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은 립스틱 외 2
김 태 길
온 몸을 단장하고
색조화장(色調化粧) 끝난 지금
마음 속 뜨거운 것
립스틱으로 마무리한다.
무서운 절정(絶頂) 립스틱
참을 수 없는 소리
빨간 포인트(Point)
겨울비도 말하지 않았던가?
얼어도 얼어도
땅 속은 봄이라고
요동치는 심연(深淵)
나의 맘
붉은 빛으로 얌전을 떤다.
보고 싶어서
보고 싶다고
당신을 보게 되어 “봄”
붉은 입술로 설레며
이제 너를 만나는가?
속삭이며 다소곳이
봄을 클릭 한다.
고 향
저
꽃내음 속
내 고향은
할아범 곰방대 안 불꽃사랑
숨 쉬 듯 비벼오는 노을은
오늘 뿐
내일은 내일
세대(世代)는 흩어져 촌음을 다투는데
무엇이 두려워
사랑을 미루랴
어디서 왔느냐
너의 긴 머리카락은
우리의 사랑 또한 그러하리라
사연 없는 노랜 떨어진 고무신
신나는 건 없다던
조각난
할아범 틀니
이래봬도 내겐 고향이 있다
내 고향
구름 한 점이면
네까짓 것
네까짓 것
흘겨보며
네까짓 것.
봄
바람.
대지(大地)를 두드리며
시절(時節)을 나른다.
싹.
땅을 가르고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흔드는 작은 지진들
향연(饗宴)이다.
소리.
못 견뎌 터져버린
무작위(無作爲)의 힘
새들.
귓구멍이 막혔냐고
아우성이다.
냄새.
잠을 깨우는 처음 것
눈을 뜨고
방향(芳香)을 잡는다.
꽃.
게으름을 향한 기본 옵션(option)
이래도
이렇게 해도
그렇게 할 터인가
봄이 오면
진달래도
가슴 속 씨앗으로 두근거리고
두 뺨으로 퍼지는 수줍은 춤
봄은
홀연히 네가 되어
숨었던 사랑도 숨을 쉰다.
기뻐 숨 차 바쁜 시절
누구든지
날
건들이지 마라
건들이지 마
지금
난
온 몸으로 온 몸으로
배설중이다.
<심사평>
한국신춘문예 2013년 시부문 당선작으로 김태길 시인의 ‘봄은 립스틱’ 외 2편을 선정한다.
시는 우선 함축된 언어 속에 대상에 대한 표현이 가장 절실하게 표출되는데에 그 매력이 있다.
그것은 오랜 세월의 시 작법의 수련과 사색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가장 진실한 언어는 침묵이거나 침묵에 가까운 언어이다.
김태길 시인의 ‘봄은 립스틱’이라는 시제(詩題)에서 예감하듯 이 시는 벌써부터 톡톡 튀는 어감을 통해 봄의 활기를 예감하게 해 준다.
2연의 -무서운 절정(絶頂) 립스틱/ 참을 수 없는 소리/ 빨간 포인트(Point)~ 와 3연의 -겨울비도 말하지 않았던가?/ 얼어도 얼어도/ 땅 속은 봄이라고~ 그러면서 시인은 마지막 5연에서 -붉은 입술로 설레며 / 이제 너를 만나는가?~ 하며 봄을 만나는 기쁨과 또는 봄이 긴 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않고 화사한 여인의 대명사인 ‘붉은 입술’이라는 어감으로 나타나는 것은 김태길 시인의 오랜 습작을 말해주는 우수작품이다.
시 ‘고향’과 ‘봄’에서도 아름다운 대지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고, 함축적인 시의 전형과 독특한 어감(語感)법이 일는 이로 하여금 봄의 생동감을 느끼게 해 준다.
앞으로 창작의 열성을 늦추지 않고 나아간다면 좋은 작품으로 대성하리라고 믿는다.
-심사위원 엄원지, 김성호-
<당선 소감>
봄은 우리를 푸근하게 만드는 계절인 것 같습니다.
아직 익지 않은 시(詩)를 정겹게 보아주시고 넉넉함으로 격려해 주시는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이제 시인의 마음을 배울 차례가 됐으니 봄처럼 부지런 하라는 말씀을 새겨서 세상과 나를 보는 시각을 넓혀 가며 높은 곳을 향하기를 기도 해 봅니다.
게으르지 않은 멋과 성숙을 바라보며 누구에게나 읽혀지는 밝고 명랑한 시를 쓰는 제가 됐으면 합니다.
또한 인생의 깊이를 한 줄 시로 나타냄에 진솔함으로 다가가 아픔을 공유하며 기쁨을 나누는 일에 쉼 없기를 생각해 보며 격려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프로필>
2003년 서울총회신학 신대원 졸업/ 2003년 장로회 인천노회 목사 안수/ (현) 목사/ <도서출판 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