위와같은 모양의 정원을
고수하고 있다.
전통가옥에서도 들꽃과 들풀로 가득찬 마당을 꿈꿀 수 있다. 남향으로 난 대문을 들어서서 왼쪽 담 모퉁이로
가면 그늘지고 축축한 땅이 나온다. 여기에 들꽃인 괭이눈과 큰천남성을 심어두면 깊은 산중의 맛이 나와
집안에 사색적인 분위기가 흐르게 할 수 있다. 햇빛이 잘 드는 오른쪽 모퉁이에는 과꽃, 분꽃, 봉숭아꽃을
심어두어 때로 애들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주고, 허리를 구부려 분꽃잎에 코를 들이밀어 분꽃 향기를
맡으면 옛추억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할 것이니 젊게 사는 비결이 이 안에 있는데 무엇을 마다할 것인가.
대개 주택의 외부공간을 실용적·심미적 목적으로 처리한 뜰이 정원인데, 정원은 주거문화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한 사회와 시대의 생활문화와 가치체계 및 예술이 총체적으로 결집된 장소이다. 그러니 전통가옥이라
해서 흙마당을 고집할 일이 아니라 현대생활과 집주인의 취향에 맞게 정원을 가꾸어놓고 생활을 즐기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야생화조원을 할 때에는 아래와 같은 절차를 밟으면 좋을 것이다.
우선, 키가 큰 교목류보다는 꽃피는 화목류와 키작은 화목류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교목류는 가격도
비쌀 뿐만 아니라 옮기고 심는 데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수수꽃다리(라일락)와
같은 화목류는 교목이나 관목의 중간크기 정도여서 옮기기 쉽고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가지고 있어
정원에 심어두고 즐기기에 좋다.
다음, 야생화를 적절히 사용하여 무수한 변화를 엮어내는 것이 좋다. 교목이나 관목보다는 야생화의
종류가 매우 많아서 꽃의 색이나 전체의 질감을 잘 섞어서 심으면 정원이라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전통건축에서 후원은 여자의 뜰이라 일반적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민다. 뒷마당을 모란과 작약으로 가득
채우면 마루에서 내다보이는 뒷정원이 매우 아름답고 수수꽃다리 하나 심어두면 향기가 진동할 것이다.
5.야생화 조원
전통조경에 있어서 야생화조원이란 개념은 없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동안 우리 선조들은
유교적 사상과 풍토에 따라 마당에는 나무와 돌과 물을 즐겨 썼다. 이 과정에서 사용되던 일부 야생화는
어디까지나 부제였지, 절대로 주제로 대우를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현대인의 생활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주택의 외부구조에 변화가
생겼고 자재와 방법면에서의 개량으로 정원을 조망과 즐거움을 주는 공간으로 확보하게 되었다.
(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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