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수라는 작가는 국어사전을 읽고, ‘언어의 유혹’이라는 책을 섰습니다.
그 양반 말을 인용하자면 국어사전에는 스토리가 없답니다. 재미없다는 뜻 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두꺼운 국어사전을 완독했습니다. 저도 국어사전을 완독했는데
그게 어쨌다는 건지. 중간 중간 끌리는 언어 때문에 3000페이지 16만 개의 단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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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일 동안 읽고, 자신을 유혹한 언어 7,648개를 따로 모아 사전까지 만들었대요.
7,648개는 46만 개 언어 중 약5%에 해당합니다.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찬란하고
빛나는 순간보다는, 의미 없이 넘기는 페이지가 훨씬 많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삶의 책장을 한 장씩 넘기는 것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기쁨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지루함과 의미 없음을 견디면서 살아갑니다. 참고, 견디고, 살아가고,
살아내는 중간 찾아오는 기쁨이 있어서입니다. 낚시꾼이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만,
실은 팽팽한 긴장 속에서 월척을 기다립니다. 바로 그 순간 때문에 모든 평범한 시간이
특별한 시간으로 변합니다. 보통의 주말을 보내고 있다가 뭐에 미쳤는지 7시에 in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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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45분에 끊었습니다. 안성 발, 인 서울은 경부가 가깝고 안성 발, 인 진접은 중부가
빠를 것입니다. 차를 학원에 깊숙이 파킹하고서 효창공원을 산책했어요. 웨이트트레이닝
기구가 유혹을 해 와서 1시간정도 운동을 잘했습니다. 다음 주에도 이곳에서 운동을
해야겠습니다. 편의점에서 얼음 컵을 사들고 400번을 탔어요. 버스 요금이 1300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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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마스크 올리라고 째려봐서 한마디 해주려다 그냥 맨 앞좌석에 나란히 앉은 것은
나름 고름을 주려는 조건반사입니다. 버스 기사들은 왜 깡패같은지 아시나요?
한겨레신문사-국제대학원-아이 파크 몰로 효창운동장을 한 바퀴 돌더니 용산C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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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공고-용산 세무서-이촌 역-국립박물관 앞에 내렸습니다. 국민 성금으로 만든
신문사가 한겨레신문인데 지금은 정체성이 많이 희석된 것 같습니다. 저는 어디를
가기만 하면 꼭 큰 놈이 화장실 가자고 모챕니다. 서빙고 역에 올라서서 밀어내기 한판
하고서 차분하게 박물관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박물관 사이즈는 국내 최고일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 키울 때 두어 번 온 기억이 있는데 하나도 몰라보겠습니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런 건지, 코로나 때문에 쉬는 건지 입장료를 받지 않았습니다. 외곽 쪽으로
훌 터 가다가 가족 공원이 보여서 반가웠습니다. 가족공원은 주로 사생 대회나 야외
스케치를 왔을 텐데 지금도 젊은 가족들이 눈에 뜨게 많았어요.에고, 언제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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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지나 있는 화장실이나 연못은 그대로 있었어요, 역시 외곽을 끼고 한 바퀴 돌았어요.
네다섯 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오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한번 안아보고 싶었어요.
분위가 분위기인지라 안아보겠다고 말하면 안 되겠지요? 사람들은 제가 아이를 좋아하는
줄 알지만 사실 여자 아이만 좋아하고 남아는 싫어합니다. 왜 그러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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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내 아이는 지 부모 없을 때 꼼작 못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언젠가 6마리강아지를 보고 해코지 하고 싶은 강한 충동이 든 적도 있어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인가요? 소시오 페스인가요? 둘 다인가요? 자기애가 강한 것은 맞는 것 같아요.
돌아보니까 에스더를 20년, 예주를 10년 키웠고 두번 다시 이렇게 키우기 힘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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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공원 철조망 너머는 미군부대 일 것입니다. 공원조성 한다고 한참 떠들더니만
조용한 것이 빈집 같습니다. 미2사단 병력이 다들 평택으로 이주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용 산 땅값이 비싼 이유가 미군 부대 때문입니다. 그네들이 상권과 함께
터줏대감처럼 70년을 알 박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용 산이 공기가 좋은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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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도 남산이지만 그 넣은 미군 부대가 녹지이기 때문이랍니다. 저는 지인의 초대로 이곳에
두어번 가보았고 외국인 아파트는 일 때문에 종종 갔던 것 같습니다. 기억도 더 큰 기억에
덮이는 것 같습니다. 0진이란 친구는 평택으로 이사를 갔을 것입니다. 일부러 철도 건널목을
지나 한남 대교와 동작 대교 사이 고수분지 길을 찾아들어갔습니다. 얼마 전‘이 클‘에서 다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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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컷 찍었던 잠수교는 그대로 있었고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뚱보부부가 20년 전 제 나이일
것입니다. 21살 겨울에(84년) 첫 파견지를 동작 C K로 나와서 혹독한 졸병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접근금지지역을 이리저리 둘러보았어요, 검문소가 폐쇄되었네요. 동작 대교 만들어지고 검문소를
최신식으로 지었는데 30년 만에 폐가가 되어버렸으니 격세지감입니다. 이곳에서 사건사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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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았어요. 제가 막내라 일일 근무 3번서고 잔 밥 담당을 했거든요. 보통 서울지역 검문소는
헌병, 경찰, 보안대, 청원경찰이 합동 근무를 서는데 신식 식당이라 밥을 헌병대에서 하고
부식비를 받았습니다. 헌병대 고 참들이 타 부대 사람들을 군기 잡으려고 제 시간에 오지
않으면 잔 밥을 재다 버리는 것으로 내무반 정치를 합니다. 저는 피는 끓는데 내 졸병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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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들이나 보안대, 방공포 친구들이 만만 했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근무 중에 의경이 내초
부스로 들어와 잤다고 고 참이 저를 갈구는 겁니다. 그래서 동작 대교 초소에서 놈을 M16으로
죽어라고 패줬지요. 그랬더니 경찰대에서 제게 맞은 놈에게 뭘 어찌 했는지 이놈 아가 탈영을
해버렸지 뭡니까? 우리시대에는 전 두환 이 보안대 출신이라서 보안대 끗발이 하늘을 찔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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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남산 506보안대에서 파견 나온 김 병장이 우리 초소 장(육사39기)에게 들이 대는
일이 발생해서 동작검문소가 생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그 무섭던 고 참들이 발만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제가 단독으로 사고를 치기로 결심을 합니다. 추리닝 복장으로 보안대
사무실 문을 두드렸더니 제 예상대로 병력이 2명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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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병장은 내무반에서 까져있고 초소 장(중사)이 책상에 앉아 있었어요. 조 양은 이가
샤보이호텔 난투극을 벌일 때처럼 날라서 K O를 시켜버렸어요. 바로 초소 장이 3.8권총에
실탄을 장전하더구먼요. 그때 죽는 줄 알았어요. 지금이라면 헤드라인 톱기사로 떴을
것인데 하나님이 보우하사 구사일생으로 살았다는 것 아닙니까? 그일 이후로 저는 꿈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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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병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총각이던 헌병대 초소장이 핫플 동부 이촌 동을 수석 고 참
대신 저를 부관처럼 데리고 다녔어요. 헌병대는 외출 외박 시 무조건 워커와 근무복을
상병 사령관이 닦고 다려줍니다. 군바리 졸병이 동부 이촌 동 카페에 앉아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군대가 만만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파견지 근무가 끝나고 필동 본부로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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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후에 이 일로 제가 영창을 가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온 누리 교회가 궁금해서 굴다리를 건너 가보았어요. 오전 예배는 끝났을 것이고
오후 예배시간 쯤 인가 봅니다. 다들 모바일 바코드로 출 첵을 합니다. 다른 교인은 못
들어간다니 잘 됐네요. 누가 예배 본대? 신동아 아파트도 그렇고 쇼핑 타운 도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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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삥이었는데 재개발 할 만큼 낡았고 교회건물만 그대로입니다. 고 하목사가 최순영 회장
큰 사위일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이곳에 84년도에 개척을 하겠다고 외국의 수많은 교회를
돌아봤고 최 회장 사택에서 가정교회를 시작한 것으로 압니다. 사실 80-90년대 한국교회를
선두에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동작 대교에서 근무를 서는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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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누리 교회를 알게 되었고 제대이후 10여년 이상 들락거리면서 온 누리 교회의 기득권을
누렸던 것 같습니다. 빌레그레함, 데니스레인, 김 세윤 등등 여기서 다 만났습니다.
하 스데반과 하 용조의 패밀리 사역은 80-90년대 한국교회의 춘추전국시대가 아닙니까?
2020.6.21.su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