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날, 오른쪽 윗입술이 하루 종일 나를 대신해 떨었다. 나이 들어 풍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순간순간을 매복 자세로 살고 있다. 어제 새벽 4시 넘어서까지 안 자고 술 마시고 대형사고를 쳤다. 여기저기 전화하고 톡 하고 문자 날리고 심지어 블로그에까지 이상한 글을 싸질렀다.
이러고 나면 하루 종일 얼굴에 화기가 올라와서 뜨거워진다. 나의 추하고 난잡한 글에도 달달한 위로의 글을 남긴 이웃님들께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고 창피했다. 따뜻한 토닥거림을 해주신 분들이 많았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오후 네시가 넘어서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변호사한테 톡으로 수임료 두둑하게 줄 테니까 네덜란드 존엄사 좀 신청해 달라고 했다. 미국에 있는 일곱 살 어린 막냇동생한테도 징징거렸다. 고통의 은폐가 옳은 것인지 그냥 온통 알몸을 드러내는 게 맞는 것인지? 헷갈린다. 마치 죽음의 흥정꾼이 되어 삶의 동전을 던졌다 뒤집었다를 반복하는 밤이다.
내 눈물샘은 언제쯤 나미비아 사막처럼 찬란한 주황색으로 바뀔까? 눈물이라는 시니피앙이 피눈물이라는 시니피에로 화하는 밤이다. 슬퍼도 기뻐도 웃는 눈물에 필연성이 없음에도 난 여전히 운다. 이유 없이 스위스의 언어학자이자 언어 철학자인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미워지는 밤이다.
여러 달째 방치된 차를 들여다보면서 온갖 상상을 해본다. 이젠 새들이 화장실로 사용 중이다. 주인 잃은 차 안을 들여다본다. 쓰다듬어도 보고 냄새도 맡아본다. 넌 얼마나 외로울까? 남편이 이상한 짓 그만하라고 한다. 베란다로 바라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주인이 나타나 우리 까망이가 씽씽 달리기를 상상해 본다.
그 어떤 누구보다도 이별을 많이 연습한 나지만 적응이 안 된다. 용암처럼 뜨거운 눈물을 흘려도 눈물이 굳어지질 않는다. 이별은 언제나 이별이다. 예습 복습을 아무리 해도 지나간 이별도 다가올 이별도 아픔일 뿐이다. 난 언제나 이별 초보자이다. 수없이 많은 이별을 했다. 어린 시절 안동 하회마을, 아침마다 첫 달걀을 가져와 할아버지께 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닭 한 마리 한 마리마다 이름을 붙여 주었다.
안동장터에 삼촌이 닭이나 송아지를 팔러 가는 날엔 하루 종일 울었다. 심장이 뽑히도록 울었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이별 부적응자이다. 타인의 달달한 공감이 좋아서 위로를 받고자 함도 아니다. 지나치게 큰 슬픔엔 위로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우울증에 감염되어버린 나를 버릴 순 없어서 이랬다저랬다 반복했다. 베란다에 심장을 들고나가 이불 털듯이 털어버리고 싶다. 좌심방 우심실 방방마다 깨끗이 세척하고 싶어지는 밤이다. 4년을 고통 속에 살았으니 내 마음은 여전히 타클라마칸 사막, 기대는 언제나 나를 배신한다. 네 명의 말 탄자가 나타나 재앙을 일으키길 죽음의 묵시록이 하루빨리 완성되길 기다린다. 눈을 감고 엎드려 눕는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수많은 세상이 만다라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나 홀로 침전하는 밤, 어둠의 밀도를 재본다. 석류 먹고 석류처럼 붉은 피를 토하는 밤, 내게 죄가 있다면 단 하나 너무 사랑했다는 것!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첫댓글 슬픔을 글로 토해낸 온 언니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슬픔이 너무 잘 묘사돼
빛이 날 정도로
잘 쓰셨습니다
주영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