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소에서 점심까지 먹고 느긋하게 나서서, 삼나무 길로 유명한 비자림로(1112번 지방도로)를 따라 걸었다.

뒷편에 보이는 것이 한라산. 이날도 버스를 만나지 못한 것이 행운이었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 속에서 날이 갈수록 몸이 가볍고 걷는 일이 즐거워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아직도 억새들이 향연이 곳곳에 벌어지고 있었다.
가을에는 어떠했을지 짐작만 해도 눈부시다.

여러 개의 목장을 지나고,

까마귀떼들의 그악스런 소리도 음악으로 들으며

송당리까지 오니, 어느 덧 어스름이 내려앉았다. 눈앞에 비자림과 용눈이오름을 두고 버스를 탔다. 후일을 기약한 채.
다음 날 우도에서 나와 용두암 근처의 찜질방에서 자고 그 다음날 올레 16코스로 향했다.
16코스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2주간의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어느 하루도 맑은 일출을 보지 못했다. 이날도 아침 흐림이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그런 축복의 날이 내게 있을까..? 이런..... 나는 아직도 이렇다.^^

16코스의 초입. 바다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까마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빨간 공(?)이 해녀들이 있는 곳이다. 해녀들의 물질 소리가 신기했다.

해안 절벽 위를 걷는 올레꾼들

귤밭과 그 한 가운데 있는 묘지

해안선이 끝나자 숲길로 이어지는 올레 길

양배추 밭과 그 한 가운데의 묘지.
이처럼 밭 중간이나 마을 부근의 오름 등성, 때로는 오름 분화구에서 묘지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제주에서는 묘를 산이라고 하고, 그 경계에 쌓는 담을 산담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산담은 전통 제주의 분묘문화가 아니라 몽골의 지배를 받고 마, 소를 방목하게되면서 생긴 분묘문화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제주의 묘에서 신장지역을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나 보다. 초지에 마,소를 방목하다보니 초지 형성을 위해 자주 불을 놓아 화전을 일구었고, 그로인한 불의 피해로부터 묘를 보호하고 가축에 의한 묘 훼손을 막기위해 산담을 쌓기 시작했다고 하니, 두 지방의 분묘문화가 그로 인해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산담에는 죽어서도 망자의 혼령이 집으로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입문을 만들어 두었는데, 망자가 남자인 경우에는 오른쪽, 여자는 왼쪽에 출입문을 두었다고 한다.

올레길 표지인 주황색과 하늘 색 리본, 모녀 올레꾼이 앞서 가고 있다.

제주에 왔던 이삼일은 제대로 걷지 못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날이 갈수록 날마다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아무래도 제주도로 이사를 가야할 듯..^^

제주의 장날은 2, 7일이다. 제주 민속장은 서울의 청량리 시장이나 성남의 모란 시장보다 그 규모가 훨씬 커 보였다.

4,000원 짜리 순대국밥, 눈감고 먹었더라면 순대국밥인 줄 모를 정도로 고기 냄새도 안나고 구수했다.
더구나 단호박찜과 파전까지 곁들여 나오다니... 감격과 행복감에 수저를 잡는 손이 떨렸다.^^

순대국밥으로 호사를 하고도 사람이 많은 곳에 끼어들어 호떡 하나 주세요~ 했더니, 20분 기다리란다.
그러나 일행과 약속 시간이 촉박해서 어쩔 수 없이 되돌아섰다.

이틀동안 사진동호회원들과 출사를 마친 일행과 동문시장 앞에서 만나 장을 보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중.
마침 버스정류장 앞 동문 로터리에서는 등불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비가 와서 축제는 다소 썰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