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질문하는가― AI 시대, 율곡에게 다시 묻는 교육의 본질
생성형 AI는 이제 시를 쓰고, 코드를 만들고, 학생의 숙제까지 도와준다. 인간만의 능력이라 여겼던 일들이 하나씩 기계의 몫이 되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새로운 질문 앞에 선다.
AI는 정말 '이해'하는가.
1980년 미국 철학자 존 설(John Searle)은 '중국어 방(Chinese Room)' 사고실험을 통해 컴퓨터가 아무리 정확하게 기호를 처리하더라도 그것이 곧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계산(Syntax)과 이해(Semantics)는 다르다는 것이다.
반면 오늘날 인공지능 연구에서는 '시스템 반론(System Reply)'이 제기된다. 방 안의 한 사람은 중국어를 몰라도 사람과 규칙, 문서와 계산이 하나의 체계로 작동한다면 시스템 전체는 이미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AI를 둘러싼 이 논쟁은 놀랍게도 500년 전 조선의 철학자 율곡 이이의 사유를 떠올리게 한다.
율곡은 이(理)와 기(氣)를 서로 분리된 두 실체로 보지 않았다. 기가 움직이는 현실 속에서 이가 함께 드러난다고 설명했으며, 후대에서는 이를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이라 불렀다.¹
그렇다고 율곡이 AI를 예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오늘의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해란 머릿속 어딘가에 따로 저장된 지식이 아니라 삶과 경험, 그리고 행동 속에서 드러나는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율곡은 공부의 출발을 지식이 아니라 뜻을 세우는 일에서 찾았다.
율곡에게 배움은 정보를 모으는 일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스스로 묻는 일이었다. 그는 『격몽요결』에서 독서를 권하면서도, 이치를 깊이 탐구하고(窮理), 반드시 삶에서 실천할 것(力行)을 거듭 강조했다.
『성학집요』에서도 학문은 앎과 실천이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지행병진(知行竝進)의 원리를 일관되게 강조한다.³ 아는 것만으로는 사람도, 세상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오래된 가르침은 오늘의 교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학생이 정답을 맞혔다고 해서 정말 이해한 것일까. AI가 순식간에 답을 제시하는 시대에도 아이는 왜 그런 답이 나오는지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가. 친구와 생각을 나누며 자신의 판단을 바꿀 수 있는가. 배운 것을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시험 점수만으로는 답할 수 없다.
AI는 앞으로 인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더 빠르게 답을 만들 것이다. 하지만 정보가 곧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해는 경험 속에서 의미를 만들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삶으로 책임지는 과정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AI 시대일수록 학교가 해야 할 일은 더 분명해진다.
정답을 빨리 찾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지 묻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더 많은 정보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연결하고 성찰하며 삶으로 옮기는 힘을 키우는 일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학생 주도성, 성찰, 협력, 문제 해결 역량을 강조한다. 이는 시대의 요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율곡이 말한 입지(立志), 궁리(窮理), 역행(力行)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교육이 지향해야 할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AI는 언젠가 인간보다 더 많은 답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왜?'를 묻는 순간,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다.
그래서 교육은 답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질문을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율곡이 공부의 시작을 뜻을 세우는 데서 찾았던 것도, 결국은 스스로 삶의 질문을 품으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배움은 답에서 끝나지 않는다. 좋은 질문에서 다시 시작된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