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친해지려는 몽골 |
이대로기자의 몽골여행기 2 2004/06/1 |
여행정보: 몽골에갔다온 이야기] 한국과 친구나라가 되기 위해 애쓰는 몽골 정부 |
한 몽 우호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몽골항공사. |
몽골은 중앙아시아 고원지대 북방에 있는 나라로서 땅은 우리나라의 7배 되는 데 인구는 242만으로서 우리나라의 한 도시 인구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다가 평지가 해발 1500미터 정도에 4할이 사막이고, 겨울이 1년 중 6달이 넘고 봄가을은 짧고 여름은 세 달 정도인데 더운 여름엔 섭씨 40도까지 올라가고 겨울 가장 추울 때는 -40도로서 밤낮의 일교차가 심해서 우리나라만큼 살기가 좋은 나라는 아니다.
오랫동안 러시아의 통치를 받던 공산국가여서 러시아 러시아냄새가 물씬 풍기는 나라였다. 중국은 싫어하고 한국엔 호감을 가진 나라이며 생김새가 우리와 비슷해서 낯설지 않고 친근감이 도는 나라다. 우리나라와는 1990년에 국교를 맺어서 헝가리, 러시아, 중국과 함께 공산국가였던 나라 가운데 빨리 가까워진 나라로서 현재 그곳에 우리 교민이 700명 정도 살고 있고, 우리나라엔 불법체류자 17000명에다가 2만명이 넘는 몽골인이 살고 있으며 울란바타르와 인천공항 직항로가 열려서 일년에 여행객까지 수 만 명이 오가고 있다.
나는 지난 7월1일에 한국 기독교단체에서 세운 몽골 울란바타르대학(총장 윤순재)에서 몽골과학기술재단(이사장 초우후우)과 한국어정보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7차 다국어정보처리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몽골에 갔었다. 몽골 정부와 학계에선 한국인에 대해 매우 친절하고 한국과 가까워지길 바라고 있었으며 우리뿐만 아니라 정부기관과 단체에서 많은 한국인이 방문하고 있었다.
|
|
▲ 한국공예품 전시회 행사장에 참석한 전 몽골 대통령과 최기호 교수 |
|
ⓒ2003 이대로 |
한국공예문화진흥원(원장 이돈종)이 한국 우수 문화관광상품 전시회를 7월 1일부터 31일까지 몽골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고 있고 그와 함께 동북아사진교류협회가 몽골사진전도 함께 열고 있었다. 이 두 전시회에 한국에서 이영진 문광부 장관 보좌관과 몽골주재 한국대사, 중앙대 사진학과 유경환 교수, 전 몽골 대통령과 몽골 문화부 간부들이 참석해 한국상품전시회 개최 환영모임도 열고 한국과 몽골의 우정을 다지기도 했다.
|
|
▲ 행사장 징기스칸 사진 양쪽에 있는 한국국기와 몽골 국기 |
|
ⓒ2003 이대로 |
그밖에 수십 명의 대학생 봉사단도 와 있었고 우리가 떠나기 전에 인터넷정보기술 국제회의를 하기 위해 수십 명의 한국인들이 단체로 도착하기도 했다. 25명의 서울시의원이 그 곳 시와 정책 협조를 하기 위해 왔다가 우리와 함께 서울로 왔다. 거기다가 몽골 최고 축제인 다남 축제가 있는 달이어서 더 많은 한국 관광객이 온다고 했다. 울란바타르 시내엔 테헤란로처럼 ‘서울의 거리’도 있었고 몽골독립기념탑이 있는 근처엔 일제시대에 그 곳에 와서 의료사업을 하고 몽골마지막 황제의 주치의까지 한 세브란스의전 출신 이태준선생 기념공원까지 있었다.
|
|
▲ 올란바타르시에 있는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 비문 |
|
ⓒ2003 이대로 |
화폐 단위는 투그린인데 우리 돈 1만원이면 1만 투그린이어서 우리와 비슷했다. 택시는 기본요금이 250투그린으로서 싼 편이고 한국음식점과 노래방, 하이트 맥주집, 피씨방이 있고 한국에 돈벌기 위해 왔다간 사람이 많아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고, 한국의 현대 중고차가 많았는데 엑셀은 몽골에 다 모았다고 할 정도로 많았다. 가로수는 올리아스라는 추위에 견디는 특수한 나무가 대부분이고 자작나무가 많았다. 거리는 중국에 비해 활기차지 않고 거리가 한산한 편이었다. 우리나라에 60년대까지 다니던 전차가 중국 러시아처럼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러시아에 비해 영어를 잘 아는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한달 월급이 6만원 정도인데 한달 생활비도 그 정도란다.
|
▲ 몽골에 한국 현대의 중고 자동차 |
|
ⓒ2003 이대로 |
중국 내몽골에 비해 산이 많았고 국립공원엔 나무와 돌이 많아 경치도 좋았다. 드넓은 초원엔 소와 양들을 많이 키우고 양고기와 염소 고기를 많이 먹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서낭당과 비슷한 돌무더기가 있고 유목민은 겔이란 이동식 집에서 많이 살고 러시아 바이칼호 주변처럼 우리나라에 많이 있는 씀바귀, 할미꽃, 크로바 같은 풀과 꽃이 많아서 사람모습뿐만 아니라 자연 풍경까지 낯설지 않았다. 한국에 돈벌기 위해 온 많은 노동자들에게 한국말과 문화를 가르치면 앞으로 한국이 몽골에 진출하기도 좋고 몽골과 더욱 가까운 형제 나라가 될 걸로 보였다. 외국에 수출하는 중고자동차에 한글 자모를 쓰면 저절로 한글 교육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을 했다.
지금 한국과 몽골은 정치, 경제, 문화 쪽에서 활발하게 오고가고 주고받고 있어 두 나라사이가 더욱 가까워질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몽골항공사의 횡포와 공항 출입국관리소 직원의 불친절은 양국 정부와 국민들의 우정과 협조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었다. 2003년 7월 7일 오후 2시 30분에 서울로 떠나는 몽골항공 비행기를 타기 위해 12시에 항공사에 도착해 수속을 탑승 수속을 했는데 분명한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10시간이나 공항에 대기 시켜서 한국 탑승객들이 항의하고 한국 영사관이 나와 그 문제를 해결한 사건이 있었다.
그날 승객이 75명이었는데 서울시의회 의원 25명과 한국어정보학회 회원 20여명을 비롯한 한국인 승객이 60여명이었다. 항공사측은 예정시간인 14시 30분을 넘어 탑승하게 했다가 ?관제탑에서 출발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며 승객들을 내리게 했다. 그리고 두시간 뒤에 다시 여객기에 타게 하고 시동을 건 뒤 수십미터 가량 움직이더니 갑자기 멈추고 기내식을 제공했다. 그러더니 다시 원 위치로 기수를 돌린 뒤 ?비행기 엔진에 이상이 생겨 수리를 해야 한다?며 승객들을 또다시 내리게 했다. 그 비행기가 300명이 탈 큰 비행기였는데 반도 차지 않으니 작은 비행기가 북경에서 오면 태우려는 수작이었다는 말도 있었다. 그래서 승객들은 화가 나서 미국 남가주대학 김남길 교수와 김종태 선교사 등이 대표로 공항 직원에게 항의를 했으나 이들은 정확한 출발시간? 뗏?알려주지 않았다. 이에 승객들이 몰려가 거칠게 따졌다.
공항 직원들은 ?관제탑의 지시가 없어 출발하지 못한다. 내일 갈지도 모른다. 비행기 수리가 끝나는 대로 출발한다?면서 횡설수설했다. 끝내 대사관에 연락을 하여 해결을 요청하자 신상균 영사가 공항으로 달려왔다. 신 영사는 다른 비행기를 이용하여 밤 12시 30분쯤 출발할 것이라는 공항 측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런데 항공사측은 큰 소리로 항의를 했다는 이유로 한국인 승객 두 명을 출국시키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한국 승객들이 이들을 태우지 않으면 모두 출국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특히 서울시 의원들은 한국에 도착하면 몽골 정부에 항의하겠다는 뜻을 신 영사에게 전했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당초 출발시간보다 10시간 뒤에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지금 한국과 몽골은 정치, 경제, 문화 쪽에서 활발하게 오고가고 주고받고 있어 두 나라사이가 더욱 가까워질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몽골항공사의 횡포와 공항 출입국관리소 직원의 불친절은 양국 정부와 국민들의 우정과 협조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었다. 2003년 7월 7일 오후 2시 30분에 서울로 떠나는 몽골항공 비행기를 타기 위해 12시에 항공사에 도착해 수속을 탑승 수속을 했는데 분명한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10시간이나 공항에 대기 시켜서 한국 탑승객들이 항의하고 한국 영사관이 나와 그 문제를 해결한 사건이 있었다.
|
|
▲ 러시아 공항에 자리가 없다고 한국인 승객을 태우지 않았다. |
|
ⓒ2003 이대로 |
몽골 항공사의 불친절과 횡포는 또 있다. 7월 5일 한국어정보학회 회원이 몽골항공을 타고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에 갔다가 올 때인데 탑승객이 많다는 이유로 한국인 교수 두 명을 태우지 않아서 그 곳에서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해 이틀만에 몽골로 온 일이 있었다. 갑자기 몽골 관리가 타게 되어 한국인 관광객 둘이 못 탔다는 소문이다. 이 두 분은 외국을 많이 다닌 사람들이라 그런 대로 몽골로 와서 일행과 합류했지만 상식 밖의 횡포였다.
자리를 러시아에 갈 때 왕복표를 끊고 갔다가 그 비행기로 돌아오는 길인데 갑자기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탑승시키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해 이틀만에 몽골 울란바타르로 올 수밖에 없었다. 오는 동안 러시아 국경을 넘는데 뜨거운 객차에 4시간이나 갇혀서 검문 검색을 받는 등 엄청난 고생을 했다. 외국 관광객을 이렇게 푸대접하고도 몽골항공사나 국내 여행사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그래서 서울 시의회 몽골방문단은 몽골 울란바타르 의회에 공식 항의하겠다는 말까지 나왔고 몽골과 협조하기로 한 약속을 무효로 하겠다는 의견까지 있었는데 그 뒤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모른다. 한국어정보학회 또한 몽골 학회와 인터넷전문가들과 서로 인터넷을 통해 형제 국가가 되고 함께 발전할 연구와 협조를 하자고 굳게 약속했는데 몽골항공사와 공항 관리들의 횡포와 불친절로 그런 협조 분위기가 싹 가신 상태다.
앞으로 몽골은 우리와 더욱 가까워질 것이고 두 나라의 국민들이 더 많이 공항을 통해 오고갈 것이다. 두 나라가 더 가깝게 지내기 위해 몽골항공사와 관리들의 변신이 요구된다. 사람이 사는 것은 어디나 같고 평민은 착하고 친절한데 공무원들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또다시 느낀 여행이었다. 공항은 그 나라의 첫 인상이다. 첫인상이 좋아야 한다. 끝이 좋아야 다 좋다고 하는데 공항은 그 나라의 마지막 느낌을 담고 가게 하는 곳이다.
첫댓글 http://www.saramilbo.com/153
원문이 있는 곳 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