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첨가물 제조업을 하는 A사는 최근 영업관리 이사대우 B씨를 해고했다. B씨가 업무 실적이 저조해 이에 대해 여러 차례 경고·지시했지만 개선되지 않은 데다 법인카드 무단 사용에 과도한 납품 단가 인하 사실까지 적발되면서 "근로관계를 지속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해고를 통보한 것이다. 그러자 B씨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 해고"라면서 구제 신청을 했다.
이에 대해 지방노동위원회는 "징계위원회를 열지도 않았고, 이사회에서 해고를 결정할 때도 당사자에게 소명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절차상 부당 해고"라고 판단했다.
모 대학병원에서는 시간제 간호사로 일하다 정식 채용된 간호사를 1년 5개월 만에 직권 면직했다. 이 간호사는 이 기간에 직무 관련 일로 10회 시말서를 썼고, 1년 동안 상·하반기 근무평정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아 이듬해 2월 보통인사위원회에서 직권 면직됐다. 이 간호사 역시 "부당 해고"라면서 지노위에 구제 신청을 했으나 "사용자가 의료 과실 등을 반복한 해당 직원에 대해 지도·교육·상담을 계속했으나 근무 수행 능력 부족이 근로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운 정도"라며 해고가 확정됐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한두 명씩 꼭 문제(불량) 직원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들을 방치할 경우 조직에 미치는 부정적인 효과가 크기 때문에 처리에 골머리를 앓는 경영자가 적지 않다. 대기업처럼 체계적인 인사팀이 있을 때는 시스템에 의해 단계적으로 해결해 가지만, 중소기업은 모두 경영자의 부담으로 남기 쉽다.
하지만 사전에 충분한 법률적 검토와 증거 확보 노력 없이 어설프게 해고했다가는 문제가 더 꼬인다. 삼주노무사 추병호 대표는 "요즘은 해고되면 노동위원회나 법원을 상대로 법적 쟁송(爭訟)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고, 여기서 회사가 패소라도 하면 오히려 이후 인사 관리 질서가 더 복잡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당한 해고였더라도 당사자가 '억울하다'면서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호소하기 시작하면, 통상 노동자는 약자이고 사용자를 강자로 보는 풍토 때문에 온라인 여론전에서 예기치 않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못 한다
우리 근로기준법 23조 1항은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고할 수는 있지만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당한 이유'란 무엇인가. 이는 해고를 둘러싼 갈등을 푸는 중요한 논점이다. 법학자들은 이를 '사회 통념상 더 이상 고용관계를 지속시키기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로 해석한다. 세부적으로는 노동자가 개인적 사정으로 근로계약상 해야 하는 일을 다하지 못할 경우 허용하는 '통상 해고'와 경영 질서나 근무 질서를 위반한 데 대한 책임을 묻는 '징계 해고'로 나뉜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해고와 관련한 분쟁 조정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경우에 통상 해고나 징계 해고가 가능한지를 유형별로 정리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부상·질병·건강 악화로 일할 수 없을 때
② 사업 외적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아 근무가 어려울 때
③ 능력 부족·성적 불량·적격성 결여
④ 업무 지시·명령 거부
⑤ 상사·동료와 협력하지 않고 독선적으로 행동
⑥ 기업 업무에 중대한 지장을 준 불법 쟁의 행위
⑦ 사생활 비리나 기업 비밀 누설 등으로 회사 명예·신용 손상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문구만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사안별 사정과 노력이 감안된다. 회사가 해고를 피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면, 대부분 해고를 인정하지 않는 게 판결 추세다.
예컨대 ③번 유형에서 어떤 직원이 업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해서 이를 이유로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우선 회사에서 보직을 바꿔주거나 지도·교육·연수 등으로 직원 역량을 개선하는 노력을 최대한 펼치고, 그래도 여지가 없는 경우에 해고가 정당화될 수 있다. ⑥번 불법 쟁의 행위로 기업 업무에 중대한 지장을 준 노동자에 대해서는 이 쟁의가 불법이라도 업무상 손해가 경미하다면 해고해서는 안 된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⑦번 사례에서는 시내버스 운전자가 여러 차례 직장 외에서 음주 운전을 하다가 걸려 해고되자 소송을 낸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법원은 "상습 음주 운전이 버스회사 신뢰를 실추한 측면이 인정된다"면서 해고가 유효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증빙자료 확보하고 절차 지켜야
해고에 대한 원칙과 기준은 그동안 숱한 분쟁 사례를 통해 기업들도 어느 정도 상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주관적 상식에 따라 충분히 해고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해 해고를 단행했다가 노동위나 법원에서 부당 해고로 판정되는 사례가 잦다.
절차도 중요하다. 사유가 정당하더라도 해고를 할 때에는 반드시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 또 징계 해고라도 노동자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줘야 한다.
중앙노동위에 따르면 부당 해고 구제 신청 건수는 연평균 1만1000여건. 이 중 사용자가 해고 정당성을 인정받는 비율은 60% 안팎이다. 재심을 거쳐 소송까지 가는 비율은 100건 중 3~4건꼴.
중노위 심판과 담당자는 "신청자 중 70% 이상이 금전적 보상 등 방법으로 화해하면서 취하한다"고 전하고 "사용자들이 원직 복직은 죽어도 허용할 수 없다고 나서면 결국 소송까지 이어져 결과가 나오기까지 2~3년 걸리곤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채용할 때 신중해야 하고, 보직 관리를 효과적으로 해 해고라는 극한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조직을 정비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조언한다. 그럼에도 불가피하게 해고라는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면 전문가와 충분히 상의해 미리 적법하고 체계적인 퇴출 전략을 고민한 다음 차분하게 실행하라고 권유한다.
예를 들어 경력 사원을 뽑을 때, 뽑고 나서 기대에 못 미쳐 고민하기보다는 신입 사원 수습 기간처럼 업무 적응 기간을 둬 이 기간에는 더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다는 내부 규정을 마련해 두고 공지하는 게 좋다. 비위·태만 행위가 처음 적발됐을 때 징계 과정에서 '재발 시 어떤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각서를 받아두는 조치도 효과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해고는 최후의 수단
미국 컨설팅회사 매독더글러스는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 기고문을 통해 리더십에는 해고하는 능력도 포함된다면서 3가지 유형 직원을 즉각 해고하라고 조언한다.
① 희생자(The Victims) : 우리가 이 월급 받으면서 그런 일까지 해야 하냐. 핍박과 고난을 강조. 불평과 짜증이 많다.
② 불신자(The Nonbelievers) :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 뭐해, 사장이 보상해주겠느냐. 이게 성공하겠느냐.
③ 헛똑똑이(The Know-It-Alls) : 똑똑한 척하면서 뭐든 안 된다고 하는 부류.
혁신을 이끌기 위해서는 이런 직원들을 솎아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이다. 이 글에서 익명을 요구한 한 최고경영자(CEO)는 "나는 행복한 기업 문화를 원한다. 그래서 불행한 직원을 해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내보낼 때는 한없이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외국과 달리 우리는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않기 때문에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가 설득력 있게 먹히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 관리 차원에서도 해고는 민감하다. 만약 회사에서 어떤 직원을 해고한 데 대해 다른 직원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면 조직 전체가 흔들린다. '다음에는 내가 퇴출당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불안감이 머리를 쳐들면서 당장 업무 효율성이 두드러지게 떨어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상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해고는 최후의 수단"이라면서 "결국 직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해고는 조직에 독이 된다"고 말했다.