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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기리죠 라지? 아름다운 남자.
히미꼬의 집이란 뜻이다.
게이들이 모여사는 양로원의 이름이다.
히미꼬라는 격조있는 게이바의 마담이었던 게이가 은퇴후 전 재산을 들여 만든 게이 노인들의 보금자리.
암으로 죽어가는 히미꼬의 애인인 아름다운 젊은 남자가 히미꼬의 딸을 이 곳으로 불러들인다.
...
참으로 처절하게 게이로 산다는 일의 고통을 잘 그리고 있다.
자기답게 살기 위해 가족도 자식도 버리고 성적 소수자로 살아내는 일의 아픔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지고 격조있게 살고 싶어하는 이들의 이야기. 그런 삶의 희망을 거머쥐기 위해서 몸을 팔아야 하는 굴욕, 그걸 인정하면서 지키고 싶어하는 보금자리.
그리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마음의 응어리를 쉽게 풀어내지 못하면서 아버지의 애인을 사랑하게 되는 딸. 그 사이의 사랑과 쓸쓸함. 이해와 화해... 등
기가 막히게 잘 쓴 대본이라는 생각이 든다.
리얼하며 아름다운 영화이다.
순정만화의 주인공 같은 히미꼬의 애인인 남자.
아름답다.
그리고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한 캐랙터들이 좋다.
언제나 나는 게이 영화를 접할 때면 그들이 저토록 여성으로 살고 싶어하는 일의 소중항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내 여성을 자각하곤 한다. 재미나지 않은가?
내가 처음으로 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각성한 것도 바로 동성애자와의 한가지 문답때문이었다.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현대의 문화담론에 대한 강의를 들었던 때.
동성애 인권 운동가이자 문화평론가인 이정우(맞나?)...
동성애자들의 인권 운동의 역사 문화담론 등 뜨거운 강의를 듣고 난 후
난 질문했다.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요? 자신의 삶에서 그토록 중요한 문제인가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본인은 여성이지요? 아마도 당신이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 그것과 같은 거겠지요."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일을 자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 못했다.
여성으로 세상과 맞서야했던 경험도 없었고 남성과의 소통을 깊이 시도해본 적도 없었다.
사랑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내가 여성이구나. 내 여성은 무엇인가?
그 후 세상과 부딪히고 장애를 느끼면서 나는 내 여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여성성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마도 사춘기 시절 이후 매 순간 그런 장애를 느끼며 살아야 했으리라.
남다른 자신을 인정하고 세상의 관습과 통념에 짖눌려 거짓되기 보다 자기답게 살고 싶다는 갈망.
나는 올해 비로소 그런 구체적 고민을 시작하고 있다.
소수자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격려받아야 하고 아름답다.
다수의 위치에서 당당한 소수자들에게 손가락질하고 폭력을 가하는 이들 속에서 더 큰 두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남다르지 않은이 누구인가? 도대체 정상, 평범의 기준이 존재하는가?
그것은 관념이며 신기루이며 또 하나의 권력이다.
나는 나다.
이런 나도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고 그건 생명이라는 기회가 주어진 내 의무이기도 하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