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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남정언의 작품세계:
수필로 조탁하는 삶의 성형과 실험의식
박양근(문학평론가, 부경대 명예교수)
열면서: 영혼의 성형작가
문학은 인간을 예술적인 언어로 묘사하고 해석한다. 학문이 인간의 욕망과 동기를 체계적이고 냉철하게 탐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문학은 인간을 심정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글이라 하겠다. 문학을 인간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조그만 상처와 그 치유의 과정조차 다감하게 제시하기 때문이다. 수필 작가가 등장인물이면서 서술자가 되는 이유도 심적 동기와 외적 행동 사이의 일치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남정언 수필가는 그 동질의 힘을 남다르게 인식하고 있다. 언어의 로고스를 지켜냄으로써 언어와 작가심리 간의 유기성은 물론 “영혼의 성형”으로서 창작정신을 투철하게 유지한다. 그 점은 그녀의 짧지만 인상 깊은 문학이력이 보여준다. 그녀는 2016년 ≪수필과비평≫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하였고 2017년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에 입상하고 2018년에는 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매년 문학적 발전을 보여주고 있는 그녀는 스스로 글 감옥에 갇혀버렸다고 말하듯이 주변이 온통 언어의 숲으로 싸여있다. 천 번의 습작으로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입선을 했던 때처럼 혼신의 힘으로 작품 활동을 거듭하고 있다.
첫 수필집 ≪그림책을 읽다≫를 대하면 마리 보나파르트Marie Bonaparte가 말한 “문학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꿈을 깊이 드러내는 구축작업”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자신을 읽고 분석하고 언어로 디자인하는 글쓰기를 신성시하는 그녀에게 “잃은 것과 버린 것을 되살리는 길”은 오로지 “제 이름으로 만들어진 책 한 권 갖고 싶었던 꿈”을 이루는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믿고 있다. <작가의 말>은 그 문여기인文如其人의 선언이랄까. 무엇보다 남정언의 수필집이 지닌 경이감은 순아한 성품에서 피어난 질긴 생의 꽃 같다는 사실이다. 그 힘이 있어 자아를 격조 있게 성형한 작품세계를 이루어내었다.
제1장: 꿈 좇기로서 간택한 수필
꿈과 현실은 반대일까. 그렇지 않다. 현실이 꿈이 되고 꿈은 다시 현실이 된다. ‘우리는 현실에서도 꿈을 꾼다.’라고 확신하는 남정언의 꿈도 현실과 이중주의 삶을 이룬다. 중학교 2학년 시절에는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고 국어 공부만큼은 전교에서 최고를 차지하고 싶었다. 성장하면서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갈 수 있는 ‘조금 괜찮은 어른’이 되기를 소망했다. 중년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꽤 괜찮은 어른 작가’가 되는 꿈을 현실에서 이룬다. <천 개의 수필>은 수필로 쓴 자기소개형 자화상이다. 서두에서 ‘나이가 들면 책 한 권’ 내고 싶다는 소망을 자신의 운명에 대한 소심한 복수라고 고백한다. 그 이유는 어릴 적부터 얼굴에 생긴 흉터 때문이다. 그래서 첫 번째 인생 목표는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 두 번째는 직업을 갖는 것, 세 번째는 “언제나 신나게 ‘쇼하라’”라는 주문을 거는 생이라고 밝힌다. 그 세 번째의 구체적인 목표치가 수필작가가 되는 것이다.
저는 참 행복합니다. 글밭에서 ‘잘나가는 작가’가 되고 싶은 잘나작 문우를 만났고, ‘마음의 눈’으로 들여다보며 귀한 ‘벗’을 찾았으며, 품위 있는 스승을 ‘오마주’하는 행운까지 누리고 있습니다. 글밭이 아니면 어디서 이런 호사로운 ‘여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 <천 개의 수필> 일부
마침내 수필작가군에 동참하였다. 그런데 그녀에게 수필가가 되는 꿈은 심각하기보다는 즐겁고 여유롭고 신난다. 하지만 “호사스러운 여유”가 아니라 참으로 진지하고 성실한 노역이 깔려 있다. 경쾌하면서도 진중한 화술로 이어지는 작품들도 공통적으로 지닌 메시지는 ‘내 인생 최고의 성형’이라는 수필에 대한 자부심이다. 이처럼 그에게 글쓰기는 행복의 조건이면서 생활의 발견이므로 등단했을 때 받은 축하 꽃다발을 ‘이십육 년 만에 핀 꽃’으로 표현한다. 재미와 감수성이 어울린 언어감각과 은유가 남정언의 수필이 지닌 특징을 처음부터 보여주는 셈이다. 나아가 천수천안관음에 대한 경이감으로 “천 편의 수필”을 쓰겠다는 생의 목표도 그녀가 여러 시련을 어떻게 극복해주는가를 보여주는 예로써 부족함이 없다.
<쇼하라>는 낙천적인 유머와 실험 기법으로 짜인 작품이다. <천 개의 수필>이 작가가 거쳐 온 글쓰기 발자취를 밝힌다면 <쇼하라>는 글 쓰는 자세를 실천적으로 펼쳐낸다. 드라마 배우의 성실한 연기와 젊은 엔터테인먼트 연기자의 활기를 동시에 연상시켜주는 하루 일과표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쇼를 하라!”라는 광고 문구를 반복적으로 패러디하는 가운데 매 단락마다 “나도 쇼해 보자. 쇼하는 엄마를 아들은 안쓰럽게 바라본다. 할 수 없다 계속 쇼하자. 매일 쇼를 해야 하는데 체력이 달린다. 언젠가 독립한 아들딸에게 쇼하라 외친다. 쇼하다가 SKY대학에 진학한 사례도 있다. 세상엔 공짜 쇼는 없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오늘도 쇼했다.”처럼 반복적인 화성을 도입한다. ‘계속 쇼하자’에서 시작하여 ‘오늘도 쇼했다’로 마무리되는 서언은 끈기, 포부, 기대라는 자유의지를 담아 글을 마무리했을 때의 희열감을 행간에 채우고 있다.
<그림책을 읽다>는 표제작이다. 독서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남정언은 그림책이 지닌 효용성을 누구보다 높게 평가한다. 사람들은 그림책은 글자가 적고 해석의 여지가 많아 사람들의 생활습관을 교정시켜주고 지식과 지혜를 전해준다. 그의 독서지도 경험에서 비롯하는 그림책 예찬을 가정교육에 응용하기도 하는데 그 사례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자연을 보듯 여백이 가득한 그림책을 읽으며 아이의 얼굴에서 무자서無字書를 느낀다. 굳이 독서 대상 나이를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인문 사회 철학을 읽는 것이 바람직하고 두꺼운 책을 읽는 것도 모양새가 난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고 다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도 그림책은 변함이 없다. 무엇을 하려는데 나이와 체면이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 <그림책을 읽다> 일부
그래서 자신에게도 육아育我가 된 그림책을 ‘지금도 진지하게 읽는다.’ 배움에 대한 진지성은 서예를 거쳐 수필에서 만개한다. 서예와 글은 사람을 생육시키는 도道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서예나 그림을 할 때처럼 수필을 쓸 때도 어깨의 힘을 빼야 한다. <오마주>는 작가의 겸허한 수필론을 간접적으로 반영한 수필로서 심안을 빌려야 사람을 감동시키는 글이 된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그 실천의 예를 <아망오我忘吾>에서 보여준다. 그 점에서 두 작품은 이론과 실제로서의 쌍을 이룬다. <아망오我忘吾>는 서예를 배울 때 스승의 글씨를 밀반출하여 천 장을 복사한 끝에 대한민국서예대전에 입선했던 일화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몸에 흉터를 지녀야 살 수 있다는 운명에 대한 저항의 몸짓을 전해준다. 이런 자세를 갖춘 작가에게 집중력은 몰입 자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수필 쓰기는 마음을 치유하는 일이다. 가슴이 따뜻한 선생님께서 문학이 위로가 될 거라며 수필밭에서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마음이 몸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집중하고 몸은 글에 몰입해야 하리라. 오래 사랑하면 보일 터이고 보이면 느껴질 것이므로 천천히 그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 <아망오我忘吾> 일부
남정언의 수필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할 수밖에 없다. 몸에 난 상처 때문에 한때 절망했지만 그림책 읽기로 자아를 다스리고 글 가르치기를 통해 배려심을 키우고 서예를 거치면서 몰입의 희열도 맛보았다. 이제 그녀는 자기애의 표현으로 수필을 선택하였다. 그 결과물로서 ≪그림책을 읽다≫는 남정언의 삶을 투명하게 투사하는 만큼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이 된 작가의식을 변증법적으로 체화해내었다고 하겠다.
제2장: ‘고븐’ 인생과 기도의 응답
상처를 견디며 사는 사람은 아름답다. 마음의 상처처럼 몸의 상처도 생각 이상으로 견디기 힘들다. 여성의 경우, 얼굴 흉터는 생각 이상으로 감정을 예민하게 건드린다. 그때 흉터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성숙도가 달라진다. 남정언의 이마에 난 상처도 적잖은 트라우마이지만 그녀는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한다. 밝은 표정을 짓고 봉사를 하고 육체적 결점을 심리적 장점으로 바꾸려는 피나는 노력 끝에 그것을 ‘복된 탓’으로 변용시켜낸다.
신인 등단작 <고븐 흉터>는 세 살 무렵에 가진 이마 흉터를 ‘고븐 주름살’로 바꾸려는 꿈과 노력을 담아낸 자전성이 두드러진다. 상처를 인도인의 빈디와 부처의 수정백호에 비유하면서까지 긍정하려는 의욕이 ‘세상 이치와 지혜를 깨달으며 살아가라는 증표’로 삼는 인생론으로 발전한다. 이때 “고븐”이라는 수식어와 “흉터”라는 명사가 합쳐 이루어내는 기의는 신선한 파급력을 갖기에 충분하다.
얼굴 전체가 활짝 웃는 하회탈처럼 되도록 연습했다. 몸짓은 자신 있게, 마음은 당당하게 살겠다며 하루에 수십 번씩 눈빛 미소를 지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자원봉사하겠다고 약속했다. 봉사활동은 밝은 미소를 실천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난 요즈음 내 얼굴을 본 사람들이 인상 좋다고 말한다. 마음 나누기를 한 나름의 노력에 결실이 이루어지나 보다.
- <고븐 흉터> 일부
상처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남이 만든 상처도 긍정적으로 여기면 간직하고 싶은 ‘고븐 주름살’ 같은 장점이 된다. 마음이 나이에 맞추어 성숙해가는 인간은 어찌 보면 매일매일 몸과 마음을 성형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을 깨친 작가가 바람직한 자아발전이 무엇인지를 밝혀낸 수필이 <최고의 성형>이다.
외모에 대한 관심은 동서고금을 살펴보아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몸짱과 얼짱에 관심이 많고 중년도 다이어트와 성형에 관심을 기울인다. 한때 체중으로 고민하였던 작가는 자기관리를 했던 과정에서 인간이 행할 최고의 성형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얻는다.
최고의 성형은 나를 믿는 거다. 살이 빠지자 얼굴 주름이 부쩍 늘었다. 잡티도 보인다. 눈가와 입가에 주름을 없애야 하나. 아니면 사각턱을 브이라인으로 만들어야 하나. 겉모습에 천착해 스멀스멀 올라오는 과한 욕심의 기미와 잡티까지 지우고 싶은 마음이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안되겠다! 이제 마음을 성형해야 할 차례다.
- <최고의 성형> 일부
최고의 성형은 마음의 성형이라는 답을 만든다. 그 바람직한 처방은 심적 여유를 갖는 것이다. 작가는 인대 파열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낙천적인 평정을 잃지 않으려 했다고 전한다. 경어체로 쓰인 병상일기인 <행운유수>는 그 체험을 기록한 것으로 봄날 병실에 갇혔지만 마음만은 여유롭게 가지려 했던 한때를 적고 있다. 일주일간 입원했지만 자신의 공모전 입상, 제자의 대학 입학, 취직한 지인의 반가운 소식 등을 들으면서 기쁜 한 주가 되었다. “인도 여행을 갔더라면 제때 알지 못했을” 거라고 위로함으로써 마음의 진통을 다스린 체험으로 ‘만사는 마음먹기’라는 주제를 구현해낸다.
마음을 조절하는 자기검열은 관상용 물고기의 생태를 소개한 <코이의 법칙>에서 재현된다. 이 작품은 공간 벗어나기가 아니라 주어진 곳간에 제 몸을 맞추는 적응을 다룬 우화수필에 속한다.
그녀는 한 마리 코이다. 그녀는 세상의 잣대로 공간을 구분하며 틀에 갇힌 삶이 싫었다. 가족이라는 어항이 힘들었다. 책임과 의무를 강요받지 않는 연못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어떤 한계라는 기준 설정은 의미가 없으므로 탈출을 감행한다. … 앞으로 전진하며 성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고 벌써 눈치챘으므로 이제는 연못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어항이냐 연못이냐 강물이냐가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아내었다. 그녀는 두려움 없이 가뿐하게 뛰어넘는 자유로운 코이처럼 살기를 바랄 뿐이다. 모든 경계에 꽃이 피었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 <코이의 법칙> 일부
작품을 끌고 가는 동력으로서 모티프는 탈출과 적응이다. 나아가 공간은 어항, 돌확, 연못, 강으로 확장시킨다. 이로써 코이가 주어진 영역에 적응하듯 인간도 희망을 품으면 ‘어떤 인생이든 살아볼 만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삶의 영역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심리적 공간이라고 믿는 작가는 ‘고된 삶을 지탱해 주는 희망과 자유’야말로 ‘그녀의 법칙’이라는 자세를 당당히 밝혀나간다.
남정언의 삶을 버텨주는 두 번째 축은 기도이다. 기도가 절대자라는 제 편 찾기라면 조건 없는 도움을 베풀어주는 절대자가 인간이 바라는 신의 모습이다. 기도의 대상은 신만이 아니라 때로는 갓바위, 고목 외에 하늘이나 산사 등도 포함된다. 삶이 힘들거나 원하는 바가 있을 때마다 산사를 찾는 작가는 산을 오르는 것도 기도로 여긴다. 그의 불심이 뚜렷하게 투사된 <God바위 할아버지>는 작가의 소망이 반영된 첫자리를 차지한다. 좋은 사람과의 인연과 글과의 인연과 가족의 행복과 건강을 원하는 그녀는 ‘마음의 연등’이 되어 절 탑을 지켜본다. 이때 연등은 절대자에게 마음을 비치는 상징이면서 염화시중의 미소를 나누는 매체로 간주된다. 갓[God]바위부터 듣고 싶은 전언도 “자신을 믿고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라.”는 격려이다.
이런 믿음은 한가윗날 봉정암에 오른 순례를 다룬 <1,224m에서 보낸 편지>에서 다시 펼쳐진다. 딸의 취직을 기원하는 모정이 캄캄한 새벽에 주먹밥 한 개만을 먹고 조용히 하산하는 빈 몸에 실린 가운데 작가는 생활을 “나를 이겨내는 고행의 산”에 비유하면서 “오르막과 내리막이 온전히 자신을 낮추는 기도”라는 명상적 언어를 얻는다, “삶은 언제나 기도”라는 생활의 발견을 이루고 기도란 자신과의 대화임을 간파한 점에서 선禪수필의 범주에 넣을 만하다.
작가는 현실생활로 내려오는 자신을 연을 통해 가족과 묶는다. 그녀의 인연이 불심에서 부모의 연으로 내재화하는 가운데 <탯줄>로써 어머니, 본인, 딸의 관계를 잇고 <어렵게 만나다>로서는 아버지를 찾는다.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대마도로 떠나는 기행은 연어처럼 아버지에 대한 회상의 시점으로 거슬러 오른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언제나 쉰아홉이다. 일곱 살이었던 나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버지 손을 잡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러 갔다. 저녁에는 필통에서 연필을 꺼내 사각사각 연필꽃을 피워주셨던 아버지와 어머니. 아침마다 학교 다녀오겠다며 큰 소리로 인사했던 딸에겐 희망이 넘치는 봄이었건만 아버지와 나의 인연은 정해져 있었다.
- <어렵게 만나다> 일부
죽음은 인연의 끈을 자른다. 죽은 자의 시간은 흐를 수 없다. 그러나 문학적 상상은 쉰아홉의 아버지를 소생시키고 일곱 살 소녀의 그리움을 다독여준다. 문학이 인간에게 베푸는 상상의 혜택을 빌어 작가는 망각했던 인연을 되살려 내는 것이다.
수필가로서 작가는 ‘글이 사람이다’라는 본질을 취한다. 시련을 긍정하고 자신의 노력을 절대자의 도움에 의탁하는 가운데 봉사와 글 나누기를 실천한다. 이런 자세는 최고의 성형은 자신을 믿는 것이라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그럼으로써 평소의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생활관은 ≪그림책을 읽다≫를 “마음 책을 내다”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제3장: 작가적 지평과 실험수필
21세기는 IT에 의한 변혁의 시대이다. 문자언어가 전자언어로 교체되고 종이에서 컴퓨터로 변천하는 문화 현상은 자연스럽게 문학의 내용과 형식에도 충격을 주었다. 인간의 경험과 오감을 소통시키는 미디어 매체로서 문학도 시대에 부응하는 능동적 실험을 외면하기 어렵다. 젊고 진취적인 작가일수록 내용과 형식에서의 문학영역을 확장하여 문학적 입지를 개성화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라 하겠다.
수필, 에세이의 원뜻은 “실험하다”, “시도하다”이다. 몽테뉴가 고전산문 양식에 저항하여 개인의 지성과 감성을 표현하는 에세이라는 새로운 산문의 문을 연 후 에세이에 해당하는 한국 수필도 IT시대를 맞이하여 급변할 수밖에 없다. 아방가르드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는 문학을 ‘자기해방과 지평을 새롭게 하는 작업’이라고 했고, 러시아 형식주의자들도 ‘낯설게 하기’로서 대상의 참모습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주문에 주목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이 남정언이라고 여겨진다. 그 점에서 남정언의 실험수필은 개성미학의 확장이면서 실험성을 구현하는 선도적 역할을 한다고 평가된다.
남정언 작가의 실험수필 사례는 기대 이상으로 다채롭다. 낯선 언어의 차용, 이모티콘의 도입, 이미지와 기호의 확장, 시․소설․드라마와의 퓨전, 장수필과 단수필, 영화 에세이, 서예 에세이 등의 장르 다양화, 화자의 변용들은 혼성과 횡단을 중요시하는 실험수필의 추세와 매우 일치한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사물의 의인화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소류지에서>는 마을의 소류지와 당산나무를 남녀의 사랑에 대비시킨 장수필이다. 그 둘을 연인으로 서시화한 구조는 농경시절 조리마을의 농사를 지은 남정네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놀라운 작가의 낯설게 하기를 살필 수 있다. 사물에 인간의 생명과 피를 불어넣어 성인도 즐길 수 있는 동화식 기법은 흥미로운 실험사례로 간주될 만하다.
오늘도 사람들이 소류지를 찾는다. 백이십 년 넘게 한마을에 사는 연상연하 커플을 바라보며 걷고 있다. 연꽃이 절정인 여름날 당산정 참나무 그늘에 앉아 여유롭게 이야기꽃을 피운다. 살아가는 평범한 시간 속에 신선마을의 시원한 바람이 끼어들어 흡족한 사이로 만들어준다. 세상살이가 힘들수록 마주 보며 상처를 보듬고 서로 위로하는 둘레길에 나는 변함없이 서 있다.
- <소류지에서> 일부
기계화된 도시에 신화적 배경을 깔면 현실에서 불가능한 가능성이 이루어진다. 소류지를 연상연하 커플이 로맨스를 즐기는 배경으로 삼았던 작가는 이번에는 벚꽃이 만개한 쌍계사를 선택하여 두 남녀의 화해를 도모한다. 사물을 감성적으로 표현할 때의 효과를 응용한 작품이 <26년 만에 핀 꽃>이다. 이 작품은 쇼 하듯 살고, 치열하게 살고 자신을 위해 글에 골몰한 삶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여유를 기대하는 줄거리를 갖고 있는 세 가지 이야기를 모아놓은 옴니버스식 구성이 특징이다. ‘그’와 ‘그미’가 ‘그 & 그미’로 화해하는 작품의 줄거리는 결혼 26년 만에 신경전을 끝내는 사연을 드라마기법으로 재현한다. 작가는 26년 전 청혼했을 때의 추석날과 오십 나이를 넘긴 세월 간의 시간을 재생시키면서 두 등장인물을 근경으로 포착한다.
그는 ‘고븐 흉터’를 읽고 울었다며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고 했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아버지 역을 제대로 못한 지난날을 용서해주기만 한다면 참말로 잘해보겠다고 한다. 밥을 같이 먹고 싶다면 밥을 먹고, 나들이를 가겠다면 함께 가고,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겠다고 한다. 그의 간절한 눈빛이 마음으로 읽힌다.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까지 26년이 지났다.
- <26년 만에 핀 꽃> 일부
그들은 26년 만에 서로에게 새로운 시선을 보낸다. 개인의 자존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족이 소중하다는 논거를 ‘그 & 그미’의 이모티콘으로 조합한 기법은 기존의 언어가 가진 한계성을 절감한 작가가 고안해낸 새로운 대화법임을 반영해 준다. 기존의 언어로 나름의 고민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기가 어려우므로 작가는 ‘감각’이 시선의 본질임을 밝혀내기 위해 3인칭 화자를 도입한 것이다.
<마음의 눈>은 <쇼하라>처럼 서체의 변화를 꾀한 작품이다. 각 단락의 첫 문장을 볼드체로 기표하여 백내장 수술 덕분에 얻은 ‘새로 봄’의 경이감을 예찬한다. 그러면서 육안이 아니라 심안에 눈 뜬다는 2차적 상상을 강조하기 위해 ‘보인다, 다 보인다’라는 감탄조의 동사를 반복한다. 신생아의 눈으로 다시 태어난 작가는 육안이 지배한 과거에서 벗어나 “지혜로우면서 자유로운 삶”의 길로 나아가겠다고 스스로 언약한다. “내 마음을 활짝 열어본다”는 연역법으로 시작한 도입 구조도 남다르다.
<독독독篤皾督>과 <잘나가는 작가>는 네 마디로 이루어진 병풍형 구성을 특징으로 한다. <독독독篤皾督>은 사계절로 시공을 설정하고 각 계절에 작가의 삶과 좌우명을 반영한다. ‘봄 재수’는 신년 대학입시 무렵의 사회상을 풍자하며 ‘여름 답장’은 무리한 사적 요구를 하는 친구에게 절연의 답을 보내는 내용이다. ‘가을 친구’는 사십 대의 공통 관심사인 건강문제를 거론하며 ‘겨울 사랑’은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자기애를 강조한다. <잘나가는 작가>는 글공부를 통해 만난 문우 사이의 문인애, 여담, 동인지 발간, 바둑 두는 언니의 글쓰기에 관한 조언, 의기투합한 격려로 이루어진다. 이들 작품이 택한 하이퍼텍스트 형식은 일반 수필이 지닌 평면 구도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다채로운 정보를 동시에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전망이 밝은 실험수필에 속한다. 그 외에 동리와 목월 간의 우정을 인유하고 시와 수필의 퓨전을 실험한 수필 <벗>, 영화 “두 번째 겨울”을 각색하여 인간의 절박한 삶을 낡은 보일러로 형태화한 <보일러 소리>는 몸의 성형처럼 형식적 변용의 사례로서 제시할 만하다.
남정언의 수필은 작품마다 새로운 지평을 모색한다. 낯선 실험정신으로 자기만의 문학세계를 구축하고 나아가 향기로운 삶을 이룬 수필시학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작가들에게 미래지향적인 좌표가 되리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덧붙여: 냉정과 열정의 무대 뒤
남정언의 ≪그림책을 읽다≫는 생의 아픔과 찬란함을 함께 담아낸 서사의 전범이다. 작가로의 입신이라는 꿈과 고운 감성을 지키며 살겠다는 소박한 희망이 논리적 사유와 정치한 문장으로 직조되면서 인간 보편적인 희로애락과 변신을 담아낸다. 개인의 생활발견으로 인간이 이루어내고 싶은 보편적 욕망을 표현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럼에도 작가는 “흉터”, “쇼”, “즐거운 전언”, “보인다”, “기도”라는 중심어들을 “고븐 심성의 작가”라는 의미망에 구슬처럼 엮어 작가만의 영혼의 자화상이자 삶의 증명사진으로 펼쳐냈다. 작가의 수필을 읽어낼수록 언어의 문진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수필부터 실험수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 자체가 “난 수필작가가 되겠다.”는 뫼비우스의 끈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남정언의 삶은 수필을 만난 후 더욱 깊어지고 풍요로워지고 있다. 무대 위의 쇼는 무대 뒤의 처절한 노력과 열정이 있어야 성공한다. 그 조건을 알지 못하면 좋은 독자와 좋은 관객이 될 수 없다. 남정언의 문학이 진정한 쇼인 이유는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자기 극기의 연기로서 문학적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꿈을 이루어가는 그녀의 의지와 열정은 마치 문학의 신으로부터 영적 열쇠를 받아 천 개의 수필 창작을 이루려는 순례를 연상시켜준다. 그 꿈에 대한 작가적 진정성이 그녀의 삶을 지켜주는 탄탄한 둑이 된다. ≪그림책을 읽다≫를 실존적 냉정과 열정을 구현하는 메모랜덤으로 평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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