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 6 - 고루에서 2정거장을 걸어서 씬지에커우에 도착해 밤거리 야경을 구경하다.
10월 27일 지하철을 타고 난징역 에 내려서 10분을 걸어서 8번 버스를 바꾸어 타고는
옌쯔지 燕子矶(연자기) 에 도착해 비스듬히 난 언덕길을 걸어 양자강변
남안 절벽에 위치한 전망대 에서 유유히 흐르는 장강인 양자강 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옌쯔지 에서 다시 8번 버스를 타고 매고교 迈皐桥 Maigaoqiao 에 내려 디테 地铁
(지철, 지하철) 1호선을 바꾸어 타고는 3정거장 구러우짠 鼓楼站(고루참) 에 내립니다.
은행이 밀집한 중산북로 대로를 걸어 지하철 2정거장인 난징의 중심 씬지에커우
新街口 (신가구) 에 도착해서는........ 루이뷔통 등 명품숍 을 구경합니다.
명품숍 루이뷔통 가게에 흰색 의 네온사인 광고판 이 눈길을 끄는데
자세히 보면 다이어등 보석 모형을 이어 붙인 것 입니다.
자꾸 움직이는게...... 전체적으로 보면 넥타이 인가 싶다가도
뱀 같기도 하고 심지어 용 인가 싶어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중국에서 "한류붐" 은 상상을 초월하는지라... 중국 정부가 수수방관 팔장만 끼고 있을라나
궁금했었는데, 예전에 김수현과 전지현 의 “별에서 온 그대” 도 중국 정부의 지침인
미신이나 불가능인 외계세계를 언급했다고 정규방송에 방영되지 못하는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상국가 우르크에 파견된 특전사 장교 송중기 와 여의사 송혜교 의 달달한 로맨스
를 그린 드라마.... “태양의 후예” 가 중국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사실 이 새삼 떠오릅니다.
스토리 보다도 남자 주인공의 비주얼 이 인상적이니 군복이며 작열하는 태양도
송중기의 빛나는 피부를 가리진 못하는데, 게다가 손발을 오글거리게 하는 대사라니...
"그때 허락 없이 키스한 거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 여자들 쓰러진다나요?
“태양의 후예” 는 중국 수출을 염두에 두고 "100% 사전 제작" 했다는데 중국이 TV 드라마
에만 적용했던 사전 심의제 를 그 몇년 전 부터 인터넷에 까지 확대 적용하는 바람에
3개월 전에 미리 끝내야 했으니 관행인 “쪽대본” 이 없어졌고 작품성도 높아 졌다고 합니다.
중국 동영상 사이트 아이치이 에서 1, 2편은 4억뷰 를 넘어섰으니 “별에서 온 그대” 의
누적 37억 뷰를 넘는건 시간문제라..... “중국 여성들이 김수현(별에서 온 그대)
이라는 마약 에서 깨어나기가 무섭게 더 강력한 마약 이 등장했다” 고 보도 했었지요?
급기야 중국 공안부가 “송중기 주의보” 를 발령했었는데.... “태양의 후예” 를 비롯해 한국
드라마 18편을 몰아 보던 여대생이 급성 녹내장 에 걸려 실명 위기 에 처했다는 것이라?
“4대악 타격” 이란 공안부 웨이보는 태양의 후예가 방영된후 수천만 소녀 팬 의 상당수가....
”송중기 상사병“ 에 걸렸다며 한국 드라마가 법률문제 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고
송중기에게 반한 아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진관을 찾은 20대 남성이
“송중기와 똑같이 찍어 달라” 고 사진사를 괴롭히다가 경찰에 신고당한 일도 있었다니....
중국을 뒤흔든 "태후" 의 마력을 “송중기 언어” 로는 “잘 만든 드라마가 중국 당국의 규제와
일본 내 혐한 감정으로 식어가는 한류에 불 을 붙여준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지요”
선입견과 편견 없이 “태양의 후예” 라는 제목 만을 생각하노라면 일본인 이 떠오르는데.....
“日本(일본)” 이란 한자 말을 풀이하면 “해(태양)의 뿌리” 이니 곧 "해뜨는 곳" 입니다.
바이칼 호수를 떠난 태양을 숭배하는 무리가 해뜨는 동쪽으로 이동해
한반도 를 지나 일본 열도 에 이르러 태평양 을 만나 더 이상 동쪽으로 갈수 없자.....
지명을 "日向" (일향, 히유가) 라고 붙였으며 후일 세토나이카이를 지나 오사카에 상륙해 야마토국
을 열고는 일왕(천황) 의 조상 아마테라스를 모신 이세 신사는 태평양 바닷가 에 세웟으니...
日本 이란 국호에다가 "국기는 붉은 태양" 을 사용하며 해군은 햇살이 뻗어나오는 욱일기 를 씁니다.
"日向" (일향, 히유가) 은 곧 남규슈 미야자키 해변 인데...... 멀지않은 곳인 기리시마
霧島(무도) 에비노고원에는 가라쿠니다케(韓國岳 한국악) 가 있고, 그 옆에
천손 니니기 가 강림했다는 구시후루 다카지호미네 高千穗峰 (고천수봉) 가 있습니다.
일본서기에 보면 규슈 구시후루 다카지호미네에 하강한 천손 니니기 가 말하기를.... “여기는
가라 가 보이는 곳이니 좋은 땅이다” 라고 말했다니 그럼 "천손은 가야인" 일까요?
김해 가야인이 왜국을 세웠다는? 중국도 왕을 天子(천자) 라고 하는 정도인데, 섬나라
일본이 자기네 왕을 "天皇(천황)" 이라 부르니 특히 기독교계는 오만방자 하다고 성토합니다.
사실 일본들이 오만방자한 것은 고구려, 백제가 중국에 칭신하며 조공하고 책봉 을 받을때
왜국은 수나라에 보낸 국서 에서 “ 해뜨는 나라의 황제 가 해지는 나라의 황제 에게
소식을 전하노니 그간 무양하신가?” 라고 적어서...... 수양제를 대노 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수양제는 다시는 왜국 사신을 받지 말라했지만 고구려와 전쟁중 이니 왜국과 척질수야 없지요?
어머니 스이코여왕 을 대신해 왜국의 섭정 을 하던 아들 쇼토쿠 태자 가 7세기 초에
5호 16국의 혼란기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에 보낸 국서 인데.... 왜국은
일찍이 서기 57년에 후한(後漢) 광무제 로 부터 왜노(倭奴) 국왕의 금인 을 받았습니다.
57년 에 중국과 멀리 떨어진 미개한 섬나라 일본의 왜노국왕 이 후한에 사신을 보냈으니 신라
보다는 5백년이나 앞서고, 백제 보다도 수백년 앞선 고대에 후한에 국서 를 보낸 것인
데..... 그후 서기 240년 에는 위나라 에 야마대국 (邪馬臺國) 여왕 히미코 가 사신을 보냅니다.
또 중국 송(劉宋)서 이만전(夷蠻傳) 과 남제서 및 양서 에 왜국의 다섯왕이 조공 을 바쳤기로...
책봉했다는 기사가 나오니 찬(讚 산)- 진(珍 친)- 제(濟 사이)- 흥(興 고오)- 무(武 부) 입니다.
413년 찬(오오진이나 닌토쿠왕으로 본다?) 이 사지절 도독, 왜, 백제, 신라, 임나, 진한, 마한왕
안동대장군을 칭하므로..... 중국에서는 처음에는 안동장군 왜국왕 만을 제수합니다.
그후 왜왕 제(濟) 에게는 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마한왕이자 안동장군 칭호를 제수 합니다.
왜국의 요청 중에서 백제는 이미 중국과 수교 한지라 빠진 것이지요? 그후 478년
무(武, 유랴쿠왕?) 는 진동대장군 을 거쳐 정동대장군 까지 제수 받으니...
고구려, 백제왕과 비교해 볼때 벼슬이 더 높으니 중국의 처사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당시 고구려는 396년 후연의 모용보 로 부터 광개토대왕 이 "평주목요동대방이국왕" 을
책봉 받은 이래, 장수왕은 정동장군 그리고 백제 전지왕은 진동장군 의 책봉을 받고
있던터라 왜국왕의 품계가 더 높았던 것이니 대국 구다라(백제) 의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수십년에 걸쳐 왜국의 5명의 왕이 한반도 나라들의 왕위 를 남조 송나라와 제나라 에 계속해서 집요하게
요구해 결국에는 제수를 받은 이유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개로왕이 전사해 위례성을 잃고
공주로 도망친 백제가 망한다면 왜국이 한반도로 나가 백제를 다시 세울때 한반도 주민들을 병사 로
모병할 명분 을 얻으려했다고 보는데 일본에서 나온 동성왕이 왕위에 오른후는 더는 요구하지 않습니다!
479년 백제 삼근왕이 암살 당하자.... 개로왕의 동생으로 일본에 망명했던 곤지의 둘째 아들 로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모대 가 백제로 나와 왕위에 오르니 동성왕 인데..... 그는 탁월한
지략으로 영토를 회복해 왜국에 의해 대왕(大王) 으로 불렸으며 백제는 구다라(대국) 가 됩니다.
동성왕 은 영토를 회복한 결과 중국 남제국 에 청하여 공이 있는 왕자와 신하에게 주기 위해
왕의 칭호 5명, 제후 칭호 3명, 태수 칭호 7명 을 하사 받는데.... 501년 신하인 백가에게
암살당하니 역시 일본 가카라시마에서 태어난 그의 형 이 돌아와 왕위를 이으니 무령왕 이라!
단군이 아사달 에 도읍해 나라를 朝鮮(조선) 이라 했는데 국호에 朝(조) 자는 아침 을 뜻하며, 鮮(선) 자는
빛나다 라는 뜻이니 곧 해뜨는 동방의 나라 라? 그럼 日本(일본)도 해뜨는 나라 이니 전혀 다른 한자
같아도 같은 뜻 이라! 한국과 일본은 고유문자를 만들지 못하고 훗날 중국에서 한자 가 들어오면서 말을
한자어로 옮긴 것인데 바이칼 호수에서 해뜨는 동쪽으로 진출한 기마민족 이 한국과 일본을 세운 것일까요?
1950년대 동경대학교 사학과 교수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이 일본을 세웠다는
학설을 부정하고 "기마민족일본정복설" 을 주장해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는데 북방 기마민족이 한반도 를
거쳐 규슈로 진출한후 오사카로 들어가 야마토왕조 를 세웠으니 4세기말 부터 일본 무덤에서 전에 없던
귀족적인 대륙 기마민족의 석제품, 마구 · 무기 · 명기류(明器類) 등 유물과 부장품이 출토된다고 말했습니다.
첫댓글 난징의 중심가가 명품매장으로 덮혀잇군요.
한국드라마 "태양의 후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앗군요.
상해나 난징등 대도시는......
믹구이나 유럽과 별반 다를바 없는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