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스스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마르코스는 1957년 6월 19일 타마울리파스의 탐피코에서 스페인 이민자의 후손으로 태어난 라파엘 세바스티안 기옌 빈센테다. 가구와 전자제품을 파는 상인인 아버지의 8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자라났다. 양친은 결혼 전 시골학교 교사를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르코스는 아버지의 권유로 마르케스, 푸엔테스, 요사,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등의 작품을 탐독했다고 말한 바 있다. 예수회가 설립한 탐피코 문화센터에서 공부하면서 빈민가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해방신학도 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멕시코시티의 수도자치대학(UAM)을 졸업하고 멕시코 국립자치대학(UNAM)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수도자치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마르코스는 국립자치대학에서 연설하면서, 자신이 예전에 그곳에 있었음을 밝힌 바 있다.
기옌 빈센테의 가족은 마르코스가 자신들의 가족인지 여부에 관해 침묵한다. 누나 메르세데스 델 카르멘 빈센테는 타마울리파스 주의 검찰총장이자 20세기 멕시코 정계를 사실상 지배했던 제도혁명당의 유력 인사이기도 하다. 마르코스의 대학 시절 멕시코는 제도혁명당의 부패와 경제 위기로 젊은이들에게 앞날이 보이지 않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시기였다. 그는 동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1968년의 이른바 ‘68혁명’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다. 1983년경 기옌 빈센테 시절의 마르코스는 치아파스 주 원주민 마을에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10년대 멕시코 혁명운동가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이름과 정신을 따라 1983년 11월 17일 결성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에서 활동하면서 지금의 이름, 마르코스로 다시 태어났다. 이 이름은 군 검문소에서 사살 당한 동료 게릴라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다큐멘터리 ‘치아파스라 불리는 땅’에서 마르코스는 치아파스에서의 초기 생활에 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도시 문화의 세례를 깊이 받고 도시 생활에서 익숙해져 있는, 대학 교육을 받은 한 사람을 생각해보라. 다른 행성에 착륙한 셈이다. 말이나 환경이 모두 생소하다. 외계인과 비슷한 처지다. 모두 이렇게 말한다. “떠나! 이건 실수야. 넌 이곳에 어울리지 않아.” 낯선 사람들, 그들이 행동하는 방식, 기후, 비가 내리는 것, 태양, 대지(大地), 그것이 진창으로 바뀌는 것, 질병, 곤충, 향수병, 그들이 이런 것들을 알게 해준다. 그들이 다시 말한다. “넌 이곳에 어울리지 않아.” 이런 게 악몽이 아니라면 또 무엇이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