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현덕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14주년 개산 법회 및 13주년 동· 식물 영가 합동 천도재를 봉행했습니다. 강릉의 4월이라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언젠가 읽은 적이 있던 어느 시인의 벽공이라는 시가 문득 떠오를 정도로 새파랗게 청정무구(淸淨無垢)한 하늘이 이 행사를 더욱 의미 있게 축복해 주는 듯했습니다.
철없던 어린 시절 빨랫줄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새끼 제비를 죽게 했던 그 기억들이 출가한 후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오랜 기간 늘 마음에 무거운 바위처럼 자리 잡아 괴로웠습니다. 그러던 중 강릉 만월산 자락에 지금의 현덕사를 짓게 되었고, 그 동안 작심했던 새끼 제비 영가 천도재를 백중날 지내고 나서야 그 번뇌의 짐을 내려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비롯된 동· 식물 영가 합동 천도재는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기르던 고양이, 개, 병아리, 새, 물고기, 식물 등의 사진, 옷, 물건들과 편지를 가지고 천도재에 직접 참석하거나 또는 사정상 오지 못하면 부치어 위패를 모시고 천도재를 지냄으로써 마음이 편해졌다는 감사의 말씀들을 전해 들은 시간들이 어느덧 10년이 넘어 가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는 송구스럽게도 불원천리를 어렵게 오신 조계종 교구 본사 송광사 주지 무상 스님의 칠불통게계(七佛通偈戒)인 諸惡莫作(제악막작) 衆善奉行(중선봉행) 自淨其意(자정기의) 是諸佛敎(시제불교)를 법문으로 시작하였습니다. 풀 한포기, 나무 한포기, 새 한 마리의 생명도 소중하며 그 소중한 생명에는 불성이 있으므로 차별 없는 더불어 사는 삶이 행복한 세상이며 불국정토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어 제니스 합창단의 노래가 대웅전 뜰에 가득 울려 퍼지고 무용단의 살풀이춤으로 수많은 동· 식물의 원혼을 천도하였습니다.
꼬마 녀석들이 조막만한 손으로 아직 의미도 잘 모를 상태로 동식물 영혼을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녀석들이 좋아하는 동· 식물 등을 어설픈 솜씨지만 며칠 꼼지락거리며 종이 접기로 만든 것과 그린 그림들을 부처님 제단에 정성껏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 절에 처음 왔을 때 아장아장 걸었던 꼬마 효주가 어느새 중학생이 되어 나름 귀동냥으로 얻어 들었을 동식물 천도의 의미를 부처님의 말씀과 연결하여 끙끙거리며 생각하여 썼을 발원문을 낭독하였습니다. 천진난만한 녀석들이 만들고 그린 것들을 보고, 효주의 발원문 낭독을 들으며 마음에 훈훈한 기운이 가득 퍼졌습니다.
천도제 마지막 순서에는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입고 있는 격식과 체면을 내려 놓고, 스님들, 강릉 최명희 시장, 현덕사 신도들, 각계 각층의 불자들, 지역 주민들이 현덕사 대웅전 앞뜰에서 손에 손을 맞잡고 초청 가수의 노래 가락에 어울려 ‘나’가 아닌 ‘우리’임을 느끼는 한마당 잔치를 벌이고 회향을 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대웅전 앞뜰을 거닐며 얼마 전 서울에서 어떤 분이 보낸 소포가 떠올랐습니다. 앵무새 또또의 죽음으로 힘들어 하는 가족의 모습과 마음을 담담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 세장의 편지와 또또의 먹이, 장난감 등을 소중하게 동봉한 소포였습니다. 그 소포는 현덕사 가족들의 마음과 눈을 젖게 하였고 우리는 그 사연을 처음으로 현덕사 홈페이지와 ‘현덕사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카페에 올렸습니다. 예전부터 동· 식물 천도제를 부탁했던 편지와 마음들을 매체를 통해 많은 이들과 공유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며 절에 사는 사람이라 중생과 소통하는 매체에 익숙하지 못한 무지한 내가 이제는 조금씩 더 배워가며 이 행사의 의미를 널리 가치 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생물과 생물을, 나와 남을 차별하여 많은 집착이 생기고 그 집착으로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내려 놓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중생들이 현덕사를 많이 찾아 오고 있습니다. 이 중생들이 작은 미물로부터 시작하여 동물, 식물이 함께 공존하는 이 자연의 삶의 터전을 포함한 우주 삼라만상에 깃든 나를 올바르게 바라보며 부처님의 바른 제자로 나아갈 수 있기를. 더 나아가 이 사회에 소외된 약자들에게도 따스한 눈길과 손길을 내밀어 걸어 갈 수 있는 불국정토를 만들도록 끊임없이 수행하며 노력해야 함을 사찰에 가득한 석양과 함께 가슴 결결이 새겨 봅니다.
월광 송광사 2013년 5월호
첫댓글 어쩌면 우습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좋은 맘 이겠네요.
저도 가만히 뒤돌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미어지는 사연이 겹겹이 많이도 있네요.
가슴 아픈 사연을 슬그머니 말하며 반성하고 싶어도 차마 진지하게 들어 줄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고
저도 또한 가소롭다 핀잔 들을까 감히 말할 엄두도 못내며 차곡차곡 쌓아 두었읍니다.
이렇게 대놓고 말을 할 수 있게 자리해 주신 스님 고맙습니다.
이젠 최소한 어느 한군데는 말 할 수 있는 곳이 있구나에 안도하며 진심으로 참회하고 반성합니다.
부처님 죄송합니다.대단히 잘못 했읍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벌을 달게 받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