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다
<더 파더> 감상문
영어교육과 2021190262 임찬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유명한 데카르트에 따르면 자아의 존재는 사고하는 능력에서 찾을 수 있다. 감각이나 외부 세계가 불확실하더라도 의식하고 있는 자기 자신만큼은 의심할 수 없는 실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더 파더>에서 안소니는 점점 기억을 잃고, 자신의 정체성과 현실에 대한 확신을 잃어가면서 자아가 붕괴하는 혼란을 겪는다. 기억의 상실이 사고의 불확실성을 초래하는 상황에서 "나는 생각한다"라는 자기 인식조차 불안정해지는 안소니에게 과연 스스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물어보면 어떤 대답을 얻을 수 있을까?
이처럼 영화는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자아, 현실, 시간의 개념을 근본부터 흔드는 강렬한 체험을 선사한다. 이 영화는 단순한 치매 환자의 이야기로 머물지 않고,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와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영화의 접근 방식이다. 안소니는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기억을 잃어가며, 스스로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감독은 이러한 자아의 붕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등장인물의 얼굴을 교체하거나 목소리를 바꾸는 연출을 택한다. 안소니가 기억 속에서 사랑하는 딸 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 관객은 그와 함께 자아의 분열을 체험한다. 이 연출은 기억이 얼마나 정체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실감하게 하며, 기억을 잃어가는 순간 자아는 과연 어디까지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또한 영화는 현실의 불확실성과 인식의 주관성을 강조하는 기법으로 가득하다. 안소니의 시점에서 배경이 예고 없이 바뀌거나, 장면이 반복되고 시간이 왜곡되는 듯한 연출은 그가 겪는 혼란을 관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심오한 질문에 빠져들게 되며, 현실이라는 개념조차 결국 개인의 주관적 인식에 의해 결정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마지막으로 시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시간은 그 흐름이 단절되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여 나타나는 방식으로 비선형적인 구성을 가진다. 이를 통해 관객은 시간의 흐름이 우리가 경험하는 대로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의식에 따라 단편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영화 <더 파더>는 치매라는 가슴 아픈 병을 소재로 하지만, 그 병을 통해 우리가 가진 근본적인 인간 경험의 구조를 탐구하는 체험을 선사한다. 기억, 현실,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불안정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내는 이 영화는, 단순히 치매의 고통을 넘어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