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고개 ~ 소호고개
1. 산행 일정
1) 일 시 : 2011. 01. 23. (일) 07:10 ~ 12:00(날씨 : 맑음)
2) 주요산 : 단석산(829m)
3)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산내면 및 내남면 , 건천읍
4) 동 행 : 백양동문산악회
5) 산 행 : 당고개 - 689(단석산왕복) - OK연수원 - 상목골재 - 700(경북․울) - 소호고개
2. 당고개 ~ 소호고개 구간(18.5km)의 개요
당고개에서 소호고개까지 표고 약320m에서 약840m사이로 마루금이 이어지고 당고개에서 단석산까지 급하게 상승하는 고비를 넘기고 나면 이후부터 약480m ~ 700m 범위의 봉우리를 산행하여 큰 어려움은 없다. 689봉은 단석산과 낙동정맥의 분기점이고 단석산까지는 추가로 다녀와야 하고, 700봉은 경북과 울산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단석산은 국립공원이며 중턱의 신선사에는 마애불이 벽화로 조각되어 석굴암으로도 불린다. OK그린연수원은 구릉에 넓은 초지와 저수지를 조성하여 놓았다. 상목골재에는 다양한 정승이 한국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으며, 아래에는 경주납석광산과 숯불가마찜질방이 촌락을 형성한다. 소호고개에 이르는 곳부터 차츰 고도가 높아지는데 낙동정맥이 다시 기를 발원하니 백운산, 고헌산 등이 영남알프스의 산세로 연결된다.
3. 산행의 흐름과 메아리
1) 들머리에서
경주 콘도에서 피로를 풀어내고 편안한 아침을 맞이하며 낙동정맥을 할 수 있는 것은 행운이고 큰 축복이리라. 여러모로 후원하시는 집행부에 감사를 표하며 경주 할매해장국집에서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먹고 당고개로 이동을 한다. 하늘은 눈이 오려나 흐리고 추위도 배가 따뜻하여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비를 챙기고 당고개에 들어선다.
2) 당고개 - 689(분기:단석산왕복) - OK연수원 - 529 - 606 - 상목골재 (07:40~12:00)
당(땅)고개에는 개짓는 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깨운다. 개가 아무리 짖어도 의례 그러려니 하면서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처음 한두번은 개짓는 소리에 관심을 가졌겠지만 이후부터는 만성화되어 무관심으로 일관하듯이 우리사회에서 안전 불감증도 이런 요인과 동일할 것이다. 안전 불감증을 줄이려면 관리시스템을 구축하여야 되는데 불감증의 원인을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일정한 주기로 관리하도록 구축해야한다. 이런 것을 외면하다 보면 피로도가 누적되어 안전을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주변에 안전불감증의 요인을 파악하여 관리하는 습관이 널리 퍼지기를 바라며 단석산(국립공원)으로 치고 올라가는 길이 만만찮다. 경사도가 심하면서 낙엽아래로 눈이 숨어서 행로를 위협하고, 몸은 덜 풀려서 다리도 뻐근하다. 어제 먹은 육회 기운으로 뻑뻑한 다리를 가동시켜 몸을 활성화시키며 고도를 높여가고, 서로의 격려로 고통을 망각시키니 689봉에 안착한다. 이곳은 단석산과 낙동정맥분기점으로 단석산까지 왕복1600m를 가느냐마느냐 논쟁을 하다 기필코 단석산에 안착한다. 지나가면 다시 찾기가 쉽지 않다. 기회가 오면 쟁취하여야 한다.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면 언제 기회가 다시 올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기회가 제공될 때 그 위에 편승하는 것도 행운이다. 단석산도 예전에는 ‘단석(김유신 장군이 칼로 내리쳐서 갈라진 바위)’만 있었는데 표지석과 돌탑이 동석하여 서로의지하며 겨울을 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낳듯이 서로서로 힘을 합쳐서 전진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련만 왜 그렇게 한쪽으로 편중되어 행동하지는 안타깝다. 경주와 건천시내가 토함산과 고위봉 등의 호위를 받으며 풍요로운 들판을 제공하는 저곳이 신라 1,000년의 역사를 이룬 곳이리라. 역사는 미래를 보여준다. 특히 성장할 때와 패망할 때의 역사는 미래에도 동일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현재의 위치를 과거의 역사와 비교하여 제자리를 잡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문제는 이러한 비교조차도 없이 언제나 자신의 잘난 멋으로 살아가기에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리라. 전망대에서 산줄기가 힘찬 기상으로 웅비하는 것을 보면서 왜 겨울에는 산세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며 산의 정기와 웅비하는 힘을 품고 OK연수원으로 간다. 낙엽과 눈이 혼재하면서 여러 가지 변화를 보여준다. 변화는 눈 녹듯이 서서히 진행되면서 어느 날 갑자기 폭풍우로 밀려들 때가 많다. 매순간순간마다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만족감에 사로잡혀 있으면 변화의 의미도 인지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OK연수원은 구릉에 초지와 저수지 등이 조성되어 있어서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기에 좋은 곳이다. 넓은 초원이 부럽고,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세월이 구름처럼 부드럽게 흐르겠지. 소나무에 부러움과 욕망을 올려놓고 529봉우리를 넘어가니 목장지인지 쇠파이프가 기둥을 만들고 쓰러지는 집들이 산의 환경을 훼손하고 검은 비닐은 찢어진 육고기처럼 널부러져 날리며 음산한 분위기다. 자연과 어우러진 산촌을 만들면 많은 관광객도 유치할 수 있을텐데 왜 이리 폐허지로 방치할까? 겨울추위에 메마른 억새와 풀로 가슴에 쓸어가며 뒤돌아보니 아직도 단석산이 우리가 떠나가는 것이 아쉬운지 손을 흔든다. 606봉을 찍고 상목골재에 안착하니 장승이 재를 지키고, 숯불가마에서 민생고를 해결한다.
3) 상목골재 - 535 - 임도 - 685 - 701 - 700(경북,울산경계) - 소호고개(12:10 ~ 14:10)
장승이 악귀를 물리치는 상목골재에서 임도를 따르다 등산로로 들어선다. 완만한 구릉은 개발의 손길로 초지가 조성되고 절개지는 토사가 흘러내려 흉물스럽다. 부족한 마무리가 우리의 민족성을 대변하나? 아니면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부족하여 마구잡이로 대하는 것일까? 깔끔하게 단장된 사진 속의 자연환경을 그리며 봉우리를 넘는데 이곳도 철조망이 능선을 따라 쳐져 있다. 화려한 외부에 너무 현혹되지 마라 골병든 내부가 어떻게 터질지 알 수 없다. 내부가 터지면 외부는 일순간에 흘러내리게 되는 것이다. 폐허에 가까운 우리의 자화상에 한탄하여도 아름다운 미래는 계속 그려가야 올바른 정신이 심어지고 강산이 빛날 것이라. 경주시 산내면과 내남면 경계 안내판에서 낙동정맥의 오늘 남은 행적을 추적하며 685봉으로 상승하는데 시련을 부여 받는다. 두루뭉실한 봉우리도 머리에 혹 난 것 같은 바위들로 상징성를 부여하고, 그 뒤로 녹지 않은 눈이 무릎 깊이로 빠지며 멀고 힘든 길을 정신 차리라고 사릿대로 얼굴을 찰싹찰싹 때린다. 평화시대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필요하고, 독재시대에는 평화론이 필요하듯이 등산로에 따라 적절한 정책을 가미하며 나아가니 700봉이다. 경북과 울산광역시로 분기되는 곳으로 이제 낙동정맥의 경남으로 들어선 것이다. 저 멀리에는 앞으로 가야할 백운산과 고헌산이 부드럽게 미소를 띄운다.
4) 끝내기
소호고개에서 태종리로 하산하여 여정을 마감한 후 연산동 치악산 오리집에서 기운을 북돋우며, 집행부에 감사드리고, 낙동정맥 산행을 응원 온 친구들께 감사드린다.
* 단석산(斷石山)
단석산(829m)은 백제군사가 함양, 청도를 거쳐 경주로 들어오는 길목으로 국방의 요새로 신라 때는 화랑들의 수련 장소였다. 삼국통일 이전에는 경주 남산, 금오산, 토함산, 소금강산과 함께 신라인들이 신성시한 오악 중에서 중악(中岳)으로 부르며 영산으로 모셨고, 김유신 장군의 수도장으로 정상에는 김유신 장군이 칼을 내리쳐서 두 조각난 바위가 있다. 이 일대는 경주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정상부는 진달래 숲이 유명하다. 산중턱에 신선사(神仙寺)에는 마애불상군(국보 199)이 소장되어 있다.
*신선사(神仙寺)
신선사는 7세기에 자장의 제자 잠주(岑珠)가 창건했으며, 거대한 ㄷ자형 암벽에 10명의 불보살상이 새겨진 석굴법당이 있는데 신라 최초의 석굴사원으로 신라미술 및 신앙연구에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김유신장군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위한 이야기가 서려있는 곳이다. 김유신장군이 삼국통일을 위한 정성껏 기도를 올리니 귀인이 나타나서 비법과 신검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김유신 장군이 이 신검으로 바위를 내리치니 바위가 잘려졌으며 단석산 주위에는 많은 바위들이 잘려져 있단다. 그리고 김유신장군은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고 전해온다.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