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04.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2024.11.04 05:20
- 일치와 친교를 원한다면
오늘 독서는 필리피 교회 신자들에게 하는 바오로의 간절한 권고인데
내일 듣게 될 그 유명한 ‘그리스도 찬가’의 서문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일 우리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듣게 될 텐데
그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고,
그렇기에 이 공동체는 가장 완벽한 일치와 친교를 사는 공동체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치와 친교를 사는 공동체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와 격려를 받으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그런데 저는 여기서 이점에 주목합니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하고 격려하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와 격려를 받으라고 하는 점
다시 말해서 ‘하라’가 아니라 ‘받으라’라고 하는 점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하고 격려하라고 하였다면
이것은 인간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데
인간적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받으라고 하니
이는 위로와 격려를 인간에게 받기보다 그리스도에게서 받으라는 것이고,
혹 인간의 위로와 격려를 받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받으라는 뜻이 됩니다.
위로와 격려를 우리가 서로 나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압니다.
위로와 격려를 인간에게서 받으려고 하면 받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받더라도 그 위로와 격려는 충분하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위로와 격려를 인간에게서 충분히 받지 못할 때
구차하게 계속 인간에게 매달리지 말고 즉시 주님께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옛날 제가 관구장 할 때 공부 때문이나 선교 때문에 외국에 있는 형제를 방문하면
혼자 있는 형제들이 둘이 있는 형제들보다 더 잘 지내곤 했는데 그것은
그가 의지할 사람이 없기에 힘들 때마다 주님께 위로와 격려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둘이 있는 형제들은 위로와 격려를 서로 받으려고 했는데,
둘 다 받아야 할 처지에 있었고, 서로 받으려고만 했기에
서로 줄 수도 받을 수도 없었으며 그래서 서로 미워했지요.
둘째로 ‘그리스도 안에서’를 얘기한 바오로는 ‘성령 안에서’를 얘기합니다.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눈다면”
쉽게 얘기해서 계 모임 같은 친교에 머물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성령 안에서 친교와 사랑을 나눠야 완전한 일치의 공동체를 이루지
계 모임 같은 친교와 사랑을 나누면 끼리끼리의 공동체가 되고 말 것입니다.
셋째로 겸손할 것을 얘기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겸손한 마음, 이것이 내일 우리가 보게 될 그리스도의 마음이고,
그리스도교적인 친교와 일치를 살게 하는 우리 인간 편의 덕목입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장 노력해야 할 것이 겸손입니다.
겸손 곧 가난한 자기를 아는 겸손에 늘 머물려고 노력한다면
그것도 그리스도의 겸손을 닮으려고 무진 노력한다면
하느님께서 노력에 상응하는 보답을 은총으로 주실 것입니다.
사실 겸손은 모든 덕의 기초 덕이고 사랑은 완성의 덕입니다.
겸손이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아무런 덕도 쌓을 수 없습니다.
겸손이 없으면 덕의 완성으로서의 사랑은, 시작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교적인 친교와 일치도 근본으로부터 불가능하게 됨을
묵상하고 성찰하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