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1901∼?)-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1901∼?)-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데.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릿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너른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영(嶺)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었다 이어오는 가는 노래는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데.
<감상>
찬 바람결에도 봄 냄새가 맡아지는 요즈음이다. 이 냄새에 가슴 부풀고 설레던 게 그 언제던가.
아무 설렘 없이 소금의 짠맛, 설탕의 단맛처럼 계절을 식별할 뿐인 내 쇠로한 감각이 선뜩하다.
그런 차에 이 시를 읽노라니 ‘끊었다 이어오는 가는 노래’가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는’ 듯 살
랑살랑 떠오르며 가슴이 아늘아늘해진다. 노랫가락을 따라 흥얼거리다 인터넷에서 노래를 찾아
들었다. ‘KBS 전속합창단 출신 가수’라는 자막을 달고, 소녀에서 이제 갓 처녀가 된 듯 앳된 모
습으로 박재란이 노래하는 흑백 동영상이다. 얼마나 고운 모습, 고운 목소리, 고운 노래인지! 가
수나 반주하는 악단이나 너무도 진지하게, 행복해하며 연주에 빠져 있다. 저이들 모두 젊으나
젊은 저 시절을 아득히 지나가고, 봄을 맞아 아늘아늘한 처녀 총각의 마음, 춘심(春心)을 노래한
시는 남아 있다. 시인의 고향 풍경이 담겼을, 쉽고 고운 이 시를 노래로 만든 ‘산 너머 남촌에는’
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온 ‘국민가요’다.
장편 서사시 ‘국경의 밤’으로 유명한 납북시인 김동환 선생의 호는 파인(巴人)이다. 파인은 중국
파(巴) 지방 사람이란 뜻으로 ‘촌뜨기’를 빗대어 이르는 말이란다. 고향과 흙의 마음으로 노래하
며 살련다는 순수하고 우직한 다짐이 세련되게 담겨 있다. 파인은 다들 어려웠던 시절, 서민들
의 정서를 화사하게 북돋던 노래로 불린 시를 여럿 지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
께 따가주’(‘봄이 오면’)도 파인의 시다.
-황인숙(시인)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데.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릿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너른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영(嶺)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었다 이어오는 가는 노래는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데.
<감상>
찬 바람결에도 봄 냄새가 맡아지는 요즈음이다. 이 냄새에 가슴 부풀고 설레던 게 그 언제던가.
아무 설렘 없이 소금의 짠맛, 설탕의 단맛처럼 계절을 식별할 뿐인 내 쇠로한 감각이 선뜩하다.
그런 차에 이 시를 읽노라니 ‘끊었다 이어오는 가는 노래’가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는’ 듯 살
랑살랑 떠오르며 가슴이 아늘아늘해진다. 노랫가락을 따라 흥얼거리다 인터넷에서 노래를 찾아
들었다. ‘KBS 전속합창단 출신 가수’라는 자막을 달고, 소녀에서 이제 갓 처녀가 된 듯 앳된 모
습으로 박재란이 노래하는 흑백 동영상이다. 얼마나 고운 모습, 고운 목소리, 고운 노래인지! 가
수나 반주하는 악단이나 너무도 진지하게, 행복해하며 연주에 빠져 있다. 저이들 모두 젊으나
젊은 저 시절을 아득히 지나가고, 봄을 맞아 아늘아늘한 처녀 총각의 마음, 춘심(春心)을 노래한
시는 남아 있다. 시인의 고향 풍경이 담겼을, 쉽고 고운 이 시를 노래로 만든 ‘산 너머 남촌에는’
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온 ‘국민가요’다.
장편 서사시 ‘국경의 밤’으로 유명한 납북시인 김동환 선생의 호는 파인(巴人)이다. 파인은 중국
파(巴) 지방 사람이란 뜻으로 ‘촌뜨기’를 빗대어 이르는 말이란다. 고향과 흙의 마음으로 노래하
며 살련다는 순수하고 우직한 다짐이 세련되게 담겨 있다. 파인은 다들 어려웠던 시절, 서민들
의 정서를 화사하게 북돋던 노래로 불린 시를 여럿 지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
께 따가주’(‘봄이 오면’)도 파인의 시다.
-황인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