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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墓碣銘은 現在 軍威 언실 修巖할배 墓所에 現存하는 것이며 글 內容에 於義谷이 요즘 언실 인가 합니다.
이 글을 쓰신 鄭宗魯先生(1738-1816年)은 慶北 聞慶 出身이며 本貫은 晋州이고 字는 士仰이며 號는 立齋, 無適翁이시고 大提學 愚伏 鄭經世 先生의 六代孫이며 嶺南學派의 學統을 繼承하였고 愚山書院에 祭享 되었다고 합니다.
修巖 柳先生 墓碣銘
粤(월) 惟我文忠公以天生大賢(유아문충공이천생대현)
아! 우리 문충공은 하늘이 나으신 대현이요
得退陶嫡傳蔚(득퇴도작전울) 以百世之師(이백세지사)
퇴계 선생의 적통으로 전함을 받아 백대의 스승으로
而其第三胤修巖先生(이기제삼윤수암선생) 克肖而式紹之 (극초이식소)
그 제삼자이신 수암선생이 매우 닮으시고 법도를 이어받았다.
又從吾先祖文莊公(우종오선조문장공유) 遊其德學行誼(유기덕학행의)
또 우리 선조 문장공께서 덕행과 학의를 그에게 배우라고
하셨는데,
木齊洪公旣狀之詳矣(목제홍공기상지상의) 顧墓道無顯刻(고묘도무현각)
목제 홍공께서 이미 행장에 자세히 기술하셨다.
先生六世孫翊贊尋春屬宗魯一言(선생육세손익찬심춘속종로일언)
선생 6세손 익찬 심춘이 종로에게 한마디 부탁을 하니,
盖我高王母(개아고왕모) 卽先生女(즉선생여)
또한 우리 고왕모께서 곧 선생의 따님이 되시니,
忝在外裔末(첨재외예말) 宜若自盡焉(의약자진언)
황공하게도 먼 외손이 되어 마땅히 자진해서 할 뿐이다.
遂按狀而謹叙如左(수안상이근서여좌)
마침내 행장을 살펴 삼가 아래와 같이 서술한다.
文忠公諱成龍(문충공휘성룡) 娶龍宮縣監李坰女(취용궁현감이경여)
문충공 휘 성룡이요, 용궁 현감 이 경의 따님과 결혼하여,
以萬曆壬午七月日生先生(이만력임오칠월일생선생)
만력 임오 7월 일에 선생을 나으셨으니,
性端直聰穎(성단직총영) 八歲喪母夫人(팔세상모부인)
성품은 단아하고 정직하며 총명하고 영오하여 여덟 살에 모친상을 당하여
哭泣助奠如成人(곡읍조전여성인) 十一歲遭黑齒亂(십일세조흑치란)
사람들과 곡하고 읍하며 제사를 도움이 마치 성인처럼 하였다. 열한 살에 임진란을 만나
文忠公扈駕而西(문충공호가이서) 先生從妹夫李氏(선생종매부이씨)
문충공은 어가를 호종하여 서쪽으로 가시고, 선생은 매부 이씨를 따라
奔竄嶺東山谷間(분찬영동산곡간) 往往遇賊濱死(왕왕우적빈사)
영동의 산골짜기로 피난하였는데, 가끔 적을 만나 자주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
能以計得全(능이계득전) 一行亦多賴焉(일행역다뢰언)
계략으로써 온전할 수 있게 되자, 일행들이 또한 많이 신뢰하게 되었다.
亂定(란정) 文忠公謝事南歸(문충공사사남귀)
난이 평정되고 나서 문충공이 벼슬을 그만두고 남쪽으로 귀향하시자,
先生朝夕侍側(선생조석시측) 講問經義(강문경의)
선생께서 아침저녁으로 모시며 강의를 듣고 문답하시며,
默契自得(묵계자득) 文忠公愛之甚(문충공애지심) 以未及退陶門恨之(이미급퇴도문한지)
묵묵히 스스로 터득하셨으니, 문충공께서 매우 사랑하였으나, 퇴도의 문하에서 공부하지 못함을 한스러워 하셨다.
先生旣聞爲學之要(선생기문위학지요) 惟專心扵存養踐履之工(유전심어존양천리지공)
선생께서 학문의 요체를 들으시고 나면, 오직 전심으로 존양 천리로 공부하시며,
座右書靜坐終日易(좌우서정좌종일이) 操存一刻難十字以自勉 (조존일각난십자이자)
정좌종일이 조존일각난 이란 10자를 써서 좌석 위에 부쳐 놓고 스스로 열심히 하셨다.
丁未丁文忠公憂(정미정문충공우) 光海庚戌魁司馬(광해경술괴사마)
정미년에 문충공께서 상을 당하였고, 광해 경술년에 사마시에 수석합격 하셨으며,
壬子二月海西獄起(임자이월해서옥기) 先生爲賊誣被逮(선생위적무피체) 疾甚(질심)
임자년 2월에 해서 옥사가 일어나 선생께서 정적에게 모함을 당하여 체포되어 구금되었는데, 병이 심하자
大臣李漢陰沈一松諸公以狀白(대신이한음심일송제공이상백)
대신 이 한음, 심 일송 등 여러 대신들이 상황을 아뢰어
六月始宥還(유월시유환) 丙辰拜翊衛司洗馬不就(병진배익위사세마불취)
6월에 비로소 사면되어 돌아왔다. 병진년 익위 사세마의 벼슬을 받았으나 취임하지 않으셨다.
癸亥仁祖改玉(개해인조개옥) 吾先祖以副學侍經筵(오선조이부제학시경연)
계해년에 인조 개옥에 우리 선조께서 부제학으로 경연에서
因上下詢南中賢才(인상하순남중현재) 薦先生及張旅軒(천선생급장여헌)
위아래를 헤아려 남중의 현재를 찾게 하여 선생과 장 여헌을 천거하였으니,
於是(어시) 起先生監奉化縣(기선생감봉화현)
이에 선생께서 기용되어 봉화현감이 되었으나
縣土瘠賦重民不堪(현토척부중민불감) 先生申地部改步其田(선생신지부개보기전)
현의 토지가 척박하고 세금이 과중하여 백성들이 견딜 수가 없었는데, 토지대장의 전답 보를 개량하여
田以增稅以省(전이증세이성) 流逋四歸(유포사귀)
전답을 증가시키고 세금을 살피니, 유랑하던 백성들이 사방에서 돌아와
其始戶不滿百(기시호불만백) 朞月間倍之(기월간배지)
처음에 호구가 백도 되지 않았는데 일년간에 그 배가 되자,
巡察使以聞(순찰사이문) 賜表裏奬諭曰(사표리장유왈)
순찰사가 듣고서 표창을 내려 유시하기를
爾愛民如子(이애민여자) 治邑如家(치읍여가)
“그대가 애민함이 마치 자식과 같이하고, 고을 다스리기를 마치 가족과 같이하니
誠不負拔擢意(성불주발탁의)
실로 발탁한 뜻을 저버리지 않는구나”하셨다.
甲子除刑曹正郞不赴(갑자제형조정랑불부)
갑자년에 형조정랑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丙寅冬授榮川郡未赴(병인동수영천군미부)
병인년 겨울에 영주군수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丁未正月翟犯我(정미정월적범아) 上避入江都(상피입강도)
정미년 정월에 오랑캐들이 우리나라를 침범하자, 주상이 피난하여 강화도를 도읍하여 들어갔다.
鄕人士推先生將義兵(향인사추선생장의병) 李蒼石見其紀嚴(이창석견기기엄)
고을 사람들과 선비들이 선생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시니,이 창석이 그 기강의 엄함을 보고
歎曰(탄왈) 始吾以柳某直柔耳(시오이류모직유이)
감탄하여 말하기를“우리 류 모가 다만 부드럽다고만 들었는데
不意有行三軍勇如此(불의유행삼군용여차)
뜻밖에 삼군을 통솔함에 이와 같이 용맹스럽구나.”하셨다.
二月淸道郡(이월청도군) 作文諭諸生(작문유제생)
2월 청도군을 다스릴 때 여러 유생들이 문장을 깨우치도록
擇訓長以敎之(택훈장이교지) 十一月罷歸(십일월파귀)
훈장을 선발하여 그들을 가르치게 하셨으며, 11월에 그 직을 마치고 돌아오셨다.
戊辰拜翊衛司翊衛(무진배익위사익위) 吾先祖將進講璣衡註(오선조장진강기형주)
무진년에 익위의 사익위를 맡으셨는데, 우리 선조께서 기형주를 진강하고자 하시면서
邀先生論疑義旋(요선생론의의선) 拜司僕寺僉正(배사복시첨정)
선생을 불러 의심되는 뜻을 논의하셔서 바로잡으셨으며 사복시 첨정을 맡았다.
己巳出守醴泉郡(기사출수예천군) 棄官歸(기관귀)
기사년에 예천군수로 나가셨으나, 그 직을 버리고 돌아오셔서
辛未除全羅都事不赴(신미제전라도사불부) 三月監陝川縣(삼월감합천현)
신미년에 전라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으시고, 3월에 합천현감으로 계시다가
癸酉解歸(계유해귀)
계유년에 직을 마치고 돌아오셨다.
甲戌以漢城庶尹(갑술이한성서윤) 拜司憲府持平(배사헌부지평)
갑술년 한성 서윤을 거쳐 사헌부 지평을 맡았는데,
時姜處士鶴年(시강처사학년) 以掌令上疏(이장령상소)
이때 처사 강 학년이 장령으로써 상소를 하였는데
言事其語犯(언사기어범) 朝議將置重典(조의장치중전)
일을 말함에 어구에 거스름이 있어 조정에서 무거운 법으로 다스리고자 하여
先生啓曰(선생계왈)
선생께서 아뢰기를
鶴年以山野樸愚(학년이산야박우) 不識事體(불식사체)
“강 학년이 시골의 순박하고 어리석음이 일의 근본을 모르고
妄引伯夷嚴延年事(망인백이엄연년사) 然原其本心(연원기본심)
망령되이 백이와 엄 연년의 일을 인용하였으나, 그 본심의 근원은
不過受恩感激(불과수은감격) 惟思盡言(유사진언)
은혜를 받아 감격함에 오직 생각을 말로 다하고자 함에 지나지 않았는데
以此爲罪(이차위죄) 獨不爲聖世累乎(독불위성세누호)
이것으로 죄가 된다면 성세에 누가되지 않을 것이 있겠습니까?”하자,
大臣爭之不已(대신쟁지불이) 上曰(상왈)
대신들은 언쟁하기를 그치지 않자, 주상이 말하기를
予不欲以言語間忘發殺士(여불욕이언어간망발살사)
내 언어간으로 선비를 죽이는 망령됨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하셨다.
葢於先生言有感悟焉(개어선생언유감오언)
대개 선생의 말씀으로 마음에 깊이 느껴 깨달음이 있었음이다.
乙亥正月(을해정월) 先生謁陶山庾歸(선생알도산유귀)
을해년 정월에 도산서원에 배알하고 돌아오시며
到榮川之龜鶴亭(도영천지귀학정) 忽得疾(홀득질)
영주 귀학정에서 갑자기 병을 얻어
以十三日卒(이십삼일졸) 享年五十四(향년오십사)
13일에 돌아가시니 향년 54세이었다.
遠近皆嗟惜曰(원군개차석왈) 吾道何托焉(오도하탁언)
원근이 모두 탄식하고 애석해하며 말하기를“우리 도는 누구에게 의탁한단 말인가.”하였다.
是年月日(시년월일) 葬于善山地(장우선산지)
이해 월 일 선산 땅에 장사 지내고
後移窆軍威縣西於義谷亥坐原(후이폄군위현서어의곡해좌원)孝庿(효묘)
후에 군위현 서편 어의곡 해좌 언덕에 이장하고 사당에 모셨다.
丙申(병신) 贈吏曹參判(증이조참판) 顯庿(현묘) 壬寅(임임)
병신년 이조참판에 증직 되셨고, 임인년에
祔享于屛山文忠公庿(부향우병산문충공묘)
병산서원 문충공 묘당에 부향하였다.
先生謙冲渾涵(선생겸충혼함) 不見涯際(불견애제)
선생께서는 겸손하고 온화함에 젖어 끝이 보이지 않으시니,
雅醇莊和(아순당화) 不露圭角(불로규각) 忿厲之氣(분려지기)
고상하고 순수하고 장엄함이 조화를 이루어 규각을 드러내지 않으시었다. 성내고 사나운 기색을
不形於色(불형어색) 機智之私不萌于心(기지지사불맹우심)
얼굴에 나타내지 않으시었고, 기지로써 사사로움을 마음에 싹이 트이지 않게 하였으니,
平居那服膺(평거나복응) 惟以子曽子專用力(유이자증자전용)
평소 지내시면서 복응으로 오직 자증자의 가르침에 온 힘을 쓰시며
於內爲法(어내위법) 孚尹旁達(부윤방달) 仁厚之容(인후지용)
안으로는 법도로 삼으셨다. 참되고도 두루 통달하여 어질고 정중한 용모가
藹然溢於面目(애연일어면목) 望之者(망지자)
윤택하여 면목에 넘쳐 바라보는 자는
莫不知其爲有道君子也(막부지기위유도군자야)
그 행함이 도가 있는 군자임을 알아보지 못함이 없었다.
孝友天至(효우천지) 事文忠公(사문충공) 能致其悅(능치기열)
효성과 우애는 하늘에 이르러 문충공을 모심에는 지극히 즐거워하셨고,
及喪哀毁(급상애회) 得疾幾殆(득직기태) 祭祀必齋(제사필제) 宿五六日(숙오륙일)
상을 당하셔서는 슬퍼하심이 심하여 몸을 상하시니, 병을 얻어 거의 위태하시기도 했다. 제사를 모심에는 반드시 재계하고 오륙 일을 숙박하며
執饌婢僕(집천비복) 亦令沐浴致潔念(역령목욕치결념)
노비들과 상을 차리고 또한 목욕을 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셨다.
二兄早歿(이형조몰) 敎養其孤(교양기고) 如己出(여기출)
두 형이 일찍 돌아가셔서 그들의 외로운 자식을 기르고 가르치심을 마치 자기 자식과 같이 했으며,
與兄弟柝著(여형제탁저) 無嫡庶惟均遇(무적서유균우)
형제들과 함께하면 적자와 서자를 드러내지 않고 공평하게 대우하셨고,
宗姻隣曲(종인린곡) 無疏戚一盡其分(무소척일진기분)
친척과 이웃은 멀고 가까움 없이 나눔을 한결같이 하였다.
與朋友交久而敬(여붕우교구이경) 雖接卑幼禮虔辭恭(수접비유례건사공)
친구를 사귐에는 오래도록 그리고 경건히 하였고 비록 하인으로 나이 어린 사람도 예로써 대우하고 삼가 말은 공손히 하였으며,
稱人之善若己有之(칭인지선약기유지)
다른 사람의 착함을 보면 마치 그것이 자기에게 있었던 것같이 칭찬하였다.
於世間名利泊如也(어세간명리박여야) 嘗應擧旣中(상응거기중)
세간의 명리에 머무르기야 했을까 만은 일찍이 과거에 응시하여 합격함이
知主司故採之(지주사고채지) 遂不赴省圍(수불부성위)
주사의 연고로 채택되었음을 알고 마침내 부임하지 않으셨다.
前後四典郡邑(성위전후사전군읍) 氷蘗凜然(빙벽름연)
전후 4번 군읍을 다스리셨고, 빙벽처럼 위엄이 있고 기개가 높으니
人莫敢干以私(인막감간이사) 那至民皆立石以頌(나지민개입석이송)
사람들이 감히 사사로이 범하지 못하였으며 백성들이 모두 비문을 세워 칭송하였다.
及歸還都蕭然(급귀환도소연) 飦粥不繼(전죽불계)
벼슬을 마치고 돌아오니, 소연하여 죽도 잇지 못하였으나
而處之晏如自(이처지안여자) 以故家世臣(이고가세신) 凡有除(범유제)
그 처신함은 마치 스스로 즐기는 듯 하였다. 대대로 벼슬한 집안인 까닭에 무릇 깨끗이 함에 있고,
未嘗不肅(미상불숙) 亦未嘗久扵職(역미상구어직)晩入臺憲(만입대헌)
일찍이 엄숙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또한 일찍이 직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으니 뒤늦게 사헌부에 입대하여
値權貴輩(치권귀배) 欲艾國良(욕예국량) 爲之辨遏堅懇(위지변알견간)
권력을 귀하게 여기는 무리를 만나 국량을 베고자 하므로 그를 위해 변호하여 막음을 굳건히 정성을 다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考其平生語默出處(고기평생어북출처) 悉合於古醇儒矩度(실합어고순유구도)
상고해 보건대 평생의 어묵출처가 모두 옛날 순유의 규구에 부합되고
爲文章造理精(위문장조리정) 到一以典實應用爲主(도일이전실응용위주)
문장은 조리정미하고 전실응용을 위주로 하나로 도달하게 하였다.
葢先生之學(개선생지학) 以謙恭篤實爲本(이겸공독실위본)
대개 선생의 학문은 겸공 독실을 근본으로 삼고
而守之以靖確(이수지이정확) 行之以平正(행지이평정)
그리고 그 지킴은 정확으로써 하고, 그 행함은 평정으로써 하고,
持之以積久(지지이적구) 雖名已成道已崇(수명니성조이숭)
그 지킴은 적구로써 하였으니, 비록 이름은 이미 이루어지고 도도 이미 숭상되었으나
而常若毫無那有(이상약호무나유) 非君子之盛德(비군자지성덕) 曷克臻是哉(갈극진시제)
늘 없는 듯이 하였으니, 군자의 성덕이 아니면 어찌 여기에 이르렀겠는가!
先生諱袗(선생휘진) 字季華(자계화) 柳氏豊山人(유씨풍산인)
선생의 휘는 진이요. 자는 계화이고 , 류씨로 풍산 인이다.
世居何隈(세거하회) 先生始遷于商山之紫里(선생시천우상산자리)
대대로 하회에서 살았으며, 선생이 처음으로 상산의 자리로 옮기셨다.
高祖諱子溫(고조휘자온) 進士贈吏判(진사증이판)
고조 휘 자온이시고, 진사였으며 증직이 이조판서였다.
曾祖諱公綽(증조휘공작) 郡守贈左贊成(군수증좌찬성)
증조 휘 공작은 군수로써 증직이 좌찬성이며
祖諱仲郢(조휘중영) 觀察使贈領議政(관찰사증영의정)
조부 휘는 중영이며 관찰사로써 증직이 영의정이다.
配贈貞夫人永嘉權氏(배증정부인영가권씨)
부인은 증직이 정부인이고 영가 권씨로
忠定公撥曾孫護軍采女(충정공발증손호군채녀)
충정공 발의 증손이자 호군 채의 따님이시며
祔先生墓(부선생묘) 一男八女(일남팔녀) 男千之逸掌令(남천지일장령)
선생 묘에 합장하셨다. 일남 팔여로 아들 천지가 일로 장령이고
女金時敏監役(여김시민감역) 申崇耉府使(신숭구가부사)
여식으로는 김 시민은 감역, 신 숭고는 부사,
琴處謙(금처겸) 李尙逸參奉(이상일참봉) 金宗準(김종준)
금 처겸, 이 상일은 참봉, 김 종준
鄭道應逸諮議(정도응일자의) 卽吾高祖(즉오고조)
다음은 정 도응이며 일로 자의가 되셨는데, 곧 우리 고조가 되시고,
郭文溶府使(곽문용부사) 李在寬(이재관)
곽 문용은 부사 그리고 이 재관이 있다.
後配晉陽河氏沃女(후배진양하씨옥녀) 一男百之直長出后 (일남백지직장출후)
재취 진양 하씨는 옥의 따님으로 일 남을 낳으셨으니, 백지로 직장이며 출후하였고,
掌令三男命河(장령삼남명하) 經河參奉(경하참봉)
장령은 삼남을 두었으니, 첫째 명하이고, 둘째는 경하며
참봉이고,
緯河(위하) 四女(사녀) 張萬容(장만용) 趙重胤(조중윤) 權(?)(권?)
셋째는 위하다. 여식은 4명으로 장 만용, 조 중윤, 권?이며
李萬敷逸別提(이만주일별제) 直長四男(직장사남)
이 만부는 일로 별제였다. 직장은 4남으로
章河(장하) 錫河(석하) 昌河(창하) 應河(응하)
장하, 석하, 창하, 응하이며,
三女(삼녀) 金夏鎭生員(김하진생원) 金南粹(김남수) 姜震錫(강진석)
딸은 3명으로 김 하진은 생원이었으며, 김 남수, 강 진석
以下支派不盡錄(이하지파불진록)
이하 지파를 다 기록할 수가 없다.
命河嗣子(명하사자) 後謙(후겸) 後謙子聖魯(후겸자성노)
명하의 양자로써 대를 이은자는 후겸이고, 후겸의 아들은 성노이며,
聖魯子潑(성노자발) 潑嗣子(발사자) 卽尋春(즉심춘)
성노의 아들은 발이며 발의 양자로써 대를 이은자는 곧 심춘이다.
克紹先業顯者(극소선업현자) 聖魯弟三子(성노제삼자)
선업을 이어 현달한 자로는 성노의 셋째 아들로
光澺文科正言(광억문과정언)
광억이며 문과 정언에 급제하였다.
銘曰(명왈)
명에 말하기를
鍾天地醇和之氣(종천지순화지기) 誦聖賢中正之理(송성현중정지리)
천지 순화의 기운을 모아 성현의 중정한 도리를 노래하니,
篤誠乎其立志也(독성호기입지야) 兢業乎其持已也(긍업호기지이야)
오로지 순수한 마음으로 뜻을 세우고 삼가 업을 지킬 뿐이다.
於焉而德器粹(어언이덕기수) 於焉而學力至(어언이학력지)
어언 간에 덕기는 순수하고, 어언 간에 학력은 지극하여
愛物則有春風發育之意(애물즉유춘풍발육지의)
애물 하니 곧 춘풍은 발육의 뜻이 있고,
言事則有古人剛果之義 (언사즉유고인강과지의)
일을 말하자면 옛 사람에게는 굳세고 과감한 뜻이 있었으니,
謙而賁弘而毅(겸이분홍이의) 宜其允稱(의기윤칭)
겸손하고 크고 넓고 그리고 굳세어 마땅히 진실로
말하겠거니와
爲文忠公之子(위문충공지자) 而矜式扵鄒魯(이긍식어추로) 百世之士也(백세지사야)
문충공의 자제가 되어 추로를 법도로써 공경하니 백대의
선비이다.
正廟壬辰正月日(정묘임진정월일) 通訓大夫(통훈대부) 司憲府掌令(사헌부장령) 鄭宗魯(정종로) 謹撰(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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