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락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는 사랑채가 보이고 왼쪽으로 행랑의 일부가 눈에 들어 옵니다. 이곳 낙선재에서는 고종의 둘째 아들인 영친왕이 승하하신 곳이기도 합니다. 영친왕은 순종의 배다른 동생으로 1920년에 강제로 일본에 보내져 일본인 부인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부인이 바로 이방자여사입니다. 이방자 여사는 일본의 왕족이지만 평생을 남편의 나라인 조선을 위해 사시다가 이곳 낙선재에서 1989년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방자 여사는 평생을 일본이 조선에 행한 만행에 대해 미안해하고 자신을 죄인처럼 여기시며 사셨다고 합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그러나 죄인이기에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저의 조국은 한국이고 제가 죽어 묻힐 곳도 한국입니다"라고 생전에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가장 최근까지 조선 왕실의 후손들이 생활하던 곳으로
가고 없는 주인을 잃은 방이 쓸쓸해 보이기도 합니다.
영왕과 이방자 여사의 2남 이구, 순종효황후와 이방자 여사 ,줄리엣여사
현재 일반인에게 공개 되고 있는 낙선재(樂善齋)와 더불어 추가로 그 옆에 붙어있는 비공개지역이었던 석복헌(錫福軒), 수강재(壽康齋) 그리고 이들의 후원에 속해 있는 취운정(翠雲亭), 한정당(閒靜堂), 상량정(上凉亭), 만월문(滿月問 )등이 일반인에게 특별관람 코스로 공개됩니다.
낙선재 뒷뜰에서 바라본 풍경
조선의 마지막 왕실가족 이야기★순정효황후 윤비
순정효황후 윤비는 순종황제의 비다. 서른 셋의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그녀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중전다운 일화를 남기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옥새를 감춰 두고 내놓지 않은 일이며, 한국전쟁 때 낙선재로 쳐들어온 인민군들에게 “이곳은 나라의 어머니가 사는 곳이다” 라며 호통쳐서 내쫓은 일, 왕조가 무너지고 순종이 승하한 뒤에도 일제에 항거하며 낙선재를 지켜낸 그 당당한 기품 등..... 또한 공산치하에서 어느 누구 하나 황후라고 돌보아주는 이 없는 혹독한 가난과 고독한 피난살이에서도 황후로서의 자존심을 저 버리지 않고 끝내 낙선재를 되찾아 흩어진 왕족들을 기다리던 윤황후였다.
그녀는 왕조의 운명과 함께 침잠하는 자신의 운명을 불교에 의탁하기도 하였다. 한때 그녀는 성북동 흥천사 가까운 곳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그 절을 매일 찾아가 왕가의 며느리로서 왕조를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사죄를 했다. 흥천사에서의 기도 덕분이었는지 그녀는 이승만 정부와의 끈질기고도 외로운 싸움 끝에 끝내 창덕궁 낙선재를 도로 찾아 일본에 있던 영친왕 내외와 덕혜옹주를 불러들이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미약하나마 자신의 몫을 다하려 했던 조선의 마지막황후 순정효황후는 1966년 낙선재 석복헌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고 만다.
★영왕
영왕 이은(李垠)은 1897년 생으로 고종의 3남이며 순종의 동생이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로서 11세에 일본에 볼모로 끌려간 후, 1920년 일제의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강제로 일본 황족의 딸(이방자 여사)과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영왕의 귀국은 광복이 되었어도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1963년 12월에야 가능하게 되었으나 이미 말을 못하고 게다가 기억상실의 상태였다. 그 후 7년간 병원치료도 헛되이 1970년 낙선재에서 눈을 감았다.
홍유릉에 안장되었다.
★영왕비 (이방자 1901-1989)
일본 동경 출생. 황족의 장녀로 태어나 1918년 학습원을 졸업하고, 20년 당시 일본에 인질로 가 있던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과 결혼하였다. 이 두 사람의 결합은 조선과 일본의 융합이란 차원에서 계획된 경략결혼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후, 1947년에 지정된 신헌법에 의하여 왕족신분을 상실한 두 사람은 무국적 상태로 있다가 63년 한국적( 韓國籍)을 취득하여 귀국하였다. 1970년 남편 이은 과 사별한 후 한국에 남아 부군의 뜻을 이어 신체장애자를 위한 〈명휘원(明暉園)>과 정신지체아를 위한 <자혜학교(慈惠學敎)>를 세워 사회복지활동을 하였다.
★이구 (李玖; 1931- 2005)
영왕과 이방자여사의 2남으로 태어난 이구씨는 조선의 마지막 황세손으로서 일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단독으로 도미(渡美)하여 MIT공대를 졸업하였다. 직장동료였던 줄리엣여사와 결혼하였으나 한국에 돌아온 후 왕실의 품위를 그르쳤다는 질타 속에 파탄을 맞게 되었다. 이방자여사가 돌아가신 후 한국을 떠나셨으나 1996년 영구 귀국하셔서 부암동에 거처를 정하기도 하였으며 2005. 7. 16 일본에서 사망 하였다.
★덕혜옹주(1912-1989)
덕혜옹주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녀이다. 고종이 나이 환갑에 귀인 양씨로부터 얻은 외동딸로서 왕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지냈다. 그러나 1925년 12세에 동경유학을 빌미로 일본으로 끌려갔고 17세가 되던 1929년 어머니마져 돌아가시게 되자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병을 얻게 되었다. 병세가 호전되던 20세에 대마도주(對馬島主)의 아들과 강제로 결혼하고, 결혼생활 3년만에 그동안의 시련으로 심한 우울증에 실어증까지 겹쳤다. 폐인이 된 몸으로 1962년에 환국하여 낙선재에서 1989년 운명하기까지 끝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