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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史 낚시·10 김영랑 시의 ‘물’ 이미지와 그 변모
서범석(시인/문학평론가/대진대학교 명예교수)
1. 상상력과 이미지
상상력은 예술 창조의 바탕이 되는 원동력이다. 이승훈은 상상력을 “위대한 질서의 원리로서 제재들을 분별하고 질서화하고 분리하고 통합할 수 있게 하는 능력”(『시론』, 1979)이라고 했다. 시에 있어서 상상력의 구체적 표현은 이미지(Image)로 나타난다. 창조 과정에서 상상력은 주체가 되고 이미지는 객체가 되는 유기적 결합체가 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식표출의 기본 단위인 이미지와 그것을 만들어 내는 상상력의 고찰은 문학연구에 있어 본질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은 한국 시문학사에서 현대시의 출발점으로 인정받고 있는 1930년대 ‘시문학파’의 핵심 인물인 김영랑(1903〜1950)의 시에 나타나는 ‘물’ 이미지를 살펴 상상력의 궁극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그것은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이 가리키는 의식 세계를 밝히고자 하는 작업의 일환인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김영랑 시의 발전 단계에 따라 그 변화 양상을 살필 것이다.
2. 내향성(內向性)의 상상력과 죽음 이미지(제1기)
이 시기는 김영랑이 『시문학』 창간호(1930)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했던 때부터 제1 시집인 『영랑시집』(1935)을 발간한 때까지를 이르는 시기이다. 일반적으로 초기 시는 출발점의 좌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지만, 김영랑의 경우 특히 의미의 비중이 높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김영랑의 시는 모두 87편이다. 그중 62%에 해당하는 54편이 제1기의 시라는 수량적 비중도 비중이거니와, 지금까지 있어 온 그에 대한 호평 ― 서정주의의 극치, 유미주의적 순수감각 등은 바로 이 시기의 작품들에 대한 찬사이기 때문이다.
(1) 상상력에 의한 내면화 양상
제1기의 시에는 다른 시기에 비해 물의 이미지가 많이(약 70%)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물의 이미지는 대개 ‘무거운 물’(비순수의 물)의 이미지로 표상되며, 여기에 작용하고 있는 상상력은 대체적으로 내향화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우울과 희망의 양의적(兩意的) 이미지에 작용하여 결국은 우울과 슬픔 그리고 죽음의식을 표출한다.
내 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도처오르는 아침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전문
이 시에 나타난 것은 ‘흐르는 물’의 이미지다. 1949년에 발행한 『영랑시선』에 시의 제목이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로 바뀌어 있는데, 이는 중심 이미지가 바로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임을 시사한다. 바슐라르(G. Bachelard)의 상상력 이론에 따르면(곽광수 외, 『바슐라르 연구』, 1981) 제1단계 상상력의 여가작용(與價作用)은 대상을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명사에 대한 작용이 아니라 그의 성질을 보여주는 형용사에 대한 작용이다. 그러므로 이 중심 이미지에서 상상력은 ‘끝없는’이라는 감각적 성질에 작용한다. 강물은 분명 유한성을 가졌지만, ‘끝없는’이라는 과장된 외관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영원성’이 환기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 흐르고 있는 강물은 그 존재 공간이 불투명하고 비현실적인 곳이다. 그것은 비순수, 불투명한 물이다. 이 우울과 불유쾌의 계수를 흐르는 강물에 대비시켜 보자. 상실과 원한으로 가슴에 흐르고, 눈물로 눈에, 욕망과 분노로 핏줄에 흐르는 것이다. 아침 빛에 반사되는 외부의 강물은 아름다운 ‘은결’을 돋우는 ‘밝음’인데 반해, 내 마음에 흐르는 강물은 ‘우울’이다. 이것이 앞의 영원성과 결합할 때, 보다 무거운 우울임이 확인된다.
이 시에 나타난 상상력의 궁극성은 외계의 강물이 마음속에 흐르는 것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그 궁극적인 지향은 ‘外→內’로 표시된다. 이러한 상상력의 방향은 시 의식의 방향을 읽어내게 하는데 그것은 바로 ‘內向性’이다. 이는 영랑 시에 대한 “내 마음의 세계”(정한모), “안으로―닫힘의 세계”(강희근) 등과 조응한다.
(2) 죽음 의식과 그 이미지
바슐라르에 따르면 물의 물질 속에는 강력하고 자연스러운 불행과 죽음의 상상력이 작용한다. 그러한 예로 바슐라르는 물의 이미지에 나타나는 두 가지 문화 콤플렉스를 설명한다. 하나는 죽음에 의한 이별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카롱 콤플렉스’이고 또 하나는 여성적이고 마조히스트적 자살 이미지를 나타내는 ‘오필리아 콤플렉스’이다. 물 이미지에 나타나는 상상력의 내향성은 김영랑의 시에서도 죽음의식으로 작용한다.
눈물에 실려가면 山길로 七十里/ 돌아보니 찬바람 무덤에 몰리네/ 서울이 千里로다 멀기도 하련만/눈물에 실려가면 한걸음 한걸음// 뱃장위에 부은 발 쉬일가 보다/ 달빛으로 눈물을 말릴까 보다/ 고요한 바다위로 노래가 떠간다/ 설움도 부끄러워 노래가 노래가
―『영랑시집』, 작품 7, 전문
이 시에 나타나는 물 이미지는 눈물이다. 그런데 서정적 자아가 눈물에 실려가고 있어서 그것은 ‘눈물 바다’이다. 제2연에서 ‘부은 발 쉬일가 보다’의 의식을 검토해 보자. 더 걸을 수 없는 지친 상태이다. 죽은 이를 찾아 70리 험한 산길을 헤매는 ‘남아 있는 자’의 삶의 한계상황이다. 부은 발은 쉬고, 눈물은 말려서 슬픔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것은 망각하거나 죽음으로 무화시키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노래가 떠가는 이유가 ‘설움도 부끄러워’이다. 왜 부끄러운가. 설움을 느끼며 생존하는 정도로는 무덤의 주인에 대해 부끄럽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슬픔을 망각하기 위한 노래가 아니라 죽어서 같이 가고 싶다는 것 아닌가. 물 이미지에 나타난 죽음의식이 드러난다.
3. 외향성(外向性)의 상상력과 대결 이미지(제2기)
제1기가 지나고 3〜4년간의 공백기를 거친 후 1939년 『조광』에 「거문고」와 「가야금」을 발표함으로써 제2기의 시가 시작한다. 그러나 일제말 암흑기를 맞아 겨우 2년 정도로 제2기는 끝난다. 이 시기의 시에는 주로 물의 이미지가 ‘난폭한 물’로 나타난다. 제1기의 물 이미지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1) 상상력의 외면화 양상
제2기의 김영랑 시는 제1기와는 상대적으로 외향성의 상상력이 작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는 개인적인 까닭, 문단적인 사정, 시대적인 상황 등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대적 요인이 강력한 변수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창씨개명, 신문 폐간, 황국 신민화 운동 등 일본의 강압적 조선말살 정책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잠ㅅ자리 설워서 일어났소/ 꿈이 고웁지 못해 눈을 떴소/ 베개에 차단히 눈물은 저젔는듸/ 흐르다못해 애끈히 고이었소// 꿈에 본 江물이라 몹시 보고 싶었소/ 무럭무럭 김오르며 내리는 江물// 언덕을 혼자서 거니노라니/ 물오리 갈매기도 끼륵끼륵// 江물은 철철 흘러가면서/ 아심찬이 그 꿈도 떠실코 갔소// 꿈이 아닌 생시 갖은 설움도/ 자꾸 江물은 떠 싣고 갔소
「江물」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이 시에서 물 이미지는 ‘무럭 무럭 김오르는 강물’과 ‘철철 흘러가는 강물’로 나타났다.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이 밤인 것을 생각하면 전자의 시각적 이미지는 현실적이라기보다 상상력의 작용에 의한 과장이다. 후자의 청각적 이미지도 강물에 대한 느낌이 ‘철철’이라고 한 것도 과장이다. 전자에서는 상상력의 상향성을, 후자에서는 남성성을 환원할 수 있다. 이러한 상상력은 제1연에서 ‘이러났소’라는 상향성의 이미지와 ‘눈을 떳소’라는 외향성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이와 같은 이미지는 외부세계를 인식하는 것으로 자아각성의 이미지이다. 곱지 못한 꿈(과거)에서 깨어나 현실을 보았을 때, 과거의 꿈도 현실의 설움도 강물에 흘러가듯 아주 없어져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의 궁극성은 ‘內→外’로 표시되며 외향성으로 환원된다. 제2기의 시에서 이러한 외향성의 이미지들은 ‘난폭한 물’의 이미지에 작용하는 상상력의 결과이다.
(2) 대결의식과 그 이미지
바슐라르의 『물과 꿈』에 의하면 ‘난폭한 물’은 용기의 도식이며, 공격적인 것의 상징이며, 선험적인 분노로 ‘적극적 행동주의’ 뉘앙스를 풍긴다. 그것은 두 가지 문화 콤플렉스로 설명된다. 근육을 움직여 수영하는 행위에 들어 있는 양의성(兩義性)―승리와 패배를 동반하는 ‘스윈번 콤플렉스’이고 또 하나는 여기에 사디즘을 첨가한 ‘크세르크세스 콤플렉스’이다. 김영랑의 제2기 시에 나타나는 난폭한 물의 이미지에서도 유사한 대결의식을 검증할 수 있다. 그것은 외향성의 상상력 작용으로 강압적 외부 현실에 대한 대결의식이 물 이미지에 침전되어 있음을 뜻한다.
그대 훗진노래를 들으실까/ 꽃은 가득 피고 벌떼 닝닝거리고// 그대 내 그늘 없는 소리를 들으실까/ 안개 자욱이 푸른 골을 다 덮었네// 그대 내 흥 안 이는 노래를 들으실까/ 봄 물결을 왜 이는지 출렁거리네// 내 소리는 궤벗어 봄철이 싫다리/ 호젓한 소리 가다가는 씁쓸한 소리// 어슨 달밤 빨간 동백꽃 쥐어따서/ 마음씨 양 꽁꽁 주물러버리네
이 시 「호젓한 노래」의 제1∼3연은 갈등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각 연의 첫 행은 ‘자아’를, 둘째 행은 외부세계를 나타낸다. 전자는 고독과 허무와 우울의 이미지이고, 후자는 꽃, 안개, 물결 등으로 표출된 외부 물상(物像)이다. 급기야 제4연에서 봄철의 외부 물상들을 주저함 없이 ‘싫다’고 표명하는 분노를 준비한다. 제5연에서는 동백꽃을 쥐어 따서 꽁꽁 주물러 버리는 가학적 공격성에 이른다. 이러한 공격의 대상은 외부 현실일 것이다. 민족의 빼앗긴 현실과 그에 따른 궁핍한 시대에 대한 모욕과 원한이 응축한 복수심리가 물 이미지에서 대결의식으로 표출된 것이다.
4. 두 방향의 상상력과 참여와 허무의 이미지(제3기)
제2기가 끝난 1940년부터 5∼6년의 공백기(시대적으로 일제말 암흑기)를 보낸 뒤, 1946년부터 제3기의 시가 시작한다. 이 시기는 1950년 9월 김영랑이 전쟁의 와중에서 포탄의 파편으로 사망함과 함께 막을 내린다. 제3기는 민족사의 격변기로서 시인 개인에게도 큰 변화를 불러온다. 그는 광복과 더불어 우익운동에 앞장서기도 하고, 국회의원에 출마(1948)하기도 한다. 또한 46년간 살아온 고향을 떠나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고, 공보처 출판국장을 역임하기도 한다.
이 시기 김영랑의 시는 두 계열로 나뉜다. 주어진 자유 속에서 거리낌 없는 현실참여의 시를 보여주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인생의 허무를 노래하는 시를 남기기도 한다.
(1) 두 방향의 상상력과 그 양상
제2기의 시에서 물 이미지 분석을 통하여 상상력의 궁극성이 ‘內→外’로 열린 외향성임을 보았다. 제3기의 시에서도 이러한 궁극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계수는 이 시기의 모든 시에 적용되지 않는다. 또 한편의 궁극성은 ‘外→內’로 나타나고 있는데, 결국 제1기와 제2기의 상상력이 병존하고 있다.
바다로 가자 큰 바다로 가자/ 우리는 인젠 큰 하늘과 넓은 바다를 마음대로 가졌노라/ 하늘이 바다요 바다가 하늘이라/ 바다 하늘 모두다 가졌노라/ 옳다 그리하야 가슴이 뻐근치야/ 우리 모두다 가잣구나 큰 바다로 가잣구나/ 우리는 바다 없이 살았지야 숨 막히고 살았지야/ 그리하여 쪼여들고 울고불고 하였지야/ (중략)/ 오 – 바다가 터지도다 큰 바다가 터지도다/(중략)/ 우리들 사슬 벗은 넋이로다 풀어놓인 겨레로다/(중략)/ 바다로 가자 우리 큰 바다로 가자 ―「바다로 가자」 부분 발췌
이 시의 중심 이미지는 시의 수미(首尾)를 이루는 ‘큰 바다로 가자’이다. 여기에 나타난 물은 ‘희망의 물’이다. 광복의 기쁨과 희망을 담고 있는 이미지이다. 이 시에서 물 이미지는 ‘터지는 바다’이고 여기서 상상력은 밖으로 향한 확산 작용을 담당한다. 여러 번 반복되는 ‘넓은 바다로 가자’라는 이미지도 이러한 지향을 나타낸다. 이러한 상상력은 제24행의 ‘툭 털고 일어서자’와 제25행의 ‘사슬 벗은’과 ‘풀어 놓은’에 작용한다. 그것은 상상력의 방향이 ‘內→外’임을 말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상반된 계열의 시들을 만날 수도 있다.
수풀 아래 작은 샘/ 언제나 흰구름 떠가는 높은 하늘만 내어다보는/ 수풀 속의 맑은 샘/ 넓은 하늘의 수만별을 그대로 총총 가슴에 박은 작은 샘/ 두레박을 쏟아서 동이가를 깨지는 찬란한 떼별의 훗는소리/ 얼켜져 잠긴 구슬 손결이/ 온 별나라 휘흔들어버리어도 맑은 샘/ 해도 저물녘 그대 종종걸음 훤듯 다녀갈 뿐 샘은 외로워도/ 그 밤 또 그대 나와 샘과 셋이 도른도른/ 무슨 그리 향그런 이야기 날을 새웠나/ 샘은 애끈한 젊은꿈 이제도 그저 지녔으리/ 이밤 내 혼자 나려가볼거나 나려가볼거나 ―「수풀아래 작은 샘」 전문
이 시에서 물 이미지는 ‘수풀 속의 맑은 샘’이다. 상상력의 여가작용에 의해 ‘수면’이 ‘가슴’으로 변질했고, 하늘의 별을 물에 끌어들이기도 한다. 이는 상상력의 내향성에 의한 결과이다. 하늘의 별을 샘속으로 끌어들임도 같은 작용이다. 내향성의 궁극성이 더욱 잘 표출된 것은 그 샘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마지막 제12행의 행동 이미지이다.
(2) 참여·허무 의식과 그 이미지
위와 같은 상상력의 두 갈래는 이 시기 시의 이미지들을 두 계열로 양분한다. 외향성의 상상력은 외부 현실에 적극적으로 눈을 돌리게 하여 현실참여 의식을 표출하는 이미저리를 형성하며, 내향성의 상상력은 과거를 되돌아보며 인생의 허무의식을 표출하는 또 하나의 이미저리를 만들어낸다.
가. 참여의식과 이미지
현실참여의 시 의식은 이 시기의 두 가지 역사적 사실에 접맥된다. 하나는 8·15 광복과 관련되며, 다른 하나는 광복 직후 좌우익 충돌과 관련된다. 전자와 관련되는 시들은 앞에서 본 「바다로 가자」처럼 감격과 희망의 이미지로 형상화되며, 후자는 참상의 현실에 대한 고발 이미지로 나타난다.
탕탕탕 탕탕 자꾸 쓰러집니다/ 연유 모를 떼죽음 원통한 떼죽음/ 마지막 숨이 다져질 때에도 못 잊는 것은/ 下弦 찬 달 아래 鐘鼓山 머리 날리는 太極旗/ 오 … 亡해가는 祖國의 모습/ 눈이 차마 감겨졌을까요/ 보아요 저 흘러내리는 피의 줄기를 ―「새벽 處刑場」 부분, 동아일보 1948.11.14.
여기서 시인은 명백히 정치현실을 문제 삼고 있다. 광복을 갈구했던 우리 민족 앞에 다시 닥쳐온 불행을 고발하는 것이다. 김영랑은 1948년 10월 여수반란 사건의 현장을 직접 시찰한 바 있는데, 이 체험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러한 시는 이 시기에 한 무리를 이루고 있다.
나. 허무의식과 이미지
제3기는 개인사적으로 볼 때, 김영랑의 말년에 해당한다. 젊은 나이에 비명(非命)에 갔지만 그는 이 시기에 인생의 노경(老境)을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편의 시에서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하는 이미지를 통해 거기에 담긴 허무의식을 드러낸다.
걷던 걸음 멈추고서서도 얼컥 생각키는 것 죽음이로다/ (중략)/ 웬 노릇인지 요즘 자꾸 그 죽음 바로 닥쳐온 듯만 싶어져/ 항용 주춤 서서 행길을 호기로히 달리는 行喪을 보랏고 있느니 ―「忘却」 부분
40대의 시인이 왜 이런 허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첫째,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이다. 첫 부인과 두 아들의 죽음 등으로 30대부터 이러한 강박관념이 있었다고 한다. 둘째, 광복 후 이어진 민족 분단의 현실에서 오는 절망감을 수용한 허무. 셋째, 서울로 이주한 현실에서 오는 회상적이고 귀소적인 태도와 결합된 허무 등을 떠올려 본다.
5. 상상력이 그린 무늬
이번 출조에서는 1930년대 시문학파의 대표적 시인인 김영랑 시의 ‘물’ 이미지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상상력의 궁극성을 잡아당겨 시 의식의 변모 양상을 살림망에 담았다. 김영랑의 경우 내향화하는 상상력은 슬픔이나 죽음의식을 이미지로 표출시키고, 외향화하는 상상력은 대결이나 희망의 이미지를 표출하고 있다는 역동적 옆줄의 아름다운 무늬와 색이 그려져 있었다. 이 글은 시기별 상황에 대응된 상상력의 변모가 그리는 궤적를 낚아 본 것이다. 지속하는 것은 ‘물 이미지’이고 변모하는 것은 ‘시 의식’이라고 하겠다.
* 이 글은 졸저 『문학과 사회 비평』에 있는 「김영랑 시에 나타난 ‘물’ 이미지」의 내용을 줄이고 다듬으면서 다시 쓴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