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아모스 4:6-13)
교회의 역사는 고난(박해) - 부흥 - 침체가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난이나 박해가 닥칠 때 교회는 기도하며, 내부적으로는 정화가 됩니다.
그 기도와 정화작업으로 부흥이 일어나고, 부흥과 성장 후에는 다시 정체와 침체에 빠지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교회에 닥치는 어려움은 박해, 고난으로 인한 것도 있지만 침체와 세속화가 훨씬 무섭습니다.
박해와 고난이 있을 때는 교회가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됩니다.
기도하기 시작하고, 때로는 신앙에 목숨을 겁니다.
반면에 별 어려움이 없고, 좋은 환경 속에서는 그런 절박함, 간절함, 사모함, 갈급함이 사라집니다.
흔히 하는 말로 배부르고 등 따시면 잠이 오듯이, 교회가 영적 잠에 빠집니다.
운전할 때 졸음 운전이 위험하듯이, 영적으로 졸며 자는 상태는 위험합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 아모스 선지는 남 왕국 유다의 드고아 출신입니다.
아모스의 직업은 목자였고 뽕나무도 재배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심판과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는 사자의 부르짖음이나 우렛소리와 같습니다(1:2, 3:8).
아모스 선지가 예언한 것은 주전 762년 경으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대략 주전 793-753년)와
남 왕국 웃시야(대략 주전 792-740년)가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남북이 모두 왕이 오랜 기간 통치하면서 국력이 강해지고 경제적인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앗수르의 힘이 약해진 시기와 맞물려 남북 왕국은 다윗과 솔로몬 왕 때의 영토를 거의 회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번영과 평안의 시대에 아모스 선지는 심판과 멸망의 예언을 하였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나라가 강해지고 경제적인 번영을 누렸지만, 안으로부터 부패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타락상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풍요와 사치, 쾌락과 음란, 특히 부자들의 타락과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 대한 학대가 극심하였습니다.
본문 4장에서는 여자들의 타락을 경고하며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부자들 뿐만 아니라 여자들까지도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고, 가장에게 술을 가져다 달라고
하였습니다.
부와 사치와 쾌락 속에 빠져 살았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횡성 한우, 대관령 한우… 하듯이 갈릴리 동쪽의 골란고원은 풍성한 목축 지역으로 바산의 암소는
최고의 암소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게 살찌고 사치하는 자들이 결국은 갈고리에 꿰어 끌려갈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도 갑을관계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어떤 계약을 하거나, 사회적인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강한 위치에 있는 갑(甲)과 약한 위치의 을(乙) 사이에
불평등하고 일방적인 것들에 대한 반발입니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눌려 지내던 약자들의 불만과 반발이 터져나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사회상도 부자나 강자들의 횡포가 극심하였습니다.
범죄와 타락 속에 예배와 신앙은 형식적이고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성지였던 벧엘과 길갈에서 예배를 드리는 그들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4-5절에서 아모스 선지가 외칩니다.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것은 아모스 선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롱하는 말입니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절기를 지키고 더 열심히 바쳐보라고 조롱합니다.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아 주시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오히려 강력하게 책망합니다.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아니라, 자기들을 기쁘게 하고 드렸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벧엘은 아브라함과 야곱이 제단을 쌓았던 곳입니다.
길갈은 가나안 정복의 중심 기지로, 요단강을 건넌 기념비를 세우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켰던 성지입니다.
그러나 벧엘과 길갈은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었고, 형식적인 예배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에서 그들을 미워하였노라.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 (호세아 9:15)
요즘 한국 교회의 모습도 걱정스러운 요소들이 많습니다.
과거 교통이 불편하고 자가용이 없던 시절에는 집과 가까운 교회 다니는 것이 좋았습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그런대로 교인들이 있고, 이사 가면 교회도 옮겨야 했습니다.
지금은 크고 시설이 좋은 교회로 몰려서, 대형 교회는 더 커지고 작은 교회는 존립마저 어려운 상황입니다.
농촌이나 산골의 교회는 노인들만 남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부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도시로, 대도시로, 신도시로, 큰 교회로 몰리는 현상으로 교회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심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교회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기쁘게 하고 만족하게 하는 교회를 찾아다닙니다.
큰 교회에 가면 프로그램도 많고, 편하고, 볼거리도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만 참석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니는 익명의 교인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해 아모스는 경고합니다.
본문에서 5번이나 후렴처럼 반복하면서 경고합니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 8, 9, 10, 11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해 여러 가지 재앙으로 경고하셨습니다.
기근과 굶주림, 가뭄, 곡물 재해, 병충해(팥중이, 메뚜기), 전염병, 칼(전쟁), 지진과 같은 재앙들은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실 때 사용하는 도구였습니다.
6절에서 이가 깨끗하다는 것은 먹을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추수 전 중요한 시기에 비를 멈추되, 내리는 곳도 있고 내리지 않는 곳도 있어서 하나님의 사인임을 보이셨습니다.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심판을 향해 달려가는 이스라엘이 깨닫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여러 가지 재앙을 통한 경고조차 무시하였습니다.
우리는 나에게, 주변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에게 대해 지혜로운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죄에 대한 심판으로 보는 것도 그렇고, 전혀 상관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모든 병이나 재앙이 다 죄의 결과는 아니지만, 때로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촉구하시는 경우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나가 만난 풍랑이나 발람에게 경고하시려고 나귀의 입을 사용하시는 것이 그런 경우입니다.
우리나라가 1997년 IMF 금융위기를 당할 때도 그런 조짐과 경고들이 있었습니다.
외국의 언론들은 “한국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하였으나, 설마설마하다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며칠 전 태안에서 발생한 사설 해병대 캠프 사고로 고교생 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때도 마을 주민들이 위험을 경고하였고, 사고 직전에도 위험하다는 방송을 하였으나 모두 무시하였습니다.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무시하다가 그런 일을 당한 것입니다.
사고에는 항상 그런 안전 불감증, 경고 무시 등이 원인이 됩니다.
노아의 홍수 때도 그랬고, 아모스 당시의 이스라엘도 이렇게 평화롭고 번영을 누리는데 무슨 재앙이며 심판이냐고
코웃음을 쳤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거듭 경고하셨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역대하 36:15-1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예레미야 7:13)
말씀으로 하시다가 여러 가지 재앙으로도 경고하셨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고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리를 양보해야 할 사람들이 많으니까 못 본 체하기도 하고, 귀찮게 하지 말라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 것은 귀에도 좋지 않고, 범죄나 사고의 표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이어폰을 꽂고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아예 외면해버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의 결국은 하나님의 재앙과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고 촉구하십니다.
이 만남은 은혜와 복을 주시려는 만남이 아니며, 하나님의 재앙과 심판을 당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모든 재앙과 심판을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강조하십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아침을 어둡게 하고 땅의 높은 데를 밟는 두려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을 만날 것인가, 공의와 심판을 하나님을 만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공의와 심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않도록 하나님을 찾고 돌아오기를 촉구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아모스 5:4)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혹 하나님께서 징계나 재앙으로 말씀하신다면 회개하며 돌이켜야 합니다.
서서히 식어지고 느낌을 잃어가서, 이제는 영적으로 무디어지지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차를 처음 샀을 때는 세차하고 왁스칠하고 커버까지 씌워 두지만 좀 지나면 웬만큼 상하는 것은 무시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과 조금 멀어지고 신앙생활이 나태해지면 힘들어지고 갈급했는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예전의 갈급함이나 간절함이나 사모함이 지금은 어떤 상태입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경고를 무시하고 영적 안전 불감증과 잠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것이 잘되며 번영과 평안을 누린다고 내가 좋은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아모스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하다가 멸망하였습니다.
전성기를 누리던 이스라엘은 아모스가 경고한 지 40년 후에 앗수르에 멸망하였습니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3)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 돌아가며, 하나님을 찾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