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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
■ 하박국 1-3장, 예례미야 1,11,12장: 유다의 죄와 심판,구원에 대한 예고 1장 하박국의 불평과 하나님의 응답 2장 바벨론을 통한 심판 예고 3장 바벨론도 심판 받을 것이 예고됨 ☞ 줄거리 하박국과 예레미야는 유대에서 전혀 공의가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탄식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이러한 민족의 불의를 용납하시는지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북쪽의 바벨론을 들어서 불의한 유다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자 선지자는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찌해서 더 악한 나라를 통해서 유다를 징계하시는 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 문제를 가지고 또 다시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질문을 들으시고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후에, 그들 역시 자기 죄에 대해 정당한 심판을 받게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박국은 여호와의 답변을 듣고 나서 모든 의문점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의인은 아무리 불합리해 보이는 환경 속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살아간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굳게 신뢰했으며, 기쁜 마음으로 장차 하나님께서 유다에 베푸실 구원을 노래했습니다. |
“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3:17-19)
하나님은 열방을 심판하시고 그의 대적을 멸하시며 그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하박국은 신뢰와 소망을 새롭게 하고 다함 는 기쁨의 근원이신 구원자,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찬송 가운데 강림하시며, 권능의 손과 심판의 온역과 불덩이를 동반하십니다. 땅을 진동시켜 열국을 전율케 하고 크고 작은 산들을 무너뜨립니다.
하박국은 그 영광이 하늘을 덮고 찬송이 온 땅에 울려 퍼지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묘사하여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나다. 그분의 임재로 인한 빛과 장엄함이 하늘을 메우고 온 땅에는 그의 영광이 홍수처럼 넘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그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유다에 임할 심판의 말씀을 들었을 때 큰 근심에 쌓였으나 이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대한 견고한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참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믿음과 삶을 점검하는 겸손함을 나타냅니다. 죄를 향한 심판 선언은 영혼을 각성시키고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사모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신 뜻을 깨달은 선지자는 장차 얻을 생명의 면류관을 소망하면서 땅에서의 어떠한 고난도 감수하며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변치 않겠다고 다짐하여 성도가 누리는 기쁨을 기록합니다.
선지자는 자신과 민족의 상황이 무성치 못한 무화과나무와 열매 없는 포도나무, 소출이 나지 않는 감람나무, 식물이 나지 않는 밭과 우리와 외양간에 양과 소가 없는 황폐함과 절망이지만 그러나 기뻐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환난과 고통 뒤에 구원의 약속을 기어이 성취하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높은 곳에 다니는 사슴과 같게 하실 것을 확신 속에 바라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라도 그의 내부로부터 솟아나는 기쁨을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뢰하고 경배하며 확신을 가진다면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 안에서 놀라운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주변의 상황들이 비참하다 해도 여호와로 인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리는 하박국의 감사야말로 참되고 진정한 감사입니다.
-프리셉트/「 묵상하는 사람들,메시지」, 2006. 6. 19-
젊은 나이에 벌써 성공의 길에 들어선 영국의 한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영국 의사당 앞에서 비중 높은 변호를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에 대해 많은 긴장과 부담감을 가진 나머지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하여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출세 가도를 달리던 그의 인생은 점차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정신착란 증세로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그는...
자신이 더럽고 추한 무가치한 존재라고 자학함으로써 자살까지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변에 그를 불쌍히 여기며 관심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복음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를 쓸모없다고 여기며 자살하려 했던 그가 죽음의 쇠사슬로부터 풀려 나오는데는... 10 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자신의 죄를 담당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더럽고 추한 자신의 삶이... 새로운 삶으로 변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변한 삶의 모습과 그 사랑의 감격을 시로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저 도적 회개 하고서 이 샘에 씻었네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
...속함을 얻은 백성은 영생을 얻겠네
...샘 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찬송가 190 장이 바로 그의 간증의 노래입니다. 그는 바로 윌리엄 카우퍼 (William Cowper) 로서 영국 문학사에 있어서 고전 문학가로 손꼽힐 만한 인물입니다. 그는 스가랴서 13장 1절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 이라는 구절을 읽다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는 세상의 굴레로부터 영원히 해방된 자유의 몸이 되어 이렇게 찬양합니다.
...날 정케 하신 피 보니 그 사랑 한없네
...살 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로새서 3장 10 절)(이동원 목사) 한태환 목사/「설교 예화 자료집, 구원」-
환난 중에 누리는 의인의 즐거움 |
참 고 성 경 귀 절 | |
1 |
원수의 추격과 압제 중에 주의 인자하심으로 인한 즐거움 |
시 31: 7 |
2 |
환난과 우환 중에 주의 계명으로 인한 즐거움 |
시 119:143 |
3 |
기근 중에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한 즐거움 |
합 3:17,18 |
4 |
욕과 핍박받는 중에 하늘 상으로 인 한 즐거움 |
마 5:11,12 |
5 |
투옥 중에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즐거움 |
행 16:23-25 |
6 |
환난 중에 인내와 연단과 소망을 이룸으로 인한 즐거움 |
롬 5: 3, 4 |
7 |
가난한 중에도 남을 부요하게 함으로 인한 즐거움 |
고후 6:10 |
8 |
재물을 잃은 중에 영구한 천국 사업으로 인한 즐거움 |
히 10:34 |
9 |
시험중 에 믿음의 성숙으로 인한 즐거움 |
약 1: 2, 3 |
10 |
불같은 시험 중에 그리스도의 영광의 소망으로 인한 즐거움 |
벧전 4:12,13 |
28주(화)
■ 예례미야 2-5장: 유다의 죄악과 하나님의 책망 2장 유다에 대한 책망 3장 돌아오라 4장 북쪽으로부터의 재앙 5장 안으로 부터의 타락 ☞ 줄거리 유다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온갖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리고, 물을 저장할 수 없는 웅덩이, 즉 우상을 좆고 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유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세하게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죄악상을 자세하게 지적하신 후에, 그들이 신속하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심판을 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북방 민족을 통해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55고하셨습니다. |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5:1)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온 예루살렘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진실한 사람은 전혀 없고, 하나님의 경고를 멸시하는 부도덕한 사람만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나님께서는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성실하게 순종하는 진실한 사람을 찾고자 했지만 실패하자 실망했습니다
처음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심히 완악한 이유가 그들이 비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워낙 어리석어 교훈도 받지 않고 징계를 받아도 깨닫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귀인들에게 찾아갔습니다(5절). 예레미야는 부유하고 유식한 예루살렘의 지도층은 여호와의 길, 하나님의 법을 알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들 역시 멍에와 결박으로 비유되는 하나님의 법을 철저하게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 사는 땅에 사자와 이리와 표범이 돌아다니며 사람을 해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6절). 이스라엘 백성의 허물과 패역함이 심하여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되지 못하는 땅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찾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이름을 빌어 맹세하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는 사기꾼 같은 사람은 찾을 수 있었으나, 진실한 사람은 찾을 수가 없으시자 실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행음하며, 창녀를 찾아 몰려다니며, 정욕이 왕성한 수말이 암말을 찾아다니듯 이웃의 아내를 유혹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고서는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실 이유가 없다고 말하며 그런 재앙은 경고하는 선지자들이나 당하라고 조롱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으며, 어떻게 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질문하십니다(9절). 그들이 조롱한 경고의 말씀은 불이 되고, 그들은 나무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헛된 바람과 같다고 했는데 그 헛된 바람이 그들을 태워 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말과 행실을 조심하며, 거룩하고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프리셉트/「묵상하는 사람들,메시지」, 2007. 04. 17-
어느 날 두루미가 물가를 걸어 다니면서 고동을 찾고 있을 때 마침 한 마리의 백조가 우아한 모습으로 노닐고 있었습니다.
고동을 찾던 두루미는 백조의 모습이 하도 아름다워서
“백조야, 너는 어디서 왔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백조가 말했습니다
“나는 천국에서 왔어, 그런데 너는 천국을 아니?‘
모른다는 두루미의 대답에 백조는 천국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천국은 진주로 된 문이 있고, 예수님이 계시고 고통과 슬픔이 없단다. 또 거기는 생명수가 흐르는 강가에 온갖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과일 나무가 있고----”
한참을 듣고 있던 두루미가 물었습니다.
“그럼 거기에 고동도 많이 있니?‘
“아니, 거기에 고동은 없어,”
라고 백조가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두루미는 실망했다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 그런 천국 너나 가라, 나는 안갈테야, 고동도 없는 천국은 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어,"
이 두루미가 바로 귀 있는 벙어리요, 눈 있는 장님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까? 오늘날 우리들도 이렇듯 땅엣 건에만 집착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 것입니다.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 종합 주석 10권,예화」p 99-
영적으로 소망 할 것들 |
참 고 성 경 구 절 | |
1 |
하나님 |
시편 71: 5;146: 5 |
2 |
하나님 나라의 확장 |
마태복음 6:10 |
3 |
예수 그리스도 |
요한복음 14: 6; 살전 1:3 |
4 |
마지막 날의 부활 |
사도행전 24:14,15 |
5 |
하나님의 영광 |
로마서 5: 2 |
6 |
그리스도의 재림 |
로마서 8:22-25 |
7 |
사랑의 은사 |
고린도전서12:31; 13: 1-3 |
8 |
성령 충만 |
에베소서 5: 8 |
9 |
복음에 합당한 생활 |
빌립보서 1:27 |
10 |
의의 면류관 |
디모데후서 4: 8; 약 1:12 |
11 |
영생 |
디도서 3: 7 |
12 |
천국 |
히브리서 11:15,16 |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No14 p527
28주(수)
■ 열왕기하 23:31-24:20, 역대기하 36:1-10, 다니엘 1장, 예례미야 6장: 바벨론에게 침략을 받는 유다 ☞ 줄거리 므낫세의 55년간의 악독한 통치는 유다를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영적 불황의 늪으로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에 경건한 왕 요시야가 일어나서 무너져 가는 나라를 바로 세워보려고 과감한 종교개혁을 시행했습니다. 그의 개혁으로 나라는 어느 정도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의 종교개혁도 사악한 므낫세가 지은 모든 죄를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요시야가 죽은 후에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이 차례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악한 므낫세를 따라서 하나님을 거부하고 악을 행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다의 악행은 더 이상 유다의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여호야김 제 3년에 유다의 멸망을 예고했던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취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유다는 선지자들의 예고대로 바벨론의 침략을 받고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도 바벨론은 여호야긴 왕 때에 다시 유다를 정복하고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1:7-8)
다니엘서 1장은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범죄 하던 유다가 결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제 복의 근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이스라엘이 일정한 영토와 주권을 가진 형태의 국가로는 지상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기 백성들이 멸망당할 때 당신의 성전이 노략질 당하고 성전의 기구들이 우상의 신전에 옮겨지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2). 하나님은 우리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시기까지 당신의 이름을 우리에게 온전히 걸고 계신 것입니다. 다니엘서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자기들을 파멸시킨 이방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밖에 있는 세력인가, 성전 파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은 이루어 질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언제,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 질 것인가 등 이스라엘 백성의 심중에 있는 여러 가지 의문들에 대해 답변을 주고 있는 책입니다. 결론적으로 다니엘서는 이스라엘의 실패가 결코 하나님의 실패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과 구원은 느부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등 세계 제국의 통치자들을 통하여 열방 위에 더욱 크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바벨론은 이스라엘의 민족혼을 말살시키기 위해 한 가지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미래의 지도자들을 자기 나라로 불러들여 극진한 배려 가운데 점차 바벨론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3년 동안 그들의 정신은 바벨론의 말과 학문으로 채워지고 그들의 영혼은 우상숭배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엘(다니엘, 미사엘)이나 야훼를 가리키는 냐, 랴(하나냐, 아사랴)라는 이름을 그들의 신의 이름인 벨, 삭, 느고 등을 넣어 바꾼데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국가도, 예루살렘 성전도 없어지고 하나님 백성의 정신과 영혼마저 말살되어 가는 상황이었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는 이 같은 거대한 흐름에 역류하는 뜻을 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소수 사람들의 온전한 믿음과 헌신을 통해 전 세계를 완전히 역전시키시고 당신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께 온전히 뜻을 정한 두 세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GTM / 「GT, 세계를 품는 경건의 시간」 . 2004. 03. 13-
옛날 중국의 양나라에 고행이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고행은 나라 안에서 유명한 절세의 미인이었으나 불행하게도 남편이 일찍 죽어 과부의 신세로 외아들을 키우며 살아갔습니다.
어느 날 고행의 아름다움을 소문으로 들은 왕이 사신을 보내어 고행에게 입궁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고행은 왕의 사신들에게 , “내가 두 지아비를 섬길 수 없는 법, 비록 왕의 명령일지라도 이 일만은 결코 따를 수 없습니다.”라고 그 자리에서 거절하고 칼을 빼어 자기의 코를 베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피 묻은 칼을 들고 다시 말했습니다.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나를 이렇게 내 손으로 형벌합니다. 죽자니 아들 때문에 그럴 수 없고 또한 왕의 명령을 따를 수 없으니 이렇게 스스로 형벌을 하는 것입니다. 왕은 나의 아름다움을 구하나 나는 이미 코가 없는 흉한 몰골이 되었다고 전해주십시오.”
사신들이 돌아가서 왕에게 이 모든 일을 고하니 완은 고행의 정결에 감동하여 덕고의대(德高義大)란 칭호를 내리고 그 정절을 표창 하였습니다
우상 앞에 제물로 바쳐졌던 왕의 진미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는 다니엘의 결단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정절을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매사에 얼마나 다니엘ㅇ;L나 예화의 여인 고행과 같은 결단으로 하나님을 향한 신아의 정절을 지켜가고 있는지----,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 종합 주석 11권,예화」p47-
28주(목)
■ 예례미야 7-10장: 유다의 우상숭배와 위선적 종교 생활 7장 위선적 예배에 대한 책망 8장 회개치 않은 죄에 대한 형벌 9장 예레미야의 애가 10장 유다에 임할 심판과 기도 ☞ 줄거리 유다의 예배와 모든 종교 행사는 진실이 사라지고 형식과 위선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외식적인 태도는 모든 백성들 속에 침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온 민족이 부패하여 더 이상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마침내 유다를 멸망시키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더 이상 유다를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유다 백성들의 타락은 절정에 도달해 있었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자기 자녀를 불에 태워 우상에게 드리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유다를 심판하시기로 결심하시고, 그 사실을 예레미야를 통해서 선포하셨습니다. 그때에 예레미야는 유다를 위해 눈물을 흘리면서 심판에 대한 애가를 지어 불렀습니다. |
본문 8:13-17에서는 완고한 유다에게 임한 심판으로 인한 상황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13절에는 유다의 중요한 농작물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에서 소출을 거둘 수 없음을 말하고, 14절에는 심판으로 인해 당황하고 우왕좌왕 하면서 횡설수설하는 것을 적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멸하시며,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우심이라”는 말은 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말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때가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말처럼 평강을 바랐으나(11), 평강이 없고(15), 이스라엘 단에서부터 전쟁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16). 단은 이스라엘의 북쪽 변방이므로 이곳에서 말의 부르짖음이 들렸다는 것은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암시합니다. 17절에서 하나님이 “술법으로 제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보내시겠다는 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할 것임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권고를 무시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으로 공의로우심을 보이십니다. 때늦은 후회를 하지 말고 지금, 바로 이때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본문 18-22절에서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유다 백성들에게 선포했으나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안타까움을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원망하며 심판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19上). 이것에 대해 하나님은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케 하였는고?”(19下)라며 그들이 심판당하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는 선지자의 마음은 심히 상하며, 슬퍼하고 있습니다(21). 이는 그들의 병이 육신에 관한 것이라면 길르앗의 유향과 같은 약품을 통해 치료하거나 의사를 데려와 치료할 수 있으나 마음의 부패에 의한 것이므로 치료가 불가능함으로 인해 더욱 그러합니다(22) 심판당하는 유다를 향한 선지자 예레미야의 마음. 오늘 이 땅을 바라보며 우리들이 지녀야 할 마음입니다.
-학생 신앙운동, SFC/「 날마다 주님과 함께, 본문해설」,1999,04, 28-
몇 년 전 목사님이 사모님과 8살 난 아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들이 시골의 언덕을 지날 때 차 한 대가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그들을 지나갔습니다. 그들이 언덕을 넘었을 때, 그들은 다시 그 차를 보았습니다. 그때 그 운전자는 운전의 방향감각을 잃고 반대편 고속도로로 뛰어들었습니다. 다른 쪽에서 오던 첫 번째 차량과 충돌을 했다. 순간적으로 고속도로는 부서진 파편 조각과 양편 차에 탔던 자들의 시체들로 어지럽혀졌습니다. 작은 소년은 별안간 일어나는 재앙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불 홑청처럼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나머지 길을 가는 동안 그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부모들은 자기 아들이 겁에 질린 것으로 인해 불안해했습니다. 그들은 아들을 잠자리에 들여보냈습니다. 10시, 11시, 그리고 12시가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소년은 아직 깨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의 옆으로 가서 소년을 진정시키며 말했습니다. “얘야, 이제 잠을 청해보지 않겠니?” 그러자 갑자기 이 작은 친구의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습니다.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빠, 사람이 죽는데 우리가 잘 수 있어요?” 복음사역의 중심은 영원한 운명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것에 대한 자각을 잃는 순간 그리스도의 봉사자로서 기본적인 자세를 잃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죽는데 우리는 잘 수 있습니까? (리차드 R. 디 리델/ 온 세상으로 알게 합시다) -한태환 목사 /「설교 예화 자료집,」-
28주(금)
■ 예례미야 18-20장,25장,26장: 박해받는 예레미야 18장 토기장이 비유 19장 깨진 오지병 비유 20장 박해받는 예레미야 25-26장 포로생활에 대한 예언과 예레미야의 박해 ☞ 줄거리 그 후에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토기장이에게 보내셨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곳에서 토기장이가 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토기장이는 마음에 안 드는 그릇이나 흠이 있는 그릇을 깨뜨렸습니다. 그리고나서 토기장이는 흙으로 다른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시며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들어 거룩한 나라로 만들려고 했지만, 그들은 흠이 있는 그릇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낌없이 멸망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악을 회개하고 돌아서면 다시 온전한 그릇으로 빚어주실 것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오지병을 가지고 가서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깨뜨리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오지병이 깨진 것처럼,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물든 유다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심판을 선포하는 예레미야에게 거부하고 그를 크게 박해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고 죽기를 원하기도 했습니다. |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18: 11)
본문 1-4절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을 방문하게 하고 토기를 만드는 과정을 보게 합니다. 이는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드는데 있어 자신의 뜻대로 하듯이 하나님께서도 당신이 창조하신 세계와 민족을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할 수 있는 주권자이심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 온 땅을, 온 민족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5-12절에서는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으로 가게 하셨던 하나님이 이제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6)고 말씀하시면서 유다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멸하려고 작정한 민족이나 국가가 악에서 돌이키면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며(7-8), 건설하려고 작정한 민족이나 국가가 악한 것을 행하면 그들에게 베풀려던 선을 돌이키실 것입니다(9-10). 이처럼 절대 주권을 가진 하나님은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향하여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 길과 행위를 선하게 하라”(11)고 명하십니다. 하지만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은 “이는 헛된 말이라. 우리는 우리의 도모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한대로 행하리라”(12)하며 주의 말씀을 거절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는 행위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비웃는 행위입니다. 악한 유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모실 자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도 모두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긍휼하신 하나님의 뜻을 떠나 악한 길로 향하여 가는 유다의 모습. 어쩌면 그 모습은 주를 부인하며, 교회를 비방하는 우리의 친구들, 불신자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에게 다시 한 번 다가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학생 신앙운동, SFC/「 날마다 주님과 함께, 본문해설」,1999, 06, 19-
어느 기독교인 집에서 정원사로 일하고 있는 존이라는 사람에게 애지중지 귀여워하는 외동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딸이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의 슬픔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먹지도 않고 어린 딸을 데려가신 하나님만을 원망하며 우울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침 그가 출근을 해서 보니 온실에 있던 장미꽃들 중에 몇 송이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꽃들은 그가 지방 장미 전시회에 출품하려고 정성들여 가꾼 것이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존은 하녀에게 누가 그랬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녀의 대답인즉 이른 새벽에 주인이 거실의 꽃병에 꽂고자 잘라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주인이 온실에 들어오더니 말했습니다.
“존, 이 꽃들은 다 나의 것이 아닌가? 내 꽃을 내 마음대로 꺾을 수 없단 말인가?”
주인의 말을 듣는 순간 존은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곧, 모든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오, 따라서 하나님은 그것들에 대해 충분한 권한이 있으시다는 것을 ----, 그제서야 그는 딸을 잃은 슬픔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혹시 우리 삶의 주인이시오, 토기장이신 주님을 잊고 살지는 않는지---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 종합 주석 10 권⌟ p-243-
. 28주(토)
◇ 이번 주 읽은 성경 요약 및 못 읽은 부분 읽고 한 주간 생활 묵상하며 가정 예배드리기
◈ 주제 : 인생을 진지하게 살라(마25:14-30)
주의 재림을 예배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인생을 진지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종말의 때에 인생을 진지하게 살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인생을 진지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 인생은 달란트를 받은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즘 한국 사회는 지도층 인사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살로 인생을 마치고 있습니다. 인생의 좌절을 경험한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 인생의 마지막 몸부림을 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해 너무 무관심합니다. 인생에 대한 왜곡된 이해가 이러한 사회현상을 낳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첫째, 달란트는 내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입니다. 즉 인생이란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둘째, 달란트는 각자의 재능에 따라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능력을 평가해서 능력에 맞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공평한 것입니다. 셋째, 달란트 결산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계획이 없이 무작정, 우연히 인생을 내신 것이 아니라 분명한 계획을 가지시고 나중에 결산하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중도에 스스로 포기하는 자살은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하나님께서 계획을 가지시고 각자의 능력에 맞게 주신 재능과 은사와 사명을 받은 달란트입니다. 이러한 이해를 가져야만 인생을 진지하게 살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인생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 인생에는 결산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결산은 삶의 패턴에 따른 열매가 기준이 됩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인생에는 두 가지 패턴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첫째, GW의 패턴입니다. 착하고(Good), 충성된(Faithful) 종의 삶입니다. 착하다는 것은 생각이 바르는 것으로 주인이 달란트를 맡긴 의도를 올바로 이해한 것이며 충성됨은 맡겨진 것을 완수하기 위해 부지런히 땀 흘리며 수고하는 것입니다. 둘째, WL의 패턴입니다. 악하고(Wiked), 게으른(Lazy)종의 삶입니다. 악하다는 것은 생각이 바르지 못한 것으로 주인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해 버린 것입니다. 게으른 것은 일하기를 싫어하는 것으로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삶의 패턴이 열매를 좌우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의 삶은 배나 남기는 열매를 맺었고 악하고 게으른 종의 삶은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결산의 때에 주인에게 상과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달란트는 하나님께서 주시지만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인생은 결코 두 번 주어지지 않습니다. 잘못된 비교의식을 벗어버리고 단 한번뿐인 고귀한 인생을 열매 맺으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 2004. 8. 10
함경도 어촌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40척의 고기잡이 배가 한 척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폭풍에 모두 침몰된 것입니다. 소년의 가족은 그 많던 재산을 피해자들에게 나눠 주고 빈손으로 동네를 떠났습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소년은 하루아침에 캐나다인 선교사 가정의 머슴이 되었습니다. 소년은 온갖 궂은 일을 감당했습니다. 추운 겨울에 맨 손으로 빨래까지 했습니다. 너무 힘이 들어 운적도 많았습니다. 선교사는 종종 소년이 알 만한 곳에 돈을 놓아두었습니다. 소년의 정직성을 시험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한 번도 그 돈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주인의 시혐에 합격했습니다.
선교사는 소년을 서울에 데려가 교육 시켰고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도 보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남대문 교회 목사를 지내고 천안대의 전신인 대한 신학교 창설자인 김치선 박사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이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 -김상복목사(할렐루야 교회)-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2차 대전 중 해롤드 럿셀이라는 공수 부대원이 전투에 나갔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고 불구자가 됩니다. 그는 참혹한 좌절에 빠집니다.
"나는 이제 쓸모없는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었구나"
그런 가운데 그의 마음속에 차츰 진리가 깃들기 시작합니다.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의사가 그에게 의수를 만들어 줍니다. 그것으로 글을 쓰고 타이핑도 하기 시작합니다.
실제 그의 이야기가 영화화되었고 자신이 직접 불구자의 모습으로 출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연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탔습니다.
그는 상금을 상이용사를 위해 기부했습니다.
어떤 기자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신체적인 조건 때문에 절망한 적은 없었습니까?"
그러나 그는 결연히 대답하였습니다.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나에게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늘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남은 것을 사용할 때 잃은 것의 열 배를 보상받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만 눈을 돌릴 때 그 곳에는 오직 정말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불가능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잃은 것 너머의 가진 것을 세어 보면 더 많은 가능성이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남은 것을 사용할 때 잃은 것의 열 배를 보상받습니다.” -헤롤드 럿셀-
주님!
주님을 바라보는 충성된 일꾼이 되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넘치는 용기와 풍성한 위로를 주시옵소서
주님!
분명 십자가를 져야하는 어두움이 올지라도 부활의 밝은 아침을 확신하는 성실한 주님의 청지기가 되게 하옵소서
믿는 자가 구할 것은 오직 충성뿐이라 하셨는데 나로 하여금 작은 일에 충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