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의 혈통관리 수준
그 동안 진돗개 관리 주관부처는 일제하에서는 조선총독부였고 해방 뒤에는 교육구청이 맡았다가 1962년 농림부에서 업무를 이관받았으며, 1997년 한국진도개보호육성법을 개정하며 진돗개에 대한 관리권을 농림수산부에서 진도군이 넘겨 받았다. 이에 따라 전라남도에 설치돼 있던 진돗개 심의위원회가 진도군으로 옮겨 왔고, 진도군수는 진돗개 심사권 및 반출입 허가권, 혈통인증 등 진돗개 관련 업무를 총괄토록 권한을 이양받았다.
진도군에서 진돗개 관리업무를 하고 있는 곳은 '한국진도견축산업협동조합'과 '한국진도개보육관리소' 두 곳이다. 한국진도견축산업협동조합은 1968년 진돗개 업무는 군청 같은 행정기관 보다는 민간주도사업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는 취지에서 초기엔 '한국진도견보육협동조합'이란 이름으로 탄생된 조직으로 조합 대의원 선거를 통해 조합장을 선발하고 있으며 현재 2천5백명의 조합원이 가입돼 있다. 이 곳에서 하는 일은 진돗개 등록관리 업무와 진돗개 견적서(혈통서)발급 등이다. 한국진도개보육관리소는 1975년 진도군청 기구로 설치된 곳으로 진돗개 일제심사와 방역업무, 반출입 관리, 진돗개 연구 등을 맡고 있다.
한국진도개보육관리소의 윤창호(尹昌鎬) 소장은 "한 해 진돗개에 대한 시험연구비와 방역비 명목으로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예산은 총 1억2천만원입니다. 농림부는 가축의 개념에서 방역에 역점을 두고, 문화재청에서는 천연기념물로서의 진돗개 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가축의 개념보다는 천연기념물로서 문화재청의 주관하에 정부의 대폭적인 지원이 있었으면 합니다. 지금처럼 적은 예산과 인력으로는 사업을 제대로 펼치기엔 역부족입니다."현재 진도에는 강아지에서부터 성견까지 합쳐 총 3만5천 마리의 개가 사육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심사 대상에 포함되는 6개월 이상된 진돗개는 1만5천 마리이고, 심사에 합격한 개는 7천 마리 정도이다. 진도 주민이 4만여 명쯤 되니 주민의 90% 정도가 개를 키우고 있는 셈으로 소득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진도를 찾는 외지 사람들은 진돗개의 메카라 자부하는 진도에 오면 강아지 한 마리쯤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일기 마련이다. 1년에 진도에서 반출되는 강아지의 수는 공식적으로 대략 1만 마리쯤으로 그 중 반출증을 교부받아 나간 개는 1895 마리, 불량견으로 판별돼 반출되는 강아지는 9908마리이다(2001년 12월말 기준).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반출되는 강아지나 성견까지 합친다면 그 수는 상당할 것으로 추측된다. 불량견으로 인정된 개들은 주로 성남의 모란시장 등지에서 거래된다.
일반인들 중엔 진도에서 진돗개 반출이 일체 금지되어 있는 것으로 아는 경우도 있는데 한국진도견축산업협동조합(이하 '축협'으로 표현)에서 소정의 반출증을 발급받으면 반출이 가능하다. 단, 등록된 진돗개 중 종자용 개로 선정한 개나, 종자용 개로부터 생산된 개 중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반출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개들은 반출을 할 수 없다. 진도에서는 연 2회 이상의 정기심사(6개월 이상된 개)와 수시심사를 통해 60점 이상을 받은 개는 축협에 견적등록을 하고, 불합격된 개는 30일 이내에 도태하거나 보호지구 밖으로 반출해야 한다. 심사에서는 60점 이상을 받아야 합격견으로 인정해 축협에 견적등록을 할 수 있다. 등록이 된 개들은 개의 몸에 전자칩을 이식시켜 불합격된 개들과 구별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된 육성법에 의하면 보호구역인 진도에 허가없이 다른 개를 들여오거나 반출하다 적발되면 1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하고, 심사나 등록, 순수번식을 안 하는 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돼있다.
이처럼 개를 나라에서 법까지 만들어 보호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 대만밖에 없다. 그러면 원산지인 진도의 진돗개 혈통관리는 어느 수준일까?
밀반출과 잡견화 되풀이
진돗개가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이승만 정권 때부터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밴프리트 UN군 사령관과 함께 제주도 육군 제1훈련소를 돌아보고 새로운 훈련장을 물색하기 위해 진도에 들른 일이 있었다. 그는 현지에서 진돗개의 우수성을 듣고 500만환의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이후 진돗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주로 진도가 고향인 군인들을 통해 진돗개 반출이 시작됐다. 심지어는 진돗개 반출을 위해 일부러 휴가를 보내는 부대장들도 있었다고 한다. 밀반출과 질병으로 인한 폐사 등으로 진돗개 멸종위기설이 나돌고 법적으로 반출금지령이 내려도 밀반출은 계속 되었다. 반출금지령은 오히려 진돗개에 대한 신비감을 높이는 효과를 일으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진돗개를 찾았고 우수한 개들은 육지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사실상 진돗개의 무분별한 반출의 효시는 일제 때부터였다. 1939년 7월 당시 진도군내 합격견은 총 650두였으나 5개월 뒤인 11월에는 등록견수가 313두로 반 이상이 줄어 조선총독부에서는 1940년 8월1일 반출 취재 강화 및 증산시책을 부고시(府告示)한 기록도 있다. 이러한 반출은 추측이지만 내국인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대부분 일본인들에 의한 반출로, 연구 용도로 일본으로 가져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하면 당시 조선총독부에서는 그들이 세운 보존령을 엄격히 적용해 진도 주민들이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벌금을 물렸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진돗개를 반출할 수 있는 특권은 소수의 조선인 유력자를 제외하곤 일본인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특히 진도대교가 세워진 1981년부터는 반출이 손쉬어져 더욱 많은 수의 개들이 육지로 빠져나갔다. 그 전에는 교통수단이 배밖에 없었으므로 선착장에서 때때로 감시원이 밀반출을 단속하곤 했으나, 대교건설 이후론 지나다니는 수많은 차들을 모두 세워 단속을 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현재 보육관리소에는 심사합격견에게 전자칩을 이식하고 있긴 하지만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 반출단속 등에는 아무런 적용도 되고 있지 않다. 이와 함께 혈통서의 발급도 문제이다. 축협에서 발급하고 있는 강아지의 견적등록부를 보면 조상견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가 구축되지 않아 대부분 부모견 이상은 기록되지 않는다. 부모견이 등록되어 있더라도 개 이름도 없고 그저 등록번호만 찍혀 있을 뿐이다. 일반인들은 대체적으로 '족보 있는 개'라면 높이 사지만 이런 상황에서의 진돗개의 족보는 별 의미가 없는 셈이다. 최근 들어서 진도내의 전문사육장 중에선 축협과 별개로 자체적으로 혈통서를 만들어 강아지를 분양하기도 한다.
70년대와 80년대 진돗개를 기사로 다룬 신문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진돗개의 멸종위기와 잡견화를 경고한 기사들이다.
"......진돗개의 원산지인 전남 진도섬에는 현재 8천9백60마리가 사육되고 있는데 해방 당시 1만여 마리보다 1천1백여 마리가 오히려 준 수다. 그러나 이것마저 진짜는 3천여 마리뿐이고 우수견은 1백여 마리 밖에 되지 않는다. 진돗개가 퇴화되거나 수가 줄고 있는 것은 감시원들이 임시직원인데다 박봉이어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유력인사들의 선물 또는 사육용으로 밀반출되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1975. 12.26 >"
...... 조사단은 지난 16일부터 3일 동안 천연기념물 제53호인 진돗개의 실태조사를 마치고 자견(子犬)의 반출제한과 당국의 철저한 관리가 뒤따르지 않으면 종견은 잡견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현지에 등록된 진돗개의 숫자는 76년 11월17일까지만 해도 6천6백여 마리였으나 6개월 후에는 5천1백64마리뿐으로 나머지는 모두 잡종개. 조사단이 가장 관심을 갖는 종견은 이들과는 달리 순수혈통의 보존을 위해 확보해온 1백50마리. 이들을 등적부에 올려놓고 우수종과 분리해 사육토록 해왔으나 현지에서의 관리소홀로 종견과 우수종이 섞여 이제는 그 구분이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 <중앙일보. 1977.6.29>"
......진도애견회 朴淸吉 회장(40. 성내리 46)은 이제 진돗개는 외지에서 진도로 사들여 와야 할 판이라면서 그 동안 개장수들의 몰지각과 무턱대고 진돗개를 찾는 도시민들의 몰이해를 개탄했다. 그는 또 개를 빼돌리기만 했지 정작 사육에 성공한 도시사람들은 드물다면서 진돗개는 역시 원산지에서 자라야 제몫을 다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중략) 이들 우량견의 40~50%가 폐사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주민들이 폐사를 핑계로 밀반출하는 등 부작용이 뒤따르고 있어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진도에는 9천5백57마리의 개를 6천2백81가구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군당국은 이들의 혈통을 증명할 아무런 근거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애견가 鄭峰秀씨(33)는 진도안에 혈통개는 20~30마리에 불과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라면서 지금부터라도 보다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일보 1981.12.26>
이처럼 진돗개를 보호하는 법이 일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에 대한 적용은 제대로 이루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과거의 신문보도를 참고하지 않더라도 우수 진돗개의 육지 반출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 이어 지고 있다. 진도에는 수많은 육지 애견가들이 찾아오고 있다. 이들은 진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우수한 개를 골라 높은 가격에 구입해 반출하고 있다. 이렇게 우수 종자를 계속적으로 밀반출해 간다면 결국 언젠가는 정작 원산지인 진도에는 쭉정이만 남게 될 지도 모른다.
진도에서는 1977년부터 2년에 한 번씩 진돗개품평회를 열고 있다. 이 때 입상한 우수견들의 대부분은 육지로 반출됐다. 군에서 지정한 종자견은 법적으로 외지로 반출될 수 없음에도 그리 어렵지 않게 육지로 빠져나갔고 이에 대해 군당국의 사후 관리나 반출에 대한 추궁도 없었다.
주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진도 주민들의 입장에선 개를 통해 쉽게 얻을 수 있는 소득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군의 진돗개 보호를 위한 강한 의지와 철저한 법적용, 그리고 주민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일은 앞으로도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진도개축산업협동조합의 전영암(全永岩) 조합장은 이런 의견을 제시했다.
"진돗개의 경우 법과 현실 사이의 간격이 너무 큽니다. 과거부터 진돗개는 개체수의 보존에만 신경을 써서 반출금지 위주의 정책을 펴왔습니다. 하지만 반출을 막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고, 주민 입장에서도 반출이 까다로워 강아지 판매에 지장이 생기면 개를 키우려 하지 않습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가정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몇 사람이나 개를 키우려 하겠습니까. 차라리 규제보다는 시장경제 체제를 조성해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좋은 개들을 많이 키워야 소득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도록 유도하는 게 더욱 바람직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