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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관
 
 
 
카페 게시글
베트남전 스크랩 베트남 전선에서의 한국군 (1)
정정관 추천 0 조회 50 14.03.11 19: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전쟁을 모르는 사람들은 국가에 대해 말하지마라

이 사진들은 참전자로서 당시 현장의 생생한 기록들을 담을 수 없었던 소중한 자료들이기에
전쟁기념관 사이트(warmemo.co.kr)에서 이 자료나마 다운받아 작전하던 기억들과 나의 사진을 곁들여 비교하며
기지 모습부터 작전출동, 상황, 종료순으로 구분편집하여 설명(청색은 본인 설명 흑색은 warmemo설명)과
함께 올립니다. 다른 홍보자료들도 많으나 직접 경험하고 기억나는 부분들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셨던 전우들은 설명을 보시면 기억들이 떠오르실겁니다.
또한 전쟁을 모르는 분들께도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투는 훈련이 아닙니다. 죽지않으려면 죽여야 하는 인류 막장의 현장입니다.

자신이 주인공이었다 상상하시면서 보시면 이들이 정신적으로 어떠했을지...
자식같은 어린 병사들을 이 참담한 막장까지 보낸 지도자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당시 대한민국의 위치와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고 참전자들을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 것인지,
이들의 고충을, 이들의 노고를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실겁니다.


1연대9중대 진지.jpg
한국군의 독창적인 중대 전술기지
 
1연대9중대 진지
월남전에서 적은 항시 고립된 목표에 대해 우세한 병력으로 야간에 기습공격을하는 전법을 섰다.
이에 맹호부대는 중대단위 전술기지를 구축하였는데,
이 전술기지는 연대규모의 적 공격에도 최소한 48시간을 지탱할 수 있게 편성되어 있었다.
외곽에는 이중, 삼중의 철조망 네이팜, 조명지뢰, 크레모아 등 장벽을 설치하고
경계초소를 기지전방에 설치하여 적의 접근을 조기에 발견하도록 하였다.
사진은 맹호부대 제 1연대 9중대 진지의 모습이다.

철조망과 장벽.jpg
중대 전술기지 초기모습같습니다.
이후로 아래 사진과 같이 참호 각 초소는 포탄을 방어하기 위해 덮개를 쒸워 장병들을 보호했습니다.

 
철조망과 장벽
월남전에서 적은 항시 고립된 목표에 대해 우세한 병력으로 야간에 기습공격을하는 전법을 섰다.
이에 맹호부대는 중대단위 전술기지를 구축하였는데,
이 전술기지는 연대규모의 적 공격에도 최소한 48시간을 지탱할 수 있게 편성되어 있었다.
외곽에는 삼중의 철조망 네이팜, 조명지뢰, 크레모아 등 장벽을 설치하고
경계초소를 기지전방에 설치하여 적의 접근을 조기에 발견하도록 하였다.
사진은 중대전술기지의 철조망과 장벽의 모습이다.

개인호 점검.jpg
개인호 점검
맹호부대는 전투를 치루는 과정에서도 자체 부대정비도 소홀하지 않았다.
사진은 개인 참호를 점검하고 있는 사진이다.

중대전술기지.jpg
중대전술기지의 모습, 동그란 참호는 박격포 참호.

월남전에서 적은 항시 고립된 목표에 대해 우세한 병력으로 야간에 기습공격을하는 전법을 섰다.
이에 맹호부대는 중대단위 전술기지를 구축하였는데,
이 전술기지는 연대규모의 적 공격에도 최소한 48시간을 지탱할 수 있게 편성되어 있었다.
외곽에는 삼중의 철조망 네이팜, 조명지뢰, 크레모아 등 장벽을 설치하고
경계초소를 기지전방에 설치하여 적의 접근을 조기에 발견하도록 하였다.
사진은 중대전술기지의 전경이다.

전술기지를 방문한 이형석 국방부 전사편찬 위원장.jpg
전술기지를 방문한 이형석 국방부 전사편찬 위원장(70.5)
월남전 기간동안 많은 주요 인사들이 월남을 방문 우리 국군을 위로하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사진은 이형석 국방부 전사편찬위원장이 전술기지를 방문하고 있는 모습이다.

맹호부대를 방문한 박대통령(66.10.21).jpg
1966년 10월 21일 맹호부대를 방문하신 고 박정희 전 대통령님입니다.

경계요령에 대한 교육68.9.4.jpg
이 역시 초창기 대단위부대 교육장 같습니다. 허허벌판이군요.
이후에는 완벽한 막사들을 지워 막사 안에서 교육을 했습니다.


경계요령에 대한 교육(68.9.4)
월남전을 치루는 동안 맹호부대는 많은 작전을 치뤘다. 그리고 그이외에도 많은 시간을 병사 교육훈련에 힘썼다.
사진은 경계요령에 대한 교육을 진행시키는 모습이다.

한국산 K-레이션.jpg
소고기 장조림, 김치 등 한국군의 사기를 올려주던 K-레이션을 보급받고있네요.
K-레이션은 작전용이 아니고 기지에서 사용하던 보급 식량이었지요.
한국산 C-레이션의 보급?(잘못된 제목입니다. K-레이션이 맞습니다.)


백마부대는 1966년 8월 15일 월남 나트랑에 처음 도착한 이래 많은 전투와 대민봉사를 경험했다.
사진은 한국산 K-레이션을 보급받고 즐거워하는 병사들의 모습이다.

출동.jpg

독수리 69-비호 23호 작전에 출동하는 병사(69.6.17)
비호 23호작전은 1969년 6월 7일부터 21일까지 관린성 및 갓솔계곡에서
3개 연대에서 1개 대대씩 차출된 부대로 치룬 전투이다. 작전 결과 적 사살 186명, 무기 81점을 노획하였다.
사진은 작전에 출동하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다.

헬리콥터들.jpg
작전 출발의 헬기들 모습이군요.
저는 이런 모습을 사진으로만 감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월남평원을 누비는 헬리콥터들
닌호아 1호작전은 1967년 10월 24일부터 28일까지 닌호아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작전 결과, 적 사살 133명, 포로 2명, 화기 24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월남평야를 누비는 헬리콥터의 모습이다.

전형적인 V.C은거지.jpg
사진설명은 전형적인 V.C은거지라 했는데 V.C기지는 정글속에 또는 땅 속에 숨어있어 보이질 않습니다.
아마도 V.C의 포대 또는 관망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V.C시설이 맞겠지요.


백마 2호작전은 1967년 3월 31일부터 4월 16일까지 2개 연대를 닌호아 동남방 5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혼헤오반도에 투입시켜 닌호아지역을 위협하고 있는 적을 소탕한 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 사살 12명, 포로 26명, 귀순 1명, 소화기 28점, 공용화기 3점 노획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작전 도중 수색된 전형적인 베트콩 은거지 모습이다.

목표지역 투입.jpg
이 장면은 작전에 임하면 헬기내에서 가끔 보는 장면이지요.

헬리콥더로 목표지역 투입(66.6.4)
월남전에서 적은 항시 고립된 목표에 대해 우세한 병력으로 야간에 기습공격을하는 전법을 섰다.
이에 맹호부대는 중대단위 전술기지를 구축하였는데, 이 전술기지는 연대규모의 적 공격에도 최소한
48시간을 지탱할 수 있게 편성되어 있었다. 맹호부대는 이같이 소부대 규모 작전이 많았다.
사진은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목표지역에 투입하는 모습이다.

밀림을 탐색하는 용사들.jpg
랜딩 후 100여m 자신들의 구역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가 사주경계를 하다 전 병력이 도착하면
각 중대별 섹터로 이동하여 작전에 임했습니다.


밀림을 탐색하는 용사들
독수리 70-1호 작전은 1970년 4월 22일부터 5월 16일까지 한국군 전술책임지역 밖에 위치한
투이호아 서북 40Km지역인 폭탄주변, 쑤이카이 계곡 일대의 월맹군 13대대,
베트콩 96대대에 대한 선제포착 섬멸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의 후방 생산시설, 지휘통신시설 파괴,
심리전 근거지 파괴 등과 1번 및 6번 도로의 위험을 제거하였다.
사진은 밀림을 수색하고 잇는 병사들의 모습이다.

도깨비부대의 탐색전.jpg
월남에서의 작전은 정글숲으로 인한 시야확보가 어려워 일렬 종대 일명 뱀꼬리작전입니다.
시야가 확보되는 개활지에선 2~3m, 소정글에선 앞전우 바짖가랑이 놓치면 길을 잃습니다.
너무 뭉쳐다니면 적에게 발각 우려도 많고 많은 피해를 당할 우려가 많기때문에
모든 작전은 분산하여 거리를 유지하며 움직입니다.


도깨비부대의 탐색전
백마 10호작전은 1969년 6월 4일부터 20일까지 빠콤지역의 적 95포병대대를 섬멸한 사단급 작전이다.
이 작전으로 캄란, 판람지역의 적 위협을 제거하였으며,
적의 보급기지와 광활한 생산지역과 유통을 단절시켰다.
작전 결과, 적 사살 170명, 포로 5명, 귀순 1명, 소화기 56점, 공용화기 17점 노획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작전에 참가한 도깨비부대원들이 탐색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늪지역.jpg
당시 정글화는 월남 현지 특성에 맞췄기에 물이 빠지도록 밑창부분에 배수구멍을 만들어 놓아
비를 맞던, 물을 건너던 물이 차지 않고 가볍고 좋았습니다. 휴식시간에 군화를 벗어보면
하얗게 부풀어 퉁퉁 부어오른 발을 정리하고 작전을 속계합니다.


태풍1호작전에서 늪지역을 통과하는 1연대용사
월남전에서 적은 항시 고립된 목표에 대해 우세한 병력으로 야간에 기습공격을하는 전법을 섰다.
이에 맹호부대는 중대단위 전술기지를 구축하였는데,
이 전술기지는 연대규모의 적 공격에도 최소한 48시간을 지탱할 수 있게 편성되어 있었다.
외곽에는 이중, 삼중의 철조망 네이팜, 조명지뢰, 크레모아 등 장벽을 설치하고
경계초소를 기지전방에 설치하여 적의 접근을 조기에 발견하도록 하였다.
사진은 맹호부대의 태풍 1호작전에서 늪지역을 통과하는 1연대 병사들의 모습이다.

도보이동.jpg
철모에 달려있는 것은 모기약
정글 모기들은 까맣고 자그마한 녀석들이 질긴 정글복을 뚫고 쏘아뎁니다.


다음 작전 지역으로 도보이동(67.1.3)
맹호 8호 작전은 1967년 1월 3일부터 3월 4일까지 2개 연대와 3개 특수중대가 투입되어
구멍고개를 기점으로 하여 남으로 전개된 작전이다.
적의 H-5 대대와 송카우 주력군 약 1,000명에 포위망을 형성, 양민과 베트콩을 분리하고
민사심리전을 전개하였다. 작전 결과 사단전술 책임지역이 2천평방킬로로 확장되었고,
적 사살 211, 포로 403, 귀순 32, 소화기 145, 공용화기 1 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밀림소탕작전을 펼치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다.

일부 사진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총을 어깨 걸어총을 하고 놀이가듯 총을 걸머메고 다니고 있는데
월남전장에선 있을 수 없는 장면들이기 때문입니다.
총은 항상 옆구리총이나 앞에총 자세를 하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주위를 살피며 진군합니다.
참전용사들의 눈빛이 살아움직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밀림탐색전.jpg
무더움을 참으면서 이렇게 진군하다 보면 월남 특유의 스콜이라는 소나기가 한시간 정도 퍼부어주면
정글복에 붙어있던 허연 소금기도 지워지고 시원함을 맛볼 수 있지만
비로 인한 장비들이 젖어 온 몬이 천만근같이 느껴질때가 많습니다.


비호 10호 작전은 1976년 9월 11일부터 26일까지 1연대 8개 중대를 푸캇산 일대에 투입,
적 18연대 3 대대를 섬멸한 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 사살 68명, 포로 6명, 소화기 33점, 공용화기 7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밀림탐색전을 벌이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다.

교전돌입.jpg
이 장면도 연출한듯 한데, 적의 징후가 보이면 무조건 은폐 엄폐물을 찾아
최대한으로 나의 몸을 숨기고 엎드려쏴 자세를 취하고 사주경계에 임합니다.


적을 포착하자 교전돌입
독수리 70-1호 작전은 1970년 4월 22일부터 5월 16일까지 한국군 전술책임지역 밖에 위치한
투이호아 서북 40Km지역인 폭탄주변, 쑤이카이 계곡 일대의 월맹군 13대대,
베트콩 96대대에 대한 선제포착 섬멸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의 후방 생산시설, 지휘통신시설 파괴, 심리전 근거지 파괴 등과
1번 및 6번 도로의 위험을 제거하였다.
사진은 적과 교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밀림에서 교전하는 맹호.jpg
밀림에서 교전하는 맹호
헤산진 9호작전은 1969년 7월 7일부터 7월 21일까지 전개된 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 사살 202명, 포로 3명, 소화기 76점, 공용화기 1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밀림지역에서 적과 교전하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다.

백마1호작전.jpg
백마1호작전
백마 1호작전은 1967년 1월 29일부터 3월 5일까지 백마부대 29연대와 30연대가
나트랑 북방 25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카오게곡과 혼바산 일대에서
월맹군 18 B연대를 포착 적의 근거지를 소탕하였다.
사진은 백마 1호작전을 수행중인 백마 용사들의 모습이다.

적을 추격.jpg
숲속으로 적을 추격
백마 6호작전은 1968년 5월 5일부터 6월 7일까지 2단계로 나누어 실시한 사단급 작전이다.
1단계는 혼바산과 슈이카이 계곡에서 2단계는 혼쥬산일대에서 험준한 정글과 산악지를 기습 포위하여
월맹군 18 B 연대본부를 포착 섬멸하였다.
작전 결과 적 사살 370명, 포로 6명, 귀순 19명,소화기 147점, 공용화기 8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숲속에서 적을 추격하는 모습이다.

대나무 다리.jpg
대나무 다리를 이용 전진
맹호 12호 작전은 1968년 6월 11일부터 7월 19일까지 전 사단부대가 푸캇산과
고노이 평야에 투입되어 재침투한 정규군과 베트콩을 섬멸한 작전이다.
작전중 사단은 전격적인 기습을 감행하여 적의 지휘본부를 일망타진함으로서
초기에 적 주력을 섬멸하였다.
적 사살 355명, 화기 165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병사들이 대나무 다리을 이용 전진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글을 헤치면서 진격.jpg
정글을 헤치면서 진격
혜산진 6호작전은 1969년 1월 20일부터 2월 8일까지 26연대가 혼답산일대에서 1단계 소탕작전을 전개하고
킬로계곡 남방에서 미 173공수여단의 지원을 받아 2단계 작전을 실행한 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 사살 107명, 포로 7명, 소화기 48, 공용화기 9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정글을 헤치면서 진격하는 맹호 병사들의 모습이다.

적을 찾아서.jpg
적을 찾아서
맹호 8호 작전은 1967년 1월 3일부터 3월 4일까지 2개 연대와 3개 특수중대가 투입되어
구멍고개를 기점으로 하여 남으로 전개된 작전이다. 적의 H-5 대대와
송카우 주력군 약 1,000명에 포위망을 형성, 양민과 베트콩을 분리하고 민사심리전을 전개하였다.
작전 결과 사단전술 책임지역이 2천평방킬로로 확장되었고,
적 사살 211, 포로 403, 귀순 32, 소화기 145, 공용화기 1 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작전수행중 적을 찾아 수색하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다.

동굴 예상지.jpg
적의 동굴 예상지를 파고있는 수색대
맹호 5호 작전은 1966년 3월 23일부터 25일까지 빈딘성 퀴논 북방 20킬로미터 일대에
2개 연대를 투입사단전술 책임지역을 확장 고보이 평야지역에서 적의 식량 공급원을 제거하고
양민의 추수를 도운 작전이다.
사진은 맹호 6호 작전시 적의 동굴 예상지를 파고 있는 수색대의 모습이다.

밀림 수색.jpg
밀림을 수색하는 29전투단 용사
백마2호작전은 1967년 3월 31일부터 4월 16일까지 2개 연대를 닌호아 동남방 5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혼헤오반도에 투입시켜 닌호아지역을 위협하고 있는 적을 소탕한 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 사살 12명, 포로 26명, 귀순 1명, 소화기 28점, 공용화기 3점 노획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밀림을 수색하는 29전투단 용사들의 모습이다.

부비추랩.jpg
이런 함정들은 길가에 설치를 해 놓아서 길을 피해 움직여야 하며 어쩔수 없이 길을 쫒아 가다보면
저런 곳은 길보다 높다던가 흙의 색이 다르다던가 표시가 있다던가 하는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대창과 부비추랩으로 된 함정
맹호 12호 작전은 1968년 6월 11일부터 7월 19일까지 전 사단부대가 푸캇산과 고노이 평야에 투입되어
재침투한 정규군과 베트콩을 섬멸한 작전이다.
작전중 사단은 전격적인 기습을 감행하여 적의 지휘본부를 일망타진함으로서
초기에 적 주력을 섬멸하였다.
적 사살 355명, 화기 165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대창과 부비추랩으로 된 적의 함정이다.

단검.jpg
단검을 들고 수색하는 병사
월남전에서 적은 항시 고립된 목표에 대해 우세한 병력으로 야간에 기습공격을하는 전법을 섰다.
이에 맹호부대는 중대단위 전술기지를 구축하였는데, 이 전술기지는 연대규모의 적 공격에도
최소한 48시간을 지탱할 수 있게 편성되어 있었다. 맹호부대는 이같이 소부대 규모 작전이 많았다.
사진은 번개5호작전도중 단검을 들고 수색하는 맹호 병사들의 모습이다.

밀림.jpg
이 모습은 바로 저런 위치에서 약 45도 경사밑 200여m 초원지대에서
3명의 베트콩이 식량을 어께에 짊어지고 나타난 것을 목격 중대장님께 보고하고
저런 자세로 사격을 하여 적 사살 2명 1명 도주 권총 1자루 식량 등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던 장면입니다.

이 사격 후 1명 정글속으로 도주 타 분대장이 4명을 이끌고 내려가 확이 사살 후 노획물 수거 후
다음지역으로 이동하였고 우리 분대원이 흙과 피 그리고 각종 오물들이 묻은 권총을 개울가에서
앃어온 결과 총알을 하도 많이 맞아 탄창분리 불가 방아쇠 작동불가
철저하게 망가져 완전 사용불가였습니다.

이 권총도 노획물 전시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전공은 누구에게 갔는지
누구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인지는 당시엔 일반 하사여서가 아니라
당여히 가야 할 곳으로 가려니 생각하였고 욕심 또한 없었기에 생각도 안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전사를 보니 허구로 조작된 전사들이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됩니다.


밀림에서 경계중인 병사
독수리 70-1호 작전은 1970년 4월 22일부터 5월 16일까지 한국군 전술책임지역 밖에 위치한
투이호아 서북 40Km지역인 폭탄주변, 쑤이카이 계곡 일대의 월맹군 13대대,
베트콩 96대대에 대한 선제포착 섬멸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의 후방 생산시설, 지휘통신시설 파괴, 심리전 근거지 파괴 등과
1번 및 6번 도로의 위험을 제거하였다.
사진은 작전 도중 밀림에서 경계중인 병사들의 모습이다.

밀림, 폭염.jpg
밀림, 폭염, 베트콩을 정복하는 맹호
맹호 10호 작전은 1968년 2월 17일부터 4월 1일까지 적의 구정공세 후 차기작전 준비에 임하고 있는
적의 예상집결지를 강타한 작전이다. 특히 월맹군 제 18연대 7,9 대대의
주력과 지방 게릴라들이 포착 섬멸되어 적의 퀴논공세 기도를 분쇄하였다.
작전 결과, 적 사살 664명, 포로 60명, 소화기 210점, 공용화기 38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폭염에도 불구하고 밀림지역에서 베트콩을 공격하는 맹호부대 용사들의 모습이다.

밀림수색.jpg
이곳은 사진상으로 보아선 확실하진 않지만 너뭇잎들로 모아 고엽제가 뿌려진 산인것 같습니다.
고엽제가 뿌려진 지역의 나무들은 허옇게 말라죽어 있었습니다.


밀림수색
독수리 70-1호 작전은 1970년 4월 22일부터 5월 16일까지 한국군 전술책임지역 밖에 위치한
투이호아 서북 40Km지역인 폭탄주변, 쑤이카이 계곡 일대의 월맹군 13대대, 베트콩 96대대에 대한
선제포착 섬멸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의 후방 생산시설, 지휘통신시설 파괴,
심리전 근거지 파괴 등과 1번 및 6번 도로의 위험을 제거하였다.
사진은 밀림수색 작전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

밀림수색전.jpg
밀림수색전
백마부대는 1966년 8월 15일에 월남 나트랑에 처음 한 이래 많은 전투와 대민봉사를 경험했다.
사진은 마두 1호작전중 밀림수색전을 펼치고 있는 백마부대 용사들이다.

밀림을 수색.jpg
밀림을 수색하는 29전투단 용사
백마2호작전은 1967년 3월 31일부터 4월 16일까지 2개 연대를 닌호아 동남방 5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혼헤오반도에 투입시켜 닌호아지역을 위협하고 있는 적을 소탕한 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 사살 12명, 포로 26명, 귀순 1명, 소화기 28점, 공용화기 3점 노획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밀림을 수색하는 29전투단 용사들의 모습이다.

밀림을 탐색하는 맹호.jpg
바로 이런 자세를 낮춘 장면들이 정확한 전투 분위기입니다.
나도 이런 분위기가 있었는데 대정글이라 시야가 확보 되어 있었고 휴식시간이라 배낭에 기대고 있는데...
갑자기 슈룩~~ 슈룩~~ 퍽!, 슈룩~~ 슈룩~~ 퍽! 하며 연발로 뭔가가 날아와 박히는 소리가 나서
일어나 동정을 살피려는데 분대원 한명이 나를 낚아채 넘어트리면서 "B40이다"라고 고함을치며
작은 돌맹이뒤로 숨어 총을 전방에 겨누며 교전자세를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중대원들을 둘러보니 중대원들도 그 소리에 따라 물이 흐르던 파인 땅에
또는 나무 뒤에 모두들 은폐 엄폐물을 찾아 교전자세들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약 3~5분정도 지나자 누구의 지시도 없었는데 산 윗쪽으로 냅다 뛰어나가며 돌격앞으로 하는거였습니다.

나는 좀더 돌격이 진척된다면 대원들을 통제 할 수 없이 분산될 것을 우려해 이러다
중대원들 다 잃겠다 싶어 중대장님께 건의드려 다시들 모여 진군채비를 하려는데
분대원 한명이 나를 부르더니 무언가를 가르키는데
바라보니 땅속에 파뭍힌 꼬리달린 로켓포탄이었습니다.


당시 B40에 대한 교육을 받아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 본적이 없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때였습니다.

순간적인 생각이었지만 예전에 뭍혀있던 물건으로 생각되었지만 저 물건이 터졌더라면
우리들은 그자리에서 사라졌을 것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습니다.

당시 중대원들의 행동이 겁보같고 유치하고 우습게 생각했었습니다만
정말 훌륭하고 멋진 행동들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전투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뇌리에 남아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잊혀지지않는 기억중의 하나입니다.


밀림을 탐색하는 맹호
월계작전은 1970년 2월 12일부터 3월 4일간에 빈딘성 빈케군 및 푸캇군 일대에서 준동하는 월맹군
18연대 7대대 및 제 2연대의 본거지를 분쇄하기 위하여 9개 대대를 동원한 사단급 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 사살 330명, 소화기 194점, 공용화기 28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밀림지역을 탐색하고 있는 맹호부대 용사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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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요새지를 파괴하는 아군 75미리포
월남전에서 적은 항시 고립된 목표에 대해 우세한 병력으로 야간에 기습공격을하는 전법을 섰다.
이에 맹호부대는 중대단위 전술기지를 구축하였는데, 이 전술기지는 연대규모의 적 공격에도
최소한 48시간을 지탱할 수 있게 편성되어 있었다. 맹호부대는 이같이 소부대 규모 작전이 많았다.
사진은 적 요새를 공격하는 아군 75미리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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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격포사격
비호 23호작전은 1969년 6월 7일부터 21일까지 관린성 및 갓솔계곡에서
3개 연대에서 1개 대대씩 차출된 부대로 치룬 전투이다. 작전 결과 적 사살 186명,
무기 81점을 노획하였다.
사진은 작전 도중 박격포사격을 하고 있는 맹호부대 용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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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백중의 백마부대 명사수
오작교작전은 1967년 3월 8일부터 5월 31일간에 맹호, 백마 양 사단을 투입하여
월남국민의 숙원이었던 1번 국도의 개통을 시도한 작전이다.
작전 결과 수도사단이 위치한 퀴논과 9사단이 위치한 투이호아로 연결하는
번 국도의 개통과 월남주민 약 73,000 명을 적 통치로부터 해방시켰다.
사진은 작전중 적에게 포를 쏘고 있는 백마부대 병사들이다.

포병화력을 유도하는 관측장교(67.3.1).jpg
포병화력을 유도하는 관측장교(67.3.1)
백마2호작전은 1967년 3월 31일부터 4월 16일까지 2개 연대를 닌호아 동남방 5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혼헤오반도에 투입시켜 닌호아지역을 위협하고 있는 적을 소탕한 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 사살 12명, 포로 26명, 귀순 1명, 소화기 28점, 공용화기 3점 노획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포병화력을 유도하는 관측장교의 모습이다.

폭격.jpg
적의 완강한 저항지점을 폭격
맹호 12호 작전은 1968년 6월 11일부터 7월 19일까지 전 사단부대가 푸캇산과 고노이 평야에 투입되어
재침투한 정규군과 베트콩을 섬멸한 작전이다. 작전중 사단은 전격적인 기습을 감행하여
적의 지휘본부를 일망타진함으로서 초기에 적 주력을 섬멸하였다.
적 사살 355명, 화기 165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완강히 버티고 있는 적 진지를 폭격하는 모습이다.

밀림탐색.jpg
밀림탐색
월계작전은 1970년 2월 12일부터 3월 4일간에 빈딘성 빈케군 및 푸캇군 일대에서 준동하는
월맹군 18연대 7대대 및 제 2연대의 본거지를 분쇄하기 위하여 9개 대대를 동원한 사단급 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 사살 330명, 소화기 194점, 공용화기 28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작전도중 밀림을 탐색하고 있는 맹호 용사들의 모습이다.

적 9명을 사살(66.6.25).jpg
연대 1중대는 매복으로 적 9명을 사살(66.6.25)
월남전에서 적은 항시 고립된 목표에 대해 우세한 병력으로 야간에 기습공격을하는 전법을 섰다.
이에 맹호부대는 중대단위 전술기지를 구축하였는데, 이 전술기지는 연대규모의 적 공격에도
최소한 48시간을 지탱할 수 있게 편성되어 있었다. 맹호부대는 이같이 소부대 규모 작전이 많았다.
사진은 1연대 1중대가 매복작전으로 적 9명을 사살한 모습이다.

소탕전.jpg
밀림소탕전
맹호 8호 작전은 1967년 1월 3일부터 3월 4일까지 2개 연대와 3개 특수중대가 투입되어
구멍고개를 기점으로 하여 남으로 전개된 작전이다.
적의 H-5 대대와 송카우 주력군 약 1,000명에 포위망을 형성,
양민과 베트콩을 분리하고 민사심리전을 전개하였다.
작전 결과 사단전술 책임지역이 2천평방킬로로 확장되었고,
적 사살 211, 포로 403, 귀순 32, 소화기 145, 공용화기 1 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밀림소탕작전을 펼치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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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을 따라 수색하는 백마용사
백마부대는 1966년 8월 15일에 월남 나트랑에 처음 한 이래 많은 전투와 대민봉사를 경험했다.
사진은 능선을 따라 수색하는 백마용사의 모습이다.

V.C용의자들.jpg
V.C용의자들
맹호 6호작전은 1966년 9월 23일부터 11월 9일까지 빈딘성 푸캇군에 위치한
전형적인 산악, 밀림, 동굴 지대에서 펼쳐진 두번째 사단급 작전이다.
작전 결과 북방으로 600평방 킬로미터의 사단전술책임지역이 확장되었다.
적 사살 1,161명, 포로 518명, 용의자 653명, 소화기 454,공용기 43점 노획 등의 전과가 있었다.
사진은 포로로 잡힌 베트콩 용의자들의 모습이다

칡넝쿨을 이용 바위를 기어오르는 박쥐부대.jpg
칡넝쿨을 이용 바위를 기어오르는 박쥐부대용사
백마 11호작전은 1970년 3월 1일부터 16일까지 실시한 사단급 작전으로
칸호아성 베트콩위원회와 월맹군 제 95포병대대 407특공대대가 은거중인 도합,
빠콤지역의적 심장부를 강타한 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 사살 163명, 포로 11명, 귀순 22명, 소화기 24점, 공용화기 76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칡넝쿨을 이용하여 바위를 오르는 박쥐부대 용사들 모습이다.

절벽.jpg
절벽을 오르는 맹호용사
월계작전은 1970년 2월 12일부터 3월 4일간에 빈딘성 빈케군 및 푸캇군 일대에서 준동하는
월맹군 18연대 7대대 및 제 2연대의 본거지를 분쇄하기 위하여 9개 대대를 동원한 사단급 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 사살 330명, 소화기 194점, 공용화기 28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작전도중 절벽을 오르고 있는 맹호 용사의 모습이다.

동굴탐색.jpg
동굴탐색
월남전을 치루는 동안 맹호부대는 많은 작전을 치뤘고 적지 않은 공훈을 세웠다.
사진은 맹호부대 용사들이 적이 은거하고 있는 동굴을 탐색하고 있는 모습이다.

적을 기만.jpg
암석뒤에서 적의 사격방향을 기만하는 백마용사
백마9호작전은 1968년 10월 11일부터 11월 4일까지 동보지역의 월맹군 7대대 및
칸호아성 베트콩위원회를 섬멸하기 위하여 실시된 사단급 작전이다.
캄란지역을 비롯 나트랑지역의 적 기지를 제거하기 위하여 압도적인 병력과 특수부대를 동원 공중,
지상으로 기동 포위하여 소탕하였다.
작전 결과 적 사살 382명, 포로 9명, 소화기 92점, 공용화기 32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암석뒤에서 적의 사격방향을 기만하는 백마용사의 모습이다.

암석.jpg
암석을 끼고 적을 겨누는 백마용사
백마9호작전은 1968년 10월 11일부터 11월 4일까지 동보지역의 월맹군 7대대 및
칸호아성 베트콩위원회를 섬멸하기 위하여 실시된 사단급 작전이다.
캄란지역을 비롯 나트랑지역의 적 기지를 제거하기 위하여 압도적인 병력과 특수부대를 동원
공중, 지상으로 기동 포위하여 소탕하였다.
작전 결과 적 사살 382명, 포로 9명, 소화기 92점, 공용화기 32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암석을 끼고 적을 겨누는 백마용사의 모습이다.

산악전.jpg
독수리 70-1호 작전은 1970년 4월 22일부터 5월 16일까지 한국군 전술책임지역 밖에 위치한
투이호아 서북 40Km지역인 폭탄주변, 쑤이카이 계곡 일대의 월맹군
13대대, 베트콩 96대대에 대한 선제포착 섬멸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의 후방 생산시설, 지휘통신시설 파괴, 심리전 근거지 파괴 등과
1번 및 6번 도로의 위험을 제거하였다.
사진은 산악전에서도 능숙하게 수행중인 병사들의 모습이다.

작전중.jpg
월계작전중의 26연대 1대대용사(70.2.25)
월계작전은 1970년 2월 12일부터 3월 4일간에 빈딘성 빈케군 및 푸캇군 일대에서 준동하는
월맹군 18연대 7대대 및 제 2연대의 본거지를 분쇄하기 위하여 9개 대대를 동원한 사단급 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 사살 330명, 소화기 194점, 공용화기 28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월계작전중인 26연대 1대대 용사들의 모습이다.

험준한 바위.jpg
내가 살아오며 남들보기엔 몸건강 마음건강한 것으로 주위사람들로부터 이야길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고백하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허리가 온전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주 못쓸 정도는 아니고 통증이 심할때는 죽고싶을정도로 통증이 심하고 꼼짝도 못하지만
스테로이드성 부신피질 홀몬제라는 진통제(월남 29연대 1대대 의무실에서부터 복용)만 먹으면
반나절 길어야 이틀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멀쩡해 집니다.

일부 가까운 사람들이 허리가 조금 약한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젊은 사람이 허리가 안좋으면 어떻게해 라는 이상한 눈초리들이 싫었고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지금까지 홀로 약물로 버텨며 살아 온 것입니다.

이 허리가 아프게 된데에는 바로 위사진과 비슷한 장소에서 내려오다 나뭇잎과 이끼낀 풀들을 밟아
그만 밑으로 미끄러지면서 그 무거운 장비와 함께 엉덩방아를 쪘는데 그 통증을 이루 표현 할 수 없어
입만 벌리고 있는데 분대원과 소대장 나중에는 중댜장님까지 와서 걱정의 눈빛으로 괜찮느냐 물어대지
거기서 아프다고하면 후송을 보낼 환경도 안되지...

하여간에 한참을 아프지 않는 방법을 모색하느라 애쓰면서 그 짊을 그대로 짊어진체
작전을 끝까지 마치고 기지로 돌아와선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화 되었던겁니다.

중대 의무실에서 진통제를 먹고나니 통증이 점점 사라져서 그리 큰 사고라 생각지 않고 지냈는데
이놈의 병이 꼭 꾀병같이 통증이 몰려오면 앉을 수도 걸을수도 없을 지경까지 갔다가도 약을 먹으면
언제 아팠더냐 식으로 수구러 들고 하니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때가 9월인가 10월경이었으니까 1월 초에 월남을 왔으니 2~3개월남 있으면 귀국이라
일부 중대원들 중 귀국병이다. 꽤병이다라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였으니 본인은 얼마나 미칠 일이겠습니까.

소대장님과 의무병을 통해 후송을 보내달라했더니 이유는 모르겠으나 난색들을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작전도 못나가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식중독까지 겹쳐 얼굴에 머리에 주먹만한 혹들이
불거져 나오니까 그제서야 겨우 봉로만에 위치한 1대대 의무실로 후송을 보내더군요.

대대에 머물면서 의무병과 친해져 사단이나 병원으로 후송을 보내달라했더니 보냐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군에서 허리에 잘못 칼을대면 아예 병신이 된다는 겁니다.
차라리 제대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참았다가 사회에 나가 치료를 받으라는 겁니다.
몇 일을 생각해 보니 그의 말들이 버텨보기로 결정짖게 하였던 겁니다.

그리하여 자대로 돌아왔으나 여전히 허리때문에 작전도 나가지 못하자 중대본부에 조기귀국을 신청했는데
서무병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결국 12월 초에 사고를 치면서 12월 말에 귀국을 하게 되었고
다음해 2월 제대를 하였습니다만 군에서는 후송기록도 없고 다친 근거가 없어
상이등급을 받을수 없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약물로 지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험준한 바위를 넘고 전진하는 백마용사(68.5.10)
백마 6호작전은 1968년 5월 5일부터 6월 7일까지 2단계로 나누어 실시한 사단급 작전이다.
1단계는 혼바산과 슈이카이 계곡에서 2단계는 혼쥬산일대에서 험준한 정글과 산악지를 기습 포위하여
월맹군 18 B 연대본부를 포착 섬멸하였다.
작전 결과 적 사살 370명, 포로 6명, 귀순 19명,소화기 147점, 공용화기 8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험준한 바위를 넘어 전진하는 백마용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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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작전중 암석지대에서 용전하는 백마용사(67.8)
홍길동작전은 1967년 7월 9일부터 8월 26일까지 푸엔성 휴송군과 칸호아성 닌호아군 등에서 어진 전투로
월맹군 95연대 드을 포착 섬멸하였으며, 7B 도로 개통을 달성하였다.
작전 결과 적 사살 243명, 포로 31명, 화기 178점 노획 등의 전과를 보였으며,
아군은 전사 6명, 부상 42명 등의 피해를 보았다.
사진은 홍길동작전중 암석지대에서 용감히 싸우고 있는 백마 용사의 모습이다.

베트공의 은거지 수색.jpg
베트공의 은거지 수색
독수리 70-1호 작전은 1970년 4월 22일부터 5월 16일까지 한국군 전술책임지역 밖에 위치한
투이호아 서북 40Km지역인 폭탄주변, 쑤이카이 계곡 일대의 월맹군 13대대,
베트콩 96대대에 대한 선제포착 섬멸작전이다.
작전 결과 적의 후방 생산시설, 지휘통신시설 파괴, 심리전 근거지 파괴 등과
1번 및 6번 도로의 위험을 제거하였다.
사진은 우리 장병들이 베트콩의 은거지를 수색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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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호6호작전중 밀림소탕
비호 6호 작전은 1966년 1월 19일부터 1월 10일까지 고보이 평야지대에서
1연대의 2개 대대 병력이 투입된 최초의 연대급 작전이다.
이 작전중 병사를 공중투입시켜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이 작전 결과 적 사살 196명, 포로 49명, 용의자 773명, 소화기 58정, 공용화기 2정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비호 6호 작전 수행중 밀림을 소탕하는 우리 병사들의 모습이다.

동굴수색.jpg
동굴수색
맹호 8호 작전은 1967년 1월 3일부터 3월 4일까지 2개 연대와 3개 특수중대가 투입되어
구멍고개를 기점으로 하여 남으로 전개된 작전이다. 적의 H-5 대대와
송카우 주력군 약 1,000명에 포위망을 형성, 양민과 베트콩을 분리하고 민사심리전을 전개하였다.
작전 결과 사단전술 책임지역이 2천평방킬로로 확장되었고,
적 사살 211, 포로 403, 귀순 32, 소화기 145, 공용화기 1 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작전수행중 동굴수색하는 병사들의 모습이다

동굴을 수색하는 백마용사.jpg
동굴을 수색하는 백마용사
홍길동작전은 1967년 7월 9일부터 8월 26일 까지 맹호, 백마 2개 사단을 투입,
주월 한국군 전술책임지역을 위협하는 적을 소탕하기 위한 선제공격이었다.
작전 결과 적의 상부지휘 체제와 전투능력을 파괴하였다.
사진은 홍길동 작전 도중 동굴을 수색하며 적을 추격하는 백마부대 용사의 모습이다.

늪지대의 전방경계.jpg
늪지대의 전방경계
월남전에서 적은 항시 고립된 목표에 대해 우세한 병력으로 야간에 기습공격을하는 전법을 섰다.
이에 맹호부대는 중대단위 전술기지를 구축하였는데, 이 전술기지는 연대규모의 적 공격에도
최소한 48시간을 지탱할 수 있게 편성되어 있었다. 맹호부대는 이같이 소부대 규모 작전이 많았다.
사진은 늪지대 지역에서 전방경계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맹호6호작전.jpg
맹호6호작전
맹호 6호작전은 1966년 9월 23일부터 11월 9일까지 빈딘성 푸캇군에 위치한
전형적인 산악, 밀림, 동굴 지대에서 펼쳐진 두번째 사단급 작전이다.
작전 결과 북방으로 600평방 킬로미터의 사단전술책임지역이 확장되었다.
작전 결과 적 사살 1,161명, 포로 518명, 용의자 653명, 소화기 454,공용기 43점 노획 등의 전과가 있었다.
사진은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다.

밀림속에서 체포한 베트콩.jpg
이 사진에서 보시다싶이 월남인들은 체구가 한국사람들보다 많이 작습니다.
중학생수준정도 됩니다. 서양사람들 보다 작은 우리지만 월남사람보다는 우리가 많이 큽니다.
월남 도착하기전 오음리에서 월남적응훈련을 받는데 교관이 한국사람 한명이 월남사람 5명은
너끈하게 상대할 수 있다하여 설마 했는데 사실이었습니다.


맹호10호작전중 동굴에 있는 V.C생포(68.4.6).jpg
맹호10호작전중 동굴에 있는 V.C생포(68.4.6)
월남전에서 적은 항시 고립된 목표에 대해 우세한 병력으로 야간에 기습공격을하는 전법을 섰다.
이에 맹호부대는 중대단위 전술기지를 구축하였는데,
이 전술기지는 연대규모의 적 공격에도 최소한 48시간을 지탱할 수 있게 편성되어 있었다.
맹호부대는 이같이 소부대 규모 작전이 많았다.
사진은 맹호10호작전중 동굴에 있는 베트콩을 생포하는 장면이다.

귀순.jpg
전단문을 가지고 귀순하는 V.C
닌호아 1호작전은 1967년 10월 24일부터 28일까지 닌호아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작전 결과,
적 사살 133명, 포로 2명, 화기 24점 노획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전단문을 가지고 귀순하는 베트콩의 모습이다.

생포.jpg
은익하고 있는 베트공을 생포하는 맹호용사
비호 6호 작전은 1966년 1월 19일부터 1월 10일까지 고보이 평야지대에서
1연대의 2개 대대 병력이 투입된 최초의 연대급 작전이다.
이 작전중 병사를 공중투입시켜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이 작전 결과 적 사살 196명, 포로 49명, 용의자 773명, 소화기 58정, 공용화기 2정 등의 전과를 올렸다.
사진은 비호 6호 작전 수행중 은익한 베트콩을 생포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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