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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문단사
* 3월 - 정선군 벽탄국민학교 근무
*1982년 5월 어린이새농민에 .산골아이‘ 발표
○산골아이
산에서 하루 해
다 보내고
들에서 하루 해
다 보내고
풋나물 냄새가 나는
산골아이는
소를 닮아
미움을 모르고 산다.
그래서
산골아이와 같이 있으면
흙처럼 훈훈한
정이 감긴다.
(1982. 5 어린이새농민)
밤 한톨
남진원
영희가 내게 준
밤 한톨
만져본다
껍질마다 매끌매끌
흐르는 윤기
그걸 들여다 보면
호수처럼 맑은
네 눈빛
아롱아롱 떠오르고
손톱에 꽃물 들인
노을처럼 고운 손
생각이 나서
창가에 기대
자구만
만져보다
내 가슴에
따뜻하게 고이는
밤 한톨
( 1982. 어린이강원 )
* 1982년 강릉예총 창간호에 시조 ‘사랑법’ 발표
○사랑법
만삭의 달덩이가 대숲에 내리던 날
금화를 줍고 있는 여인의 치마폭에
바람은 하이얗게 절인 봄날들을 풀어놓고
별빛 만개한 밤 세상이 다 출렁이는
그대 고운 썰물 소리
흗를리는 마음 한잎
꽃망울 부픈 하늘 속 당신 귀도 붉어라.
* 1982년 5월 아동문예에 이달의 특선시 발표
□이달의 어린이를 위한 남진원 선생
*특선시: 꽃바람 풀바람. 산골아이. 겨울 창가에서. 내 맘에 닿아. 저녁상.고향 그 옛강. 여름밤. 고향 산. 고향집. 아가의 잠 속에. 어머니가 장만한 우리 집 아침
○나와 아동문학
나는 순진하고 천진하게 놀고 있는 어린이들을 대하면 부처님의 현신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든다.
지고지순한 선의 경지야말로 우리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목표가 아닐까, 나는 동심 속에서 재미있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 아동문학을 하는지 모르겠다.
○나의 작품 소재
내 작품은 도시보다도 농촌, 그것도 자연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담긴 벽지의 들, 산, 강, 나무 이런 것을 즐겨 작품 소재로 한다. 그런 곳에서 흙냄새 물씬 나는 어머니의 품 같은 것을 느끼기 때문일까....
○내가 좋아하는 어린이
요즘 어린이들은 너무 되바라지고 약삭빠르다. 그래서인지 나는 역시 어른도 아이도 순수한 사람을 좋아한다.
○시를 쓰는 마음
지금껏 나는 왜 시를 쓰는가라는 물음을 내 자신에 대해 가끔씩 가져봤지만 별 뾰족한 대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저 내가 사랑하고, 내 자신이 쓰는 것을 좋아하고 쓰지 않으면 안 될 신들린 것 같은 마음 때문에 나는 지금껏 시를 생각하고 시를 쓰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기 16편의 작품은 내가 고향에 오기 전과 고향에 돌아와서 쓴 고향이야기이다. 고향은 항상 어머니 같이 나를 반겨준다. 그러나 나는 너무 커서 유년의 내 고향은 고향에 돌아와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항상 내 마음 속에선 어린 날의 고향이 살고 어릴 때 지저귀던 새들이 오늘도 내 귓가에서 지저귀는 것을 듣고 있다.
* 1982년 6월 23일 농민신문 수필 발표
나머지 공부를 시키며
시골에 가면 애들의 생일떡을 이웃과 나누어먹는 풍습이 아직도 있다. 요즘은 뭐든지 손에 돈을 쥐지 않으면 행세 못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네 농촌엔 인정이란 것이 옹달샘 물처럼 흘러나와 이웃의 어렵고 힘든 일을 보면 내일처럼 발벗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내가 아직껏 시골 학교를 벗어나지 않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런 농촌의 훈훈한 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농촌 아이들의 고운 마음 때문이다.
“ 선생님, 이것 좀…”
“ 그게 뭐지? ”
“ 나물입니다.”
부끄러워하며 내미는 아이들의 귀중한 나물 선물을 받아들면 소중한 마음이 고마워 절로 마음이 저릿해 온다.
그러나 농촌 학교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마음이 안타까운 것은 도시 어린이와 농촌 어린이의 커다란 학력 차이이다. 책을 잘 읽지 못하는 어린이와 구구법을 외지 못하는 어린이가 태반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공부가 다 끝난 후 교실에서 책을 잘 읽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나머지 공부를 시키고 있었다.
“ 이윤유 나와서 읽어 보자. ”
나는 얼마 동안 애들에게 읽기 연습을 시킨 후 앞줄에 앉은 차례대로 아이들을 불렀다. 그런데 이 녀석 읽는 것이 통 시원치가 않다. 국민학교 음악책에 ‘잎새 뒤에 숨어 숨어 익는 산딸기 란 노래도 있지만 역시 산골 아이들은 산딸기를 닮아 부끄러움을 잘 타는 모양이다.
“ 조금 더 크게! ”
그래도 녀석은 끊어질듯 이어질듯 아니 도저히 애처로울 지경이다.
“ 이 봐, 선생님 보라구… ”
나는 일부러 배에다 힘을 주고 연극 대사를 외듯 큰 소리로 시범을 보였다.
“ 다시 해 봐, 아니 조금 더 크게? ”
역시 녀석도 안간힘을 쓰는 모양이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더 크게 되지 않았다.
“ 배에다 힘을 더 넣고, 그렇지 조금 더 크게.”
나는 얼마정도의 진땀을 뺀 뒤에야 녀석의 목소리를 조금 높게 할 수가 있었다. 그래도 아직 멀었다.
녀석을 오르간 앞에 세워놓고 발성 연습을 시켰다.
“ 아! 하고 큰 소리로 시이작!”
나는 오르간 ‘솔’의 건반을 눌렀다. 그러면서 나도 “ 아, 아, 아 ”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골마루를 지나가던 아이들이 몰려들어 무슨 구경거리가 난 듯 얼굴을 들이밀고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러자 녀석은 더 못하겠다는 듯이 눈에 눈물이 그렁하였다.
문득 어린 날 내가 시골 국민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 앞에서 엄하게 공부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땐 아버지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꾸지람을 들으면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앉아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더욱 역정을 내셨고 나는 울음을 안으로 삼키며 아버지가 시키시는 대로 따라 하여야 했다.
“ 자, 그 다음. 또 그 다음.”
다음 차례가 된 녀석들은 내가 애쓰는 것이 미안했던지 대부분 큰 소리로 읽어나갔다.
이젠 맨 마지막 기영이만 남았다. 기영이는 우리 반 중에서 가장 성적이 낮은 아이들 중의 하나였다.
“ 기영이, 읽어 볼까?”
더듬거리며 기영이가 책을 읽어나간다. 3월초 6학년에 올라와서 책 읽기를 시켰을 때 전혀 읽을 엄두조차 못 내던 아이가 이젠 제법 책을 읽으니 대견스럽다.
이러는 동안 어떤 아이는 꿀밤도 먹고 어떤 아이는 꾸지람도 듣고 어떤 아이는 매도 맞는다. 더러는 칭찬을 들어 싱글벙글거리는 녀석도 있다. 이렇게 한바탕 다그치고 나면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든다.
사실 도시의 아이들에게 비하면 시골 아이들은 불쌍하다. 아직까지도 책가방이 없어 보자기에 책을 싸가지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아이들이 저 나름대로 인사를 하고 교실을 빠져 나간다. 저 아이들이 커서 이 다음 어떤 모습을 나와 또 만날 수 있을까? " 선생님? “ 하고 부르면 난 뭐라 대답할까? 농부가 씨를 뿌리고 땀 흘려 가꾸고 그리고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듯이 내가 뿌린 씨앗은 과연 얼마나 거둘 수 있을까?
문득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정말 농촌은 좋은 곳이다. 따뜻한 인정이 살고 개구리가 살고 그런 아이들이 살아서…. 내일은 좀더 애들에게 좋은 시골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1982. 6.23 농민신문)
이 무렵 아름다운 절세의 여인, 운명적 미인을 만났다.
* 1982년 여름 물레문학에 시 발표
- 사미인곡
* 서시
개여울에 달빛이 넘쳐흐르면
달빛처럼 내 마음도 떠내려간다.
가다가가다가
외로워지면
풀섶 여린 나알간 이슬이 되어
호젓한 청산을 품어 안고서
사랑의 노래로
지새우다가
그리움에 부서지는
찬란한 아침이 되리
당신의 아침이 되리.
1.어항을 놓으리
꽃나무 가지 사이
달이 비치면
내 뜰은
촉촉이
실비 같은 그리움
우주가
온통
잠이 든 밤
별빛 영롱한
잎새들의 흐느낌 소리
깊어갈 때
그대,
백옥의 인어가 되어
갈색 물빛 속을 헤엄쳐라
그러면 난,
아, 그대 사쁜이 건져올릴
사랑의 어항을 놓으리
그리운 이여.
(1982.5.5)
2.귀여운 새야
파르륵
날아갈 듯한 새야
날아가면
다시는
돌
아
오
지
못
할
새야
너무 예뻐서
너무 사랑스러워서
오,
너를 나의 새장에 가두어둘 수 없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귀여운 새야.
네가 날아가면
살아있던
내 모든 의미는 부서지고
내 가슴에 남는
그걸, 어찌할 건가
어찌할 건가.
3.그대 꿈 속을
달빛 아래
고운
뺨
바람에 흔들리는
검은
머리칼
가장 예쁜 것으로
채워진 두 눈
그런 그대 모습
그리며
뜰을 거닐면
그리워라…
새록새록 잠이 든
그대 꿈 속을
오늘 밤
가만히 찾아가고 싶다.
4.그대 뿐이네
세상에 아름다운
꽃도 많지만
세상엔 아름다운
별도 많지만
그 보다
더욱
아름다운 것은
귀엽고 사랑스런
그대 뿐이네
그대 뿐이네.
5.사랑이란 슬픔의 미학인가!
여름날의 태양도
내 마음처럼
이리 뜨겁지 못하리
뻐꾸기 우는
적막 속에
산을 태우고 들을 태워도
모자랄 이 뜨거움은
그리움은
한 떨기 난처럼
싱그럽고
아름다운 그대를 위해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단 말인가.
사랑한다는 말조차
그대 가슴에
전할 수 없는
감추어야 하는
아아 사랑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도 없지만
사랑하는 것처럼
괴로운 것도 없네.
시간은 흘러만 가고
나도 자꾸 나이들면
내 사랑은
피었다 지는 꽃처럼
물들다 지는 노을처럼
그렇게 스러지고
말 것인가
스러지고 말 것인가
6.우리는 서로
너와 나
너무
멀리 있지만
언젠가
너에게 하고 싶은
소중한 내 말 한마디
어느 날 훨 훨
민들레 꽃씨처럼 날아 갈
꿈을 꾸며
뜨거움은
송이송이
붉은 꽃으로 피우고
그대여
햇살 가득한 아침 숲속에서
투명한 그리움으로
그대 향해 드리운 내 가지의 한쪽을
잡아다오
정녕
마음으로만
마음으로만
우리는 서로 오래도록
사랑을 안고 선
나무들인가.
7.너무도 멀리 있는 그대를
내 마음 속에 찬 것이 모두 거짓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
내 그대 향한 마음
진실이라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은
그대에 비하면
시든 여름날의 풀잎
아, 그러나 너는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너무나 아름답게 반짝이면서
너무도 멀리 있구나
내 모든 것
다 주어도 부족할 뿐인
사랑하는 사람아
사랑하는 사람아.
8.별
밤마다 호수 위에
맑게 뜨는 별빛들은
님에게 보내고픈
내 사랑의 보석입니다.
그리움 하얀 실로
마디마디 정을 꿰어
임 고운 목에 걸어드릴
내 사랑의 보석입니다.
9.내 그대 나무가 되고 싶어
내 그대
나무가 되고 싶어
비바람 몰아칠 땐
그대 약한 곳 아픈 곳
막아주고
내 그대 나무가 되고 싶어
한여름 더울 땐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고
잎 피는 가지마다
파아랗게 그리움을 새긴
피어선 꽃잎마다 주렁주렁
사랑을 새긴
내 그대
한그루 나무가 되고 싶어
어쩔거나, 질 때는
송두리 내 몸은 불길이 되어
그대 앞길에 등불이 되는 등불이 되는
내 그대 나무가 되고 싶어.
10. 그대 한 떨기 꽃잎 이라면
그대 한 떨기
청초한 꽃잎이라면
나는 바위처럼
나는 바위처럼
그래요, 임 곁에 억년을
둥근 해로 살겁니다.
* 12월에는 첫 시집 『싸리울』(동시집, 아동문예사) 발행
남진원 동시집 - 싸리울
□남진원 동시 전집
♣[싸리울] 동시집 서문 (1982년 12월 10일)
* 이 책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우수문학 창작집 발간비 50만원을 지원 받았다. 김원석 선생과 여름에 강릉 바닷가에서 함께 지냈다. 그때 내가 지원 받은 것을 알고 50만원에 시집 발간을 해 주셨다. 정말 감사한 분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은혜를 입었는데 변변히 고압다는 인사도 못 드렸다.
문단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마음의 큰 빚을 지고 있다.
순수한 서정시
박 화 목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교직 생활로 호젓이 살아오는 젊은 시인 한 사람이 있다.
그가 틈틈이 써 모은, 풀잎 같은 혹은 풀잎에 구르는 아침 이슬 같은 시들을 한데 엮어 한권의 시집을 펴 내놓는다고 한다.
내가 그를 일찍이 알고, 그의 시를 일찍이 읽은 연유로해서, 이 시집의 머리말을 쓰게 되니까, 여간 기쁘지 않다.
시는 고도의 언어 예술이라지만, 역시 느낌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를 쓰는 사람의 품성이 얼마큼은 반영되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시 작품을 보아, 그 시인의 사람됨이며 품격같은 것을 엿볼 수 있다는 말이다.
현실이라든가 물질이라든가의 오염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남진원 시인이다 할 만큼, 그는 정말 순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래서 그의 마음 속에 비쳐진 그림을 통해 씌어지는 시 한편 한편이 서정에 흠뻑 젖을 수 있는 것 같다.
시의 하나라도 버릴데가 없다. 그의 시를 읽으면, 향긋한 풀냄새를 한껏 맡으며 조용한 산속길을 걸어가는 기분이 든다.
그러한 시를 쓰고 싶어서, 아니 그의 성품이 산골 아니면 못 살 것 같아서 그는 즐겨 산 속에서 집거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혼자 꾸준히 고운 시를 써내는지 모른다.
아무튼 이번에 상재(上梓)되는 그의 시집에서, 오랜만에 순한 서정성에 흠취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큰 소득이 아닌가 싶다.
그의 시 작품에서 찾아보는, 시에 있어서의 순수한 서정성은, 어쩌면 오늘 현대시의 어려운 과제를 풀어주는 해결의 실마리가 아닌가도 생각된다.
남진원 시집 <싸리울>의 탄생을 정말정말 축하해 마지 않는다.
1982년 9월
(시인· 한국아동문학회 부회장)
[시집:싸리울]
¶봄이 온대요
•늦겨울 아침
•봄이 온대요
•3월
•들판에 서면
•개나리
•4월
•해
¶산목련
•봄비1
•봄비2
•김매기
•봄뜰엔
•산목련
•어부
•봄을 그리는 도화지
*늦겨울 아침
햇살이
눈을 밟고
달려오는 이 아침
지붕엔
토옥 토독
겨울이 헐리는데
볕 묻은
흙담 밑에서
봄은 자리 트는가
*봄이 온대요
얼음장 밑에서
돌돌돌
옥 굴리며 온대요
버들가지 위에
살짝 앉아
눈비비고 온대요
민들레 꽃잎 타고
방글방글 웃다가
솜털 보시시한
병아리 손 잡고 온대요
노오란 참새 부리로
종알종알 지껄이며
살구나무 가지마다
등불켜며 온대요.
산모롱이 양지쪽에서
아물아물 눈짓하며
나비의 나래 잡고
팔랑팔랑 손짓하며
내 마음 돌돌 말아
봄이 온대요.
*3월
아직은
봄이라지만
구름 같은 날이다
엷은
햇살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길 위론
추운 노래가
또 한차례 지난다.
*들판에 서면
새들이 지저귀는
저 소리는
포름한 연두색이다.
땅에선
물컹 솟아나는
흙냄새
나무는
가지마다
분홍꿈을 꾸고
고개 들면
어디선가
꽃내음으로 다가오는
봄 오는
봄 오는 소리.
*개나리
울타리 휘어지게
별이 총총 열렸다.
연분홍 �鍮帽殆�
나부끼는 순금의 별
마음도 노랗게 익어
마구 걷고 싶은 날
*4월
양지쪽
토담가엔
새소리도 잠이 들고
먼 산엔
아지랑이
눈이 아린 아지랑이
바람결 고운 꽃잎인냥
나비 떼도 불어라.
*해
나무에 새움 트고
온 산에 윤기가 돌 듯
햇살도 봄이 되면
알알이 매끄러워
지붕 끝 무더기무더기
낙숫물로 떨어진다.
¶산목련
•봄비1
•봄비2
•김매기
•봄뜰엔
•산목련
•어부
•봄을 그리는 도화지
*봄비.1
온 들판 새록새록
연초록 눈을 뜬다
꿈꾸는 나뭇가지
상긋한 햇순 냄새
그 누가 비를 맞으며
꽃등을 켜고 있나.
*봄비.2
온통 부산스레
바람 떼를 열어놓고
숲속, 갈피
갈피
빗소리도 걸어 놓고
백금 빛 투명한 못을
종일 박으며
술렁인다.
싯푸른 물소리로
봄비 흘러
가는 밤은
한 줄기, 나도
봄비
잎새 푸른 물이 배고
질펀한 산도랑 따라
마구 팔려 가는 봄.
*김매기
초록
물 바람이
흘러가는
이랑이랑
뿌려 논 거름 속에
묻힌 봄 뒤적이며
볕 조각
담는 할머니
봄을 송송 맵니다.
*봄 뜰엔
순희는
바둑이 데리고
냇가로 달려가고
어미 닭
병아리 데리고
울 밑으로 모두 나간
봄 뜰엔
발자국 만이
햇살 덮고 잠들었네.
*산목련
한나절
아릿아릿
졸음 겨운 하늘 아래
맴돌다
흰 구름만
흰구름만 흠뻑 배인
한그루
순백의 붕대
그리움을 엽니다.
*어부
출렁여
푸른 물결
뱃노래로 띄워 놓고
남실남실 뱃고동 소리
떠가는 듯 아련한 바다
유채꽃
아롱진 남도의
봄을 푸는 어부여
*봄을 그리는 도화지
옷에 묻은 봄빛들을
죄다 담아 넣고
아이는 눈 속에서
번져나는 꽃 내음을
노랗게 물든 언덕에
마구 이겨 바른다.
새소리 바람소리
붓 끝에 묻히더니
팔랑팔랑 숨소리
가지마다 달아매고
도화지 환한 빛속으로
봄이 되어 들어간다.
¶나비
•나비1
•나비2
•나비3
•봄날
•소풍길
•풍경
*나비 1
꽃망울 가득한
꽃밭에
나비 한 마리 날아와
재깍
재깍
돌아가는
숨소리 들어보고
아직
멀었나
살그머니
오늘도
돌아갑니다.
*나비 2
빨간 붕대를
풀고 있는
꽃더미 위에
아지랑이
아롱아롱 짜놓은
햇살 그물
그물에 걸려
파닥이는
노랑 나비
한 마리
*나비 3
살며시
날아오른다.
연두색
바람이 일렁이고
바람
속에
하늘
하늘
떠
다니는
하얀 꽃
노란 꽃
*봄 날
냉이 캐는 아이들
호미 끝에서
초록빛 숨소리가
파랗게 터져나오고
아지랑이
자욱히
산과 들을 맴돌면
나비 등을 타고
쏟아져내리는
분홍 빛 자락
민들레 웃음소리
들판 가득히 지저귀고
종달새 노래 소리
노오랗게 익어가는데
병아리 한 떼가
양지쪽에서
봄을 데리고 놉니다.
*소풍길
이름 모르는 꽃들이
웃음을 물고 선
오솔길로
밤새도록 엮어내던
무지개 꿈을
한 짐 씩 지고 가는 아이들
일렁이는 노래 소리
메아리로 번져
꽃사슴도 숨어
엿듣다 가고
풀잎에 기대 앉아
고개짓하는 바람
돌돌돌 개울물이
구름을 잡아타고
둥둥
구름 속에
함빡 젖은 소풍길이
거꾸로 달린다.
*풍경
처마 밑엔
한나절
햇살이 졸고
산마루엔
한나절
구름이 졸고
그 사이로
뻐꾹
뻐꾸욱
봄날 한나절이
조올다 깼다 한다.
¶싸리울
•싸리울
•저녁 강가
•시골집
•여름밤은 달빛 그물에 걸려
•소
*싸리울
할머니
손등처럼
거끌하지만
다가서면
물씬 풍기는
흙냄새
아랫집 윗집
눅눅한 인정
싸리울 구멍으로 나누어주고
속 마음까지
훤히
내놓고 산다.
*저녁 강가
조용한
강가엔
노을이
지고
보일 듯
말 듯
아련한
강둑
그
위에
혼자
흔들리고 선
송아지
울음
*시골집
싸리울
포근히
감싸고 있다.
봄, 여름
싱그러운
바람이 살고
새들이
천지스레 노래하는
내 고향
시골집
모두
한 식구 되어
살아간다.
*고향집
이맘 때면
내 고향
여름 집
풀 냄새
짙은
모깃불 피고
멍석 위에
풍성하게
쏟아지는 별빛
아늑하게
흐르는
바람
모두가
참으로
평화로워
이맘 때면
내 고향
여름 집
나는
지붕 위
하얀 박꽃이 된다.
*여름밤은 달빛 그물에 걸려
달님이
한 밤에
그물을 친다.
맨 먼저
풀벌레 소리가
자욱하게 걸려 올라온다.
개똥벌레도 걸렸다.
어느새 대숲을 돌아 흐르던
물소리도 치렁하게 걸리고
은비늘
하얗게
날아 내리는 밤
온통
달빛으로 잔
그물에 걸려
출렁이는
출렁이는 여름밤.
*소
미워할 줄
모른다.
소는
화내는 법을
모른다.
묵묵히 일하다
푸줏간에서
죽어갈 때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다.
아, 눈이 큰 황소.
¶시골길
•시골길
•산골버스
•조약돌
•저녁 마을
•풀벌레
•여름밤
*시골길
아무도 없이
혼자 걸어도
걸어도 걸어도
싫지 않아요.
높다란 가지 끝엔
구름이 동동
잎새 뒤엔 누가 숨어
나를 부르나
산새 들새 지저귀며
반겨주는 길
아무도 아무도
없이 걸어도
종일을 걸어도
싫지 않아요.
*산골버스
산과 버스가
숨바꼭질 한다
굽이굽이
숨었다 나타나고
나타났다 숨고
또 찾았다
또 숨었다.
종일
산과 버스가
숨바꼭질 한다.
*조약돌
바람으로
구름으로
말끔이
닦고 닦는
새 하얀
얼굴
티끌도
부끄러워라
앉으려다
그냥 간다.
*저녁마을
노을이
밀려드는
저녁
마을은
노을이
고와서
너무
고와서
노을이
마을처럼
흐르는
마을
마을이
노을처럼
흐르는
마을.
풀벌레
그건
누나의 간지러운
웃음소리다.
어디엔지
숨어버린
내 작은 귀다.
여름밤
다정하게 속삭이는
음표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채로
은은하게 은은하게 익어가다
아침이면
이슬 방울 속에
올올이 들어찰
예쁜
예쁜
산열매다.
*여름밤
할머니 이야기
아가 귀에
풀어놓는 밤
아가는
하나 둘 별을
손가락에 걸으며
이야길 듣는다.
눈꺼풀 사르르
꿈나라 찾아
벌써
꼬옥 쥔 손바닥
할머니 이야기가
한 웅큼
별이
한 웅큼
¶작은 소망
•작은 소망
•해야 해야
•여름 저녁
•함지
•참새 소리
*작은 소망
산꿩이 한나절
심심해서 울어대는
순아! 난 고향에서
농사지며 살으련다.
새소리 귀 맑아지는
흙이 되어 살으련다.
숭늉내음 물씬 물씬
아무데나 정이 솟고
뻐꾸기 꽃인 냥 피는
풀빛 마을 내 고향
그 속에 나도 한 마리
뻐꾸기로 살으련다.
*해야 해야
마을이 서서히
아침의 문을 열면
간 밤의 예븐 꿈도
닦아낼 듯 반짝이는
숲 너머 고개 내밀며
활짝 웃는 해야 해야.
*여름 저녁
풋 고추 상치 쌈에
피곤을 털어 넣고
이 얘기 저 얘기로
꽃 피우는 저녁 상
하늘엔 싱싱한 별꽃
다투어서 피어난다.
장맛으로 익어가는
초여름 저녁 한 때
산나물 배인 옷깃
이야기로 살쪄 가고
멍석엔 개구리 울음
질펀하게 젖었다.
*함지
멀리서 멀리서 보면
숲속은 작은 함지
가만히 함지 위에
파란 보자 씌워지고
함지 속 오골오골 끓는
팥죽 같은 새소리 Ep
올망졸망 푸른 산도
내려앉은 함지 속
졸졸졸 시냇물도
노래처럼 흘러가고
귀연 채 어여쁜 황새
꽃이 되어 서 있네.
오솔길엔 쪼르르르
다람쥐도 꺼내놓고
돌담가 흐드러지게
꽂아놓은 찔레꽃
그리운 봄바람 한 떼
넝쿨처럼 엉켰네.
밤이면 작은 별들
동전 같은 달이 뜨고
단잠 든 아기새
고요만 깊어갈 때
그윽한 물소리들만
함지 가득 채운다.
*참새소리
손바닥
마주 잡고
눌러
대면
쪼록
쪼록
새어
나올듯한
이 새벽
하늘 속에서
눌러대는
소리 소리.
¶꽃바람 풀바람
•숲속에 서면
•꽃바람 풀바람
•호주머니
•휴지통
•여름 숲속 아침
•해당화
•학교 가는 아침
*숲속에 서면
숲속에 서면
누군가의 생각들이
질 고운 바람소리로 모여들고
쉬임없이 오고 가는
저 귀여운 속삭임
바로 그건
숲의 설레이는 마음이래요.
봐요
나무는 나무끼리 손을 붙들고
풀잎은 풀잎끼리 손을 붙들고
너무나 너무나 아름답게
새들을 날려 보내는
나무들의 모습을
풀잎 들의 모습을
포롱포롱 포르르릉
하늘로 하늘로
아침 햇살인냥
마냥 번져가는
싯푸른 저 새소리 떼
오, 그건
푸른 새들의 소원
하늘 가득히 쌓이는
새의 마음이래요.
나도 여기 숲속에 서면
오, 그래요.
한 마리 새처럼
한그루 나무처럼
이름모를 바람의 목소리로 살고 싶어요.
정말이어요, 이 숲 속에 묻혀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꽃바람 풀바람
꽃 속에서 놀다온 바람이기에
바람은 한올 한올
고운 향기입니다.
풀숲에서 놀다 온 바람이기에
바람은 한 잎 한 잎
진초록 풀내음입니다.
그 바람이
살며시 들어온 골목길
골목길엔
꽃내음이 넘실대며
풀내음이 넘실대며
상쾌한 빛깔들이
해해거리며
하늘 속으로 하늘 속으로
날아오릅니다.
*호주머니
군밤 호도 두둑히
넣고 나오면
골목마다 우루루
몰려들지요
날 때리던 돌쇠도
손을 내밀고
날 놀리던 바우도
눈을 찡긋찡긋
석이 녀석 하고만
놀던 순희도
내 주머니 졸졸졸
따라다녀요.
*휴지통
쓰다가 버린 것들
모두 모여서
세상에 버린 것끼리
모여사는 동네
만나는 것마저
버린 것들이
버린 것끼리 만나
만남을 알고
정마저 버린 것들이
버린 것끼리 만나
정을 나누고
쓰다가 버린 것들
모두 모여서
세상에 버린 것끼리
모여 사는 동네
*여름 숲속 아침
나무에서
팥알처럼 떨어지는
새소리에
새벽이 달아난다.
하늘로 하늘로
날아 오르는
은빛 새들의
저 낭낭한 눈부심
하늘 빛 청청한 모습으로
산은
눈망울 번뜩이며 깨어나고
새들의 날갯죽지에서
쏟아지는
푸른 바람 한 떼
산 메아리
이끼로 자란 골짜기 마다
해 뜬 버드나무 잎새 들이 파닥이고
상쾌한 빛깔만 골라 담아
졸졸졸
아침을 굴리며 가는
물소리에
여름 숲속 아침
온통 비취빛 귀를 열고 서 있다.
*해당화
누구를
기다리나
바닷가에서
소라처럼
예쁘게
귀를 열고서
먼 수평선
바라보는
해당화
찰랑이는
파도 소리
종일 모으면
바람도
생각에 젖어
쓸쓸한 바닷가
모래 위엔
꽃잎이 하나, 둘
나뒹군다.
*학교 가는 아침
사랑스런 것은
모두 모아
내 책가방에 싸 주시고
기쁨은 모두 모아
내 도시락에
넣어주시고
그래도 어머니는
허전하신가 봐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밖에서 지켜보십니다.
¶가을밤
•코스모스
•고요한 밤
•바느질
•추석이면 고향엘
•가을 산촌
•가을 밤
*코스모스
걸어가다
뒤돌아보고
걸어가다
뒤돌아보고
그래도
무엇인지
잃어버린 듯한
늦가을
아쉬움인 듯
아쉬움인 듯
코스모스가
지고 있다.
*고요한 밤
달님이 새근새근
잠이 드는 밤
가만가만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그 고운 귀뚜라미
노래 들으며
모두가 꿈을 꾼다
고요한 한 밤
별님이 새록새록
잠이 드는 밤
가만가만 들려오는
산시내 소리
그 고운 산시내
노래 들으며
모두가 꿈을 꾼다
고요한 한 밤.
*바느질
이불을 당겨
잠든 아기 꿈을
돋우어 놓고
한 올 한 올
아기의 헤진 옷을
깁는 어머니
닳아서 구멍이 뚫린
무릎을 보고
어머닌
아기 크는 소리를 듣습니다.
고요한
밤은
숨결처럼 녹아가고
한 뜸 한 뜸
바늘구멍에 매달리는
아기의 웃음을 깁으며
어머니 마음은
어둔 밤
파란 불씨로 피어납니다.
*추석이면 고향에
추석이면 고향에 간다.
마음 속에서나 그리던 고향에 간다.
울퉁불퉁 험한 산길이지만
시골버스를 타고 가노라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
한 폭의 그림처럼 벼가 익어가고
골짜기를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들
내 귀가 젖는다. 퍼렇게
순희, 영희, 다 잘 있을까
소꿉친구들 지금은 무얼할까
tm 옛날 그 집들은
지금도 그렇게
저녁 연기를 날리고 있겠지
숲속에선 새들의 노랫소리 듣고
나무들의 키가 부쩍 자랐겠지
생각만 해도
그리운 고향 아
들여다보면
파란 하늘
가을이 익어가는 냇가에
서리 물든 오후의 햇살이
한두름 씩 던져지고
오순도순 모인 아주머니들
통째로 뽑은 무우 통을
여린 물살에 헹구는 고향은
지금 쯤
하얗게 씻은 빨래를 들고
가을 하늘에 더욱 푸른
우리 어머니의 손, 손이
분주히 집 안팍을 돌아보고 계실
고향엘 간다.
고향엘 간다.
마음 속에서나 그리던
고향엘 간다.
*가을 산촌
바람들이
갈대밭에서
웅성거리며 나온다.
무우 인 아주머니의
종종 걸음이
산그늘 속에 저물면
목이 긴 오후의 햇살이
가을을 곱게 물들이는
산촌 마을
빨간
홍시가
떨어지고 있다.
*가을 밤
단풍 밴 뜰 안에
어슴푸레 누운 가을
한 장 고운 바람결도
댓돌 위에 스러지고
뉘 집 창 달빛 어리듯
귀뚜리도 저물어
*풀벌레 울음
누군가 저 먼 나라
쓸쓸히 떠나간다
어둔 밤 꽃잎처럼
달빛에 익는 노래
혼자서 가을을 지고
혼자서
저 혼자서.
- 정열의 시인 그 영원한 고향을 찾아 -
전태규(시인)
1.
사랑하는 사람은 정열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사랑한다는 것은 인생, 그 삶을 사랑하는 것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사물까지를 온 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리라.
아동문학은 사랑의 문학이라 생각한다. 사랑이란 받는 것 없이 무한히 베풀어주는 것이며 아무 조건 없이 봉사하는 마음이다.
「 나는 순진하고 천진하게 놀고 있는 어린이들을 대하면 부처님의 현신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든다.」
이 말은 남진원의 어린이 사랑이다. 그가 사랑하는 어린이는 도시 어린이보다 외진 구석에서 불우하게 자라고 있는 벽지 어린이들이다. 강원도 정선, 그야말로 산간벽지에서 별로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교편을 잡으면서 그의 젊음을 불태우고 있다. 그를 가리켜 ‘정열의 시인’ 이라고 한 것도 남들이 가질 수 없는 용기와 신념, 작품을 위해 피나는 탐색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며 저절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스승이자, 거룩한 이 땅의 어린이들과의 동반자요 만나면 헤어질 줄 모르는 정열의 시인이다.
2.
현대인은 거의 고향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설혹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에 애틋한 연민의 정을 가졌다고 해도 현대의 거대한 물질문명 앞에서 한낱 작위적인 몸부림에 불과하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고향에 대한 원초적인 개념, 그것은 자연의 순수로부터 출발되어져야 할 것이다. 자연의 순수성이란 것은 시각적, 공간성을 통한 영원한 고향일 수가 있다. 자연에 묻혀 산다고 해서, 자연의 순수를 발견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연을 인간 내면으로 끌어올려 재발견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자연은 인간 활동의 무대인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해 주는 빛의 광맥 같은 역할을 우리에게 해 주리라.
이러한 고향에 대한 원초적인 의식의 세계를 형성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고향 가장 성실한 고향을 소유하고 있는 남진원 시인은 그의 마음 속에 간직한 고향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 새들이 천진스레 노래하는 // 내 고향 / 시골집 // 모두 / 한 식구되어 // 살아간다.
- 시골집에서 -
… 풀냄새 / 짙은 / 모깃불 피고 // 멍석위에 / 풍성하게 / 쏟아지는 별빛 // 아늑하게 / 흐르는 / 바람 // 모두가 / 참으로 / 평화로워 // 이맘 때면 / 내 고향 / 여름 집 // 나는/ 지붕 위 / 하얀 박꽃이 된다.
- 고향집에서 -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그가 지니고 있는 언어에 대한 감각이라든가, 시의 구조적 형태에 앞서 그가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마음속의 고향을 우리는 높이 살만하다. 한국의 인정이 모여 살고 모깃불 피워놓은 시골집 초가지붕 위에 하얗게 피는 박꽃, 이러한 것들은 세월이 변한다 해도 변할 수 없는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의 의식세계가 아니겠는가!
정열의 시인 남진원! 그의 영원한 고향을 찾아서 떠나는 첫 시집 「싸리울」을 통해 그의 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우리는 기쁘게 생각하면서 끊임없는 시에 대한 도전과 함께 삶의 피나는 울림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포근한 신호탄이 될 싸리울 -
최도규(아동문학가. 시조 시인)
국화 향기 그윽한 이 가을에 우리 강원도에서 날로 메말라가는 사회에 포근한 신호탄이 될 남진원의 첫 시집 「싸리울」이 탄생한다는 데 대해 진심으로 축하해 마지 않는다.
‘남진원’ 하면 ‘최도규’
‘최도규’ 하면 ‘남진원’
이렇게 이름이 붙어 다닌지 어언 8년이나 된다. 교육자료 동시 추천에서부터 시작하여 ‘새교실’. ‘기독교 교육’, ‘아동문예’,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 까지 우리는 앞차 뒤차처럼 나란히, 사이좋게 추천의 관문을 통과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무슨 여름 세미나에 참석해도 꼭 날 보고 사람들이 남진원의 안부를 묻고 또 남시인이 가면 내 안부를 묻는단다. 이렇게 우리는 성이 달라도 친 형제처럼 글동무를 해오고 있다. 잡지사에서도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내 글 바로 뒤엔 꼭 남진원의 작품이 실려있다. 그래서 웃으게 반 농담 반으로 남진원이 첫 시집을 낸 후엔 우리 둘이 시집 제목을 「앞차 뒤차」로 해서 하나 묶어내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남진원의 시작활동을 옆에서 지켜보아 왔고 끈질긴 인내심을 알고 있다.
한 편의 시를 빚기 위해 수 많은 밤을 설치며 쓰고 지우고 또 스며 뼈를 깎는 듯한 각고와 노력으로 삽시간에 문단의 화제가 되어 왔으며 강원도 하면 ‘남진원’ 할 정도롤 그의 작품 세계는 무르익어왔다.
할머니 / 손등처럼 / 거끌하지만 // 다가서면 / 물씬 풍기는 / 흙냄새 // 아랫집 윗집 / 눅눅한 인정 / 싸리울 구멍으로 나누어주고 // 속 마음까지 / 훤히 / 내놓고 산다.
- 싸리울 전문 -
이 얼마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훈훈한 얘기인가? 각박한 생활 속에서 남진원은 싸리울을 통해 현대의 삶을 역설적으로 구원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속마음까지 훤히 내놓고 사는 고향이 그립지 않은가!
남진원은 여기사 그치지 않고 있다. 그의 고향을 통한 프리즘에 투사된 눈은 「휴지통」에 와서 더욱 날카롭고도 예리한 칼 끝으로 사회의 외진 곳에서 어둡게 사는 사람들의 사랑을 들어올리고 있다.
쓰다가 버린 것들
모두 모여서
세상에 버린 것 끼리
모여 사는 동네
만나는 것 마저
버린 것들이
버린 것 끼리 만나
만남을 알고
정마저 버린 것들이
버린 것 끼리 만나
정을 나누고
쓰다가 버린 것들
모두 모여서
세상에 버린 것 끼리
모여 사는 동네
- 휴지통 전문 -
정과 사랑과 고향을 그리며 살아가는 향토시인 남진원이 이제 첫 시집을 내놓음으로써 더 힘찬 전진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동문학에 혼신을 다 쏟으면서도 시조문학 월간문학에 시조 당선으로 문학적인 역량을 보여준 패기 넘치는 그와 함께 공부하고 선의의 경쟁으로 문학의 꿈을 키우는 문우로써 첫 시집의 말미를 어지럽히게 됨을 쑥스럽게 생각하며 그의 앞날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남진원 동시집 싸리울
1982년 12월 5일 인쇄
1982년 12월 10일 발행
지은이: 남진원
펴낸이: 박종현
발행소: 아동문예사
광주시 지산동 194-6
등록 1977년 6월 23일 (마 No. 36호)
서울 사무소. 종로구 인사동 16-2
값 1800원
* 이 책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우수문학 창작집 발간비 지원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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