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함산(吐含山) 불국사(佛國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경북 경주시 불국로 385 외(진현동)
1. 사찰 연혁
1) 창건
전하는 문헌마다 창건에 대한 언급이 다소 다르다.
(1)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
528년(법흥왕 15)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과 기윤부인이 이 절을 창건하고 비구니가 되었다.
574년(진흥왕 35)에는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이 이 절을 중창하고 스님들을 출가하게 하였으며, 왕의 부인은 비구니가 된 뒤 이 절에 비로자나불상과 아미타불상을 봉안하였다.
670년(문무왕 10)에는 이 절의 강당인 무설전(無說殿)을 짓고 신림스님·표훈스님 등 의상스님의 제자들을 머물게 하며, <<화엄경>>을 강설하였다.
751년(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에 의하여 크게 개수되면서 탑과 석교 등도 만들었다.
(2) <<불국사 사적(事蹟)>>
눌지왕(訥祗王)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고, 경덕왕 때 재상(宰相) 김대성에 의하여 크게 3창되었다.
: 처음에는 소규모로 창립되었던 불국사가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3) <<삼국유사>> 권5 <대성효 2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
751년(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창건하였다. 김대성이 완공하지 못하고 사망하자 국가에 의하여 완성을 보았으니 3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 당시의 건물은 대웅전 25칸,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 백운교, 극락전 12칸, 무설전 32칸, 비로전 18칸 등을 비롯하여 무려 80여 종의 건물(약 2,000칸)이 있었던 장대한 가람의 모습이었다.
2) 중수
김대성이 중창한 뒤 임진왜란 전까지 이 절은 여러 차례의 중창 및 중수를 거쳤다.
1593년(선조 26) 5월 왜구가 침입하여 백성들과 물건을 노략질할 때 좌병사(左兵使)는 활과 칼 등을 이 절의 지장전 벽 사이에 옮겨다 감추었고, 왜병 수십 명이 불국사에 와서 불상과 건물과 석조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감탄하다가 무기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여덟 사람을 밟아 죽이고 절을 불태워버렸다.
이때 대웅전, 극락전, 자하문 등 2,000여 칸이 모두 불타버렸고, 금동불상과 옥으로 만든 물건과 석교와 탑만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이때 타버린 목조건물들은 20년이 지난 뒤부터 점차 복구되었다.
1604년(선조 37)경부터 복구와 중건이 시작되어 1805년(순조 5)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부분적인 중수가 이루어졌으며, 1805년 비로전 중수를 끝으로 중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후 사찰은 쇠퇴하여 많은 건물이 파손되고 도난당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대규모의 개수공사를 실시하여 다보탑의 해체보수, 법당의 중수 등을 실시하였다. 이때 다보탑 속에 있던 사리장치가 행방불명되었고, 공사 와중에 유물의 완벽한 복원과 보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일제의 문화정책의 전시물로서 수난을 겪었다.
8 ·15광복 후인 1966년 석가탑의 해체복원 등 부분적 보수가 있었다. 1969년 불국사 복원위원회가 구성되고, 1970년 2월 공사에 착수하여 1973년 6월 대역사를 끝마쳤다. 이 공사로 주춧돌과 빈터만 남아 있던 무설전, 관음전, 비로전, 경루(經樓), 회랑(廻廊) 등이 복원되었고, 대웅전, 극락전, 범영루, 자하문 등을 새롭게 단청하였다.
2. 국가지정문화재
<국보>
-다보탑多寶塔(국보 제20호)과 석가탑釋迦塔(국보 제21호)
다보탑과 석가탑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29m, 10.75m로 비슷하다.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다. 동쪽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서쪽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 다보부처님이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였다.
-연화교蓮花橋 칠보교七寶橋(국보 제22호)
연화교와 칠보교는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극락세계로 가는 다리다.
밑에는 10단의 연화교가 있고 위에는 8단의 칠보교가 놓여있다. 연화교의 층계마다 연꽃잎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청운교靑雲橋 백운교白雲橋(국보 제23호)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다.
전체 34계단으로 위로는 16단, 아래로는 18단인 다리다. 무지개 모양으로 이루어진 다리 아랫부분은 우리나라 석교나 성문에서 보이는 반원 아치 모양의 홍예교의 시작점을 보여준다.
-금동비로자나불좌상金銅毘盧遮那佛坐像(국보 제26호)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은 비로전에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부처님은 진리의 세계를 부처님으로 나타낸 법신(法身)부처님이다. 비로자나부처님은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다.
그런데 불국사 비로자나부처님의 손모양[수인(手印)]은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어 일반적인 비로자나부처님 수인과는 반대로 표현되었다.
-금동아미타여래좌상金銅阿彌陀如來坐像(국보 제27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극락전에 모셔져 있다.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보물>
-대웅전(보물 제1744호)
-사리탑舍利塔(보물 제61호)
불국사 비로전 좌측 보호각에 있는 사리탑이다. <불국사사적기(佛國寺事蹟記)>에서 말하는 '광학부도(光學浮屠)'가 곧 이 사리탑을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부처님의 사리탑인지 스님의 사리탑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1905년 일본인에 의해 동경 우에노공원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1933년에 반환되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모진 수난을 당한 우리 문화재의 아픈 역사를 잘 말해 준다.
-가구식 석축架構式 石築(보물 제1745호)
안양문과 자하문 앞에는 아름답게 꾸민 가구식 석축이 동서로 놓여있다.
: 구조물에서 하중과 지지의 관계를 가장 간단하게 나타내 주는 것이 가구식 구조이다. 이 구조는 각종 형태의 2개의 수직 기둥 위에 수평으로 얹은 제3의 부재(인방, 보나 대들보, 서까래)를 떠받치고 있다.
-대웅전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靈山會上圖, 四天王 壁畵(보물 제1797호)
‘불국사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는 1769년에 영조의 딸인 화완옹주와 상궁 김씨 등이 시주하여 제작한 불화로, 영산회상도와 2점의 사천왕 벽화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성을 나타낸다.
-삼장보살도三藏菩薩圖(보물 제1933호)
불국사 삼장보살도는 18세기 전반기 불화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며, 이 시기 화풍 및 삼장보살도의 도상 등 불화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삼장보살은 천장(天藏)보살,지지(持地)보살, 지장(地藏)보살이다.
참고
http://www.bulguks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