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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1. 1. 13.~15.(수~금) - 음력(12. 1.~3.), 일출 07:38~일몰 17:42
●산행지: 고흥지맥 1구간 (모암재-먹국재)
●산행코스: 모암재-고흥지맥분기점-적치재-태봉-가마봉-열가재-송신탑-장군봉-285m봉-송장고개-병풍산, 두방산갈림길-원등마을-축내버스정류장-88.2m봉-가드랫재-삼거리갈림길-온동마을-이동통신탑-삼봉-탄포삼거리-운교마을-혼백산-운교마을-천봉산-골안고개-70m봉-옥천고개-송정고개-통세골고개-덕촌고개-129m봉(월락산갈림길)-장담고개-계룡산-152.7m봉-월악육교-지석묘-104m봉-과역고개-15번국도-월송재-68m봉-소대방산갈림길-153m봉-186m봉-당치-111m봉-사정재-모동고개-159.8m봉-186m봉-암봉-성황당-147m봉-성주고개-sk기지국/팔영분맥분기봉-158m봉-152m봉-당재-232m봉-채석장-312m봉-322m봉-388.5m봉-봉남재-338m봉-375m봉-335m봉-408m봉-운암산-병풍바위-중섯재-산림욕장-239m봉-238m봉-182m봉-운곡재-141m봉-146m봉(유승봉갈림길)-송곡재-163m봉-주월산-대곡재-222m봉-231m봉-수덕재-156m봉-192m봉(고봉산갈림길)-272m봉-수덕산-봉수대-화적재-NO101송전탑-포장임도-196m봉-신촌고개-221m봉-오무산-방화임도(3번)-이조판서 묘지-농장임도-130m봉-112m봉-먹국재-135m봉-갓점고개-석류농장-대밭-암릉구간-351m봉-미인치-390m봉-안치재-염소바위-벼락산-천등산-마복분맥분기점-철쭉공원-안장바위-503m봉-441m봉-404m봉-오치음성-우마장산-339m봉-서오치재-201m봉-지등고개-172m봉-밀양박씨묘-209m봉-400m봉-유주산-너덜길-상동고개-129m봉-115m봉-임도-136m봉-구암고개-106m봉-125m봉(봉화대)-너덜길-855번 도로-104m봉-함안조씨묘-군사도로-108m봉-군사도로-136m봉(군부대 정상)-헬기장-폐건물-단장고개-단장마을-79m봉-22m봉-갯바위-지죽나루
●먹거리: 생수2.5리터, 빵9, 쏘시지1, 땅콩샌드5, 단백질바2, 자유시간2, 홀스3, 사탕15, 게비스콘6, 미니자유시간8
●준비물: 경량우모, 쟈켓, 바람막이, 스틱, 구급약, 마스크3, 충전지3, 충전짹, 헤드랜턴2, 반장갑, 장갑, 손수건, 휴지, 우의, 물티슈, 긴팔, 양말, 부직반창고, 매트리스, 장단스패츠, 안대, 귀마개
●거리: 약 75.84km
●소요시간: 35.21h
●누구랑: 나홀로
●경비: 순천고속버스30,800, 모텔30,000, 벌교 시외버스3,000, 벌교택시18,500, 식사30,000, 편의점5,600, 모텔35,000, 편의점5,900, 고흥택시5,900, 고흥택시5,000, 과역동방기사식당뒤풀이13,000, 과역~순천5,800, 고속버스31,500
●날씨: -3~14, 맑음, 시계는 별로
●산행경과:
*1. 13.
- 07:38 : 모암재
- 08:02 : 고흥지맥분기점, 삼면봉(조성면, 율어면 → 벌교읍)
- 09:43 : 태봉
- 10:12 : 열가재주유소
- 11:02 : 장군봉(413.6m)
- 11:43 : 송장굴(임도)
- 12:00 : 삼면봉(285m, 벌교읍, 조성면 → 동강면)
- 12:08 : 송장고개
- 12:23 : 병풍산갈림길, 90도 우틀
- 14:03 : 원등마을회관
- 14:14 : 축내버스정류장
- 14:56~15:11 : 가드릿재, 행동식
- 16:02 : 삼봉(107.6m), 삼면봉(동강면, 대서면 → 남양면)
- 16:24 : 탄포삼거리
- 17:06 : 혼백산
- 17:20 : 사두실고개/ 운곡고개
- 17:46 : 천봉산
- 18:20 : 골안고개/ 남양초교
- 19:50~20:18 : 통세골고개, 행동식
- 21:09 : 장담고개
- 21:26 : 계룡산(152.7m)
- 21:39 : 월악육교
- 21:54~22:30 : 벤치 휴식
- 22:57 : 과역고개
- 23:20 : 15번국도
*1. 14.
- 01:24~01:35 : 행동식
- 02:32 : 당치
- 03:48 : 사정재/ 모동고개
- 03:58~04:08 : 행동식
- 06:59 : 성주고개
- 07:00~07:20 : 휴식
- 07:36 : 팔영분맥분기점
- 08:05~08:18 : 행동식
- 08:47 : 당재
- 11:54 : 봉남재
- 12:47 : 삼면봉(355m, 포두면, 점암면 → 두원면)
- 14:44 : 운람산/ 운암산
- 15:27 : 중섯재삼거리
- ??:?? : 삼면경계면(두원면, 포두면 → 고흥읍)
- 16:50 : 운곡재
- ??:?? : 유승봉갈림길
- 17:38 : 송곡재
*1. 15.
- 06:30 : 송곡재
- 07:28 : 주월산
- 08:23 : 수덕고개
- 09:05 : 면계(두원면-고흥읍), 229m봉
- 09:40 : 수덕산
- 10:09 : 화적고개
- 10:38~10:48 : 행동식
- 11:58 : 오무산
- 12:12 : 면계(고흥읍-풍양면)
- 13:00 : 먹국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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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지맥[호남정맥]: 모암재 적지봉~지죽대교(녹동, 104km)
*여수지맥[호남정맥]: 안치봉~힛도마을(81.1km)
*화원지맥[땅끝기맥]: 첨봉~목포구등대(83.5km)
*수도지맥[백두대간]: 초점산~합천군 청덕면 적포리(황강, 105.8km)
*비슬지맥[낙동정맥]: 사룡산~밀양 종남산 오우진나루(밀양강, 146.5km)
*영월지맥[한강기맥]: 삼계봉~태화산 각동리 샘골(남한강, 136km)
*춘천지맥[한강기맥]: 청량봉~춘성대교(북한강, 127.4km)
*보현지맥[낙동정맥]: 가사봉~상주시 중동면 우물리(낙동강, 166.8km)
*호미지맥[낙동정맥]: 백운산~호미곶(98km)
*팔공지맥[보현지맥]: 석심산~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새띠마을 우물교(낙동강, 120.7km)
*금오지맥[수도지맥]: 수도산~김천시 고아읍 오로리 선주교(낙동강, 81.4km)
*도솔지맥[백두대간]: 돌산령~소양2교(소양강, 88km)
*주왕지맥[한강기맥]: 계방산~영월읍 하송리(동강, 86km)
*덕산지맥[낙동정맥]: 새신고개~안동시 용상동 법흥교(낙동강, 83.1km)
*문수지맥[백두대간]: 옥돌봉~예천군 용궁면 삼강리 삼강다리(낙동강, 114.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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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맥분기점~과역천주교회 42.45km
-. 지맥분기점~원등마을 21.45km
-. 지맥분기점~골안고개 26.7km
-. 원등마을~과역천주교회 21km
-. 지맥분기점~축내버스정류장(20번 도로) 15.6km
- 축내버스정류장~성주고개 30.4km
-. 골안고개~성주고개 20.6km
-. 축내버스정류장~통세골고개(18번 지방도) 14.2km
-. 통세골고개~성주고개(14번 지방도) 16.2km
- 과역천주교회~송곡육교 23.85km
-. 과역천주교회~당재 12.35km
-. 당재~송곡육교 11.3km
- 탄포삼거리~당재 24.2km
- 당재~먹국재 23.8km
-. 성주고개~당재 3.2km
- 성주고개~먹국재 27km
-. 성주고개~수덕재 18.7km
-. 성주고개~송곡재(송곡육교) 14.8km
- 송곡육교~지죽도앞 제방 35.5km
-. 송곡육교~먹국재 12.2km
- 수덕재~지등고개 21.3km
-. 수덕재~먹국재 6.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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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정보 및 식수정보
- 순천역: 찜질방 지오스파
- 벌교택시: 061-857-0151
- 적지봉: 좌측 40m
- 열가재: 주유소, 화장실, 수도
- 탄포삼거리: 인가 수도, 200m에 휴게소
- 혼백산: 왕복 200m(10분)
- 월악산(253m): 왕복 1.6km(40분)
- 과역시외버스터미널: 062-832-9627
- 소대방산: 왕복 800m
- 186m봉: 알바주의(되돌아 나와야 함)
- 주월산(291m): 왕복 200m
- 고흥공용버스터미널: 062-833-0009
- 고흥택시: 061-833-5533
- 고흥읍(태평각, 썬모텔), 도화면: 숙박업소 다수
- 도화시내버스터미널: 정류소임
- 도화면 당오리 택시: 061-835-8777
- 화적재: 도로옆 약수터(수도)
- 먹국재: 먹국가든(5분거리)
* 서울에서 모암재 가는길
- 센트럴시티~순천: 20:10, 3.40h, 30,800
- 센트럴시티~광주: 05:30, 05:50, 06:45, 07시, 07:20,~20:50, 23:40, 24:00, 3.20h, 19,100~28,100~31,000
- 순천~벌교 시외버스: 05:40, 06:23, 06:40, 0.25h, 3,000
- 벌교터미널~모암재: 택시 2만원
- 벌교~보성행 농어촌버스: 옥전마을 입구 2번국도 천치교에서 하차, 저수지를 휘돌아 포장도로를 따라 모암재로
* 고흥에서 서울 올라오는길
- 도화~고흥~과역(광주 매5분, 순천 매40분)
- 벌교~순천~KTX~서울
- 순천~서울 17:20, 19:40, 22:30, 24:00
- 고흥~서울: 16시, 17:30, 4.30h, 35,800- 고흥읍(썬모텔), 도화면: 숙박업소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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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치봉(△568.8)~0.8~적치재~2.8~태봉~0.4~가마봉~0.8~열기재~1.8~장군봉~2.2~송장고개~6.8~가드릿재~5.9~천봉산~6.4~월악산(-0.8)~16.0~당재~6.3~운암산~6.2~주월산(-0.2)~3.5~수덕산~3.5~오무산~0.2~금성산(-1.4)~5.2~미인치~3.1~천등산~6.2~시루봉(-0.8)~3.3~유주산~7.5~지죽나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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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지맥(高興枝脈)은?
호남정맥이 제암산, 사자산, 주월산을 지나면 존제산 못 미쳐 고흥반도에 지맥 하나를 내려놓는다.
호남정맥의 존재산(712m) 남쪽 2km에 있는 적지봉(赤地峰, 571m)에서 분기하여 남동진 하며, 태봉(△325.2m), 가마봉(258m), 장군봉(△412.7m), 삼봉(△107.3m), 혼백산(183m), 천봉산(193.1m), 소대방산(165m), 운암산(△484.2m), 반월산(△291m), 수덕산(301m), 오무산(△356.3m), 벼락산(431m), 천등산(△553.5m), 우마장산(342.8m), 유주산(△416.6m) 등을 일구고, 지죽대교 앞 고흥반도 남단 남해바다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85.85~90.9km 되는 산줄기를 말한다. 고흥반도를 남북으로 온전하게 종단하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산 이름이 아닌 지역 이름을 따 고흥지맥이라 칭한다.
고흥지맥의 진행은,,,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분기한 금남호남정맥이 무령고개 장안산, 부귀산을 넘어, 전주를 넘는 모래재 부근 주화봉에서 호남정맥으로 불리며 전라남북도를 휘돌아 광주 무등산과 보성 제암산 등을 지나며, 남쪽 바닷가를 아우르며 광양 백운산으로 가던 중, 전남 보성군 조성면 주월산과 벌교읍 군 통신부대가 주둔했었던 존제산(721m) 사이 도면상 삼각점이 있는 571.1m봉에서 분기하여 고흥을 아우르다 유주산, 단장으로 끝을 맺는 도상거리 약 95km의 산줄기이다. 실제로는 571.1m봉에서 존제산 쪽으로 약간 솟은 둔덕에서 오른쪽으로 조성면과 벌교읍의 경계를 따라 동남진 하며, 적지치 → 태봉 → 가마봉 → 2번국도 → 열갓재 → 장군봉 → 경전선 → 송장굴 위를 지나 오른 무명봉인 270m봉에서 보성군 벌교읍과 고흥군 동강면의 경계를 따라 송장고개에서 병풍산 쪽으로 390m봉을 오르다가 어깨에서 남쪽으로 동강면내를 동서로 가르며 남진하여, 306m봉 → 마륜리 원등마을 옆 원등제 가는 도로로 내려가서 1차선 도로를 따라 대서면과 동강면을 오가는 2차선 도로로 나가, 축배마을로 가는 도로를 잠시 가다 오른쪽 89.3m봉으로 올라가 가드릿재 → 108.3m봉 → 남양초교 뒷능선 → 상와마을 → 855번 지방도 → 탄포삼거리 이정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가다 산으로 올라, 혼백산 → 운교고개 → 천봉산 → 남양초교 뒷능선 → 상와마을 → 옥천 → 저수지고개 → 송정마을 → 장담마을 뒷능선 → 129m봉(월락산 전위봉) → 152.7m봉 → 77번 국도 → 월악육교 → 101m봉 → 84.5m봉 → 77번 국도 → 석촌마을 → 68m봉 → 186m봉 → 111m봉 → 159.8m봉 → 196m봉 → 186m봉 → 855번 지방도인 성주(평촌)삼거리에서 올라친 150m봉에서 동쪽으로 고흥의 진산 팔영산을 떨구고 서진하며, 158.4m봉 → 당재 → 232m봉 → 388.9m봉 → 408m봉 → 운암산 → 259m봉 → 238m봉 → 146m봉 → 송곡재 → 주월산 → 대곡재 → 수덕재 → 수덕산 → 화적재 → 230m봉 → 어무산 → 먹국재 → 351m봉 → 미인치 → 안치재 → 벼락산 → 천등산까지 이어지며, 남쪽으로 우마장산을 떨구고 남진하여 210m봉을 넘어 77번 국도를 지나고 시루봉 직전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181m봉 → 400m봉을 넘어 유주산까지 이어진다.
박성태선생님이 지은 신 산경표에 따르면 유주산(417m)까지 표기되어 있지만 유주산 이후 남으로 129m봉을 지나 사덕리-구암리를 잇는 843번 지방도 뒤쪽의 150m 미만의 크고작은 야산으로 이어지며 남해바다 지죽도 직전 53m봉을 지나고 지죽도로 연결되는 지죽 연륙교까지 산줄기는 이어진다.[신경수님, 강성호님 산행기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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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군
전남 동남중서부에 위치하고 남쪽으로는 남해에 접하며, 벌교읍과 남해를 사이에 두고 고흥군과 인접해 교류가 많다. 본래 백제의 복홀군(伏忽郡)이다. 757년 보성군(寶城郡)으로 개칭하고 대로현·계수현·오아현)·마읍현을 관할하였다. 940년 오아현은 정안현으로, 마읍현은 수령현으로 개칭하여 영암군의 속현이 되고, 대로현은 회령현으로, 계수현은 장택현으로 개칭하고 그대로 보성의 속현이 되었다. 능성의 영현인 복성현, 곡성의 영현인 동복현, 추성의 영현인 옥과현, 낙안의 영현인 조양현, 남양현, 태강현, 두원현이 보성의 속현이 되었다. 1395년 고흥현이 왜구의 침임을 피해 보성의 속현인 조양현으로 이전하였다. 1441년 고흥현이 관아를 지금의 고흥읍으로 이전하면서 조양현 땅을 보성에 돌려주고, 보성의 속현이던 옛 남양현, 태강현, 풍안현, 도화현, 고다산부곡, 저천부곡 땅이 고흥에 편입되었다. 1895년 23부제 시행으로 나주부 보성군이 되었다가, 1896년 전라남도 보성군이 되었다. 1908년 낙안군이 폐지되면서 고상면·고하면·남상면·남하면이 보성에 편입되었다. 호남정맥의 백이산(伯夷山:584m)·망일봉(望日峰:650m)·존제산(尊帝山:740m)·방장산(方丈山:576m) 등이 남서 북동방향으로 해안을 따라 솟고, 제암산(帝岩山)에서 발원하는 섬진강의 지류 보성강을 사이에 두고 제암·벽옥·천마 등의 여러 산이 솟아 좁은 해안지대와 중앙의 보성강 유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산으로서 호남지방에서는 운봉(雲峰) 다음 가는 고지대를 이루고 있다. 군의 중앙으로 섬진강의 지류인 보성강이 흐르며 다목적댐인 주암댐이 위치한다. 보성군의 특산로는 녹차와 꼬막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국도제2호선이 보성읍에서 벌교읍 방향으로 관통하며, 경전선 철도가 노동면, 보성읍, 득량면, 조성면, 벌교읍을 통과한다. 주요 철도역으로는 보성역, 득량역, 예당역, 조성역, 벌교역이 위치하고 있다. 해안 지방은 교통이 편리하나, 내륙은 산지이기 때문에 벌교에서 북서쪽 화순으로 통하는 국도가 통할 뿐 큰 도로는 없다.
*고흥군 ☞ http://naver.me/GIqxO2jH
- 청정 고흥을 대표하는 8품 9미 10경 ☞ https://blog.naver.com/greenjeonnam/70103550997
전남 남동단에 있는 군으로 동쪽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삼면이 남해안에 면해있는 돌출된 반도지형으로 인해 교통이 불편하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보성군 벌교읍을 통해야 하며, 때문에 인근 지역 중에서도 벌교읍과 가장 교류가 많다. 도양읍에는 한센병 환자들의 주거지로 알려진 소록도가 있으며, 봉래면에는 국내 최초의 우주센터 나로우주센터가 있다. 고흥지역은 삼한시대에 마한의 54국 가운데 초리국(楚離國)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본래 장흥부의 고이부곡(高伊部曲, 혹은 猫部曲)이었는데 고려 1285년(충렬왕 11)에 고흥현으로 승격되고 감무가 설치되어 독립되었다. 그러나 여말선초에 왜구의 침입과 약탈이 심하여 보성군의 조양현(兆陽縣)으로 읍의 치소를 옮겼다. 1397년 진을 설치하고 병마사로 하여금 판현사(判縣使)를 겸하게 했다가 1441년(세종 23)에 장흥부의 두원현으로 옮기고 보성군의 남양현(南陽縣)을 비롯하여 태강현(泰江縣)·두원현(荳原縣)·도화현(道化縣)·풍안현(豊安縣)·도양현(道陽縣) 등의 속현을 편입시켜 고흥과 남양의 끝 글자를 따라 흥양현이라 정했다. 흥양의 별호는 고양(高陽)이었다. 호남정맥의 한 줄기가 벌교 부근까지 뻗어내려 군내에는 500m 내외의 구릉지가 많으며, 2km 내외의 지협으로 육지와 연결된다. 동쪽에 팔영산(八影山:609m), 중앙에 운람산(雲嵐山:487m), 남서쪽에 조계산(曹溪山:473m)·천등산(天嶝山:550m), 남쪽에 마복산(馬伏山:539m) 등이 솟아 있다. 동강면의 오월천(梧月川)·매곡천(梅谷川), 점암면의 성기천(聖基川), 영남면의 팔영천·금사천(錦蛇川), 고흥읍의 고흥천 등의 소하천이 군내를 흐른다. 평야는 이들 하천연안을 따라 소규모로 펼쳐져 있다. 해안선이 매우 복잡하여 득량만·순천만·여자만·해창만 등의 만이 많으며, 해안선의 길이는 1,055.96km이다. 내나로도·백일도 등 유인도 17개와 길마도·각도섬 등 무인도 155개를 포함하며, 섬을 합한 총면적이 전라남도에서 4번째로 크다. 간척사업이 활발하며, 특히 포두면과 도양읍 일대에는 넓은 간척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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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km급 전후 거물급 지맥에서 날씨와 가시 잡목을 고려해 겨울이라 고흥지맥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남쪽이 따뜻한 기온 때문인지 코로나 청정지역이기도 하며,
한겨울에는 눈도 피하고 가시 잡목도 피하고 남쪽의 지맥을 먼저 섭렵하는게 최고의 선택이 될것 같네요.
고흥지맥에 접어들기 위해 모암재에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을 연구해 봅니다.^^
밤차로 광주에 내려가 전번에 쉬었던 찜찔방에서 자고, 첫차로 벌교읍으로 이동해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과 순천으로 내려가 여관에서 자고(지오스파는 심야영업 안함) 첫차로 벌교로 이동하는 방법이 있네요.
고흥에서 올라온 고딩 친구가 자그마치 12명이나 됩니다.
고흥지맥은 오롯이 고흥을 위한 지맥이고 고흥 하면 8품9미10경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존재산(징광산) 아래 호남정맥 모암재에서 적지봉 분기점에 올라 점암면 모룡리까지 남하하고, 이후 팔영분맥을 남기고 서진하다가 수덕산 오름에서 방향을 턴하여 오무산에서 다시 남하하네요.
먼저 가신 선배님들의 산행기를 몇 개 공부하였습니다. 요맥산악회와 함께한 산경표를 따라서 박종률대선배님 후기, 법광님 후기, 칠갑산님 후기 등등등 대여섯개 살펴보았고, 개별적으로 지맥을 진행하시는 분들께서도 사진을 자세히 첨부하여 너무 세세하게 잘 꾸며 주셨더군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구간별 지도는 이미 쉽게 구할 수 있는 공공재가 되어있어 생략하였고, 봉우리마다 매달린 산패도 보이는 대로 트랭글에 사진으로 위치저장을 하였기에 용량 문제로 최대한 생략하였습니다.
첫구간으로 먹국재까지 78.5km를 1차목표로 정해 보았습니다. 후반부 발바닥에 족저근막염같은 통증이 유발되어 채석장을 지나 봉남재 이후부터 속도가 현격히 떨어지고 걷는데 조금 힘들었고요. 둘쨋날 첫차를 5분 차이로 놓치고 택시로 송곡재에 올라 비교적 짧은 거리인 먹고개까지 가는데 첫날보다 더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ㅋㅋ
2구간은 심야버스로 순천에 내려가 터미널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고흥행 첫차를 이용하여 다시 먹국재에서 출발합니다.
도화면 소재지 당오리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여유있게 졸업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먹국재~지등고개 약 13.5km를 일찍 마치고 도화면 당오리에서 하룻밤 유숙하는데 여유가 있으면 발포항 충무공 유적지를 다녀올 예정입니다.
지등고개에서 끝머리까지 약 14.2km는 시간에 쫒겨 서두르는 경우가 많아 바다 조망을 충분히 만끽하며 가능한 낮에 통과할려고 짧게 부담없이 하루 일정으로 잡았습니다. 평속 2km로 잡고 아침 7시에 출발하면 오후 2시에 마칠 수 있을것 같습니다. 피곤하지 않으면 벌교읍내에서 낙안마을 잠깐이라도 들려보면 좋겠는데 가능할려나 모르겠네요.^^
그런데 궁금증도 몇개 생겼습니다.
금산면이 가까운데 시산도는 우째서 금산면이 아닌 도양읍에 들어갈까요.
고흥군이 가까운데 손죽도와 거문도는 우째서 고흥군이 아닌 여수시에 들어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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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모암재에 내려 분기점 오르며 일출을 봅니다. 해가 떠오르는 곳이 첨산으로 가는 두방산, 병풍산, 비조암 라인인것 같습니다. 모암재는 천치재, 느재, 유재라고도 하는데 하도 천치바보라고 놀리는 바람에 벌교읍 천치리가 옥전리로 개명을 했습니다. 모암리는 토끼와 거북이가 발맞추던 동네라고 하더군요. 모암재에 도로가 나기 이전엔 그만큼 산골짜기였다는 말입니다.
♤ 모암재/ 천치재
보성군 선암리 모암마을과 벌교읍 옥전리를 잇는 고개이다. 보성군 율어면 선암리 모암마을 모암재는 천치재로 불렸는데 요즘엔 모암재 혹은 유재로 부르는 모양이다. 벌교읍에서 옥전리행 농어촌버스를 타고 옥전마을 입구에서 내려, 포장도로를 따라 모암재로 가기 위해 왼쪽 지도상의 천치저수지(현지 입간판:칠동저수지)를 휘돌아 고개를 오른다.
호남정맥 때 군부대를 통과하여 주릿재 팔각정에서 잠시 쉬었다가 석거리재로 향했던 기억이 납니다. 주릿재에서 율어면이 보였지요.
♤ 보성 율어면(栗於面)
「보성의 모스크바」로 불렸던 율어는 당시 보성군 내에서 좌익세가 강했던 지역으로 꼽힌다. 그것은 빨치산들의 주둔지가 되었던 존제산을 끼고 있고 조계산에 잇닿아 있는 지형 탓으로 반란사건 이전에도 빨치산들의 활동이 활발했었던 때문이다. 율어는 소작인이 많아 계급적 갈등이 심했을 뿐만 아니라 6,25때 전남의용군 부사령관을 지낸 김○○과 같은 열성적인 좌익들의 고향이었던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했기에 1946년 8월 15일 광복 1주년 기념식 때에도 2천에 가까운 농민들이 경찰관 1명과 우익인사 1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율어를 비롯한 산간지역은 당시 기관의 추적을 피해 숨어들어온 사람들의 은신처가 되었고, 산으로 둘러싸인 율어의 상도지역은 자연히 많은 좌익들의 활동지가 되었다. 그들은 반란사건 전부터 칼과 같은 무기로 무장하였으며 면소재지를 제외한 마을단위를 모두 장악하고 있는 상태여서 경찰관들도 자기 보신 이외에 아무런 치안활동도 펼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율어는 이처럼 좌익세가 강했던 만큼 진압된 후에도 40여 일 간이나 그들의 지배하에 있을 수밖에 없었고, 12월이 되어서야 경찰 38명과 군병력 50여 명으로 토벌작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밤에는 소위 밤손님으로 불리는 좌익들이 밥과 가축, 젊은 청년들을 잡아가고 낮에는 토벌대가 좌익에 협조한 자를 통비분자로 잡아가 이 지역의 희생은 컸다. 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생존을 위해 죽이고 죽는 살상극이 연속되었던 것이다.
저 뒷 배경이 존재산입니다. 분기점으로 오르며 눈이 많아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체인젠을 가져왔어야 하는건지...
♤ 적지봉(赤地峰, 571.1m)/ 삼면봉(조성면, 율어면 → 벌교읍)/ 지맥 분기봉/ 좌측 40m
바로 아래 적지재에서 따온 봉우리 이름이다. 모암재 옥전마을 방향에서 왼쪽 마루금으로 오른다. 뒤돌아보니 존재산이다. 철쭉 밭을 올라가면 존제산 끝자락에 자리잡은 벌교읍 옥전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옥전리는 전형적인 산촌마을로 원래는 천치리였는데 발음상 듣기가 거북하다 하여 옥전리로 개명하였고, 천치저수지도 칠동저수지로 바뀌었다. 이내 지맥 분기봉인 적지봉에 닿는데 준∙희님의 고흥지맥 분기점이란 표지판이 걸려있다.
특별한 표식도 없고 어딘지 모르게 그냥 지나치는 곳입니다. 봉우리인데 재라고 한게 특이한 점인데 자세한 위치가 잘못 전해졌을 수도 있겠단 생각입니다.
♤ 적지재(赤地峙, 431m)
고흥지맥분기점 좌측으로 40여m 거리에 분기점보다 좀 더 높은 571m봉인 적지봉이다. 적지봉이란 이름은 바로 아래의 431m봉을 지도에 赤地峙라 적혀있는데 이 적지(赤地)에서 빌려온 이름으로 적지재는 임진왜란 때 공신 이경남이 그의 아버지를 업고 피난하다 이 고개에서 왜적을 만나 아버지를 살리려다 적의 칼에 쓰러지고 아버지도 죽으니 피가 고개를 붉게 적시었다하여 유래된 지명이다. 적지치는 보성군 벌교읍 옥전리와 조성면 대곡리를 넘나드는 고개였으나 민초들이 넘나들던 길은 흔적도 없어지고 적지재는 고개가 아닌 봉우리로 준∙희님의 표지판이 소나무에 걸려있다. 적지재를 지나면서 길흔적을 찾기 힘들 정도로 묵정길이다. 404m봉을 올랐다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장흥-광양간 고속국도가 내려다보이고 왼쪽으로 존재산의 방치된 군사시설물이 남아있는 게 보인다.
율어에서 벌교와 조성면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빨치산들의 주활동무대가 되지않았나 싶습니다. 군통신부대와 방공포가 주둔했었는데 철수하였고 앞으로 공수부대가 주둔할 예정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 존제산(尊帝山,703.8m)/ 징광산
벌교의 진산이다. 존제산의 이름은 고려 충렬왕(忠烈王)이 지었다고 한다. 웅치면에 있는 제암산(807m)에 이어 보성군 내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으로서 해발 300m 이상의 고지가 무려 65㎢나 되어 넓은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산 기슭에 장군대좌의 혈이 있어 옛날에는 현명한 사람들이 많이 태어났다 하여 존제산이라 부른다. 또한 이 산은 불교와 연관된 지명이 많은 산이다. 존제산 북쪽 유신리의 갓바위 윗등에 염주를 목에 건 불상모양의 바위, 부처님과 하느님이 만나는 곳이라는 천치재, 죽으면 한줌의 흙이 된다는 뜻의 진토재, 스님들이 모여 문장을 자랑하는 곳이라는 석거리재 등은 존제산 동쪽 기슭에 있는 신라 고찰 징광사와 관련된 지명이다. 예전엔 통신부대가 상주했으나 지금은 철수하고 비어 있다.
제석산 아래 공용버스터미널은 3~40년 전에 이전했다는데 읍에서 떨어진 외진 곳에 있습니다. 벌교역이 있는 곳이 도심지이네요. "태백산맥문학관"은 터미널 옆으로 제석산 아래에 있습니다.
♤ 벌교읍
벌교읍은 전남 보성군 동부에 있는 읍으로 고읍면 벌교리 나무다리가 있어 벌교라 불렀다는데 벌교리 홍교마을에는 홍교(무지개 돌다리)가 있는데 홍교가 있던 자리는 원래 나무다리가 있었다 한다. 이 나무다리는 홍수에 유실되고 그 자리에 선암사 주지가 돌로 다시 만들어 완공했다. 1914년 벌교의 이름을 따서 벌교면이라 하였다가 1922년 이후 경전선 철도가 벌교읍을 중심지로 교통의 요지가 되어 일제강점기 동안 전남 동부지방에서 생산된 물산을 실어나르는 창구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1937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해방 이후 많이 쇠락(衰落)하였으나 여전히 보성군의 인구 30%이상을 차지하여 군청소재지가 있는 보성읍보다도 인구가 훨씬 많다고 한다. 작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백]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으며, 특산물로는 꼬막이 유명하다. 이 지역의 교통이 발달하여 외지인들이 많이 지나가는 탓에 흔히 '벌교 가서 주먹자랑 하지마라' 할 정도로 이 지역의 텃세가 세다고 한다.
고흥지맥은 조성면과 벌교읍의 경계를 타고 시작합니다.
♤ 보성군 조성면
꽤나 넓은 들의 조성면과 득량만의 모습이 보인다. 그 바로 아래에는 광양~목포간 고속도로가 보이고 그 아래에 조성면에 소재한 대곡저수지가 보인다. 원래는 이곳이 바다였는데 일제강점기에 1927년부터 10년 동안 일본인 요시이가 간척사업을 벌여 170 ha의 개펄을 막아 만든 농지라고 한다.
♤ 태봉(325.5m)/ 순천4등삼각점
전남 보성군 조성면 축내리와 벌교읍 옥전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보통 전국에 산재한 태봉은 왕실의 태(胎)를 보관하는 장소를 의미하는데 여기는 산 위에 성터 모양이 테를 두른듯 하여 태봉이라고 한다는 자료가 있다니 테봉이라고 해야 하는건지... 맞은편 존제산 뒤로 석거리재 위의 백이산과 그 너머 고동산과 금전산도 아련하게 보인다. 가야할 두방산과 봉두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 양주허공묘 바로 뒤쪽으로 올라서면 제법 널찍한 공터가 나온다. 공터를 지나 10여분을 더 진행하면 태봉으로 준희님 표지판이 걸려있고 순천4등삼각점이 있다. 지맥 분기봉인 적지봉과 모암재, 존제산이 잘 보이고 발 아래로는 옥전리의 천치저수지가 보인다.
지맥의 우측 방향으로 조성면 쪽에 떨어져 있습니다.
♤ 봉두산(鳳頭山, 427.4m)
보성군 조성면과 고흥군 대서면과 동강면의 삼면봉이다. 봉황이 큰 날개를 활짝 펼치고 비상하려는듯 산의 모습이 마치 봉황의 머리와 같다고 하여 봉두산이라고 부른다. 봉두산은 봉화불을 피우던 대(臺)라하여 봉대산(烽臺山)이라고도 불리고 가물이 들면 누군가 명당자리인 봉대산에 몰래 묘를 썻기 때문이라고 하여 파묘를 하고 마을에서 기우제를 지낸 곳이기도 하다. 병풍산에서 284.8m봉을 지나 봉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보성과 고흥의 경계이다.
♤ 가마봉(257m)
가마봉은 옛날에 장군이 말을 타고 행군하는 길터라 하여 가마봉이라 불렀다. 왼쪽으로 천치저수지가 보이고 태봉을 내려서면 천치교가 있는 옥전마을이 왼쪽으로 보인다. 특징 없는 봉같지 않은 둔덕인 가마봉과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서니 열가재가 보이고 묘가 나오면서 길은 넓어진다. 오른쪽으로 광양~목포간 고속도로가 보이고 시멘트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2번국도인 열가재다.
주유소 건물 우측벽에 수도시설이 있습니다.
♤ 열갓재/ 열하치/ 열가재/ 광양~목포간 남해고속도로와 목포~부산간 2번국도가 교차한다.
열가재는 보성군 조성면 신월리와 벌교읍 옥전리를 잇는 고개이다. 열가재는 이 지역에 열녀가 많이 나왔다고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다. 열하치라고도 부르는데 벌교읍과 조성면에 각각 주유소와 휴게소가 있다. 맥꾼들이 차가 없는 틈을 타서 국도를 무단횡단 하는 경우가 많은데 위험하고 언젠가는 화를 자초할 수 있다. 처음 고속도로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좌측 콘크리트 임도길로 약간 올라섰다가 내려서면 민가 두어 채가 나오고, 우측 목포에서 부산을 잇는 2번국도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바로 임도길로 치고 오르면 SK송신탑 앞에서 마루금과 합류할 수 있다.
장군봉 오르기전 잠깐 바위지대를 통과합니다. 장군봉에서 우틀하여 내립니다. 이후 만나는 묵묘에서 길이 좋은 곳을 따라가면 알바이니 주의~
♤ 장군봉(將軍峰, 412.7m)/ 순천3등삼각점
전남 보성군 벌교읍 마동리와 조성면 신월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이다. 송장고개가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송모(宋某)장군이 왜적을 맞아 싸웠다고 하여 송장군 고개/ 송장고개라 부른다 하고 경전선이 지나는 굴이 송장굴(宋將窟), 좀전에 지나온 가마봉이 장군이 말을 타고 행군하는 길터라 하여 가마봉이라 부른다는 것 등으로 보아 이 장군봉은 그 송장군의 모습 아닐까 생각해 본다. 2번국도를 지나고 SK주유소를 끼고 임도를 따라 오르면 kt송신소 벌교중계소를 만나고 제법 널찍한 수렛길을 따라 오르는데 넓은 길이 나오며 296m봉으로 연결되나 직전에서 오른쪽 산사면을 질러간다. 가시덩굴과 잡목이 우거진 길을 뚫고 올라 얼키설키 놓인 바위봉을 지나 올라서면 잡목으로 덮힌 장군봉으로 3등삼각점이 있다.
경전선 철도가 통과하는 송장굴 지점을 조금 지나면 임도가 나옵니다.
♤ 송장굴(宋將窟)
보성군 조성면 은곡리와 고흥군 동강면 마동마을을 잇는 고개로 희미한 등로만 보이고 우측에는 성황당 흔적인듯한 돌무덤이 보인다. 이 굴 아래로는 경남 밀양 삼랑진에서 광주 송정역을 잇는 경전선(慶全線) 철길이 지나간다. 조성에 송장굴과 관련하여 전해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때는 일제시대 조성에서 벌교로 가는 기차길 터널을 파고 있었다. 굴을 파다가 굴속에 귀가 달린 뱀이 있었는데 그 뱀을 본 사람은 그 즉시 죽어나가 믿을 수가 없었다.
- 송장굴을 지나면 소형 차량도 다닐만한 널찍한 임도가 나타난다. 송장굴 임도 건너로 올라선다.
여기엔 높이를 가리키는 표지판도 없네요. 표지판이 보일때마다 트랭글에 사진을 첨부하여 위치를 등록했지만 스압으로 고도를 나타낸 표지판 산패를 다 올리지 못합니다.
♤284.8m봉/ 삼면봉(벌교읍, 조성면 → 동강면)/ 보성과 고흥 군계
보성군 조성면과 벌교읍의 경계를 따라온 고흥지맥이 고흥군 동강면과 만나는 삼면봉이다. 높이는 284.8m 이지만 매우 가파르다. 삼면봉이자 군계인 284.8m봉에 올라서면서 보성군을 달려온 능선의 오른쪽이 고흥군으로 바뀌는 군계 능선이다. 이후 지맥은 벌교읍과 동강면의 경계를 따르다 병풍산(屛風山, 479.5m)갈림길에서 동강면으로 들어선다. 285m봉에서 지나온 지맥의 뒤쪽으로 호남정맥의 방장산-초암산-주월산-존제산(703.8m)-석거리재-백이산(582m)-조계산 능선이 보이며, 벌교읍과 금전산(좌667.9m), 오봉산(591.5m), 제석산모습(560.3m)의 모습이 뚜렷이 보인다.
♤ 첨산(尖山, 295m)/ 뱀골재/ 고흥을 지키는 수문장 첨산
고흥군 동강면 대강리, 마동리, 한천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거대한 세모뿔 모양의 산이다. 지형적으로 벌교와 고흥반도의 경계에 있는 뱀골재에 자리를 잡았다. 마동이라 불리는 마륜(馬輪)마을은 선비들이 마차를 넘나드는 마을이고 과거보러 한양이나 전라감영이 있던 전주를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개가 첨산 아래에 있는 뱀골재이다. 이 고개는 벌교에서 고흥을 넘어가는 고개로 선량한 선비는 미녀가 길을 안내하며, 과거 급제를 한 반면, 부도덕한 선비가 고개를 넘을 때는 큰 뱀이 고개에 진을치며 고개를 막아 과거에 낙방했다는 전설이 있다. 탐관오리나 부도덕한 사람은 고흥땅을 들지 못하게 하려는 선조들의 재치가 엿보인다. 고흥의 문턱에 자리를 잡고 있는 셈이라 고흥사람들은 첨산을 고흥을 지키는 수문장이라고 믿고 있었고, 벌교 사람들은 어디서나 그 기이하게 우뚝 솟은 첨산을 바라보며 고흥 사람들의 말을 수긍했다. 사람들은 순천시 별량면 동송리에 있는 첨산(295m)를 암첨산, 고흥군 동강면에 있는 첨산을 숫첨산(313m)이라고 부른다. 별량면에 있는 암첨산은 옛부터 국가에 큰 변란이 있기전에 사람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곡성이 난다고 전해지며 여순반란사건, 6,25동란, 80년 5,18 때도 이같은 소리가 났다고 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김범우의 눈을 통해 인용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하고 신성한 산으로 각인되었으며,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의 막하에서 활약하였던 송대립(宋大立)장군(여산 송씨)이 의병을 모집하여 분전하다가 순절하였던 곳이 또한 첨산이다.
♤ 송장고개
전남 보성군 조성면과 벌교읍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285m봉에서 내려서면 별 특징이 없는 안부인 송장고개로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또렷하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송모(宋某)장군이 왜적을 맞아 싸웠다고 하여 송장군 고개 또는 송장고개라 부르며, 왜적과의 싸움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시체가 쌓였으므로 송장치라 불렀다고도 한다. 송장고개를 지나고 303.6m봉을 오르면 좌측으로 두방산(486.4m)과 병풍산(479.5m)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 두방산, 병풍산 갈림길/ 두방분맥갈림길
285m봉에 올라서 좌측 두방산쪽으로 조그만 봉우리를 오르내리다 만난 곳이 두방산, 병풍산 갈림길이다. 송장고개에서 올라서니 두방산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고흥지맥길은 두방산 가는 좋은 길을 버리고 90도 우틀한다.
이후 두방산의 모습을 왼쪽으로 계속 바라보며 진행합니다. 정상부에 바위가 많아 보입니다.
♤ 두방산(斗傍山, 489m)
전남 고흥군 동강면에 위치한 산으로 이 산 어디엔가 말의 명당자리가 있어 말봉산으로도 불린 두방산은 옛날 귀절암이 있었기에 귀절산으로도, 임진왜란 때는 낙안군수와 송득운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서산으로도 불렸으며, 향토사에는 지내산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모 방(方)자를 쓰던 산이름이 일제 때 곁 방(傍)자로 바뀌었다. 호남정맥에서 가지를 친 고흥지맥이 태봉과 장군봉을 지나면서 동쪽으로 두방분맥이라고 말하는 두방산, 병풍산, 비조암, 첨산의 산줄기를 내려놓고 고흥으로 향한다.
- 간벌지를 지나 산판도로를 잠시 따르다 잡목숲으로 들어서서 303m봉을 만난다. 허접스런 나무등걸이 가로막는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면 291m봉으로 표지판이 걸려있다. 전남 고흥군 동강면 마륜리 원등마을 뒤에 있는 봉우리이다. 초창기에는 291m봉에서 우틀하여 원등재를 끼고 30번 철탑을 따라 원등마을로 향했다는데 이 루트보다는 좌측으로 10여분 더 가서 우측 능선 줄기를 따라 내려오는게 산자분수령에 맞다. 길은 보이지 않는다. 능선 아래로 내려서면 묵묘들이 꽤나 보이고 이곳을 계속 내려오다 측백나무 숲이 있는 우측으로 꺽어져 송전탑 쪽으로 내려선다.
♤ 마륜리/ 마동
고흥군 동강면에 있는 마을로서 농촌지역이며 마을 주변에 담곡 저수지가 있다. 이 마을은 옛날 선비들이 말을 타고 출입하는 말발굽 소리가 수레바퀴처럼 끊임이 없었다 하여 마륜이란 지명이 생겼으며 자연마을로는 마서, 덕촌, 마동, 축내, 원등이 있다.
원등마을회관까지 내려오지 않아도 되고 여기에서 도로를 따라 축내버스정류장까지 가도 됩니다.
왼편 축내마을을 돌아서 나온 지점에서 건너편 원등마을을 바라봤습니다. 철탑을 따라 직진하여 들판을 건넌 분도 계시지만 축내버스 정류장에서 축내마을 뒷산인 89.3m봉을 올랐다가 길게 돌아야 합니다.
♤ 원등(院嶝)마을/ 마을회관/ 도로
동강면 마륜리 원등마을은 옛 태강현의 근처에 위치한 마을인데 종계산의 한 줄기가 뻗어 고흥반도를 형성한 원맥이 이곳에서 처음 시작한 곳으로 부근에 원(院)이 있었으며 마을이 산등성이에 있다 하여 “원등(院嶝)”이라 이름하였다.
- 291m봉에서 10여분 진행하다 작은 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길도 없고 표시기도 없고 그냥 아래쪽에 원등마을을 기준으로 삼아 내려간다. 이리저리 할퀴고 뜯기며 시멘트도로가 보이는 곳까지 내려가니 유자밭이 나온다. 유자밭을 휘돌아 마을 안길로 내려서니 오른쪽이 마을 회관이다. 회관에서 몇 발걸음 되지 않는 곳이 고흥군 동강면과 대서면을 잇는 20번 고흥군도로 2차로 포장도로인데 왼쪽이 동강면 소재지이다. 면소재지에서 농어촌 버스로 벌교로 나갈 수 있다.
봉두산 아래 원등마을 서쪽에 있는 마을...
♤ 대서면 남정리 남당
고흥군과 보성군의 군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정조 때 영광 정응진씨가 화순군 도곡면에서 이주해 왔고, 남쪽에 해당되고 그 당시는 바다로 산줄기가 쭉 빠져나와 못 가운데 있는 것 같아 지형이 자라가 목을 길게 빼고 못물을 보고 내려오는 형국이고 간척이 되기 전에 앞과 좌우가 물이어서 연못 같이 보여 남생이의 ‘남’자와 못 ‘당’자를 따서 “남당(南塘)”으로 부르게 되었다.
축내마을 입구에 있는 버스정류장입니다. 직진하여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우측 묘지가 있는 곳으로 올라섭니다.
축내마을입니다. 축내마을 뒷산 봉우리(89.3m)를 빙 돌아서 여기로 왔습니다.
♤ 축내(築內)마을
원등마을에서 대서면과 조성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오면 축내마을 이정석과 마을버스 정류소가 나타난다. 축내마을도 예전에는 조성 들녁처럼 바다였던 모양이다. 축내마을은 이곳에 방죽을 축조하여 속칭 방죽안이라 불리워오다가 일제시대에 연축내(蓮築內)로 개칭하였으나 1947년에 마을 이름을 축내(築內)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 지맥길은 축내마을 버스정류소에서 우측 89.3m봉으로 올라서서 좌측의 축내마을을 끼고 삥돌아서 축내마을 뒤 고개너머로 오르나 대부분 축내마을을 지난다.
♤ 신여량장군/ 귀선돌격장/ 동강면 마륜리 마동마을
신여량은 본관이 고령(高靈)이며, 고흥 동강에서 홍해(弘海)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과 의주병마절제도위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임금을 호종(扈從)하였고 노량과 한산대첩, 권율의 부장으로 행주대첩에서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창의하여 순천 예교(曳橋)싸움에 참여했다. 당포해전에서도 공을 세워 1604년(선조 37)에는 승첩도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1691년(숙종 17) 흥양유학 신숙(申淑) 등에 의하여 공적의 포상을 바라는 상서가 순상에게 올려지고, 1735년 창평유학 고만령(高萬齡) 외 13인, 1738년 전주유학 김유성(金有聲)외 73인의 통문을 올렸다. 1753년(영조 29)에는 병조판서에 증직되고 충신정려가 내려져 명정액(命旌額)과 함께 예관이 파견되어 치제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임진왜란이 끝난 1605년(선조 38년) 전공이 인정돼 신여량은 전라우수사에 임명됐으며, 선무원종공신 1등에 녹훈됐다. 사후에는 병조판서에 증직됐으며 정려각(현 고흥군 동강면 마륜리, 전남도 기념물 제111호)이 내려졌다. 정려각과 함께 신여량의 유품으로 ‘상가교서’와 ‘밀부유서’, ‘주사선연도’, ‘당포전양승첩지도’ 등이 전해지는데 1987년 일괄적으로 전남도 유형문화재 제147호로 지정된 후 이번에 ‘상가교서’와 ‘밀부유서’가 보물로 승격 지정됐으며, 2003년 국립광주박물관에 기증돼 현재까지 보관돼 있다. 신여량 상가교서(보물 제1937호)는 1604년 신여량이 세운 전공을 평가하고 이에 대한 포상으로 정3품 당상관인 절충장군에서 가선대부(종2품 문무관 품계)로 승진시키면서 내린 상가교서로 이순신과 함께 전투에서 세운 전공을 평가해 선조가 발급한 교서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亂中雜錄>에 방답귀선장 신여량을 척후장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신여량 밀부유서(보물 제1938호)는 전라우수사로 부임하는 신여량에게 1605년 선조가 발급한 밀부유서로 유서란 군사 지휘권을 가진 지방관에게, 군사를 동원할 수 있는 일종의 증빙(證憑)인 밀부(密符)와 함께 내리는 명령서를 말한다. 이 밀부유서는 임진왜란 이후 국왕의 군사명령 방식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자료이다.
가드릿재로 내려서기 직전입니다.
♤ 가드릿재/ 가드랫재
고흥군 동강면 유둔리와 대서면 상남리를 연결하는 2차선 21번 지방도가 지난다.
- 원등마을에서 우편의 축내마을 뒷산(89.3m)을 생략하고 철탑을 기준삼아 직진하여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철탑 뒤에 매화나무 뒤쪽으로 진행하니 칡넝쿨과 가시덤불로 심한 저항을 받는다. 철탑 바로 뒷봉에서 오른쪽으로 떨어져 10여분 진행하면 산죽지대인 가드릿재에 도착한다.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반대쪽 옆으로 동강면이 내려가 보입니다. 도로가 지나 차소리가 시끄럽네요.
♤ 금곡고개/ 상남리/ 2차선 포장도로
전남 고흥 대서면에 있는 마을로서 남해 바닷가에 위치한 해안 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남양, 동편, 금곡, 온동이 있는데 남양은 과거 이곳을 지나던 승려가 마을의 위치나 기후가 중국의 제갈공명이 밭을 갈던 남양과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동편은 남양마을에서 분리되면서 남양마을 동쪽이라 하여 동편이란 이름이 붙었고 금곡은마을 앞에 가야금처럼 생긴 동산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온동은 마을 북쪽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사시사철 기후가 따뜻하므로 온동이라 하였다.
- 2차선 포장도로 건너 마루금이 이어지지만 드넓은 태양열 집전판이 들어서 있어 우측 논둑을 타고 진행해야 한다. 저 멀리 고흥지맥 마루금과 두방산 그리고 첨산의 모습이 한눈에 또렷하게 들어오기 시작한다.
삼봉으로 가는 길에 온동(溫洞)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통덕랑 청주양씨 묘지를 지나 멋진 소나무 등로가 나옵니다.
♤ 삼봉(107.3m)/ 삼면봉(동강면, 대서면 → 남양면)/ 순천3등삼각점
고흥군 동강면 유둔리와 대서면 상남리 그리고 남양면 침교리의 경계 능선에 위치한 삼면봉이다. SK고흥동강기지국 철망 왼쪽으로 올라가면 삼봉 정상이다. 산은 높지않지만 등로가 정리되어 있지않아 힘들다. 정상에는 잡목이 우거져 있다. 정상석은 없고 준∙희님의 표지판이 걸려있다. 3등삼각점이 있다. 희미한 길을 찾아 채석장으로 내려선다. 예전에 채석장이었다가 용도 폐기되어 형식적으로나마 나무를 식재해 놓았다.
- 앞에 보이는 92m봉은 채석장으로 인해 산사면이 바위 절벽을 이루다시피 하여 산의 형태를 잊어버렸다. 대부분 92m봉을 무시하고 비포장 임도로 내려간다.
- 채석장 위에 있는 92m봉을 올라서면 산성의 흔적인 듯한 돌담이 보이고 좌측으로 동강면소재지 너머로 첨산이 보인다. 가야할 혼백산도 보인다. 도로를 내려가면 비포장 농로가 나온다.
농로 옆에 태양열 집열판이 보이고 마늘밭을 지나서 77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난다. 92m봉에서 내려온 주능선과 만나는 남양면과 대서면의 경계이다. 탄포삼거리 100m 전이다. 도로를 타고 탄포삼거리로 향한다.
탄포삼거리~과역 구간이 지도상 득량만과 여자만을 양 옆에 두고 지나는 고흥반도 모가지와 같은 곳입니다.
♤ 탄포3거리/ 벌교-고흥간 검문소/ 삼면 경계면(동강면, 남양면, 대서면)
고흥군 동강면과 남양면, 대서면의 경계에 있는 삼거리로 77번과 15, 27번 2차선 지방도가 지나가는 곳이다. 남해안 지역에서 간첩들이 출몰하던 예전에는 고흥으로 통하는 유일한 도로인지라 검문검색이 심했다. 지금은 검문소가 텅 비어있다.
탄포의 옛지명은 동국여지승람이나 군지(郡誌)에 따르면 “입포(入浦)” 혹은 “숯개(탄포(炭浦)”라고 되어 있다. “입포”는 서쪽 득량만의 해안선이 마을앞 어구까지 들어왔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며, 숯개의 연원은 2가지 설이 전해진다. 첫째는 질매산 서북쪽 중턱에서 사탄이 나와 붙여졌고, 둘째는 마을 부근에서 숯을 구웠다고 하여 붙여졌다고도 한다. 숯개를 한자화하여 탄포라고 하였다. 본동(本洞)이 원래 남서면이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실시된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양면으로 편입함과 동시에 “숯개”라는 마을 이름을 음차(音借)하여 “탄포(炭浦)”라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연마을에는 화담, 침교, 아평마을이 있다.
삼봉에서 채석장 위 왼쪽 봉우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가야 마루금이지만 왼쪽의 채석장이 보이는 곳으로 내려선다. 이곳 역시 길흔적이라고는 없다. 채석장을 빠져 나와 시멘트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고흥을 가로지르는 15, 27, 77번 국도가 지나는 지하도를 건넌다.(마루금은 건너지 말아야 됨). 지하도를 건너 오른쪽으로 꺾어 자동차 전용 국도를 오른쪽에 두고 끝까지 가면 육교가 나오는데 육교 오른쪽 건너편이 탄포삼거리다. 탄포삼거리 검문소 끼고 문을 닫은 구멍가게와 어평마을 표시석이 있는 곳으로 접어들어 탄포육교를 건넌 다음에 우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 여산송씨의 묘지와 우측의 철제 휀스를 끼고 이어가다가 도로로 내려서서 어평마을 표시석을 끼고 좌틀, 마을로 가다가 도로에서 대밭을 끼고 우측으로 올라선다. 능선 아래 철조망 너머로 염소를 키우는 목장과 운교마을이 보이고 멀리 첨산도 보인다. 더 오르니 묘지 5기가 있고 우측으로 임도가 나온다.
탄포육교를 넘어 아평저수지 옆을 지나는데요. 첨산으로 가는 두방분맥이 잘 보이네요.
홀대모 띠지를 하나 걸어야 하는데 정신없어서 배낭을 두고 오느라 가져오질 않았는데 다행히 최상배선배님 띠지가 있군요.
♤ 혼백산(魂魄山, 180m)
고흥군 남양면 침교리에 있는 산이다. 지맥길은 혼백산 정상 바로 밑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혼백산 정상은 200m 다녀와야 한다. 정상에는 쌍묘가 있고 좌측 침교리 방향으로 나있는 방화선 임도가 뚜렸하다. 신선대선배님이 어느게 혼이고 어느게 백이냐고 물었는데도 아직도 답이 없다. 혼(魂)은 넋과 같은 뜻으로 살아 있는 이와 죽은 이 양쪽에 쓰이지만, 백(魄)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백(魄)은 죽은 이의 신격화된 넋을 주로 뜻한다. 대체로 혼을 양, 백을 음으로 보았다. 송대에 이르러 백은 귀, 혼은 신, 또는 백은 정의 신, 혼은 기의 신이라고 하여 기가 음양으로 나누어지고 그 작용에 의해 사람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성리대전(性理大全)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魂)은 양의 성질을 갖기 때문에 하늘로 돌아가고 백(魄)은 음의 성질을 갖기 때문에 땅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 아평(鴉坪)마을/ 고흥군 남양면 침교리
아평이란 촌전(村前)의 지형에 따른 풍수지리설에 의한 것으로 이는 검은 갈가마귀가 시체를 보고 이를 쪼아먹기 위하여 날아드는 형국이라 하며 갈가마귀 아자(鴉)와 들 평자(坪)를 써서 동명을 아평리라고 개칭한 것이다. 검은 갈가마귀는 촌전의 안산(83.3m)이며 죽은 사람의 시체는 촌전저수지 밑에 길게 뻗어있는 벌판을 말한 것이다.
여기서 서쪽으로 고흥군 남양면 중산리 득랑만에 지는 일몰이 유명한 고흥 10경중에 하나입니다.
♤ 운교(雲橋)마을/ 고흥군 남양면 중산리
고흥군 남양면에 있는 마을로서 남해 바다에 위치한 해안마을이며 근처에 우도가 있다.
구전에 의하면 거금(距今) 약 3백여년 전 이조 숙종 연간으로 추정되는데 그 당시 선인들이 동명을 두루실(周谷)이라 명명하여 구한말까지 약 2백여 년간 불러오다가 1914년 지방행정구역개편에 따라 구름다리(雲橋)라 개칭하였다. 두루실(周谷)이라 함은 마을안이 두루 골짜기라 하여 두루실이라고 한 것이며, 구름다리라 함은 그 당시의 지방 명물이었던 구름다리의 교명을 따서 동명을 구름다리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운교마을 도로로 내려서서 포장도로로 가면 신흥리 덕동마을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오며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위로 올라섭니다.
♤ 운교고개/ 사두실고개/ 양회임도 삼거리
탄포육교를 건너서 오른쪽 산으로 올라섰다 바로 왼쪽으로 내려서면 논 가운데로 시멘트포장도로가 나있다. 양회임도 삼거리를 만나는데 지맥길은 정면의 산으로 오르지 않고 왼쪽으로 나있는 임도를 따른다. 도로를 따라가니 오른쪽으로 지석묘인 듯 밭 가운데 둥근 바위들이 흩어져 있고,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데 글자는 흔적이 없다. 조금 진행하니 왼쪽으로 아평지(池)와 아평마을이 보인다.
- 등로 좌측으로 남양면 신흥리 지나 순천만(여자만)이 내려다 보이는데, 순천만은 전남 여수시 화정면 여자도를 중심으로 보성군과 순천시, 여수시와 고흥군으로 둘러싸여 있는 내해로서 자세한 명칭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순천의 아래에 있는 지역이어서 순천만이라고 부르며 여수 지역에서는 이 만의 중앙에 위치한 여자도에서 유래하여 여자만으로 부르는 해역이다.
방화선 임도를 따라 110m봉에 올라서 편안한 능선을 따라 천봉산을 향합니다. 천봉산에서 뭔가 잊어버린듯 한 느낌이 들었는데 바로 옆에 또다른 천봉산이 있더군요. 들리는걸 깜박 했습니다.^^
♤ 천봉산(千鳳山, 193.7m)/ 송신탑
고흥군 남양면 중산리 운교마을과 신흥리 주교마을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산 정상에는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있다. 산 중턱에 백제시대에 축조되었다는 퇴뫼식 산성인 남양리 산성(전남 지방기념물 제207호)이 있고 천봉산 서남향으로 뻗은 줄기가 득량만과 만나는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중산리 지석묘군(전남 지방기념물 제160호)이 자리를 잡고 있다.
- 시멘트길을 건너 밤나무밭 뒤로 오르면 왼쪽 아래로 납골묘가 보이고 곧장 산으로 오른다. 한동안 널찍한 수렛길을 따라 오르면 소나무를 간벌한 장소가 나오는데 오랜만에 좋은 길을 걷는다. 정상에 설치된 산불감시카메라 뒤쪽 약 5분 거리에 빼곡한 솔밭속에 삼각점이 있다. 천봉산 정상에서 왼쪽 수렛길로 내려서면 이정표가 세워진 천방산삼거리 임도에 닿고, 이곳에서 편안한 임도길을 따라 멀리 여자만을 보며 곧장 내려간다.
♤ 남양리산성
고흥군 남양군 남양리와 중산리 일대에 있는 해발 162m의 정상부를 감싸고 있는 동서 양쪽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 지역 일대에는 백제시대 조조례현(助助禮縣)이 있었던 곳이다. 조조례현은 통일신라시대 경덕왕때 이르러 충일현(忠裂縣)이 되었다가 다시 고려시대에 이르러 남앙현(南陽縣)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남양리산성의 총 둘레는 534m이고 너비는 4m 내외이다. 남양리산성의 입지와 축성법, 출토 유물들의 양상 등으로 보아 백제시대에 초축(初築)된 퇴메식 산성으로 산성내에서 출토된 유물상으로 볼 때 이 산성은 초축된 뒤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이고, 전남 동부 지역의 백제산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임도길을 따라 내려간다. 시멘트포장도로가 나오고, 그 끝자락에 86m봉을 지나 남양면에서 동강면과 고흥읍으로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가 나오면 좌측으로 꺽어져 담양전씨 선산표시석이 있는 신사동고개를 넘어 골안고개로 향한다.
♤ 골안고개/ 신사당고개/ 남양초교 삼거리
골안고개는 고흥군 남양면 대곡리에 있는 남양면 면소재지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며 직진하면 동강면으로 가고 우틀하면 고흥읍으로 이어지는 17번 2차선 지방도가 지나는 곳이다. 골안마을의 뒷산인 남정자등을 주봉으로 하여 서쪽의 임정등(嶝)과 동쪽의 새산등(嶝)과의 사이에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순수한 우리말로 골안(嶝內)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천방산삼거리 임도에서 이정표 따라 내려서면 양회임도가 나오고, 또 다른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따라가면 왼쪽으로 남양마을이 보인다. 잠시 뒤 남양초등학교가 있는 2차로 포장도로인 골안고개에 내려선다. 남양면 농협창고 뒤로 도로 따라 상와마을 표지석을 지나 노송 2그루가 있는 70m봉을 지난다.
마을 이정표를 지난 삼거리에서 좌측 소나무가 서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 상와(上瓦)고개/ 와평(瓦坪)마을/ 고흥군 남양면 대곡리
고흥군 남양면에 있는 마을로서 남해 바다를 향한 곳에 있는 해안 마을이다. 2차선 포장도로가 있는 상와고개에는 버스정류장과 배씨 효열비가 있다. 천방산의 지맥이 달려내려오면서 여러 갈래로 뻗어내린 형국이 마치 바닥에 기와가 깔려있는 것처럼 생겼다하여 기와 와자와 들평자를 써서 와평(瓦坪)이라고 했다 한다. 와평은 상와, 골안, 중와, 하와 등 4개 부락을 말하며 상와를 상단(上壇) 혹은 상미(上尾)라고도 하다가 1914년 지방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상단(上壇)에 있다하여 상와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좌측 대밭으로 올라서서 진행하며 고흥 앞바다가 보이고 좌측 밭아래 옥천제가 보이면 옥천고개를 지나 103.1m봉에 오르고 좌측 송정마을을 바라보며 송정고개로 내려서면 왼쪽으로 순천만(여자만)이 내려다 보인다.
♤ 옥천고개/ 고흥군 점암면 장남리 옥천(玉泉)마을
이 옥천고개는 장남리에 속한 고개로서 장남리는 고흥군 점암면에 위치한 마을로서 팔영산 줄기아래 서쪽 해창만 깊숙이 위치하며 시목과 굴막의 중간에서 천학제방에 의하여 포두면과 연결된다. 자연마을에는 장남, 시목, 옥천이 있는데 시목마을은 마을 뒷산의 지형이 돼지형이며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 시목이라는 지명이 붙게 되었다. 지형이 고깔안과 같다하여 당초 마을명을 고깔?자와 안내(內)자를 써서 '?내'라 하였고, 혹은 터골(基洞)이라고 불리어오다가 한일합방후 일제초기 1914년 지방행정구역개편시 마을 형국을 거군지(巨軍地)의 제왕산지형(帝王山地形)에 비유, 이곳이 제왕(帝王)의 식수정이라 하여 마을에 있는 샘물이 마치 옥(玉)과 같이 맑다하여 옥천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른다. 옥천은 원래 시목에 속하는 마을이었는데 1963년 전까지는 마을 앞이 바다였으나 해창만 간척지공사가 시작되어 마을 앞이 답으로 조성되면서 가옥이 늘어남에 따라 해방 후 시목과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고맙게도 물과 커피포트, 그리고 종이컵까지 구비가 되어 있네요. 한잔 안 마시고 가면 서운하다고 할까봐 두잔을 뎁혀 빵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뜨뜻한게 들어가니 속이 한결 든든한 느낌입니다. ㅋ~
♤ 통세골고개/ 송정고개/ 송정제 도로/ 송정마을
고흥군 남양면 장담리에서 과역면 월악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18번 2차선 지방도가 지나가는 곳이며 좌측에 있는 송정저수지를 국립지리원지도에는 통세골고개로 표기하여 통세골고개로도 부른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송정(松亭), 서거(西巨), 동거(東巨) 등 3개 마을을 거해라 부르며 지형이 큰 게(蟹) 형국이라 하여 송정을 웃 거해 또는 상거라 불리어오다가 1914년 왜정 초기에 지방행정제도개혁령에 따라 마을 명을 송정으로 개칭하였고, 마을 서쪽에 큰 바위가 보이면 해가 된다하여 소나무를 울창하게 심어 바위가 보이지 않게 하였으나 왜정말(대동아전쟁)에 군용물질인 송탄유를 짜기 위하여 1942년 이를 벌목했다는 구전이다.
밤중이라 월악산을 확인 할 수도 없고... 여기가 갈림길인건지? 한밤중이라 월악산갈림길이 어디인지 신경쓰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나봅니다.
♤ 장담고개/ 남양면-과역면 경계
옛 표기에는 장담(長談)리로 표기 되었고 1912년에는 장담(長潭)으로 기록되어 있다. 남양면 지역으로 월악, 장담, 송정, 서거, 옥천 등의 마을 일부를 합하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당시 고흥군 남양면 장담리로 하였다가 해방 후 장담마을이 되었다. 장담은 긴 못이 있어 “진대미(못)”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 분기점에서 지맥길은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면 진행하기 수월한 넓은 길을 따르고 이정표가 세워진 장담고개에 도착한다.
경주김씨 종중묘를 지나 태양광단지가 나온다. 양회임도를 따라 진행하다 77m봉의 짧은 야산을 넘으며 왼쪽 마을 건너에 월악산이 보인다.
♤ 덕촌(德村)고개/ 남양면 장담리 덕촌마을
고흥군 남양면 장담리 덕촌마을에서 과역면 도천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있고 장담 태양광단지가 있는 고개이다. 고개에서 좌측으로 지맥길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월락산이 보인다. 덕촌마을의 유래는 다락산지맥이 병풍처럼 둘러쌓여 마을의 형국이 마치 밤알을 안고있는 밤송이와 같이 생겼다 하여 마을명을 "밤방굴"이라 불렀으며 밤방굴을 한자로 음차하여 율동(栗洞)이라 칭하여오다가 1956년 자연마을로 독립되면서 이는 해방된 덕이라는 뜻으로 덕촌이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덕촌고개 도로로 내려서 도로 건너 임도따라 벌목지를 잠시 올라치고 편안한 능선을 치고 125m봉에 오르니 고흥 월악산 갈림길인 장담고개가 나온다. 소나무에 월악산분기점이라고 비닐코팅지가 묶여있다. 완만한 능선따라 잠시 올라쳤다 내려서니 월악육교가 나온다.
낮에 갔더라면 과역면을 한번 쳐다보고 갔을텐데... 산행 마치고 과역에 가서 동네 분들에게 월악산이 어디냐고, 과역고개가 어디냐고 물어보며 다녔습니다. ㅎㅎㅎ
♤ 152.7m봉/ 고흥4등삼각점/ 남양면 과역면 경계/ 계룡산??
널찍한 길을 따라 올라서면 이정목(← 도천 고인돌 550m, 월악산 정상 2,360m →)이 설치되어 있고 4등삼각점이 있는 152.7m봉에 오른다. 왼쪽으로 꺽어 과역고개로 내려서고 우측으로 과역면 면소재지가 한눈에 보인다. 이곳부터 고흥지맥은 남양면과 작별하고 과역면을 맞이한다.
♤ 월악산(月樂山, 254m)/ 고흥군 남양면 월악리
전남 고흥군 과역면과 남양면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먼 옛날에 천상에 있는 선인이 이 산에 내려와 옥녀와 더불어 탄금(彈琴)하며 월하풍락을 즐겼다 하여 월악산 또는 달악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월악산(月樂山) 밑에 위치한 마을을 “다래기(달)”라 칭하여 왔으며 월악산(月樂山) 또는 다래(多來)산으로 바뀌어 부를 때 산을 따서 다락(多落)마을이라고 칭하기도 했는데 1956년 리동행정 구역개편에 따라 장담마을에서 독립되면서 월하풍락(月下風樂)의 준말로 마을 이름을 월악(月樂)으로 개칭하였다.
고흥에는 김녕김씨, 여산송씨, 고흥류씨가 젤 많습니다. 김녕김씨는 경순왕 네째아들 대안군 은열 8대손 김시흥이 고흥에 입향조라는군요. 가산마을에 사당이 있습니다. 김녕김씨 김영삼대통령의 선산이 두원면 관덕리에 있답니다. 거기서 거제도로 나간게지요. 여산송씨 중에 유명한 분은 정치인 송영길씨가 있습니다. 대서면이 고향이라는데 형제가 모두 수재로 유명합니다.
♤ 월악육교
시멘으로 된 계단을 내려서면 고흥반도를 지나가는 세개(15, 27, 77)의 4차선 국도가 지나는 월악육교에 닿는다. 이곳에는 월악산 오솔길 안내도가 설치되어있다. 월악육교를 가로질러 '고흥 도천리 지석묘군' 입간판 뒤로 편백나무 아래 지석묘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상수원 수원지인 듯한 구조물이 보인다. 널찍하고 완만한 산책로를 따라 105m봉에 오른다. 편안한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가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꺾어져야 한다. (알바주의 구간)
고흥반도에는 고인돌이 많습니다. 고흥반도 주변 바닥 해역이 청동기시대 이전에는 육지였을 거라고 하네요. 최근 포두면과 풍양면에서 백제풍 지방귀족 고분이 발견되기도 하였답니다.
도로에 내려서는데 길이 없는건지 잘 보이지 않는건지 땀이 삐질삐질 나더군요.^^;;
♤ 과역 천주교회
고인돌지대 좌측 능선을 치고 69m봉과 105m봉에 오른다. 한동안 편안한 등로를 진행하다 좌측 숲으로 내려서서 희미한 등로따라 잡목과 가시나무를 헤집으며 잠시 좋은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길흔적이 거의 없는 곳에 표시기가 걸려 있는 곳으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정면으로 별 특징이 없는 봉우리를 향하여 가시 길을 헤치고 올라갔다 내려서는데 괜한 시간만 낭비한 듯하다. 마을로 내려서서 왼쪽 포장도로가 지나는 과역 천주교회 앞이다. 과역버스정류장에서 벌교로 나간다.
♤ 과역면 과역리
고흥군 중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의 대부분이 300m 미만의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 북쪽 남양면(南陽面)에 벽사도 찰방 9역의 하나인 양강역이 있었는데 이 역을 지나왔다는 의미를 담아 '과역(過驛)'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1931년 남양면 도천리를 편입하고, 남면이라고 불렀던 것을 과역면(過驛面)으로 개칭하였다. 과역리(過驛里) 지명에서 빌어다가 사용하였다. 과역리는 조선시대에 현 북쪽 15리의 금모연원(今毛淵院) 도로변에 있었던 마을이었다. 1997년 8월 구면사무소를 복지회관으로 사용하고 과역리에 면사무소를 신축하였다. 남쪽으로 점암면(占岩面)에 접하고, 동쪽으로 여자만(汝自灣), 서쪽으로 득량만(得粮灣)에 면한다. 15번 국도가 면내를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서 벌교를 경유하여 광주광역시와 순천시로 연결되고, 남으로는 고흥읍과 도양읍으로 연결된다. 현재 과역면은 면소재지인 신곡리를 비롯하여 8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이들 중에서 과역리의 원등(院燈) 마을은 흥양원의 5개 역원 중 하나인 복제원(卜梯院)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이 역은 남양면의 양강역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과역(過驛)이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 굴다리/ 석촌리/ 과역고개
과역 천주교회 건너편 능선이 마루금이지만 교회에서 과역 방향으로 약100m 가량 내려가 왼쪽으로 양회임도를 따라 진행하면 능선이 오른쪽으로 분기되는 곳을 지나 고흥군의 심장을 가로지르는 3개 도로인 15,27,77번 국도 아래 지하통로/굴다리를 통과한다. 굴다리를 지나 양회임도를 잠시 따르면 마루금은 오른쪽 비포장임도 방향에 몇 장의 표시기가 걸려있다. 임도는 없어지고 밭을 따라 진행하게 되는데 오른쪽 조금 높은 둔덕이 과역고개 직전인 마루금이다. 밭을 따라 진행하다보면 안부에 닿는데 오른쪽이 무슨 공장인 듯하다. 이곳에서 왼쪽 밭 가장자리를 따라 올라가면 88m(84.5 푯말)봉으로 표식을 알 수 없는 삼각점이 있다. 88m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서는데 길이 통 보이지를 않는다. 그냥 내려섰다 다시금 올라서면 제법 평평한 127m봉이다.
- 엄청난 절개지 아래로 고흥반도를 관통하는 국도가 지맥길을 끊어버려 국도가 지나는 지하차도로 15번 국도를 건넌다. 우측으로 고흥의 진산인 팔영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 월송재/ 월송(月松)마을
전남 고흥군 과역면 사정리 월송부락에 있는 고개이다. 큰 나무 두그루 아래 월송마을은 옛날에 마을 주변에 모시가 많이 생산되었으며 마을 앞에 연못이 있어 마을 이름이 모시내(못의내)로 불리워오다가 이 마을을 지나던 지관(地官)이 마을의 지형이 달과 같이 아름답고 소나무가 무성하여 달 월과 소나무 송자를 따서 월송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석촌(石村)마을
옛날 마을 앞에 큰 바위가 박혀있어 이 바위가 동쪽으로 비스듬이 누워있을 때 마을이 빈촌(貧村)이었으나 어느 스님이 마을앞 큰 돌을 바로 세우면 마을이 번창할 것이라 하자 전 동민이 바위를 바로 세웠으며 마을명을 바윗돌을 상징하여 "돌배기"라고 불렀으나 1936년 일정 때 마을명을 한자화할 당시 돌이 많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석촌이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망했는지 폐건물이 되어버린 석봉농원에서 잡목을 헤치고 53m봉에 오르고 건축자재창고 안부를 지나 68m봉에 오릅니다.
소대방산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고흥지맥길을 이어갑니다. 야간이기도 하고 특별하게 볼게 없다하여 생략하기로 합니다.
♤ 소대방산(161m)/ 왕복 800m
소대방산 갈림길에서 마루금에서 약간 비켜있는 소대방산(161m)에 들렀다가 소대방산을 찍고 다시 400m를 되돌아 갈림길로 내려와 우측 능선으로 마루금은 이어진다.
186m봉 정상에서 직진하는 길이 좋게 보여 알바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다녀오긴 했는데 산패가 있지를 않았어요.
♤ 186m봉/ 알바주의, 되돌아 나와야 함.
봉우리 아래로 점암저수지가 보이는 153m봉 정상에는 힘을 내라는 준희님 격려 표지판이 보이고 우틀하여 내려선다. 고개로 내려서서 다시 186m봉으로 힘든 오르막을 오르는데 186m봉은 지맥길에서 살짝(70m) 비켜나있어 갈림길에서 다녀와야 한다. 정상에서 사정재가 바라보인다.
도로로 나와 여기가 어딘가 하다가 이동통신탑을 보고서 네가 당치로구나 했습니다.^^
♤ 당치(堂峙)/ 33번도로
고흥군 점암면 사정리에서 화계리를 지나는 고개로 33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이동통신탑이 있다. 지맥길은 도로 우측의 옹벽으로 올라서 임도로 연결된다. 바로 아래 당치마을이란 지명은 마을 뒷산의 지형이 돼지형이며 마을의 터는 돼지구유형으로 되어있고 산허리 지점에 제당이 있어 마을 이름이 당치라 불리웠는데 원래는 점암면 사동리에 속한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화계리에 속해 있다. 이곳 당치는 워낙 오지라서 옛날에는 도적들이 진을 치고 있다가 이곳을 지나는 민초들의 재물을 빼앗고 하던 곳으로 소장수가 소판 돈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곳이며, 6.25 때는 양민들이 많이 학살당하여 그 원한으로 귀신이 많이 출몰한다는 곳이다.
- 153m봉의 준희님 힘힘힘 표지기를 지나 186m봉 직전의 갈림길로 70m 전방 정상의 좋은 길을 두고 왼쪽으로 꺾어 내려선다. 간벌로 뒤엉킨 소나무 등걸을 헤치며 벌목지를 내려선다. 벌목지대가 한동안 이어지다 수렛길로 바뀌면서 한결 수월해진다. 잠시 내려서면 마루금은 왼쪽 능선의 작은 봉을 올랐다 내려서야 하나 아래쪽의 시멘트도로를 따라 100m가량 진행한다. 건너편으로 멀리 팔영산이 시야에 또렷이 들어온다. 2차선으로 포장된 이곳이 33번도로인 당치다.
한밤중이라 복호산이 조망될 리 없었지요.
♤ 복호산(伏虎山, 216.5m)/ 산불감시초소, 고흥3등삼각점
모양 관련 지명중에는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모습을 비유한 복(伏, 엎드리다)자를 사용한 지명(복호, 호복, 복림 등)이 다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전남 고흥 과역면 노일리 내로마을의 ´복호산`을 들 수 있다. 달이 지고 날이 새므로, 호랑이가 가지 못하고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정상에는 일명 "장사바위" 라는 큰바위가 있는데 바위 위에 큼지막한 사람의 손가락 5개를 그대로 진흙판에 찍은 듯한 모습과 말발굽의 모습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 형태는 인위적으로 불가능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경북 청도 운문사에도 똑같은 이름의 복호산(681m)이 있다.
- 111m봉을 지나고 장학관을 지냈다는 창원박공묘를 지나 묘지 조성시 닦은 듯한 수렛길을 따라 5분정도 내려가다 왼편의 희미한 길로 들어선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86m봉에 오르니 벌목지대로 또다시 걸음을 더디게 막는다.
당치1재는 고흥군 점암면 화계리와 모룡리를 잇는 고개로 사람들 왕래가 없는 희미한 옛길이 되어버렸다. 산만한 정상부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서면 포장도로인 사정재다.
** 장학관을 지냈다는 창원박공묘지 중간 부문에 적혀 있는 '유훈'을 살펴보니,
1) 나태(懶怠), 도박, 보증, 금전거래로 파산 없게 하라
2) 사람을 가꾼 보배는 학문 뿐이니 면학에 최선을 다해 인품(人稟)을 바로잡고 언행(言行)에 신중하며 덕화(德化)로 처세(處世)하라
3) 治財(치재)에 노력하되 성실 정직하고 이해에 집착말며 조상숭배 화목 우애하고 유산은 고수(固守)하라 없는 사람 무시말며 과욕으로 실인심(失人心) 경계하라
4) 평생 주색과 험담 악한 일은 멀리하고 빚 보증과 송사를 피하라 남의 눈에 눈물 내면 내눈에 피나온다
5) 남과 사귀되 사기인 피하고 正道人(정도인) 택하고 예절로 대하며 오만은 금물임
사정재는 한참 공사중입니다. 사다리로 내려서서 절벽을 기어오르는데 주륵주룩 미끄러져 간신히 기어올랐네요. 한밤중에 뭐하는 짓인지 누가 본다면 참 가관이겠다 싶더군요. 그런데 여길 다들 어떻게 지나가셨는지?? ㅎㅎ 잠시후에 커다란 포크레인을 만납니다. 도로를 건설하는 현장이네요. 아니 웬 떡이야 인부들이 먹는 사과넥타와 캔커피가 박스 채로 있고 빵도 두개나 있네요. 빵을 먹느라 캔을 네개나 따먹고 갔습니다. ㅋㅋㅋ
♤ 사정재/ 모동고개/ 2차선 포장도로
고흥군 점암면 모룡리 모동마을에 있는 고개로 2차선의 포장도로이다. 고개 좌측엔 쓰레기재활용장이 있고, 고개 우측에 있는 컨테이너박스 맞은편 절개지로 올라선다. 지형이 관복의 띠와 같다고 해서 띠골이라고 했으나, 외정 때 띠자를 풀의 띠로 잘못 해석 띠모라고 하여 띠골 즉 모동(茅洞)이라고 하였다. 사정저수지가 있어 사정재라고도 한다.
- 사정재에서 지맥길은 도로건너 오른편으로 오른다. 도로 건너 절개지를 치고 올라 잡목과 간벌목을 밞아가며 오르니 159.8m봉이 나오고, 우측으로 꺽어 능선따라 내려섰다 다시 치고 오르니 147m봉이 나오고, 다시 내려섰다 186m봉 바위지대를 오르니 좌측으로 계속 조망됬던 고흥군의 진산 팔영산(608m) 암봉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 서낭당(성황당) 안부
153m봉에서 왼쪽으로 내려서고 159.8m봉(깨진 삼각점)에서 90도 우틀한다. 팔영산이 앞에서 보이다 왼쪽에서 보였다 하는데 그만큼 마루금이 웨이브가 심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벌목지를 지나고 넓은 임도를 지나 잡목이 가득한 196m봉에서 잠시 내려서다 오른쪽으로 꺾어야 한다. 팔영산을 감상하며 걷는데 나즈막한 암봉이 나온다. 암릉 끝부분에서 좌측으로 꺾어져 내려선다. 142m봉과 안동권씨묘를 지나 서낭당 흔적이 또렷한 안부다.
- 성황당안부를 지나 147m봉 안부에서 등로에서 점암면 성기리 성주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성주고개에 내려서니 날이 밝아오면서 처음으로 팔영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 성주고개/ 평촌고개/ 14번 국도
고흥군 점암면 성기리 성주마을에 있는 고개로 고개 정상에 성주마을 표시석이 있고 14번 국도가 지나가며 Y자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가면 성주마을이 나오고 그 너머로 팔영산이 보인다. 옛날 마을 뒤에 성주골 샘이라는 우물이 있고 마을이 팔영산 모이봉(第二峰)과 상접하므로 한때 성주동(聖主洞)이라 하였으나, 성주는 성상을 뜻하는데 촌명(村名)에 붙이는 것은 성상을 모독한다 하여 성주로 개칭한 후 변개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153m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서는데 이곳 역시 길은 거의 보이지 않아 잡목을 뚫고 내려선다. 다시금 안부를 지나 올라서면 196m봉으로 표지판이 걸려있다. 186m봉에서 급경사로 성주고개에 내려서면서 땅까시와 가시잡목이 발목을 잡는다. 14번 도로인 성주고개다. 건너편 왼편으로 팔영산이 가까이 다가와 있다. 성주고개를 건너 올라서면 SK점암성대기지국인데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첫 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면 158.2m봉으로 4등삼각점이 박혀있다.
성주고개에서 10분 쯤 올라온 여기 이동통신기지국 뒤쪽으로 팔영분맥이 갈래쳐 나갑니다.
♤ 팔영분맥분기봉(150m봉)/ 팔영분맥이란
고흥지맥이 호남정맥 존재산 인근에서 발원하여 흐르다가 점암면 모룡리에서 성기리를 넘는 14번국도 성주고개삼거리에서 올라간 등고선상 150m봉인 SK점암성대기지국에서 동남방향으로 분기하여 두지고개임도(80m)-396m봉-탑재임도(380m)-팔영산제4봉 사자봉(578m)-5봉 오로봉(579m)-6봉 두류봉(596m)-7봉 칠성봉(598m)-8봉 적취봉(591m)-안양재(560m)-八影산 9봉깃대봉(△606.7m)-바른등재-340m봉-영남면갈림길(240m)-201m봉-77번국도 질갯재(100m)-231m봉-牛尾산(△449.7m)-더터굴재(260m)-망바재(220m)-윗재(140m)-128m봉어깨-13번군도(40m)를 지나 남해바다로 돌출한 곳에서 끝나는 약 17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어느 산방에서 1. 23일에 팔영산 공지가 있어 신청했는데 영 성원이 차지를 않네요. 잘못하면 못 갈거 같습니다.
♤ 팔영산(609m)/ 고흥의 진산이자 고흥반도의 최고봉
고흥군 영남면에 위치한 산이다. 예전에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 4대 사찰로 꼽히던 능가사를 비롯하여 경관이 빼어난 신선대와 강산폭포 등 명소가 많다. 남동쪽 능선 계곡에 팔영산자연휴양림이 잘 조성되어 있다. 높이 608m, 총 면적은 9.881㎢이다. 1998년 7월 30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역사, 지리, 생태적 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판단되어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 지금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팔영산지구이다. 조선 고종 때 편찬한 흥양읍지(흥양은 고흥의 옛 이름)에 팔영산 8개 봉우리 이름이 등장하는데 북쪽 봉우리부터 순서를 메긴다. 제1봉은 유영봉(儒影峰, 491m)이다. 선비의 그림자를 닮았다는 봉우리다. 이 봉우리에 송팔응(宋八應)장군의 전설이 서려있다. 팔영산 제1봉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송팔응에게 하늘을 나는 백마가 있었다. 어느 날 송팔응은 말의 성능(?)을 시험하려고 화살 한 발을 팔영산 봉우리에 쏘았다. 이내 말을 타고 봉우리에 날았지만, 화살은 온데간데 없었다. 낙담한 송팔응은 말의 목을 단칼에 벴다. 그때 화살이 바위 뒤에 와서 꽂혔고, 송팔응은 자신의 경솔함을 탓하며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팔순의 송팔응은 이 산에 올라 '팔십에 팔영산에 오르니 팔영은 늙지 않았는데 팔응은 늙었구나'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팔영산의 다른 이름이 팔응산이다. 또다른 설은 위왕 시대에 중국 위왕이 세수하려던 관수(세수대)에 여덟 가지 산봉우리 그림자가 비치었다. 신기하게 생각한 위왕은 신하들을 불러 천하 제후들에게 명하여 팔봉의 산이 어느 곳에 있는가를 찾아 아뢰도록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땅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뒤늦게 동방의 나라 조선국 최남단에 있는 점암면 성기리와 동쪽 금사리를 에워싸고 중앙 상부에 돌출한 팔봉의 운치를 자랑한 영산 팔영산을 발견했다는 고사가 구전되고 있다. 원래는 팔전산이었는데 위왕의 관수에 팔봉이 비치었다 하여 그때부터 그림자 영자를 붙여 팔영산으로 불리게 됐다. 동쪽에는 유영봉, 군선봉, 중앙에는 성주봉, 북쪽에는 천주봉, 중앙에 사자봉, 서쪽에는 별봉과 팔응장군이 백마를 채찍질하여 하늘을 날았다는 팔응봉이 있으며, 남쪽에는 일출봉등이 있는데 왜놈이 침입하여 조선을 정복하려면 팔봉에다 큰 대못을 박아야 민족 정기가 끊어진다하여 칠봉까지 못을 막고, 팔영봉에는 대못을 박지 못하여 팔응장군이 나왔다는 전설도 있다. 유영봉(儒影峯)·성주봉(聖主峰)·생황봉(笙簧峰)·사자봉(獅子峰)·오로봉(五老峰)·두류봉(頭流峰)·칠성봉(七星峰)을 거쳐 마지막 제8봉인 적취봉(積翠峰) 등 8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세가 험하고 기암 괴석이 많다. 고흥군에서 1봉에는 유영봉(儒影峯), 2봉은 성주봉(聖主峰), 3봉 생황봉(苼簧峰), 4봉 사자봉(獅子峰), 5봉 오로봉(五老峰), 6봉 두류봉(頭流봉), 7봉 칠성봉(七星峰), 8봉 적취봉(積翠峰)이라고 돌로 명패를 세워놓았다. 원래는 좀 떨어진 1봉에만 이름이 있었고 나머지는 묶어서 성주봉(聖主峯)이라고 불렀던 것을 하나하나 작명을 한 것이라고 한다. 팔영산에서 제일 높은 봉은 깃대봉인데 깃대봉은 팔영에 들어가지 않는다. 정상인 깃대봉에 오르면 멀리 일본의 쓰시마섬[對馬島]이 보이고, 눈앞에 펼쳐지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절경이 일품이다. 북서쪽 기슭에 있는 능가사는 1천5백여 년전 아도(阿道)가 세워 처음엔 보현사라 했던 것을 정현이 인도의 명산을 능가한다하여 능가사라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능가사에는 13세기 말에 조각했다는 사천왕상과 범종(전남유형문화재 69), 그리고 능가사적비(전남유형문화재 70)가 있다. 능가사 주변에는 용의 눈이 아홉개 들어 있다는 구룡정이 있다.
♤ 능가사(楞伽寺)
팔영산 자락에 있는 능가사9능가사)는 행정구역상 고흥군 점암면 성기리 371-1에 자리하고 있으며, 현재는 재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며 비구니 도랑이다. 능가사는 신라 417년(눌지왕 원년)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언제 창건되었는지 모르는 보현사가 능가사로 되었다고 "능가사사적비"에서는 밝히고 있으나 지리지 등에는 서로 다른 사찰로 기록되어 있다. 아무튼 능가사는 언제 창건되었는지 불확실하나 임진왜란 때에 일본군에 의해 불에 타버려 폐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1644년(인조 22)에 정현대사가 하안거를 하다가 꿈을 꾸게 되었고, 산 자락에서 옛 절터를 발견하여 불사를 함으로써 사찰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690년(숙종 16년)에는 <능가사사적비>를 건립하였고, 그 뒤 1768년9영조 44)과 1863년(철종 14)에 중수하였다. 조선 후기 건물이지만 규모가 크고 건축양식이 우수하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건물양식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에 팔작지붕의 단층 건물로 비교적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창호는 어칸은 4분합의 빗살문, 협칸은 쌍여닫이, 퇴문은 외여닫이 문을 달았다. 약한 배흘림의 두리기둥 위에 창방과 평방을 올렸으며,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의 다포양식으로 되어 있다.(자료 펌)
여기서부터가 채석장을 어렵게 통과해야 하는 곳입니다.
♤ 당재/ 고흥군 점암면 모룡리와 천학리를 잇는 855번 지방도로
고흥군 점암면 모룡리에서 천학리로 연결되는 855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으로 고개 좌측 천학리 방향에는 엄청나게 큰 채석장이 있고, 우측에는 주유소가 있다.
- 성주고개에서 또 다시 도로 건너 경사로를 잡목과 가시나무를 헤집으며 치고 오르니 158.2m봉이 나오고, 잠시 내려섰다 다시 치고 오르니 152m봉이 나오고, 우측 급경사로를 내려서니 정면으로 차량통행이 잦은 855번 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만나는 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서니 채석장이 보인다. 아래 당재로 내려선다. 당재에서 점암면소재지로 걸어나가 지서 앞에서 고흥행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 당재에서 1.5m가 넘어보이는 시멘트 옹벽을 올라 오른쪽 너덜지대를 선택해 급경사를 친다. 선답자의 희미한 족적을 따르면 수월하다. 가시잡목을 피하여 오르다 정상부 부근에서는 바위 쪽을 택하여 능선에 닿아 232m봉에서 우측으로 살짝 내려서면 암릉이 나오고 전망이 트이는 곳이다. 점암면이 한눈에 들어오고 지나온 능선 뒤로 팔영산이 그리고 채석장 너머로 가야할 능선을 바라볼 수 가 있다.
- 안부에서 내려온 만큼 채석장 우측 절개지 바위지대 너널길과 잡목을 헤치며 가장자리를 따라 올라 321.7m봉에 도착한다.
♤ 고흥군 점암면(占巖面)
고흥군 동북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순수 농어촌 마을로 형성되어 있는 점암면은 고흥군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지역이다. 면소재지 중앙에 드문드문 바위가 있어서 점암면이라고 부른단다. 간척지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고품질 쌀과 특용작물인 딸기, 오이 등 시설원예와 팔영산 자락에서 생산되는 참다래, 하나봉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농산물이며, 특히 천학리가 주산지인 마늘은 그 품질이 으뜸으로 건강기능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또한, 청정해역인 남해 여자만(汝自灣)에서 생산되는 바지락, 참꼬막, 낙지 등의 해산물이 더해 풍요로움이 넘치는 고장이다. 예로부터 남도의 순박함과 넉넉한 힌심이 이 지역의 정서이며, 국난에 맞선 여도진의 생생한 역사의 현장과 일제에 항거한 선열의 자취가 남은 팔영의 계곡, 또한 해발 609m의 팔영산과 천년고찰 능가사도 이 지역에 있다. 박지성이 이 지역 출신이다.
♤ 천학(天鶴)리 가학(架鶴)마을
천학리에 속한 마을로 옛날 풍수가 뒷산의 지형이 학과 같다 하였으며, 마을 양쪽 산이 학이 멍애를 메고 나르는 형태라 하여 그때부터 마을 이름을 가학이라 불러왔다고 한다. 이곳 천학리는 고흥군에서 마늘이 가장 많이 재배되는 지역이라고 한다. 일제시대에 천학리는 구천(九天)과 가학(架鶴) 두개의 마을을 합쳐서 글자 한자씩 따와 천학리가 되었다고 한다. 우측에 있는 구천마을은 마을 서쪽에 거북이 모양의 샘이 많아 항상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서 귀천(龜泉)이라 하였으며 귀천을 구천으로 부르게 된게 마을이름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당재에서 저 산을 어렵게 올랐는데 주룩주룩 미끄러지며 내려오기도 어렵게 내려왔습니다.
♤ 채석장
희미한 안부를 지나 158.2m봉에 올라섰다 내려서니 엄청나게 큰 채석장이 보인다. 오른쪽에서 조망을 잠시 즐기고 채석장을 향하여 능선을 따라 진행한다. 232m봉에서 내려서는 길 또한 없다. 채석장을 앞에 두고 당재방향인 우측으로 내려가야 한다. 급경사에다 자갈길에 명감나무 가시잡목을 치고 내려서야 한다. 가끔 보이는 채석장을 기준삼아 잡목과 가시덤불을 헤치며 계곡길에 내려서고 채석장 안부에 닿는다.
채석장에서 다시 올라서서 봉남재로 내려서기까지 방향이 잠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채석장을 지나며 발바닥에 족저근막염 증상이 나타나며 속도 내기가 영 불편했습니다. 글찮아도 후반부라 속도가 떨어지는 시간인데....
♤ 봉남 임도/ 정암면-포두면 경계
고흥군 점암면 연봉리 봉남마을과 포두면 송산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4륜차가 다닐만큼 넓은 임도로 되어있다. 이 아래에 있는 봉남(鳳南)마을은 신선봉 남쪽에 황무봉, 천마봉, 봉명산 등이 있어 마을 이름을 봉명동(鳳鳴洞)이라 불리워 오다가 봉명동 북촌, 못등을 통폐합하여 연봉리(淵鳳里)라 하였으나 195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봉명동을 분할하여 국도변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하여 봉남(鳳南)마을이라 불린다고 한다.
- 321.7m봉에서 90도 좌틀하여 내리고 한결 수월해진 능선따라 봉우리를 넘으며 진행하다가 부산 신선님의 388.5m봉 푯말에서 우틀하여 급경사면 잡목을 헤치고 봉남재로 내려서야 한다. 봉남재는 임도 정점은 비포장이나 좌우 아래에는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어 차량 이용도 가능하다.
삼면봉엔 산패가 없어서 그냥 지나왔습니다. 한참 지나서 삼면봉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네요.
♤ 335m봉/ 삼면봉(포두면, 점암면 → 두원면)
고흥군 포두면과 점암면, 두원면이 맞닿는 삼면경계봉이다. 정상에서 바로 앞에 능선 아래로 신안제가 보이고 저 멀리 보성쪽으로 득량만이 보인다. 좌측에 복호산과 우측에 뾰족한 봉우리인 월악산이 보인다.
- 임도를 가로질러 잡목이 우거진 곳에 걸린 표시기를 향하여 오른다. 점점 진행할 수록 길흔적은 사라지고 한땀 한땀 치고 올라가면 338m봉에서 암릉구간을 넘어서고, 뒤돌아보니 388.5m봉과 봉남임도가 꼬불꼬불 산자락을 파고 들어왔다. 능선 좌우 마을에 저수지가 많다. 한동안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면 335m봉으로 삼면봉(점암면, 두원면, 포두면)이다.
♤ 408m봉/ 30m 왕복/ 신안리 용정(龍井)마을
삼면봉을 지나 375m봉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오른쪽 멀리 득량만이 깊게 들어와 있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포두면과 고흥만이 시원스레 보인다. 그리고 건너편 408m봉 너머로 운암산도 올려다 보인다. 또다시 여태껏 올랐던 걸 까먹으며 안부로 떨어졌다가 다시 길도 없는 곳을 이리저리 뚫고 암릉길을 지나 408m봉에 오른다. 408m봉 갈림길에다 배낭을 두고 좌측으로 30m 떨어진 408m봉을 다녀와야 한다. 정상에 오르면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다. 우측에 천마봉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아래 용정마을이 한가롭게 자리를 잡고 있다. 용정마을은 점암면 신안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옛부터 '아린멀'이라고 불리다가 신안리의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하신이라고 불렀으며 마을의 지세가 우물안에 있는것 같다하여 용정(龍井)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 운암산으로 가는 길은 명성 만큼이나 칼바위 능선이다. 382m봉을 지나면서 너덜길이 나타난다. 암릉구간을 지나 칼바위 능선이 계속된다. 바로 앞에 고흥 10경중 제1경인 팔영산의 팔봉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우측으로는 득량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득량만은 바다 중앙에 득량도가 있어서 득량만이라 부른다고 하며 보성만으로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서 식량을 얻었다하여 득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천혜의 청정지역으로 장어, 김, 키조개가 많이 수확되고 각시바위 등 기암괴석이 있어 해변 경관이 아주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운암산 오름에 전위봉도 그렇고 정상부가 가파르네요. 정상부에 너덜이 조금 있고, 부채바위로 기어 올랐는데 힘들게 올랐습니다.
♤ 운암산(雲巖山, 486.9m)/ 고흥2등삼각점
고흥 운암산은 두원면과 포두면의 경계에 있다. 산이 높이 솟아 구름같은 기운이 산을 감싸고 있어서 '雲巖山'이라 부르며 포근한 느낌을 주는 산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골짜기에는 많은 전설들이 있으며 정상 부근의 빼어난 봉우리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과 깃대봉 부근의 죽순바위에 올라서면 주변 경관이 수려해서 가슴 벅찬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운람산(雲嵐山)이라고도 한다. 옛 문헌에는 모악산(母岳山)이라고 나와 있다. 갑오개혁을 시행한 김홍집(金弘集,1842~1896)이 흥양현감을 지낼 때 운암산에 올라 기우제를 올렸는데 그때의 기우제문이 전해진다. 산 꼭대기에 기우제 제단이 남아 있고 산 중턱에 대한불교 조계종 수도암(修道庵)이 있다. 옛 흥양지에는 흥양현 북쪽 15리에 이 산이 있고 산에는 죽사, 은석사, 중흥사가 이어져 내려왔었으며 용은사라는 말사도 있었다고 한다.
- 안부로 내려섰다 다시 올라간다. 마지막 급경사를 오르면 암릉 지대인데 우회를 하여 바위를 오른다. 주능선인 바위에 올라서면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일반등산로를 만난다. 지나온 능선을 바라볼 수가 있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그러나 운암산 정상은 저쪽 남으로 내다 앉아있다. 운암산 정상은 잡목으로 둘러쌓인 좁다란 공터이고 삼각점이 박혀 있으며 이정표와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이 둘이나 있다. 운암산 정상은 삼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 정상에서 직진을 하면 깃대봉 1.1km, 그리고 죽순바위 1.3km이다. 지맥길은 이곳 정상에서 죽순바위 방향으로 진행하다 우측으로 꺽어 병풍바위와 중섯재 방향으로 내려간다.
♤ 수도암(수도암)
규모는 비록 적지만 통일신라의 흥덕왕(재위 826~836) 때 영허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이다. 1083년(고려 순종) 도희스님이 창건했고, 1370년(고려 공민왕) 영허대사가 중수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문화재로는 나한전인 무루전(전남도문화재자료 제156호)이 있다.
발바닥 통증이 심했지만 여기서 그만 갈 수도 없는지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다행히 운암산에서 고흥읍 산림욕장까지는 5km는 둘레길로 길이 아주 편안했습니다.
♤ 중섯재 임도
종섯재는 남쪽의 중흥마을과 북쪽의 운곡마을을 잇는 고개로 양회임도가 휘돌아가는 안부 사거리이다. 포장된 Π자형의 임도로 태양광을 이용한 확성기와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고, 나무로 만든 장의자와 탁자시설도 갖춘 쉼터를 겸한 곳이라 쉬어가기 좋다.
- 조금 더 내려서면 병풍바위 이정표와 함께 벤치가 있는데 아래쪽에서는 병풍처럼 보일랑가 몰라도 위에서는 그저 밋밋한 반석일 뿐이다. 병풍바위라는 표지판을 겸한 엉터리 이정표(← 운암산 정상 5.5km, 중섯재 1.0km →)를 지나 중섯재 임도에 내려선다. 마루금은 임도 건너 삼림욕장을 가리키는 이정표 방향이다
♤ 삼면경계면(두원면, 포두면 → 고흥읍)
중섯재임도에서 야트막한 259m봉을 좌측에 두고 1.3km쯤 눈누난나 진행하면 삼면경계면이라는데 아무런 표시가 없으니 그저 이쯤해서 지나는가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 중섯재 임도를 가로질러 들어서면 지금까지의 지맥 길과는 달리 널찍하고 평탄한 둘레길이다. 좌측으로 박지성축구장이 보인다.
♤ 238m봉/ 전망바위
임도갈림길에서 고흥 종합운동장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꺾어 들어선다. 중섯재 임도에서부터 너무 평탄한 길을 진행하여 왔기에 삼거리에서 우측 238m봉을 향하여 올라서는데 힘겹다. 정상에 올라서면 식탁이 딸린 의자 등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잠시 진행하면 전망대이다. 공설운동장 건너로 고흥시가지가 조망된다. 고흥읍내 뒷산인 봉황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봉황산은 '옛날에 이 지방에 군자가 많이 배출되어 봉황새가 이 산에 날아와 보금자리를 잡았다'라는 전설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흥읍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김녕김씨인 김영삼대통령의 선산이 두원면 관덕리에 있고 거제도로 이주한 것이라 합니다.
♤ 두원면(豆原面)
두원면은 고려초기 두원현에 속해 있다가 고려후기 장흥부로 귀속되어 1441년 흥양현으로 통합되었으며, 1895년 두원면으로 개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흥양현, 두원인데, 산의 지세가 야산으로 형성되어 언덕이 콩깍지처럼 엉켜있다 하여 두원(豆原)이라 하였다.[고흥군 홈페이지 - 마을 유례]
바쁜 마음만치 속도는 나지않고 서둘러서 운곡재에 내려섰는데 시간을 보니 잘 하면 송곡재까지도 가겠다 싶었습니다.
♤ 운곡재 도로/ 운곡(雲谷)마을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와 고흥읍 남계리 송곡마을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 도로가 있다. 운곡재는 운곡마을 위에 있는 고개로 운암산 중턱에 고려 공민왕 19년에 중수한 고찰 수도암이 있고 마을앞에 정종 을사년에 건립한 운곡사(雲谷祠)가 있었는데 고종 때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거되었으며 당초 마을 이름이 사구시였는데 일제시대인 1914년 지방행정통폐합시 운대리에 편입되기 이전부터 운암산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이라 운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 전망대를 지나 묘지가 있는 안부로 어렵게 내려서서 희미한 산길을 따라 10여분 올라서면 185m봉이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니 아래로 포장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절개지의 철책을 피하여 왼쪽으로 내려서면 2차로 포장도로가 지나가는 운곡재 도로다.
송곡재로 내려서는데 정면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우측으로 내려서는 길이 잘 보이지를 않네요.
궁금했지만 민주인사추모비와 헌시를 여기에 조성한 유래를 찾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스틱을 정리하고 고흥읍으로 나가기 위해 택시를 부르려는데 한대가 골프장으로 들어가네요. 들어갔다 나온다고 하는데 그 사이에 버스가 도착해 바짝 세워서 타고 내려왔습니다.^^
♤ 송곡육교/ 송곡재/ 송곡(松谷)마을/ 민주인사추모비, 사각정자
송곡육교를 건너서 송곡재로 향한다. 아래로는 고흥군 전체를 관통하는 15, 27, 77번 4차선 국도가 시원스레 지나간다. 송곡재는 고흥읍 남계리 송곡마을 위에 있는 고개로 민주인사추모비와 수준점과 사각정자, 와이즈맨 고흥클럽에서 세운 '친교, 교양, 봉사'라고 새겨져 있는 기념비가 있다. 건너편에는 유승봉이 보이고 좌측에 있는 송곡마을은 예전에 이곳에 소나무가 무성하여 송곡(松谷)이라 불렀으며 옛 문헌에는 송현(松峴)으로 표시가 되어있다. 송곡재에서 우측으로 돌아 오르면 철재계단을 따라 묘지 상단에 도착한다. 조금 더 오르면 호화묘지가 나타난다.
- 운곡재 도로를 지나 옹벽 왼쪽 가족묘지 오르는 곳으로 올라간다. 편백나무가 자리하는 곳에는 잡목이 그리 심하지 않아 그런 대로 수월하다. 141m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진행하면 146봉m(유승봉갈림길)이고 벌목구간을 이리저리 넘어 131m봉에 닿는다. 131m봉을 내려서면 제법 길이 또렷한데 송곡육교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아예 길흔적이 없지만 그곳이 지맥길이다. 이리저리 헤쳐 내려가면15, 27, 77번 자동차전용도로 위 옛 국도다. 육교를 건너가니 민주인사추모비(民主人士追慕碑)와 수준점이 박혀 있는 소공원이다. 고흥으로 나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 유승봉(180.8m)
고흥군 두원면 용반리에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야트막한 산이다.
♤ 고흥읍
전남 고흥군 중서부에 있는 읍으로 고흥군 군청소재지이며 고흥반도 중앙부에 위치한다. 서해에 접한 서부지역 외에는 조계산(473m)·주월산(291m)·오무산(357m)·수덕산(309m) 등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산지를 흐르는 소하천을 중심으로 논농사가 이루어진다. 원예농업으로 오이재배가 활발하며, 앞바다에서는 꼬막양식이 행해진다. 옥하리에 홍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3호)와 흥양현읍성(전라남도 기념물 제35호) 등의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남양면, 도양면 방면의 국도가 면 중동부를 지난다. 행정구역은 옥하리·서문리·고소리·호동리·성촌리·등암리·호형리·남계리·행정리 등 9개 동리가 있다. 고흥전통시장의 볼거리가 있다.
♤ 주월산 갈림길/ 배낭 놓고 왕복 200m
송곡육교에서 민주인사추모비 왼쪽 고흥골프장 진입도로를 따르면 왼쪽 묘지로 향하는 길이 있다. 묘지에 이르는 철계단을 만들어 놓아 쉽게 오를 수가 있다. 묘지를 지나면서 길은 희미해지나 능선에 올라서면 건너편으로 주월산이 지척이다. 여기서 과수원 양회임도로 내려선다. 양회임도를 가로질러 매실밭을 가로질러 올라서면 능선이다. 능선에서 오른쪽 희미한 길을 따라 진행한다. 묘지가 있는 곳에서 170m봉을 지나 왼편 안부로 내려섰다 올라서면 주월산 갈림길이다. 이곳 갈림길에서 정면으로 진행하면 양회임도가 나오는데 왼쪽은 송곡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양회임도를 올라가면 SK고흥기지국이 있는 주월산 정상으로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공간이 제법 넓다. 지나온 능선과 가야할 능선들이 잘 조망되는 곳이다.
기지국 뒤편으로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정상에 하늘기둥님의 산패가 있습니다. 운암산과 깃대봉이 잘 조망되네요.
♤ 주월산(舟越山, 291m)/ 소이산(所伊山)/ SK고흥기지국/ 산불감시초소
주월산은 고흥군 고흥읍 옥하리와 두원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고흥읍의 주산이다. 마루금에서 약간 비켜서 있다. 옛날에 홍수로 고흥읍 시가지에 바닷물이 범람하여 풍양과 축두에 정박하고 있던 범선이 바닷물에 밀려 주월산을 넘었다는 설화가 있다. 지금도 고흥과 두원을 사이에 두고 주월산이 우뚝 솟아있는데 이때 크나큰 홍수 피해를 입은 고흥땅은 남쪽 조계산 밑으로 형성되고 있는 등암리를 기점으로, 포두면 장수저수지 종점까지 길게 흘러내렸다는 장수천이 생겼고 그 후 남계천으로 개칭되었다. 당시 홍수로 피해가 극심한 백성들의 건강과 평온을 기원하기 위하여 일국의 황후(어느 때 왕후인지는 불명)가 이곳 주월산과 수덕산에 와서 백성의 안녕을 기도했다는 설화가 있다.(고흥군 설화 이야기 중에서)
이후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이 봉우리는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었고, 동학농민군과 고흥 농민군의 저항지로서 한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봉우리에서 남쪽 고흥읍 옥하리(玉下里) 옥상(玉上)마을로 내려서는 길에는 미완성의 돌탑이 여러개 보인다.
♤ 대곡재(大谷峙, 168.3m)
대곡재는 고흥읍 행정리 교촌부락과 두원면 반송부락을 잇는 고개다. 고개는 사거리이며 지맥길은 직진으로 향한다.
- 주월산에서 되돌아 나와 우측 능선따라 지맥길로 내려선다. 대곡재로 내려서는 등로는 고속도로다. 행정리 갈림 이정표( ← 행정리 1.55km)가 세워져 있는 대곡재에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선다.
♤ 행정(杏丁)리 교촌(校村)마을
고흥읍 행정리 교촌 마을은 향교가 있는 마을이므로 교촌이라 부르며, 생골이라고도 불린다. 도화면의 옛 향교 유지가 있는 부락도 교촌이라 하며, 전국에 걸쳐 향교가 있던 마을은 대부분 교촌으로 불리우고 있다. 고흥 향교 안에 약 4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고흥군 마을 유례]
아래쪽에 군부대가 보여요. 요즘 군부대들 신식 건물로 잘 지어져 있습니다.
♤ 240m봉
좌우 갈림길이 있는 대곡재를 지나 7분여 올라서면 군부대 폐송신기가 있는 229.9m봉이고, 이봉을 지나 내려서니 좌측으로 고흥군 동원예비군 훈련장인데 ‘적은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으며 참호도 설치되어 있다. 잠시 뒤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 좋은 길을 버리고 정면으로 올라서면 240m봉이다. 우측 아래로 '대곡제'와 신송(新松)리 반송(盤松)마을 들판이 펼쳐져 보인다. 정면으로 가야할 수덕산과 멀리 오무산이 조망되고, 240m봉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진행하다 240m봉 보다 조금 높은 바위구간을 지나면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남쪽 아래 행정리 수덕마을 전경으로, 예비군 훈련장이 보인다. 김녕김공묘를 지나 대나무 중간을 지나는 짧은 농로로 내려서면 851번 포장도로인 수덕재 삼거리다. 건너편으로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두원면을 알리는 표지석이 보인다.
♤ 두원면 신송(新松)리 반송(盤松)마을
두원면 신송리 반송마을은 원래 신송리에 속하며 예전에 소반등이라 하였고 이 마을에서 고흥읍 주월산으로 배(船)가 넘어갔다 하여 마을명을 "배실"이라 불리어 왔으나 1914년 일제 초기에 지방행정구역개편시 신송리로 통합되면서 소반등을 한자로 반송이라 개칭한 후 1956년 리동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독립마을이 됐다.[고흥군 마을 유례]
- 예비군훈련장 시설물인듯한 스텐레스 대문에 철조망으로 녹슨 케비넷을 감싸고 있다. 이곳에서 우틀하여 암릉의 날등구간을 가로지른다. 수덕재로 향하는 편안한 등로를 따르다 갑자기 나타난 삼거리에서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틀하여 내려간다. 김녕김공과 광산김씨묘 부부묘를 지나서 수덕재로 향한다.
♤ 수덕재(修德峙, 80m)/ 두원삼거리/ 851번 도로/ 느티나무/ 소공원
남쪽 고흥읍 행정리 수덕마을에서 북쪽 두원면 신송리 반송마을을 잇는 851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로, 우측 고개마루에 두원면 표지석과 로켓을 형상화 한 '꿈을 함께하면 현실이 됩니다'란 입간판이 세워져 있고, 두원삼거리에서 좌측은 항공센터로 가는 길이고 우측은 고흥만과 대전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이 갈린다. 맥길은 도로 건너편 아름드리 느티나무 당산목 옆으로 이어진다.
♤ 수덕마을
고흥읍 행정리 수덕마을은 앞산인 수덕산을 닮아 수양과 덕을 쌓으라고 하여 수덕이라 불렀으며 또한 마을이 들 가운데에 있어 사방이 들판을 감싸고 있으므로 벼가 흔한 마을이라 하여 화덕(禾德)이라 부르다가 1966년 행정개편 때에 수덕마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개펄을 방조제로 막아 고흥저수지를 만들고 간척지를 조성하였습니다. 호동리 마을이 산 아래 보이고 저 멀리 바다에 보성만 득량도가 떠있습니다.
수덕산 직전의 암릉 리지길인데 리지길이 어렵지 않아 계속 바위길을 따르면 됩니다. 좌우로 조망이 아주 좋습니다. 운암산과 깃대봉 사이에 팔영산을 잡아 보았습니다.
지맥길은 수덕산을 향하며 옥녀봉갈림길(229m봉)에서 두원면과 헤어지고 온전하게 고흥읍으로 들어서서 남쪽으로 방향을 턴합니다. 수덕산 정상은 옛적 봉수꾼들이 머물던 군부대 자리라선지 평탄부입니다.
♤ 수덕산(300.9m)/ 고흥읍 호동리 호동마을
고흥군 고흥읍 옥하리와 호동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산 아래에 있는 수덕마을에서 따온듯 하며 정상 아래에는 조선조 중종 때 설치한 봉수대(돌무데기)의 흔적이 있다. 정상부가 평탄하여 아영님의 표지가 없다면 자칫 모르고 지나갈 산이다.
- 수덕재 도로를 건너 당산나무 왼쪽으로 능선길로 올라선다. 묘지를 지나 없는 길을 뚫고 오르면 143m봉이다. 143m봉을 지나 안부에 내려서서 한양조씨묘를 지나면서 길은 거의 없다. 다시금 봉우리에 오르니 표시기 몇 개가 보여 정면으로 내려서지만 이곳 또한 길흔적을 찾기 힘들다. 얕은 안부를 지나 올라서니 왼쪽에서 올라오는 양호한 길과 합류하면서 상태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넝쿨에 뒤덮인 돌담을 지나면서 길은 더욱 양호해진다. 능선 길은 암릉으로 변한다. 156m봉 정상에는 약간의 암릉과 소나무에 선답자의 시그널이 달려있다. 90도 꺽어 좌틀하여 내려선다. 오른쪽 고흥만 간척지와 그곳 너머로 득량만이 깊숙하게 들어와 뿌옇게 보이기도 한다. 192m봉에 올라서니 편안한 능선이 나타난다. 좌측으로 꺽어진 지점이 고봉산과 옥녀봉의 갈림길이다. 바위를 밟고 오르는데 윗쪽과 아래쪽의 암석이 너무 대조적이다. 조각난 바위의 아래쪽은 진안 마이산의 지질과 동일한 역암(礫岩)으로 이루어 있는 특이한 바위를 만날 수가 있다. 272m봉을 지나면서 수덕산 정상 직전까지는 계속해서 암릉구간이다. 고흥시가지와 지나온 능선을 조망하며 수덕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 표지판이 걸려있고 제법 넓은 공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삼각점은 찾을 길이 없다.
♤ 수덕산과 박씨 아이 설화
수덕산 외딴 곳에 박씨 내외가 늦은 나이에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의 젖을 싫어하고 집에 사람이 있으면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부모는 갖은 약을 다 써 보았으나 효험은 없었다. 부모는 어느 날 아이가 좁쌀로 개미떼 같은 군졸을 만들어 병정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모질고 비정한 세월이었다. 소문이 날 것을 염려한 부모는 고흥군 도덕면 가야리 앞 바다에 아이를 내버리려 했다. 생명은 질겨서 아이는 뱃전에 매달렸다. 결국 부모는 아이의 팔을 잘라 물 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이때 천둥소리와 함께 아이를 기다리던 백마가 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수덕산 너머로 날아갔다. 백마가 뛰어 날아간 자리에는 바위가 남았다. 사람들은 ‘장군바위’라 부른다.
♤ 수덕산 정상의 봉수대
옛날에 흥양현(고흥의 옛지명)에 11개의 봉수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팔전산(팔영산), 천등산, 정기산, 마복산은 직봉이고, 수덕산은 간봉으로 증보문헌비고에 나타나 있으며 나머지 여섯 곳 봉수 가운데 유주산 봉수를 제외한 나머지 봉수는 중종 년간에 설치한 것으로 보이며 중종 때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포구에 설치하였다가 그 이후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 수덕산을 내려서는 길은 경사가 상당히 가파릅니다. 엄청난 절개지가 나오며 아래로 성촌리 마을이 보입니다. 성촌(성촌)이란 이름은 마을 주위를 산이 성과 같이 둘러싸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약간 우측으로 꺽어 내려서니 등로 아래로 너덜겅이 보이고 앞선 사람의 흔적과 띠지가 방향을 잘 제시하여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류개남치적비라 하여 옛날에 한가닥 하신 유명한 장군인가 했는데 동네 농협, 수리조합 어쩌구... 근래에 살다가 돌아가신 분이었습니다.
호산약수터는 수리중이라 물맛을 보진 못했네요. 물은 송곡재에서 2리터를 준비했으니 충분한 편입니다.
♤ 화적재/ 포장도로
화적재는 고흥읍 왼쪽 성촌리와 오른쪽 호동리를 연결하는 포장도로이다. 화적재 도로가 보이고 오른쪽에 고흥류씨 제각인 추선묘(追先廟)가 있고 좌측으로는 류개남(柳開南)의 사적비와 물맛이 좋다는 호산약수터가 보인다.
- 수덕산을 지나 내려서면 성터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돌담을 넘어 내려서면 산불이 나서 나무가 앙상하게 말라있다. 산불지역을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묘지에 이르는 임도길로 잠시 내려서다 오른쪽 묘지가 있는 바로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선다.
♤ 호동(虎東)마을
수덕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고흥읍 호동리(虎東里)는 호산의 동쪽 마을이라 호동이라 하였으며 마을 뒷쪽으로 오무산이 )자형으로 고흥지맥 마루금을 이어가고 있다. 고흥류씨의 집성촌이며, 조선 선조 때 사람으로 어우야담(於于野談)을 지은 유몽인(柳夢寅)의 자취가 남아있다.
NO101송전탑을 만나고 200m봉을 지나고 신촌고개 임도를 만난다.
♤ 신촌고개/ 신촌마을
이 길은 탐생마을에서 간척지로 만들어진 신촌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이며 일면 신촌고개로 불린다. 처음에 신(申)씨가 입주하여 생긴 마을로 신촌마을 이라고 부르며 고흥읍 관내에서 가장 적은 마을이라고 한다.
오무산 정상에서 뚜렷한 길을 놓아두고 길이 없는 곳으로 띠지를 쫒아 내려서면 방화임도를 만납니다. 8부능선에 세번째 방화임도(280m)를 만나는데 이곳부터는 고흥읍과 풍양면과의 경계를 타고 진행합니다.
♤ 오무산(鰲舞山, 356.4m)/ 어무산/ 고흥2등삼각점
고흥군 고흥읍 고소리와 등암리 그리고 풍양면 상림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 아래에 방화임도가 나있고 정상에는 2등삼각점이 있다. 오무산은 큰 자라가 헤엄치며 춤을 추었던 바다가 융기해서 세워진 산이라는 전설이 있다. 또 이곳의 산세가 마치 큰 자라가 춤을 추는 듯한 형상을 가져 붙여진 산명이라는 말도 전해진다.
- NO101철탑과 편백나무 조림지를 지나 200m봉에 이른다. 널찍한 길로 내려서서 양회임도를 지나 길은 희미해지나 마루금 주위에 잡목과 가시덩굴이 없으니 그나마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229m봉을 지나 너덜길에서 왼쪽으로 꺾이고 다시 산길을 올라야 한다. 가파른 너널길을 만나면서 전혀 길흔적도 없다. 가파른 발자국을 쫒아 올라서면 임도가 나온다. 임도에서 절개지로 올라서니 오무산(어무산) 정상으로 간벌한 흔적이 있고 2등삼각점도 박혀있다. 오무산에서 어느 만큼 내려서면 가선대부 이조판서 김녕김공묘에 닿는다. 철탑을 보고 그쪽으로 진행한다.
등로 아래로 고흥읍 등암마을이 내려다 보입니다.
♤ 등암리 등암마을
고흥군 고흥읍에 있다. 자연마을로는 등암, 백련, 신전, 장전이 있다. 남쪽으로 조계산이 있으며 조계산으로부터 내려온 작은 하천인 수반천이 흐른다. 큰 바위가 있는 등암마을은 옛부터 이곳이 세갈래 길이 있다하여 삼거리라 불렀으나 일제시대에 등암마을로 바뀌었다고 한다.
먹고개로 내려서는 지점에도 태양열판넬이 잔뜩 설치되어 있습니다.
개도 보통 개가 아닌 사냥개이고, 닭도 보통 닭이 아닌 금계입니다. 주인아저씨에게 인사치레로 고흥읍에 갈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어보니 저 아래로 10분만 걸어가면 된다고 성의없이 일러주네요.
먹골가든 간판이 있는 방향으로 10분 걸어나가면 등암리보건소 입구에 LPG주유소가 있습니다. 그 앞에서 손을 흔들면 고흥읍내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서준다고 하네요.
♤ 먹국재(60m)/ 22, 77번 국도
고흥군 풍양면 상림리와 고흥읍 등암리를 잇는 고개로 22번 구도로와 ,77번 신도로가 나란히 지나는데 지하도가 있다. 고개 우측으로는 소록도와 녹동으로 연결되고 좌측으로는 고흥과 벌교를 연결하는 도로이다. 고흥군 풍양면 상림리는 곡부공씨 집성촌이다.
- 방화 임도와 양회임도를 몇 번 건너고 130m봉을 지나 가선대부 고령신씨묘를 지나면서 길이 보이지 않는다. 좌틀하여 차량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내려간다. 아래로 농가 주택이 보이고 견공들이 요란하게 짖어댄다. 내려서면 구도로와 자동차 전용도로인 먹국재이다. 지하도를 통과하여 먹국재의 절개지 왼편 옆 수로를 따라 묘지가 있는 희미한 길로 능선에 올라서면 표지기들이 반겨준다.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면 묘지가 있는 야트막한 봉우리가 135m봉이다.
등암리 LPG주유소 앞에서 택시를 불르니 고흥읍내까지 5,000원 나옵니다. 과역으로 나가서 유명하다는 동방기사식당에서 약간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8,000원인데 고기 추가하니 13,000원 받아요. 맥주 한병 시키는 건데 깜박했네요. 식당이 40년 넘었다고 합니다.
그림으로 보아 남서남진하는 고흥지맥인데 남서진까지 끝낸 셈입니다. 홀대모 띠지를 22개 가져가 중요한 지점에 아껴서 단다고 달았는데 18장을 사용했습니다.^^
성주고개에서 당재를 지나 채석장에서 운암산까지 계속 가파른 산을 넘더니 역시 후반부가 힘들게 나왔습니다..
고흥지맥 실거리가 약 104km 된다는데 별다른 알바없이 2/3쯤 했네요. 다음 구간은 바다 조망이 좋고 지맥 최고봉 천등산도 지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추운날씨 겨울산행 고생하셨습니다~
3구간을 한방에~
작년 설날 4구간으로 힘든 산행을하고 왔던 기억이납니다~
마지막구간은 겨울비을 쪼로록 맏으며 ㅋㅋㅋ~
항상 안산을 발원드립니다~()()()
엇! 법광선배님! 산행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나물도 뜯으면서 꽃구경도 하시면도, 전라도 산이 경상도 사람 괄세한다며 엄청 꾸사리를 주시더군요.^^
처가집이 고흥 봉두산 아래시라는 것도... ㅋ 근데 저는 한 5년 전쯤으로 알고 있었는데 작년였던가요?
그러고보니 오무산 가파른 오름길에 띠지가 생각나는데 무척 새것 이었다는...
탄포삼거리 예전 검문소는 흔적도 없고, 옆에 탄포상회 건물만 남아있었습니다.
77번 국도가 생겨 군경 합동검문소가 경찰검문소로 새로 옮겨졌다네요.
고흥지맥을 이해하는데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감사말씀 드립니다.^^
와~우.
드려 지맥길에 드셨군요..
고흥지맥 마이기네요 ^^
옥천고개의 커피포트...
나 갈때도 있으면 좋겠는데....ㅎㅎ
수고 많으셨으니다.
늘...즐거운 맥길 이어가시길 응원 합니다.
즐거운 한주 되십시오.
네 무영객형님!
여유있게 마무리를 하려고 첫 구간을 다소 길게 뺐습니다.^^
한밤중에 가니 까막눈이라 여러 사람의 사진을 많이 봐두긴 했는데요...
약간의 아쉬움이 남지만 구간을 단축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옥천고개 지나서 통세골 고개입니다,
통세골저수지라는 송정저수지를 눈으로 확인을 해야 하는데 오밤중이라 가기 바빴습니다.
도로로 내려서서 이동하는데 길 왼편으로 가족묘지 옆에 휴게시설 처럼 컨테이너를 개조했는지 아주 잘 지어놓은 이동식 집도 보였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앞쪽 유리문은 쟈바라식으로 통채로 여닫게 되어 있구요.
내부는 전기시설도 되어있고, 간이 침대에, 싱크대에, 응접실처럼 잘 꾸며져 있더군요.
그곳에서 도로를 따라서 조금 이동 하다가 볏단묶음을 지나 우측으로 들어서서 150m쯤 진행하니 나오더군요.
개가 몹시 짖는 컨테이너박스 집이었구요.
사람이 있었어도 한잔 하고 가겠습니다 하면 거절하진 않을듯 보였습니다.^^
멀기도 멀고 진행하기 꺼려운
고흥지맥으로 가셨네요
멋도 모르고 원샷으로 갔다가
된통 혼난 지맥길이였는데
이래 세월이 지나고 다른 분들 산행기를
접할때면 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집니다..
어느 지역을 가던 참 친절한 분들이
있는가 하면
진짜 불친절해서 정이 떨어지는
지역도 있더라구요
다 같이 어울려 사는 세상인데
굳이 인상쓰며 살 필요가 없는데 말입니다
먼길 남은 구간땜시 또 가셔야 겠네요
오래 전 추억을 더듬으며 잘 보고 갑니다
초창기 요맥산악회도 그렇고,
처음 가신 분들 산행기를 보면 없는길 만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더라구요.
산너머님 원샷 고흥지맥 후기도 접한것 같습니다.
그때 플러스님이 혼자간다며 지원오셨고, 이쁜척님하고도 첫 산행이셨던듯~
선답자가 지나간 길은 망개나무가 끊어져 있으니 그것만도 어디인데요.^^
원샷원킬은 능력이 따르지 않고 두번 만에 끝내도 흡족합니다. 댓글 감사하고요.^^
뭔일이다요 남들은 여러번 가는 것을 한번에 대단하십니다 저도 그시점 고흥에 있었는데 제가 조금 앞서갔네요 고흥지맥 뭐가 그리 잔펀치가 많은지 좌우지간 존경합니다 화이팅입니다 전 다음주 마지막 구간 갈 예정입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어쩐지 세르파님 새로운 띠지에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더라구요.^^
그 시각 한발 앞선 구간 가신거였군요.
저도 말일쯤 뛸거 같은데요.
이번 구간은 하루 15km씩 이틀 잡았으니 관광여행이 될듯합니다.
50평생에 고흥에 처음 들어가 보는건데 한번 가지고는 서운하고, 팔영산을 따로 갈려고 계획도 세워봤답니다.
고흥 다음으론 여수지맥 벼르고 있습니다.^^
어서 산행기 올려주세요~~
여수지맥도 넘 가고싶네요 저도 노리고 있습니다 화이팅입니다 ~~~~
지난해 말 땅끝마치시고 신년산행으로 고흥지맥에 드셨네요.
야심한 밤길 헤치며 만만치않은 행보 이어지셨습니다.
천봉산 송신탑의 홀대모회원님들 흔적이 역력합니다.
남녁이어서인지 날씨도 무난하였구요..
남은 구간도 안전하게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장님!^^
한라산 눈구경은 잘 다녀오셨는지요. 멀리도 가시네요.
천봉산에서 뭔가 빠뜨린게 있다했더니 근거리에 또다른 정상이 있었습니다.^^
이번 구간에 내빼느라 다 못한 조망은 다음 구간에 여유를 가지고 감상하겠습니다.^^
고흥지맥 함께 할수 있는 좋은 찬스 였는데
아쉽게 되었네요..
코로나 시국이 어수선 하다 보니 참 쉽지 않은
결정을 하였었는데..
홀로 장도의 길에 드셔서 많은 거리를 진행하셨네요.
역시 대단 하십니다.
전 언제나 가게 될지 다시 계획을 잡아 봐야 할듯 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대장님과 한방에 가기는 제 능력이 역부족이었습니다.
한방으로 괜한 욕심을 내다가 일행에 폐를 끼치기보다는 분수를 알고 두구간으로 나눠 가는게 최선의 방법이라 보았네요.
두번째 여수지맥, 세번째 화원지맥으로 순서를 확정하니 마음 편하게 준비할 수 있어 좋습니다.
15개 지맥 중에 운좋게 하나라도 맞았으연 좋겠네요.^^
와....저는 이글을 이틀에나 걸쳐 읽어도 아직 덜 읽었습니다.
퐁라라님 항상 부지런하게 답을 달아주시는데
그 고마움에 보답코저 열심히 읽고 읽어가는데....
고장의 역사부터 왜 그렇게 불리우는가 유래된 이유 등
길이나 짧나
장장 76키로 되는 고흥지맥 전반에 걸쳐 쭈우욱 나열해 주시니 그양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쓰는 퐁라라님도 대단하시고
그걸 쉽게 읽어내시는 다른 분들 또한 어마무시하게 대단하다고 봐집니다.
암튼... 제마음은 전달이 되었으리라 생각되고
훌륭한 정리에 박수쳐드립니다.
한권의 도움 책자 백과사전 같아요~ ㅋㅋㅋ
오늘은 날이 많이 풀려 따듯합니다. 행복한 한주 만들어가십시오~~
부케님!
저도 그 걱정 끝에 한번은 도저히 안되고 두번으로 나눠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산패와 구간 지도를 생략했는데도 불구하고 한번에 끝낸다면 그 후기가 얼마나 길겠습니까.^^ ㅋㅋ
지명 유래는 고훙군 홈피에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3대 사조직이 고려대 동문, 해병대, 고흥향우회입니다.
고흥군 홈피에 동네 유래가 아주 잘 나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부리나케님과 같은 느낌입니다.
어제부터 짬짬이 읽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년 겨울에나 들어가 볼 고흥과 여수입니다.
고흥이 잡목이 엄청심하다는데 퐁라라님 글에서는 그런게 없어보입니다.
다음에 가시면 장계지맥까지 마무리짓고 오실거 같습니다.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부뜰이운영자님!
저는 요 위에 15개 장거리 지맥을 우선순위에 두고 올해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계지맥은 언제 할지 아직 기약이 없습니다.
혹시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다면 요 15개 마저도 중단하고 클라이밍으로 달려갈것 같습니다.^^
고흥지맥은 영산과 땅끝에 비하면 잡목이 그리 심하지 않습니다. 겨울이라 그렇겠지만요.
가시나무는 조금 있는데 어느 지맥길이나 마찬가지 일것 같구요. 산이 야트막합니다. 그간 고생해서 선답자들이 내어놓은 길을 따르면 무난합니다.^^
당재에서 올라서면서부터 채석장을 통과하고 봉남재를 지난 삼면봉에서 운암산에 다다를 때까지가 조금 힘든 구간입니다.
잠깐이지만 운암산도 그렇고 그 전위봉도 산 정상이 무척이나 가파른 급경사입니다.
수덕고개에서 올라선 151.4m봉에서 내려서면 우측으로 석물이 있는 묘지가 보입니다. 여기서 다음 봉으로 올라설 때, 우측 간벌지로 올라서면 개고생을 피하고 아주 쉽습니다.^^
앞으로 미인치에서는 길이 더 좋아진다니 후반부 여유를 가지고 단장마을에서 우회길을 따르지 않고 원마루금을 걸어볼려고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