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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로 산숭몽괘입니다.
전반부는 무당스런 강의를 발췌한 것이고 후반부는 강의 녹취입니다.
初筮어든 告하고 再三이면 瀆이라.
초서 곡 재삼 독
초서어든 고하고 : 고자로 읽기도 하고 곡자로 읽기도 한데 알릴 고. 고할 곡. 초서 첫 번째 점을 쳤을 때는 고하고 첫 번째가 나온 것은 수괘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슨 소린가 하면 배우로 온 사람이 한 마음이면 진실 되면 가르쳐 주고 재삼이면 독이 : 두 번 새번 한다면 우 의심한다면 이 소리요. 동양에서 좀 바뀌어야 할 선생의 고집들이지. 그러다 보니까 교단에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잡는 경우도 생기는데 무조건 따라오라 하는 그런 의미가 해석 잘못하면 나타납니다. 그 다음에 재삼하는 소리는 스승도 선생도 가르침을 번복하면 이 소리요. 학생도 의심을 갖고 선생도 가르침을 번복하면 그러면 독이라 더럽혀 지는 것이다.
[전호근 선생 : 재삼이면 두 번 세 번 점을 쳐서 물어보면 독이라 없인 여기는 것인지라 독칙불고곡이니 없인 여기면 일러주지 않으니 리정하니라 곧은 도리를 지키는 것이 이롭다.
九二의 군자에게 점을 쳐서 묻는 겁니다.
한번 물어보면 일러준다. 그런데 결과가 점치는 사람에게 마음에 안 들어요. 사업을 하고 싶은데 점을 쳤다. 그랬더니 사업을 안 하는 것이 좋다. 또 물어보고 물어 보는 것은 없인 여기는 거다. 점의 신성성이 사라져 버리죠. 좋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점치면 되잖아요. 그건 점이 아니죠. 점을 쳐서 결정을 하자. 이래 가지고 결정을 했는데 결과가 마음에 안 드니까 다시 점치자. 안 되죠. 그럼 맥락으로 일차적으로 이해를 할 수가 있고요.
九二의 군자에게 어떤 향촌사회든 지역사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 九二의 군자에게 묻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는데 할까요? 말까요? 군자가 안 하는 게 좋겠다. 그 다음에 또 찾아와서 또 할까요? 말까요? 꼭하면 안 되겠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그때부터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게 군주라고 해도 마찬가지가 되겠죠.
동몽이 나에게 물어온 것이지 내가 동몽에게 물어온 것이 아니다. 군주가 와서 천하의 일을 자문한다. 그러면 호응하고 내가 먼저 군주에게 나아가서 천하를 이렇게 다스려야 된다고 하지는 않는다. 세 가지 정도의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전호근 선생은 명쾌하게 풀이를 했습니다. 사주를 봐 줄 때 자주 부딪히는 문제인데 설명을 못하고 해맬까요? 사주를 이십년 이상 강의 했으면서도 예를 들지 못하는 것은 사주 실력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당은 잘났다고 떠들기만 할 뿐이지 무슨 실력을 바라겠습니까?]
무당파 주역 :
거기에 조금 과격하게 한 것이 율곡선생이 쓴 격몽요결이요. 쳐라. 매질은 하면서 무지몽매함을 깨쳐라.
: 격자를 찾아보면
“ 擊 (칠 격) : 1. 치다. 2. 쳐서 죽이다. 3. 쳐서 꺾다. 4. 쳐서 누름. 5. 부딪치다.
6. 다스리다. 계도(啓導)함. 擊蒙 <易經> “
6번째 용례가 다스리다. 계도하다로 되어있습니다. 무당이 한문을 압니까? 아는 체 한 겁니다. 칠 격으로 알고 율곡이 애들은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유학에서 가르침을 위해서는 폭력을 사용해도 된다는 말을 합니다. 공부가 뭔지 모른 무당의 한계이고 무당이다 보니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계몽이 되지 않으면 동물로 그대로 남아버립니다. 인물이 되려면 계몽을 반드시 거쳐야 돼. 몽을 거치지 않고는 인물이 될 수 없습니다.
: 계몽을 거치지 않으면 동물 남아버린다는 유학의 무속화를 한 해석입니다. 계몽이 되지 않은 동자신이 동물로 남이 있으면서 무당이 되어 사기 강의를 한다고 하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전호근 선생의 대학 강의에서 : 천지가 부모고 만물은 자식이다. 그 자식 중에서 만물과 인간 이렇게 구분을 합니다. 유학은 인간중심에요. 인간 생명이 가장 존귀하고 차등이 있다. 그렇다고 다른 생명이 존귀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인간과 사물의 차이를 얘기를 할 때 인간은 완전한 기를 받고 동식물이나 사물은 편기를 받는다. 인간은 누구나 인의예지를 갖고 있다. 이것이 다 있고 어떤 사람은 인이 높고 어떤 사람은 인이 낮고 또 어떤 사람은 의가 높고 어떤 사람은 의가 낮고 다 높은 사람이 있고 다 낮은 사람이 있고 이런 차이는 기질에 의해서 결정된다. 짐승은 인은 있고 의는 없고 이런 식이다. 그래서 동물들은 수양을 해도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수양을 하면 다 올라간다. 타고난 자질이 선인으로 타고나서 기질이 아름답다하더라도 수양을 안 하면 떨어지고 불초인이라 하더라도 수양을 하면 올라간다.
자 이때는 뭐를 잘 만나야 됩니까? 스승을 잘 만나 해
: 선생을 잘 만나야 한다면 동자신의 초중전문대를 다닌 14년간에 존경하는 선생은 누구였고 무엇을 배웠으며 항상 존경한다는 말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14년간 동자신에게 사기꾼이 되지 말고 인간이 되라고 가르친 많은 스승이 있었지만 단 한 사람도 기억 못합니다. 어떻게든 돈을 벌고 싶은 마음뿐이어서 인간이 되라고 한 선생들은 싫어해서일까요?
침과 약 사주 등을 가르쳐준 대한지압학회의 권오석님도 스승이 아니고 증산교에서 배운 기의 이론으로 사기 강의 업에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증산교 내지 안원전도 스승이 아니고 대산선생의 주역 책을 칸닝해서 강의를 하면서도 스승으로 인정 하지 않습니다. 엄청 헷갈립니다만 그래서 무당일 수밖에 없습니다. 무당이 스승이 있고 존경하겠습니까? 그러면 무당일 수가 없습니다. 무당은 신을 모시는데 제일 큰 신은 Money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스승을 잘 만난 사람만이 훌륭한 사람이 될까요? 그러면 사주를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훌륭한 사람들은 선생을 잘 만난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스승을 잘 못 만난 것일까요? 예수 공자 부처 노자 장자 소크라테스는 스승을 잘 만난 것이고 동자신도 금오공전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서 교육을 잘 받았고 금오공전의 교육 이념에 충실하게 살기위해서 사기 강의 업을 하는 겁니까? 공부를 하지 않는 무당이다 보니 스승이란 말을 듣고 싶어서 이런 말을 주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서양은 아구동몽이요. 서양교육의 형식입니다. 모르는 오지라든지 이런 대를 선생이 찾아다니면서 그 지식을 주입해요. 서양은 인간 내면을 백지로 봐요. 그래서 후천적으로 주입되는 지식이 쌓여가지고 인간이 형성된다. 기계론적 인간이라고 그래.
: 무당 강의의 특징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경전이 필요 없는 유학의 무속화를 이룬 통원교의 교리 시간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교육을 찾으려면 제가 자식을 동양교육의 방식으로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합니다 라는 말을 해야 되는데 자식들은 공교육에 맡겼습니다. 공교육에 맡겼다는 것은 옛날 교육은 필요 없다고 결론이 난 겁니다.
동양은 이미 다 있다. 다만 있는데 이것을 자각을 하지 못해.
대학 강의를 하기전인데 대학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모르다 보니 다 있다고 만 말한 겁니다. 근거는 모르니까 말하지 못하면서도 아는 체는 합니다. 다 있다는 것은 성입니다. 성이 개인마다 차이가 있고 잘 닦으면 성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자각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닦으면 성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무당 강의의 특징은 비틀어서 무당화로 풀이합니다.
동양의 교육은 절대 선생이 학생을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 어느 책에 쓰여 있다고 근거를 말해야 됩니다. 비슷한 예가 금오공고 초창기에 학생 모집을 위해 선생들이 중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입학을 권유했습니다. 기껏 강의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모교를 욕한 것을 모른 놈으로 그러니 무당일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시대의 시골 훈장 들 중에는 과거에 떨어진 후 산천 유람을 하다가 훈장이 필요한 마을이 있으면 서당 훈장을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학생을 찾아다닌 것이 됩니다.
옛날에 서당에서 보면 5년 들어와서도 천자문 읽은 사람이 있고
: 옛날이 어느 옛날일까요? 조선시대요? 일제시대요? 아니면 1970년대요? 강의에서는 정확하게 언제라고 말 해야 됩니다. 보면요라는 말은 본 것처럼 말을 했습니다만 정말 본 것이면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합니다. 조선시대건 1970 년대 건 어떤 정신이 나간 미친놈이 천자문을 5년씩 배우고 정신이 나간 훈장이 5년씩 가르칩니까? 돈 벌이를 위해 사기를 강의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대한 사기인협회 유학분과와 무속인 협회의 동대문 신설동 통합지부라서 가능한 겁니다.
동양에서는 모든 사람을 선생이라 그래.
: 우리말에는 모든 사람을 선생이라고 하지 않는데 동양을 찾고 있습니다. 금오공전의 국어시간에는 모든 사람을 선생이라고 가르친 모양입니다. 동양이라면 중국과 일본과 한국인데 한국을 빼면 어디에서 모두 선생이라고 한다고 말해야 되는데 무당의 강의는 사기그릇을 항상 옆에 두고 있다가 필요하면 바로 예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선생이 우리 여보게 하는 식 밖에 안됐는데
: 무식한 무당이 아무 말이나 가리지 않고 합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선생 先生 [ xiān‧sheng ] : 선생. 교사. 성인 남자에 대한 존칭. 남편. 주인. 바깥양반. 방언 의사. 점쟁이. 옛날, 도사에 대한 존칭. 옛날 기녀를 말함. 체육 마스터.
그런데 스승을 학생이 판단한다. 동양사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요즘 학교에서 뭐하는가 하면 교수평가재. 그런데 먼저 선생이 잘못했어. 나 선생이 아니고 노동자요. 선생인 것을 포기한 거지.
: 동양사관이 아니라 끈적끈적한 정의 문화입니다. 프랑스는 칼의 문화로 나치에 협력한 사람들은 다 처형했습니다. 우리는 일제시대 친일한 사람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못했습니다. 한번 우리 편이면 어지간한 잘못이 있어도 다 눈감아 줍니다. 일본을 위해 시를 쓴 미당 서정주를 친일이라고 하는 사람과 친일이 아니라는 사람으로 갈리고 있습니다. 고은시인이 스승을 친일이라고 해서 곤혹을 치르고 있습니다. 정으로 묶인 사회는 후진사회로 민주주의 발전의 장해 요인입니다. 동자신은 스승을 몽조리 밟아서 깔아 뭉개버렸으면서도 너그들은 나를 비판하지 말고 무조건 스승으로 존경하라는 꼼수.
스승을 학생이 판단하는 것은 동양에서는 있을 수 없다고 누가 어느 책에 말했다고 해야 하는데 신설동 뒷골목의 무당은 근거 없는 말장난을 즐기고 있습니다. 스승이 헛소리 개소리만 골라서 하는데도 스승이 실력이 없다고 하지 말아야 할까요? 그래서 현대는 최소한의 공증인 학위를 요구하는 겁니다. 학위가 없는 야매파가 마음 놓고 헛소리만 하면서 스승을 판단할 수 없다는 말로 자신을 옹호합니다.
교수도 아니면서 교수 평가제를 신경쓸까요?
대학교 교수도 아니고 박사학위가 있어서 대학에 강의를 할 것도 아닌데 왜 신경을 쓸까요? 대학에서 실력이 있는 교수가 겁을 낼까요? 실력이 없는 교수가 겁을 낼까요? 실력이 없는 교수에게 공부를 해서 강의를 충실하게 해라는 건데 실력이 너무 없어서 공부를 할 수가 없다 보니 행여 돈을 못 벌게 될까봐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경제활동으로 분류하면 사용자와 노동자로 나눌 수 있는데 선생이 사용자란 말일까요? 노동당 사회당 공산당이 있는 유럽에서도 선생이 노동자로 분류가 되지 않는 겁니까? 무식한 무당이 괜시리 전교조를 싫어 해서 헛소리를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겁니다.
교권은 교사가 지키는 게 아니라 그것을 따라오는 누가? 학생이 만드는 주는 거요. 존경이라는 것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하는 사람이 만든다.
: 공부를 안 하는 무당이다 보니 교사 교권 학문 학자란 단어에 신경을 무척 씁니다. 공부를 하는 학자는 실력이 있기 때문에 이런 허접한 말을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학생들이 교수의 실력을 아니까 존경합니다. 선생이 존경받을 수 있는 조건은 실력과 인품입니다만 무당은 실력도 인품도 필요 없고 오직 신이 도와주기만 하면 됩니다.
옛날 전설의 고향이나 이런 것을 보면 제자에게 스승이 처음부터 강의를 안 시키지. 물 길러오라. 불 때라 이년 삼년 이거 왜 하는가 하면? 초복이 복이 거든. 이게 그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냐? 간절한 만큼 깨침이 빠릅니다. 해도 안 되고 안 해도 안 되고 하고 앉아있으면 나가면 다 잊어 버려요.
: 저번에 삼국지를 찾더니 이번에 전설의 고향을 찾고 있습니다. 전설의 고향은 흑백시대인 1970년대 말 드라마입니다. 금오공전 재학 중인데 기숙사 생활을 하니 드라마는 볼 수 없었고 프로그램이름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물을 지고 불을 삼년씩 때는 것은 전설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프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금오공전이나 군복무시절 동료의 무협지나 만화를 빌려 보고 안 것을 무협지나 만화라고 할 수 없으니 전설의 고향이라고 그럴듯하게 구라친 겁니다. 필요하면 언제든 사기를 동원해도 아무렇지 않은 곳이니 무당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처음에 오면 교재를 한번 보고 싶습니다. 공부는 좀 하셨습니까? 처음입니다. 처음인 사람이 이걸 보면 뭘 안다고 그래.
: 공부한 사람만이 책을 수준을 알 수 있다는 무식이 흘러넘치는 무당의 말입니다. 어떤 분야를 알고자 또는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주위의 추천을 받거나 서점의 많은 책 가운데서 고르는데 자신이 수준에 합당한 책을 고릅니다. 그 분야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서점의 많은 책 중에서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선택해서 공부하는데 그분들 중에는 대단한 경지에 이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평생 서점을 가보지 않아서 공부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책을 구입하고 공부하고 있는지 모르면서도 학원 업을 하고 있습니다.
동양에서 소인과 대인의 가장 생활 속에서의 구분은 이를 따르느냐? 의를 따르느냐? 거기에서 구분이 된다. 여기는 소인이지.
: 동양이 아니라 동북아로 중국과 한국인데 사서오경의 근거를 제시해야 됩니다. 논어를 보면 군자를 찾습니다. 무당은 경전을 읽어서 아는 척은 합니다.
지금 공부를 하려 가는데 이걸 배워서 얼마가 남을까? 요즈음은 이가 앞서는 시대니까 할 수 없습니다. 여기는 利가 성취되니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배워서 내가 얼마 만에 가치를 가질까? 하는 공부를 하려고 하는 사람은 받지 마라. 옛날에는 안 받았어요.
: 동자신은 대한지압학회에서 모든 것을 배우고 돈을 벌기위해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적인 능력인 이빨 까면서 돈을 벌 수 있는 학원 업을 시작했고 세금을 탈루하고 알뜰하게 저축하여 지금의 건물을 산 것은 의로운 행위라는 겁니다. 지압학회에서 돈이 없어서 조수를 하다 보니 대충 배웠는데 실습이나 연구 수련기간이 없이 바로 강의 업을 시작해서 오늘의 부를 이뤘지만 너그들은 그러면 싹아지가 없는 놈이라는 말인데 무당이기에 부끄럼이 없이 용감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선비는 사군자를 그립니다.
: 친구간의 농담을 강의에 활용하는 웃기는 짬뽕입니다. 친구 간에도 그 말 누가 했냐고 물으면 바보가 되는데 강의에서는 질문하면 강의의 맥이 끊어지다 보니 함부로 질문을 못합니다. 그 점을 잘 이용하는 것이 무당의 탁월한 능력입니다만 그러니 무당일 수밖에 없습니다. 강의는 항상 근거를 제시해야 됩니다. 주자, 퇴계, 남명, 율곡 중 어느 누구의 말입니까? 강의에서 아무 말이나 하면서 유식한 체 하는 것은 공부를 하지 않는 무당이니 가능한 겁니다.
임금과 신하가 이로 맺어져가지고 이번에 선거에 역할을 했으니 당신 어디 앉으시오. 이게 이지. 의가 이니라. 그럼 썩어 가는 거요. 절대 여기는 의로 맺어져야 돼.
: 모든 일에는 논공행상이 있습니다. 논공행상이 없으면 의욕이 없어서 일을 안 합니다. 논공행상을 잘해야 되는데 잘했다고 하는 쪽과 잘못했다는 쪽으로 항상 갈립니다. 선거의 경우는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대통령의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므로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는 것은 생판 모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효율적입니다. 강의가 노무현 대통령시기입니다. 그럼 MB는 논공행상을 잘했습니까?
지지자 사요. 자기를 아는 자에게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 선비요. 義요. 여자분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열기자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굴을 고치는 여자다. 여기도 뭐가 있다는 소리요? 의다.
: 근거를 말하지 못하면서 문자를 쓰는 것은 친구간의 가벼운 농담일 때나 가능한데 강의와 친구간의 농담을 구분을 못하면서도 강의하는 것은 무당이기 때문에 탓할 수가 없습니다. ]
04. 山水蒙
산 밑에 물이 흐르기 시작을 했다.
수는 근원이고 사물의 근원이고 만물의 근원이다. 무극이다. 음의 시작이요. 혈화 혈의 근본이요. 생육의 근본이요. 휴식 저장된 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없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현상계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양이 형성되고 산이 솟아 있다. 해서 음과 양의 최초구분이다. 아직은 잘 알지 못한다. 무지. 잘 알 수 없는.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서 안개가 자욱한데 내려 밟고 가니까 밑에는 물이 촉촉하고 멀리는 산이 언듯 언듯 보이는듯하다. 몽매. 무지몽매라 그러지요. 혼돈을 끝내고 최초의 구분의 시작점에 들어있던 형상이 텅 비었다가 혼돈이었다가 형상에 산이 생겼다는 소리는 굴곡이 생겼다 음양의 굴곡이 생겼다. 이제 형식이 갖춰지기 시작하는 초창기다. 혼란된 상황이 조금 모면이 되고 형식화되기 시작하는 현상. 만약에 몽괘를 얻었다고 그러면 그렇다고 뻗어나갈 수는 없습니다. 양의 현실이 완전히 이뤄진 게 아니니까. 양이 형성되는 첫 단계에서 화는 기요. 수는 정이지. 근본이 형성돼서 스톱돼있는 상태. 또는 덮여있다. 물은 흘러가야 하는데 산이 막고 있어. 그러면 근원이 현실화로 아직은 안 되있다. 이런 단계가 몽입니다. 이 몽을 깨쳐라. 열어라. 이걸 계몽이라고 그래. 어린 몽을 먼저 현실을 익히도록 하라. 동몽선습이요. 거기에 조금 과격하게 한 것이 율곡선생이 쓴 격몽요결이요. 쳐라. 매질은 하면서 무지몽매함을 깨쳐라. 그런 중요한 비결. 자 이때는 뭐를 잘 만나야 됩니까? 스승을 잘 만나 해. 그래서 지도자가 아니요. 앞에서 배운 건괘에서는 이건후하라가 주체였지요. 주체자를 하나 세워라. 그런데 여기서는 주체자를 세웠을 때는 주체자를 세운 다음 그것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지식이 있는 선생 먼저 깨친 사람을 하나 찾아가지고 그리고 그 말을 따라야 된다.
여기서 핵심은 음이 주체요? 양이 주체죠? 양이 주체죠. 여기도 양이 있는데 이 양은 과격해요. 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과한 의미요. 그래서 내괘 중정에 있는 이효가 주체. 주체가 되는 의미입니다. 초효도 이효를 따르고 삼효는 상효와 응을 이루는데 여기로 가지 않고 일로 오고 그 다음에 오효는 이효와 응이고 그런데 얘는 여기를 가야 되는데 여길 버리고 일로 왔으니까 애는 좀 않 좋은 식으로 해석을 해 놨고. 사효는 여기를 와야 하는데 오고자 하는 방법이 없네. 그래서 이것만 곤몽이라고 해놨어. 곤란한 상태에 있다. 이효의 주체적인 스승을 오효는 응으로서 당연히 따를 수 있기 때문에 동몽이다. 그런데 이것은 과하다. 꼭대기에 올라가서 설치고 있으니까 격몽이다. 과격한 몽이다. 여기는 처음이니까 몽을 깨치기 위해서 출발한다. 발몽이다. 이것이 모든 것을 포용해가지고 몽을 깨쳐주는 주체자가 된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용한다. 동몽이다. 해서 주체는 이효입니다.
사람은 천지 만물중에 사람은 동물에 들어가야 돼. 여기서 계몽이 되지 않으면 동물로 그대로 남아버립니다. 인물이 되려면 계몽을 반드시 거쳐야 돼. 몽을 거치지 않고는 인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본체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학습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 매야요. 어두울 매자요. 신중대처 그 신중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혼자 신중해야 되느냐가 아니라 누굴 찾아라? 스승. 선생을 찾아서 배워서 대처하라. 그냥 조심 조심 가면 되는 것은 아니다.
蒙은 亨하니 匪我 求童蒙이라 童蒙이 求我니
몽 형 비구 구동몽 동몽 구아
初筮어든 告하고 再三이면 瀆이라. 瀆則不告이니 利貞하리라.
초서 곡 재삼 독 독측불고 이정
: 夢은 亨할 수 있으니 亨. 亨이라 그러면 亨通하다는 소린데 이보다 더 못할 수는 없고 무지 몽매한 사람이 더 못할 수는 없고 깨침의 교육만 잘한다면 이 소리죠. 교육도 안하고 가만있으면 형통한 건 아니고
匪我(비아) 求童蒙이라 : 匪 아니다. 내가 구하는 童蒙. 어려서 몽매한 사람을 내가 구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 我는 九二입니다. 곧 스승을 말합니다. 스승이 학생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童蒙이 求我니 : 서양은 아구동몽이요. 서양교육의 형식입니다. 모르는 오지라든지 이런 대를 선생이 찾아다니면서 그 지식을 주입해요. 서양은 인간 내면을 백지로 봐요. 그래서 후천적으로 주입되는 지식이 쌓여가지고 인간이 형성된다. 기계론적 인간이라고 그래. 그래가지고 어떤 것을 집어넣느냐에 따라서 이 인간은 달라진다. 라는 식이되. 그러다 보니까 주입의 틀이 형성되고 교육의 틀이 마련돼가지고 일제히 모아다가 똑같은 교육을 시키고 있는 거요. 선생이 찾아가서 이걸 주입시키는 것이지. 있는 사람이 찾아가야지. 그런데 동양은 그렇지 않습니다. 동양은 이미 다 있다. 다만 있는데 이것을 자각을 하지 못해. 무극 상태로 있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지가 다 있는데 무극상태로 있기 때문에 자각을 못한다. 스스로 깨치지 못한다. 누가 와서 여기다 집어넣을게 뭐 있어. 이미 다 있으니 올 사람이 필요 없고 다만 이 사람이 스스로 내 속에 있는 것을 깨치기 위해서는 누구를 찾아가야 됩니까? 선각자. 먼저 깨친 사람을 찾아가야 돼. 선생을 찾아가야 돼.
동양의 교육은 절대 선생이 학생을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학생이 스승에게 깨침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동양의 교육의 관념이요. 그런데 깨치는 속도가 다르다. 여기는 1학년이면 1학년 딱 끝. 2학년이면 2학년 딱 끝인데 속도하고 관계없이 그냥 지나가버려요. 옛날에 서당에서 보면 5년 들어와서도 천자문 읽은 사람이 있고 3개월에 천자문 끝내고 명심보감 들어가는 사람 들어가는 사람 들어가고 이거요. 그러니까 나둬 그냥. 그리고 그 사람들 못 낫다 하지 않습니다. 명리를 배웠지만 못 낫다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뭐하는 속도가 느리다. 깨침의 속도가 느리다. 동양에서는 모든 사람을 선생이라 그래. 지금 중국에서는 선생이 우리 여보게 하는 식 밖에 안됐는데 원래 동양에서 선생이라는 것은 모든 만물은 뭐가 있다 그랬어요? 격이 있죠. 격물이라고 그랬죠. 그렇게 본다면 사주가 다르다고 해서 그 사주가 갖고 있는 의미 특성이 다르다면 그 의미 특성을 파트별로 먼저 깨친 사람이 있겠죠. 앞에 있는 사람이 지금은 선생 노릇을 하고 있지만 밖에 나가 가기고 무슨 건축헌장에 가면 여기에 앉아 계신 분 중에 건축을 저보다 먼저 깨친 분들이 있다 이 말이요. 그래서 저 한테는 또 스승이 된다. 이해가 됩니까? 전부 스승이요. 그런데 스승이 될 수 있는 깨침을 못 가졌다면 그것은 부끄러워 저야지. 무슨 소린가 하면 누구라도 이 자리에 나와서 자기가 한 것을 한마디쯤 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았어야 돼. 뭔 뜻인지 아시겠죠. 여기서는 명리배우고 이런 것은 저보다 뒤 늦게 하니까 저한테 배우고 있지만 저를 여기 앉혀 놓고 가르칠 그런 것이 자기 가슴속에 하나씩 있어야 된다. 이런 교육의 장을 마련했을 때 아 나도 한마디 할 수 있는 나의 특정한 분야가 있는가? 중요합니다. 여기서는 두 번째 동몽이 구아니 하는 것이 동몽은 모든 효들이고 특히 육오. 동몽이라 해놨어. 여기 임금 자리요. 여기는 신하 자리다. 천하 없는 임금도 왕의 스승이 있죠? 어릴 때부터 왕도 배우지 않습니까? 자기보다 훨씬 못한 저 밑에 있는 신하한테 배우는 거요. 동몽이 구아니 다시 말해서 군사부일체라 하는 것은 어떤 지위도 스승과 맞먹을 수 있는 최고의 스승의 자리가 그렇다. 그러니까 귀천을 가리지 않고 아무리 임금될 사람도 결국은 어디로 내려간다? 학생의 신분으로서 스승한테 배워야만 깨쳐진다는 의미다. 그럼 구아는 아는 구이요. 구이를 뜻해요. 초서어든 고하고 : 고자로 읽기도 하고 곡자로 읽기도 한데 알릴 고. 고할 곡. 술칠 곡. 초서 첫 번째 점을 쳤을 때는 고하고 첫 번째가 나온 것은 수괘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슨 소린가 하면 배우로 온 사람이 한 마음이면 진실 되면 가르켜 주고 재삼이면 독이 : 두 번 새번 한다면 우 의심한다면 이 소리요. 게 동양에서 좀 바뀌어야 할 선생의 고집들이지. 그러다 보니까 교단에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잡는 경우도 생기는데 무조건 따라오라 하는 그런 의미가 해석 잘못하면 나타납니다. 그 다음에 재삼하는 소리는 스승도 선생도 가르침을 번복하면 이 소리요. 학생도 의심을 갖고 선생도 가르침을 번복하면 그러면 독이라 더럽혀 지는 것이다.
옛날 전설의 고향이나 이런 것을 보면 제자에게 스승이 처음부터 강의를 안 시키지. 물 길러오라. 불 때라 이년 삼년 이거 왜 하는가 하면? 초복이 복이 거든. 이게 그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냐? 간절한 만큼 깨침이 빠릅니다. 해도 안 되고 안 해도 안 되고 하고 앉아있으면 나가면 다 잊어 버려요.
가장 잘못된 것이 요즘 사회라든지 보편화된 지식능력이 있으니까 그런데 스승을 학생이 판단한다. 동양사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요즘 학교에서 뭐하는가 하면 교수평가재. 그런데 먼저 선생이 잘못했어. 나 선생이 아니고 노동자요. 선생인 것을 포기한 거지. 그리고 도저히 지난 세월에는 용납이 안 됐던 것이 통원서당에서는 다 포기 했으니까. 두 번이든 세 번이든 들어보고 결정을 하세요. 이게 재삼이면 독이다. 와서 들으면 다행인데 가서 나중에 군소리 한단 말이요. 간 사람은 자기 마음에 안 들었을 것 아니요. 내가 처음에 오면 교재를 한번 보고 싶습니다. 공부는 좀 하셨습니까? 처음입니다. 처음인 사람이 이걸 보면 뭘 안다고 그래. 그래도 소몽은 해야지. 이걸 또 질척한 다면 격몽이 돼지. 쫒아 버리는 거지. 원수가 된다. 구, 구(구)라고 해놨어요. 너무 시달려버리면 원수가 된다. 상효에 보면 부라고 해났어. 이구요. 구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얘를 너무 때리니까 카메라 찍어가지고 바로 내보내는 거요. 제가 초창기에 격몽을 했어(격몽이라면 건방진 소리겠지만) 그것도 객기지. 이걸 따르면 안 된다. 포용을 해야지. 선생도 꼭대기에 올려놨어요? 저 낮은 밑의 중간에 앉아있어요? 밑의 중간에 앉아 있어요. 교권은 교사가 지키는 게 아니라 그것을 따라오는 누가? 학생이 만드는 주는 거요. 존경이라는 것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하는 사람이 만든다. 해서 독즉불고이니 : 펼쳐진 상태면 가르쳐 줄 필요가 없으니 이정하리라: 정(정), 수(수)죠.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겟다.
몽은 형통(주하화괘)하니 내(감 지혜, 스승)가 동몽(간 소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몽이 나를 구하는 것이니 처음 점치거든 알리고 두 번, 세 번(의심 불신)이면 더럽힘이라. 더럽힘 즉 알리지 아니 하고 곧게 힘이 이로우니라.
: ☳ ☵ ☶ ☴ ☲ ☱
장남 중남 소남 장녀 중녀 소녀
陽이 하나면 男. 陰이 하나면 女.
제일 밑에 있는 양이 장남. 중간이 중남. 제일 위가 소남.
제일 밑에 있는 음이 장녀. 중간에 있는 음이 중녀. 꼭대기에 있는 음이 소녀.
선비는 사군자를 그립니다. 조선시대 때는 그림 그리는 사람은 환쟁이요. 쟁이요. 그런데 선비가 쟁이 노릇을 할 정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뭔가 하면 사군자요. 사군자는 왜 선비가 그리는가하면 한필로 끝나요. 난초를 그려도 한필로 끝나지 가다가 또 안 되니까? 여기 펼쳐 풍경화는 일필로 안 끝나지. 인생은 이것이 아니다. 인생은 한번이다. 두 번도 아니다. 그래서 한 획을 잘 못 그으면 오점으로 남아. 그래서 선비는 사군자는 해요. 이유가 거기 있어요. 그리고 서도를 하는 이유도 그래. 절대 글을 써도 획이 잘 안 나왔다고 여기 올려가지고 이렇게 해서 만들고 이러지는 않는다. 재필이 돼지. 이런 일은 하지마라. 그래서 여러 번 하면 독이 돼. 정은 강주이니 강중이니까 알려주고 회는 강지니까 알려주지 않는다.
산하유험하고 : 산 밑에 험이 있는데 험은 수괘(수괘)고 험이 험이지 몽이라 : 그치는 것이 지는 산괘요. 몽이라. 몽형은 : 몽형은 몽이 형통하다는 것은
彖曰蒙은 山下有險하고 險而止 蒙이라.
단왈몽 산하유험 험이지 몽
蒙亨은 以亨行이니 時中也오
몽형 이형행 시중야
匪我求童蒙童蒙求我는 志應也오.
비아구동몽동몽구아 지응야
初筮告은 以剛中也오
초서곡 이강중야
再三瀆瀆則不告은 瀆蒙也새니 蒙以養正이 聖功也라.
재삼독독칙부곡 독몽야 몽이양정 성공야
: 단왈 몽(몽)은 산(산) 아래 험한 물이 있는 것이니 물이니 험이지 몽이라 : 험에서 그쳐 있는 것이 몽(몽)이라. 험이라 그러는 것은 꼭 험하다고 보지 말고 어두움이 될 수도 있고 아직 깨치지 못한 아직 현실의 밝지 못한 의미도 될 수 있어요.
몽형은 이형행이니 : 몽(몽)이 형(형)하다는 것은 도리로서 형통(형통) 이 소리요. 도리로서 형통할 수 있는 것이니 도리로서 형통함을 행하는 것이니 시중야오 : 때에 맞는 것이다. 여기 중이라는 소리는 수괘의 중간 괘를 말합니다. 중효를 말해요. 그런데 교육이라는 것도 거기에 맞게끔 하는 것이다. 무조건 억지로 시키는 것이 아니고 조화롭게 자연의 조화시켜서 할 것이다. 수는 흐르고 산은 그치고 그러니 갈 곳은 가장 조화롭게 하는 것이 뭔가 하면? 수죠. 수같이 한다. 물이 가다가 이렇게 바위가 있으면 부딫지지도 않고 비껴 나가고 이것이 물의 덕이다. 때의 중용을 지키고 비아구동몽동몽구아는 지응야오: 동몽구아라는 것은 뜻이 상응하는 것이다. 뜻이 서로 통하는 것이다. 그래야 만이 뜻이 통해야 속에 있는 내면의 의미를 깨쳐나가겠죠.
초서고는 이강중야오 : 이것은 구이가 중을 얻었다는 소리고 그 다음에 초서라는 것은 구죠. 초서곡이 왜 나왔는지 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고 아까 설명한 대로 보시면 되요. 수중에 뼈있는 말이 들어있다. 그러면 애기를 하고 여러 번 번복을 하면 하지 마라. 재삼독독즉불고는독몽야일새니 : 오히려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은 그 몽매함을 혼란스럽게 흩으려 버리는 것이니 이러려면 배우지도 말고 가르칠 자격도 없다. 제대로의 수적 근본 지식을 갖고 이치를 깨쳐줄 수 있는 능력이 아니 다음에는 선생자리로 올라가서는 안 된다.
몽이양정이 : 몽이 양정 정으로서 키워준다면 바름으로서 키워준다면 원리 순리 원칙적 교육을 해준다면 이것 밑에 있는 수괘죠. 선생인데 선생의 표면 의미는 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그런 스승이 바른 교육을 해준다면 성공야라 : 성인의 공덕이 이뤄질 것이다.
생활 속에서 산수몽괘를 얻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소리입니까? 자기가 갖고 있는 기본지식을 인정하라는 소리입니까? 없다고 생각하라는 소리입니까? 없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그 파트의 앞선 사람의 자문을 제대로 뭐하라? 구하라. 그리고 그 자문을 구할 때 그 한마디를 들어라 는 소리요? 의심 하고 이 사람 저사람 쫒아 다니면서 찾아보라는 소리요? 한마디로 제대로 찾아가지고 그걸로 끝내라. 이집에 가서 물어보고 저 집에 가서 물어보고 탁해질 뿐이다. 혼란스러워질 뿐이다. 몽이라는 것이 더 혼란스러워 져요. 죽던 살던 누구한테 물어 보고 그 대신 제대로 된 사람한테 물어야 되겠죠. 그 제대로 된 사람이 어디냐? 여기도 안다고 설치고 있고 여기도 안다고 하는데 이 사람은 아니고 여기다. 그럼 재야에 있을 것이고 내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서 찾아봐야 되겠네. 내 위치가 여기 같으면 나보다 약간 위에 있고 여기 같으면 나보다 밑에 있고 여기 같으면 이 위의 사람한테 묻는 것이 아니라 밑으로 가야 될 것이고 이런 식이요. 효가 어디에서 머물러있는 가를 보고 찾아가서 두 번 세 번 묻지 말고 한번 말하면 알았습니다. 그대로 해보겠습니다. 하라 이 말이요. 그게 의심스러우면 또 다른 사람 찾고 하면 혼란스럽다. 묻지 않음만 못하다. 그런 경우 많지요.
단으로 말하면 몽은 산 밑에 수험이 있고 험수류인데 지산이니 몽이다. 몽은 형통으로 (호괘복이니 밝음으로서)행함이 때에 맞게(득중)함이라.
내가 동몽에 구함이 아니라 동몽이 내게 구한다 함은 뜻이 상응하기 때문이다. 일수 첫 점을 쳐 일러준다고 한 것은 양으로 구이가 득중하였기 때문이요. 여러 번 점치면 모독하는 것이니 더럽히면 일러주지 않는다 함음 몽(성)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동몽일 때 정도로서 그 본성을 바르게 기르는 것(수지)이 성인의 성스러운 공이다.
象曰山下出泉이 蒙이니 君子 以하야 果行하며 育德하나니라.
상왈산하출천 몽 군자 이 과행 육덕
: 산 밑에 댐이 만들어진 것을 몽이라 하는데 군자 이하야 : 군자는 이로서 과항하며 : 과감히 행하며 육덕하나니라 : 덕을 기르느니라. 덕은 어디서 나온 소리요? 덕이라는 것은 수요. 내면이요. 정신이요. 체육이 있고 (몸을 기르는 게 있고) 지육이 있고 덕육이 있지. 동양에서는 교육이 세 가지로 나눕니다. 이중의 최고가 덕육이다. 몽괘는 교육을 위한 괘인데 배우라는 괘인데 산이 우선이요? 수가 우선이요? 수가 우선이죠. 내면의 근본을. 그럼 육체는 아니네. 뭐를 채워라? 덕을 채워라. 내면의 근본이 중앙에 있는 중정된 본성을 키우라.
상으로 말하면 산 밑에 나는 샘이니 몽이니 군자는 이로서 과단히 행동하여 덕을 기르는 것이다.
初六은 發蒙호대 利用刑人하야 用說桎梏이니 以往이면 吝하리라
초육 발몽 이용형인 용탈질곡 이왕 인
: 초육은 발몽호대 이용형인하야 : 이로울 것이다. 용, 쓰는 것이 형, 형벌을 쓰는 것이 인 사람에게 배우는 사람에게 형벌을 쓰는 것이 이롭다. 용탈질곡이니 : 벗길 탈자입니다. 용탈 써서 벗겨라. 질, 족세 질자. 호, 쇠고랑 곡. 손발을 묶고 있는 질곡을 탈자로 읽습니다. 사람을 형벌을 주더라도 그 질곡을 벗겨서 쓴다면, 벗기는데 적절히 쓴다면 이롭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간다면 인하다. 인색해질 것이다. 형이라는 것은 형틀이지. 형벌은 묶어 놓는 거요. 꼼짝 못하게 하는 거죠. 오행의 화요? 수요? 수. 금수죠. 지식이 묶여 있다. 이것을 벗겨라. 질곡을 벗겨라. 여기서 질곡은 수고 그 다음에 모든 일을 제대로 못하게 하는 뭐요? 올라갈려니 손에 찬 것이 곡이고 발의 밑에서 있는 것이 수지. 갈려니 산이 막고 뛸려니 물이 막고 산은 시야를 가라는 것이고 물은 뭐를 가리는 것이요? 발을 가리는 것이다. 이것을 깨쳐야 만이 사람이 제대로 앞을 진행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간다면 인색하리라.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이걸 벗겨라. 자 바뀌어버리니까 무슨 괘? 택천괘. 태택금안이요. 안 편안이요. 발목이라는 것은, 발이라는 것은 초효고 몽을 깨치기 위해 출발하라. 해서 발을 묶고 있는 수와 시야를 가리고 있는 산을 벗겨서 쓰면 발몽이 된다. 그런데 이것이 잘 안 될 때는 학생은 뭘로 써라? 형벌을 가하라. 그런데 이 형이 무조건 같다놓고 두들겨 패면 안 된다. 그래서 상왈에 보면이용형인은 이정법야라. 정법은 사람마다. 때마다. 상황마다. 곧 역의 법칙이니 관리 할 줄 아는 능력자. 능력으로서 다스려라. 어떤 때는 지 잘못해도 매를 안 들고 상황이 그렇습니다. 똑같이 적용할 수 없다. 어느 때는 잘못을 했는데 종아리가 피가 나도록 맞았는데 그 다음에 똑같은 잘못을 했는데 아 그날은 봐주기도 하고. 그러니 불만이 있겠지.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누구 차별 할 일 있나. 차별은 해야지. 그런 차별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정법의. 이건 뭔가 하면? 이런 능력에 따른 교육을 ..하라. 교육적 체벌입니다. 체벌 방법 교육방법. 이것이 형이요. 형을 방법론으로 이해하세요. 매질해서 공부시켜야 할 사람이 있고 칭찬해서 공부시켜야 할 사람이 있고. 여기 형벌을 그냥 넣고 치고 패는 것으로 보시면 안 돼. 그렇게 하는 것이 이롭다.
그런데 발몽하는 애들이 처음 교육하러 간 얘들이 교육방법을 제대로 못하면 제각각이죠. 글자하나 깨치려고 집에서 하는데 왔다 갔다하고 그럴 때는 때리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조치를 잘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안 편안해질 것이다.
결론은 손이 나왔네요. 손은 선해볼 손자인데 여기서 어떻게 익야라 했는가 하면 매를 치고 형벌을 가한다면 그 학생의 입장에서는 손상이 있겠지만 결국은 큰 것을 얻기 위해서 그런다.
익야라 손자는 손해 본 손자인데 여기서 어떻게 익야라 했는가 하면 옆에 소손대합이요. 매를 치고 형벌을 가한다면 그 학생의 입장에서는 손상이 있겠지만 결국은 뭐를 하기 위해서? 큰 것을 얻기 위해서 그런다. 상은 스승이고 하는 학생이겠지.
좋은 괘입니까? 그대신 형은 좀 있습니까? 손 형은 좀 있습니다. 그래서 형은 질곡이라든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소리요. 이런 것이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크게 괜찮아질 수 있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면 발몽하려면 선생이 어디 있느냐? 선생을 찾아야 되는데 선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구이가 양괘고 주체이면서 바로 옆에서 따라 가도 될 정도로 돼있다. 그러면 초효의 응은 누구요. 사효지. 사효를 응해가지고 믿을 만 합니까? 똑같이 음이지. 같은 음으로서 사효는 불응하고 있다. 육사는 불응이요. 그러니까 지나 네나 같지. 그러니까 여기는 찾아갈 수 없다. 육사 불응이요. 구이가 비 돼있기 때문에 스승은 구이가 됐다. 구이를 찾아라. 이렇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연결도 되지 않고 그러면 발몽할 수 있다.
초육은 몽매함을 발육시키는 데는 사람에게 형벌을 주는 방법을 씀이 이로우나 그로 후에 질곡을 벗겨 주는 것이다. 만약 질곡을 벗겨줌이 없이 그 대로 형벌만을 가하는 식으로 다룬다면 좋지 못하다
象曰利用刑人은 以正法也라.
상왈이용형인 이정법야
: 象으로 말하면 사람이 형벌주체니 이롭다 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서 水 법을 바르게 하기 때문이다.
象으로 말하면 사람에게 刑罰을 씀이 일보다 함은 그렇게 함으로써 法(水)을 바르게(正山)하기 때문이다.
九二는 包蒙이면 吉하고 納婦면 吉하리니 子 克家로다.
구이 포몽 길 납부 길 자 극가
: 포몽이라는 것은 모든 효를 모든 것을 포용한다. 몽, 음효 음효가 몽이고 소인이요. 여자요. 아직은 양효보다 못한 사람을 음효라고 하고 있다. 이 포용하는 방법이 초육은 비하고 육삼은 올라타고 있어요? 정하고 이게 좀 불손한 놈이네. (선생을 올라타고 있으니) 이것은 좋지 않게 나와요. 물용십년 이런 식으로 나와요. 이것은 다 취해라. 잘못하면 선생머리 꼭대기에 앉아있는 놈이다. 어떻든 받아드렸어요 그 다음에 또 하나 응이 육오죠. 육오는 응하고. 이러니까 육삼은 관계성이 맺어지지 않네요. 육사는 누굴 따라 다니겠어요? 임금 밑에 있는 대신이지. 누구요? 육오를 따라가지. 이렇게 해서 모든 것을 포용하고 여기 밑에서 모든 것을 포용하고. 그리고 이 토가 포용한 다는 것은 수괘가 변해가지고 지괘가 되었다는 소리는 지괘는 포용입니까? 지괘는 포용입니까? 순덕이요. 땅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어떤 잘나고 못 난 것도 다 땅이 살게 용서해준다. 허용해준다. 해서 효가 지괘 때문에 나온 거요.
납부면 길하리니 : 받아드리면 길하고 뭐를 부 그런 것은 부인인데 음효겠죠. 여기서 부인 음효에 해당되는 것이 누구요? 육오지. 육오를 받아드리는 것이 길하고. 그러면 지금 몽한 상태는 지도자가 사실상 뭐를 이끌어 갈 상태가 안 되죠. 지도자도 배워야 한다. 자, 구이를 말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신이 극가 집안을 잘 이끌고 있다. 집안에도 잘 난사람 못 난 사람이 있죠. 이 가는 괘 전체죠. 다만 상구가 문제는 문제요. 여기 서로 수긍을 안 하고 있어요.
그러면 산지박. 박은 땅위에 있는 산은 뭐한단 소리입니까? 산이 깎일 것이다. 라고 한다면 뭐는 좀 대적시켜야 된다. 깎이면 이게 없어진다는 소리지. 그렇죠. 해서 없어져서 완전히 곤괘가 될 때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거지. 구이는 포몽이면 길하고 납부면 길하리니 납부는 육오. 임금을 말합니다. 임금이 여자네 자극자로다. 모든 내외의 상황을 기반을 두루두루 다 갖춰질 수 있을 것이다. 해서 구이가 이 산수몽괘의 주체 효가 됩니다. 해서 구이는 몽매한자를 잘 감싸 안으면 길하고 또 아내를 맞으면 길하니 자신이 능이 기반을 다스릴 것이다. 여기서 자식이라는 것은 구이의 자식이 아니고 육오로 보면 임금이고 백성들은 자식이라 합니까? 군주는 어버이요. 이런 소리 하듯이 밑에서 구이를 말해요. 구이가 다 잘하고 있으니까 임금도 구이를 따라가야 된다.
구이는 몽매한 자를 잘 감싸면 길하고 또 아내를 맞으면 길하니 자식이 능히 집안을 다스릴 것이다.
象曰子克家는 剛柔 接也라.
상왈자극가 강유 접야
강유 접야라 : 강 구이요. 유는 육오를 말합니다. 해서 자식이 밑에 있는 사람이 집안을 잘 다스릴 수 있는 것은 밑에 있는 사람이 강해야 되고 주체를 가져야 되고 수로서 지식을 갖춰야 되고 원리원칙을 갖춰야 되고 근본을 갖춰야 되고 위에 있는 사람이 위해 줘야 되겠지요. 그래야 밑에서 구성을 해가지고 할 것 아닙니까? 자식이 뭐를 할 때 아버지도 자식을 뭐라 그러면 안 따라다니면 그래서 유는 육오를 뜻합니다. 그래서 구이가 하는 일을 비록 집안의 어른이 있다하더라도 그 말을 잘 따르고 하는 강유의 상접으로 인해서 서로 상응하기 때문에 그렇다 접야라.
상으로 말하면 자식이 집을 다스린다는 것은 강(구이)과 유(육오)가 서로 접해 있기 때문이다.
六三은 勿用取女니 見金夫하고 不有躬하니 无攸利하니라.
육삼 물용취녀 견금부 불유궁 무유리
: 이로울 바가 하나도 없느니라. 좋지 않다는 소리지요. 물용취녀 : 여자를 쓰지 말라. 육삼은 쓰지 말라. 취하지 말라. 만약에 이 효가 나왔다면 그렇게 하라. 이효면 이런 사람도 받아들여야지. 견금부하고 : 금부는 구이를 말합니다. 원래 육삼이 상대해야 할 것은 누구입니까? 육삼은 여기 있잖아요? 상구가 있다 이 말이요. 상구와 상대자이나 바로 밑에 있는 구이와의 관계를 앞세웠다. 구이를 금부로 봤다. 다시 말해서 이익이 누가 되느냐? 돈으로 봤다. 돈 있는 남자로 봤다. 그러면 상구를 따르는 것은 의요. 구이를 따르는 것은 육삼 입장에서는 이지. 이로 이를 취하는 것이 소인이요. 의로 의를 취하는 것이 군자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동양에서 소인과 대인의 가장 생활 속에서의 구분은 이를 따르느냐? 의를 따르느냐? 거기에서 구분이 된다. 여기는 소인이지. 그러니 취하지 말라. 경망스럽다.
지금 공부를 하려 가는데 이걸 배워서 얼마가 남을까? 요즈음은 이가 앞서는 시대니까 할 수 없습니다. 여기는 이가 성취되니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배워서 내가 얼마 만에 가치를 가질까? 하는 공부를 하려고 하는 사람은 받지 마라. 옛날에는 안 받았어요. 그래서 절대 학교에서는 학문만 가르치는 것이요. 아직도 이것은 정통입니다. 학문만 가르치고 이권이 개입되는 자격은 학교에서는 안 해. 자격을 수행하는 다른 기관이 있어. 한의대를 약대를 졸업했다고 해서 자격주는 것 아닙니다. 여기는 뭐만 해주는 거요? 깨침만 주는 거요. 그리고 나가서 사회에 이권이 개입되어야 되니까 먹고 살려면 뭐를 취해라? 자격을 취해가지고 그 다음에 쓰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 학자라면 학교라는 것은 여기서 끝나는 거요.
국궁재배할 때 목을 굽혀가지고 몸 심자하고 궁자하고는 달라요. 몸을 살 같이 굽이고 있다는 소리요. 이거지. 이게 궁이요. 불유궁하니 : 궁이 없으니 다시 말해서 곤경 몸의 부지런함이라든지. 겸손이라든지. 이게 없고 함부로 하니 왜 함부로 한다 하는가 하면 이게 풍괘거든 풍괘는 가만히 있어요? 혼란스러워요? 혼란스럽죠. 바람난 여자다. 마음잡지 못하는 소인의 모습이다. 이로울 바가 없느니라. 그래서 좋지 않습니다. 만약에 이 괘사 괘를 뽑았다면 해야 할 바가 아니요. 누구를 따라가야 되겠어요? 할 수 없이 여기 가서 몸을 굽혀가지고 구이를 따라가야 됩니다. 잘난 척하지 마세요. 아니면 구이를 따라서 배울 일이 아니면 구이를 따르는 그 자체가 이지. 이를 따라갔고 의를 따라가면 어디로 가라. 상구를 따르라. 그래서 상구를 따라가지 않고 구이를 따라가서 금부라고 한 거요. 주체적인 응이 있다. 비보다 응이 우선이다. 그리고 산풍고. 사대 난괘중의 하나요. 그러면 이 괘에서 본다면 고라고 그러면 그릇 속에 벌레만 바글 바글 한다. 그랬으니까 뭐가 있다는 소리요? 없다는 소리요? 없다. 그러면 이를 따르더라도 이가 있다? 없다? 없다. 그럼 뭐를 따라 가야 겠어요? 의를 따르라. 왜 이로울 바가 없다 해 놨는데 금부를 따라가서 보고 가고 부유궁이니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알지 못하고 제대로 알지 못하고 행동거지가 좋지 않는데 이로울 바가 없다 하는데 이를 취하로 여기를 뭐 하로 가느냐? 이럴 때는 의를 따라가라. 이를 취하는 효로서는 안 맞습니다. 무유리 유, 바유자요. 머머 할 바. 물용 칠년이 견 금부하고 부유궁하니 몸을 굽히지 않으니 몸을 가지런하지 않게 하니 왜 그런가 하면 이효에 승했다. 스승을 올라타고 있다면 이것은 과한 모습이다. 그래도 이효로 오는 것은 이익 때문에 오는 의미가 크다. 결론은 무유리다. 이로울 바가 없다고 했으니 만약에 삼효를 얻었다면 이효를 앞세우지 말고 상구에다가 의를 지키는 것이 났다.
내정양덕이라 이렇게 했어요. 아직은 이익을 괘할 때가 아니다. 그래서 의를 앞세우면서 살아야 되겠다. 다시 재정비하라. 자기의 몸을 낮추고 그러고 가면 몰라.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자리는 아닙니다.
내괘에서 삼효는 상당히 불안한 자리입니다. 내외를 연결하는 변화의 노선 상에 들어있어서 그렇습니다.
육삼은 여자를 취하지 말고 돈 많은 남자를 보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지 못하니 좋을 것이 없다.
象曰勿用取女는 行이 不順也라.
상왈물용취녀 행 불순야
행동이 아니 순한 것이다. 순리적 개념이 아니다.
上으로 말하면 여자를 얻지 말라 함은 행실이 순하지 않음이다.
六四는 困蒙이니 吝하니라.
육사 곤몽 인
: 인색하다. 인은 뭐요? 길이요? 흉이요? 흉은 흉하다고 말을 합니다. 인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답답함을 인이라 그래요. 아주 이익이 좋은 것을 없는 상태에서 있는 것을 이라고 그랬어요. 곤몽이라는 것은 아까 설명을 했죠. 따를 자가 없다. 뭐 깨쳐야 되는데 따를 자가 없다. 원래는 누구를 따라야 되는가 하면 초효와 응을 하는데 초효 불응하고 초효도 불응이요. 그 다음에 육오도 아 이게 양이면 임금이 하는데로 따라가면 되는데 육오도 불비요. 비가 안됐어. 둘 다 응이오. 그러니 여기 가서 좀 깨치려고 그러니 여기 와서 깨치려고 그러니 여기도 똑같고 그런데 핵심은 여기 있고 이것 좀 과격하지만 여기를 부르는 사람이 없네. 그러니까 뭐할 사람이 없다. 스스로 이 사람을 사효를 구제할 사람이 없다. 뭐한 거요? 답답한 거요. 되는 것도 없고 하나도 없다. 그런데 가만히 있어야 되겠습니까? 그래도 움직이긴 해야 되겠습니까? 화괘가 나왔기 때문에 움직인다. 가만히 있으면 당연하데 움직여 봐도 찾아봐도 위를 찾아봐도 안 되고 아래를 찾아봐도 안 되고 결론은 화수미제구나 하나도 되는 게 없구나.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이 사효는 음이요? 양이요? 사효 음인데 거기에 음효가 앉아있네. 음위에 음효가 앉아 있는 것은 정이요. 정위는 되니까 흉은 아니다. 자기본분은 지키고 있다는 소리입니까? 자기 본분은 지키고 있다. 인이 답답할 뿐이지 손해도 아니고 길도 아니다 는 이런 소립니다. 그러면 소몽에서 배제된 한 효요. 여기서는 이걸 찾아가야 됩니까? 물어서 찾아가야지. 직접 관계성이 없습니다. 여기 딸려가 가지고. 임금과 신하가 이가 있으면 안 돼요. 의로 맺어져야지. 임금과 신하가 이로 맺어져가지고 이번에 선거에 역할을 했으니 당신 어디 앉으시오. 이게 이지. 의가 이니라. 그럼 썩어 가는 거요. 절대 여기는 의로 맺어져야 돼.
지지자 사요. 자기를 아는 자에게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 선비요. 의요. 여자분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열기자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굴을 고치는 여자다. 여기도 뭐가 있다는 소리요? 의다. 육사는 곤몽이니 육사는 곤궁하고 몽매하여 새롭고 답답하다. 길도 아니고 흉도 아니다. 그 대신 미제가 됐으니
미제는 최고 적체되어있는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는 고통 속에서 시세에 시절에 응해서 살아라 는 뜻이니까 현실에 차근차근 대처해 나가라. 핵심은 구이에 있으니. 그런데 미제는 더 이상 나쁠 이유가 없죠. 하나도 이뤄지지 않아서 그 다음부터는 조금씩 이뤄지겠지. 그래서 아주 흉은 아닙니다.
세상 일이란 것이 흉이 하나도 없어. 그 상황을 정확히 알고 제대로 가면 다 길로 바꿀 수 있습니까? 이것도 구이를 따라가면 길로 될 것이고 이것도 잘 상황을 파악해서거기에서 조절해 나갈 것 같으면 충분히 길로 될 수 있다. 그 대신 누구를 따르느냐? 여기를 의로 지켜가지고 같이 가는 게 났다.
육사는 곤궁하고 몽매하여 괴롭고 답답하다.
象曰困蒙之吝은 獨遠實也라.
상왈곤몽지인 독원실야
: 유독이 遠 멀리 있다. 實 九二와 實은 九二입니다. 실제 존재 가치를 갖고 있는 구이와 멀리 있어서
上으로 말하면 困蒙의 吝은 홀로 陽(實)에서 멀기 때문이다.
六五는 童蒙이니 吉하니라
육오 동몽 길
: 아직은 세상이 세상 만상 또는 이 괘를 얻은 그 당시에 현재 상황이 몽롱할 때니 확실치 않을 때니 비록 육오가 군이죠. 주체 자리에 있더라도 자기보다 낮은 또는 어린 사람이라도 스승으로 모시고 스승으로 깨침을 (이것 누구요. 구이지) 깨침을 얻으려고 하니 그래서 길하다. 스스로 나 아요. 한다 이 말이요. 나도 어리니. 옛날에 영의정이나 좌의정이나 또는 성균관에서 세자를 가르치는데 나도 여타와 같은 어린애와 같이 취급하시오. 하고 구이와 같이 응을 해서 주체를 양을 뒀으니 양을 따라가서 배우고 있는 이 구오는 구중 분열이다. 부드럽고 중용되며 중정되며 순한 덕을 갖추었다. 이것이 몽의 상황에 최고의 주체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회사가 아주 혼란스러울 때 몽할 때 앞이 어떻게 될지 모를 때 사장일지라도 밑의 실무자한테 가서 뭐하라? 그 말을 따르라. 어떤 사람을 불러다 놨어요. 그래 놓고 저 놈이 잘할까? 저 놈이 혹시 잘못하지는 안 할까? 망하게 하지는 않을까? 그런 의심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불러오지 마세요. 그런데 불러놨다면 의심을 하지 말라. 그쪽에다 전권을 주라. 열심히 해봐라. 최선을 다해봐라. 그러면 이쪽에서 죽기를 다합니다. 자기를 인정하는 사람한테 (모르지 뒤로 돌려치는 사람도 있겠지만)성심으로 마음을 보였을 때는 강도도 칼을 내리고 절을 하고 갈 수 있다. 믿었다면 함께 하는 자를 의심하지 마라. 의심하려면 처음부터 함께 하지 마라. 무엇을 시켜놓고 가서 잘하냐?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해 이러지 말라. 참견하지 마라. 그리고 그 정도는 나중에 파악은 해야지. 그리고 뭐를 시킨다고 한다면 시키는 자는 위에 있는 자 아니요. 할 수 있는 일을 시켜야지요. 하지 못하는 일을 시키면서 그것도 못하네. 하는 것은 시키는 사람의 잘못이요. 자기도 모르고 사는 거요.
육오는 어린이의 몽매함이니 길하니라.
象曰童蒙之吉은 順以巽也새라.
상왈동몽지길 순이손야
: 바뀌니까 손, 풍이지요. 공손이요. 심지부복이라. 구부리고 엎드린다. 겸손이다. 낮춘다. 괜찮습니까? 괜찮습니까? 낮추어야 되겠지. 임금 자리 그대로 하면 안 돼지. 그리고 풍수환이 됐네. 이것이 결론이다. 환은
새로운 것을 받아드리는 몽을 깨치는 현상이다. 여기서 티끌을 걷어낸다는 소리는 몽을 없앤다. 다만 동몽이요. 공부한다는 것이 마음을 어른 상태로 놓는 것도 아니고 비워놓고 어린상태로 그렇게 해서 동몽선습하고 있는 것이 지금 이 소리다. 여기서 나온 소리요.
동몽선습의 첫 글자가 뭔가 하면 천지지간 만물지중에 유인이 최귀하니 이소리가 나와요. 하늘과 땅 사이에 모든 만물 중에 오직 인간이 귀하니 그 귀한 바는 상강과 오륜이 있음이로다.
상으로 말하면 동몽의 길함은 순하고 공손할새라.
上九는 擊蒙이니 不利爲寇오 利禦寇하니라.
상구 격몽 부리위구 리어구
: 막을 어. 도둑놈 구. 원수 구. 격몽이니 과격한 깨침이니 과격한 것은 상구의 상구는 과한 자리입니까? 과한자리. 과한자리의 과격한 깨침이니 잘못하면 사제지간에 원수가 될 수 도 있다. 지금 그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해서 원수가 됨을 막는 것이 오히려 이롭다. 변해서 지괘가 되었다. 지는 순덕하라. 덕으로서 감싸 안아야지 두들겨 패서 될 일이 아니다. 덕으로 감싸라. 혼자 소리친다고 따라 올 사람 한사람 없다. 여기 따라 온 사람 누구 있어요? 안 따라 오니까 매질을 해야 되는데 양이니까? 나머지 누구 다 따라 갔어요. 구이를 다 따라 갔단 말이요. 그러니까 얼마나 열 받겠어. 나도 선생인데 그러니 두들겨 패는 거요. 이것이 뭔가 하면? 억지로 교육이요. 안 하려는 놈을 앉혀놓고 패가면서 공부하는 것 되느냐? 격몽이요. 그런데 율곡선생은 그래서라도 해서도 가르쳐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짐승만도 못한 놈이 된다. 그래서 최고의 수가 격몽요결이요. 퇴계선생하고 다른 의미요. 그게 뭔가하면? 상이 있었고 그 다음에 기가 있고 그 다음에 리지. 퇴계선생이 여기 있었고 율곡선생이 성에 가까이 있었단 말이요. 그러니까 리보다 형을 우선으로 한다. 어떻게 든 뜯어 고쳐야 된다. 말로 안 된다. 패 버려라. 그만큼 현실에 대해서 강력하게 주장을 했던 양반이 율곡선생이요. 그래서 격이란 소리를 써요. 격은 잘못하면 원수 되요. 그래서 교육을 하는데 있어서 저 원수가 되면 원수뿐만 아니라 이게 도둑. 다시 말해서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다. 이 말이요. 뭐를 가르치는데 그것을 반발심으로 만들어버리면 잘못 돼버리죠. 교육이 아니라 반발해버린단 말이요. 차라리 격몽할 바엔 도둑이 안 될 것을 막는 것이 이롭다. 안되게 하는 것이 이롭게 생각하고 격몽을 하라. 격을 하라. 좀 과격한 모습입니다.
그러면 효를 이것을 얻었다면 따라 주는 사람아무도 없다고 거기서 강짜를 부리고 그러지 말라. 이런 소리죠. 지금 상황을 뭐로? 지괘니까? 받아들이고 나도 능력이 있고 움직일 수 있는 능력자지만 오히려 포용심을 가지고 나머지 사람들을 원수로는 만들지 말라. 그것이 이롭다. 그 상황에 순응하는 것이 이롭다. 혼자 쫓아 가봐야 따라 오는 사람 없다. 그렇다고 욕하면서 치면서 모든 사람을 후려가도 원수 밖에 될 일이 아니다. 이게 결론입니다. 상효는 육은 음이죠. 음에 양효가 앉아가지고 상음에 양효해서 부정이요. 거기에다기 과한 의미가 된다. 오히려 나쁘게 되지 않게 하는 것이 깨치기 보다 더 우선으로 해야 할 상황이다.
상구는 몽매함을 일깨우니 도적이 됨은 이롭지 않고 도적을 막는 것은 이롭다.
象曰利用禦寇는 上下 順也라.
상왈이용어구 상하 순야
: 아래 위로 순함을 우선으로 해라. 지괘로 바뀌었다.지수사괘로 됐는데
상으로 말하면 이용어구는 위 아래가 순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